괜찮아! 정말 괜찮아!

작성자
백승학
작성일
2020-08-08 10:31
조회
407
괜찮아! 정말 괜찮아!

백승학

수 년 전에 내가 속한 교단에서 개최한 선교관련 세미나에 다녀온 적이 있다. 본부에서 교단 산하 조직으로 내려보낸 할당 인원을 채우느라 타의로 참석한 세미나였다. 원주 오크밸리 리조트의 대형 연회장에는 전국에서 모여든 목회자들과 평신도 대표자들로 가득했다.
그곳에서 '감리교회의 신뢰 회복과 부흥'이라는 주제로 한국의 선교 상황에 대한 진단과 함께 구체적인 대안 제시와 사례 발표도 이어졌다. 나는 대형 세미나실 뒤편 좌석에 최대한 편안한 자세로 설렁 설렁 앉아서 세미나에 전혀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동안 나름대로 이곳저곳 열심히 세미나를 들으며 다녔어도 교회가 부흥되지 않았다는 자괴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하나님을 향한 사춘기 아이의 반항 비슷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 나는 같은 이유로 모든 독서조차 끊고 지내는 중이었다. 내가 음식을 끊고 금식기도를 해도 모자란 판에 세미나와 독서와 성서 연구를 끊고 지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하나님과 나만 알고 있는 1급 비밀이다.
당시 오크벨리 세미나실에서 왠 일로 이왕 참석한 김에 강사가 세미나에 참여하는 청중들에게 전달하려고 수없이 원고를 쓰고 또 써 내려갔을 것을 생각해서라도 강사의 강의를 다만 얼마라도 가슴에 담아야겠다 싶어서 머리를 들었을 때 세미나실 앞 쪽에 낯익은 어깨와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사관생도를 연상 시키는 자세로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앉아 있는 그 모습은 대학원에서 나의 논문을 지도해 준 P교수였다. 내 아버지의 장례식 날 그 먼 길을 달려와 내 어깨를 붙들고 함께 울어 주던 그를 아버지 장례식 이후로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대형교회에서 부목사로 시무할 때는 감당해야할 업무량이 너무 많아서 늘 체력이 고갈되어서 못 찾아뵈었고, 개척교회에서 목회를 하면서는 늘 마음이 고갈되어서 못 찾아뵀기 때문이었다.
쉬는 시간에 나는 P교수에게 달려가 인사를 했다. 그는 연회장 복도에서 커피잔을 들고 어떤 사람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를 돌아다 보는 그의 앞에 섰을 때 나는 스승의 날이 그동안 열 다섯 번도 더 지났는데도 저 낡은 양복 윗주머니에 카네이션 한송이를 꽂아드리지 못한 데 대한 죄스러움이 밀려왔다.
“선생님, 그동안 목회 현실이 너무 버겁고 겨를이 없어 한 번도 찾아 뵙지 못했습니다. 너무나 죄송합니다.” 하고 머리를 숙였을 때 P교수는 내가 머리를 들고 다시 그를 바라볼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천천히, 그리고 따뜻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말했다.
“괜찮아! 정말 괜찮아!”
세미나 자리로 돌아오면서 나는 수년 전의 일이 오늘의 일과 오버랩되어 떠올랐다. 공교롭게 그 때도 교단에서 열리는 전국 선교대회에 참석했었다. 그날 부산 공설 운동장에서의 행사가 끝나고 부산역 대합실 부근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신학교 시절에 영성 신학을 가르치던 K교수가 먼 발치의 간이벤치에 앉아 있었다. 내가 수업시간에 주제발표를 하거나 그가 던지는 질문에 대답을 하면 그때마다 두 번 세 번 “엑설런트(excelient)!”라고 외치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던 분이었고 나는 평소에도 그분의 가르침과 인격을 늘 흠모하였었다.
