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신앙

작성자
장병선
작성일
2020-06-05 05:25
조회
272
합리적 신앙/박충구

1.
오늘 이 글을 쓰는 이 시각 전 세계에서 감염자가 656만 2천 명이 넘었습니다. 사망자는 386,787명에 이르렀고요. 어제 하루에 4,928명이 사망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제 하루 감염자 49명이 늘어 11,590명이 감염되었고 사망자 총계는 1명이 늘어 273명이 되었습니다.

세계적으로 보면 지난 3월 중순부터 급격히 감염이 확산하기 시작한 추세가 조금도 꺾이지 않았습니다. 지역적으로는 둔감해진 지역이나 국가가 있지만 전 세계의 통계를 보면 계속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다시 말해 코비드-19 전염병이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5월 초 국가적으로 감염자 수가 한 자릿수까지 떨어졌었지만, 이태원 클럽 감염 확산 이후 조금씩 감염자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감염자 증가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장소는 집단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중에서 예방 준칙을 철저히 지키지 않은 종교 공동체입니다.

미국에서는 어느 교회 목사가 감염된 사실을 모르고 교인 38명에게 감염 시켜 그중에서 2명이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신부들도 몇 분 감염되어 사망했다는 뉴스도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목사들이 감염되고, 그 여파로 신도들이 감염되는 일이 여기저기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예배하고 찬양하는 일에 남다른 열심이 있는 우리 한국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면 마치 영성적인 갈급함에 빠지는 듯한 감정을 가지게 됩니다. 코비드-19사태가 언제 종식될 것인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정부 당국도 이제는 바이러스의 공격을 피하면서도 정면 대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학교마다 문을 다시 열고 대학마다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공격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주의해도 틈새를 파고들어 기하급수적으로 사람을 감염을 시킵니다.

2.
이 시제에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비말 전염을 막기 위하여 신자 간에 충분한 거리를 두도록 공간을 확보하는 일이며, 철저한 방역 시스템을 가동하는 것입니다. 매주 한자리에 모여 예배하는 일을 피하고 조를 짜서 조별 예배를 드리는 방법도 한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바이러스는 비말 전염성이 강하기 때문에 사람의 손이 접촉되는 자리와 개인의 손을 수시로 소독하고, 사람을 대면하게 되는 공공장소에서는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며, 몸에 이상 징후가 있으면 누구와도 접촉을 적극적으로 피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특히 노약자가 있는 집에서는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개인이 방역에 실패하면 가족 전체가 화를 입게 되거나, 교회 공동체에 감염을 전파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행위의 주체는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하므로 그 어느 때보다 사려 깊이 책임적으로 행동해야 할 때입니다.

목회자가 감염원이 되어 신도를 감염시키고 그중에서 사망자가 나오는 경우도 보고되고 있으니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기도와 믿음을 빙자하여 만용을 부리는 경우들도 흔합니다. 과학으로 풀 수 있는 문제를 영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히 무책임한 일입니다.

3.
전염병이 돌고 있는 시제에 집단 활동을 강화하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종교개혁 시절 브레슬라우(Breslau)에서 목회하고 있던 요한 헤스(Johan Hess)가 “기독교인들이 치명적인 페스트를 피해 도망하는 것이 신앙적으로 타당한가?”라고 물으면서 혹시 이런 태도가 신앙적으로 불경한 태도가 아닌가에 대하여 루터의 견해를 여러 차례 구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생사는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데 우리가 죽음을 피하려 드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는 일이 아닌가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헤스는 전염병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니 병에 걸려 죽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 되리라 생각하면서도 자기 확신을 가지지 못했던 것같습니다.

루터는 1) 약자를 돌보고 보호하는 일은 신앙적이며, 2) 죽음을 피하고 생명을 살리는 것은 자연적인 일이므로, 3) 최선을 다해서 우리 몸과 생명을 지키고 보존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말고, 4) 몸의 여러 지체가 서로 돌보듯 어려울 때 서로 돌보기를 권고했습니다. 5) 그러므로, 서로를 향한 사랑과 의무를 지키기 위하여 재난을 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6)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자기 생명을 잘 보존하고 죽음을 피하는 것은 전염병이 도는 시기에 기독교인이 취해야 할 신앙적 과제라고 답했습니다.

내가 살고 죽는 일보다 이웃의 생명을 지키고 보존하는 데에서 기독교적인 사랑을 실천하라고 한 것이지요.

4.
사실, 성경을 읽다보면 아브라함도 기근을 피해 애급으로 떠났고, 거기서 생명의 위협이 있었을 때 아내를 여동생이라고 위장하기도 했고, 야곱도 에서의 위협을 피했던 일,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했을 때 그를 피해 숨은 일, 심지어 엘리야 같은 선지자도 이자벨을 피하여 사막으로 숨었던 일을 접하게 됩니다.

이런 예로 들면서 루터는 죽음의 위협이 있을 때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피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집에 불이 붙었다면 그 집에서 뛰쳐나오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지, 불난 것이 하나님의 징계라며 스스로 타 죽거나, 물에 빠진 사람이 불에 빠진 것은 하나님의 징벌이라며 익사하기를 기다리는 것은 생명을 보존하려는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본 셈입니다.

다리가 부러졌을 경우 이것은 하나님의 징벌이라며 치료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지요. 마태복음에서 예수는 일련의 사람들을 향하여 “내가 굶주리고 병에 걸렸을 때 너희는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라고 책망했습니다. 예수조차도 사람이 굶주리거나 병에 걸려 죽는 것을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보지 않았습니다.

그때야말로 우리가 굶주리고 병에 걸린 약한 이웃을 돌보고 먹이며, 치료해줄 사랑과 의무를 실천할 기회라고 본 것입니다.

5.
그러므로, 코비드-19로부터 나 자신의 생명과 건강, 내 이웃, 내 교인을 지키는 일, 그것이 전염병이 도는 이 시제에 우리가 수행해야 할 신앙적 과제입니다. 거꾸로 교회에서 신자에게 전염병을 감염시키고, 교회가 전염병 진원지가 되는 일은 이웃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니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예수도, 루터도 무능한 미신적 신앙이 아니라, 죽음의 위협에서 생명을 구체적으로 지켜내는 합리적 신앙을 우리에게 일러준 셈입니다.

P.s. 이런 생각은 루터가 1527년에 쓴 “Whether one may flee from a deadly plague”(치명적인 페스트를 피해 우리가 도망쳐야 할 것인가)라는 글에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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