부산역에서 대합실 먼 곳에 혼자 앉아 있는 그를 발견하고 속으로는 뛸 듯이 반가웠지만 결국 나는 아무도 본 적이 없는 자처럼 유유히 개찰구를 빠져나오고 말았다. 그때 나는 교회를 개척한 후 오래 지났으나 교회가 부흥되지 못했으며 더구나 원래 많지 않던 교인들이 이리 저리 이사를 가거나 더 큰 교회로 옮겨 가면서 상가 예배실의 세를 내지 못해 곧 거리로 나앉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거기다가 고향집에서 전해온 아프고 마음 무너지는 개인사로 인해 숨조차 간신히 쉬고 다니는 처지였다. 초라하고 나약하기 그지없어 보일 게 분명하며 전혀 엑설런트(excelient)하지 않을 게 분명한 나의 몰골을 수업시간 마다 유난히 내게만 “엑설런트!”를 외쳐주시던 교수님 앞에 도저히 보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 인생에 두고 두고 후회가 될 만한 장면 중의 하나가 그날 부산역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 일 후로 나는 몇 번의 꿈 을 꾸었다. 꿈속에서 내가 “선생님! 그때 선생님을 못 본 척 인사도 드리지 못하고 개찰구로 빠져나간 것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하고 말하면 K교수는 꿈 속에서 천천히, 그리고 따뜻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말했었다.
“괜찮아! 정말 괜찮아! 자네가 왜 그랬는지 말 안해도 알아!”
신약성경 누가복음 15장에는 어떤 농부의 둘째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미리 받아서 먼 곳으로 나가 그 돈을 다 낭비한 후 빈털터리로 돌아오는 이야기가 기록이 되어 있다. 그날도 해질녘에 동구 밖에서 아들을 기다리다가 생 거지꼴을 하고 돌아오는 아들을 발견한 아버지는 신발이 벗어지는 줄도 모르고 달려가서 아들을 와락 끌어안는다. 아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제 저는 아버지의 아들로서가 아니라 종으로서 이집에 있겠습니다. 지나간 일은 제가 잘 못했습니다. 그러니 받아만 주십시오.” 이때 아버지는 울면서 말한다.
"괜찮단다! 정말 괜찮단다. 죽은 줄만 알았던 네가 살아 돌아왔는데 그 이상 무엇이 문제겠니!“
하나님은 그 아버지고 둘째 아들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아니겠는가! 우리는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부모님, 선생님, 또한 가깝고 그립고 사랑하는 누군가로부터 더우기 하나님으로부터 “괜찮아! 정말 괜찮아!”라는 말을 들으며 다시 일어섰고 견뎌냈으며 다시 살아온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우리에게 남은 것 이 하나 있다면 이제는 누가 봐도 정말 괜찮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이 아닐까?

출처/ 백승학 글모음 블로그 https://greenword.postype.com/series
또는
https://facebook.com/seunghaak.baik

전체 3

  • 2020-08-08 10:32
    그날 부산역에서 먼 발치에서 뵈었는데도 인사 못드렸던 김외식 교수님! 늘 그립고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 2020-08-10 02:15
    여기 게시판에서 목사님의 글은 참 특별합니다.
    온통 탄식하고 원망하고 뭔가를 주장하고 여차하면 한 판 붙을 것같은
    전장의 한 복판 같은 이 곳에서 유일하게 긴장을 풀고 한 숨 돌릴 수 있는
    숲 속의 빈 터같고 그늘이 드리워진 물가의 잔디밭 같기 때문입니다.

    고맙습니다.

    참, 저도 제 처지가 그때는 좀 그래서 꿈에도 보고싶어 하던 이가 저만치 있었는데도
    ...고개를 숙이고 숨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나무 그늘 아래로 숨어 하나님의 부르심을 피했던 아담처럼요

    • 2020-08-10 09:29
      따뜻한 가슴으로 전해주신 답글 감사드립니다.
      아쉽고 그리운 시간들 모두가 오히려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이유이지 싶습니다. 늘 소중하고 행복한 날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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