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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신된 선조들에게 감사하며

작성자
도현종
작성일
2018-09-26 10:40
조회
916
조상님을 기억하며 사위,딸들과 논산을 다녀왔다.

고려의 사직이 종말을 고하자 72명의 고려조 마지막 충신들은 부조현(不朝峴)을 넘어 개성의 개풍산 골짜기로 들어가 두문불출 몸을 숨겨 은둔생활 하였다 하여 역사는 이들을 두문동칠십이현(杜門洞七十二賢)이라 기록하고 있다.

선조 청송당공은 두문동72현 중에 두 번째로 서명을 하신 분이시다.

도응(都膺) 조상님이시다. 호는 노은(魯隱)이며, ‘청송당(靑松堂)’으로 잘 알려져 있다. 내가 청송당파 종손이다.

선조 도응은 고려 공민왕 때 중대광문하시중찬성사를 역임한 인물이다.
조선 건국 1년 후부터 이성계가 다섯 차례에 걸쳐 선조 도응에게 관직을 하사하였으나, ‘개천이나, 구덩이에 던져져 죽는 분수를 지켜 초목과 함께 썩겠다.’는 뜻을 밝히며, 이에 응하지 않았다.

이성계가 선조 도응에게 벼슬을 내린 왕지(王旨) 4점과 녹패 1점은 600여년이 넘게 보존되어 ‘성주도씨 종중문서’로서 국가 보물 724호로 지정되어 있다.

선조 도응은 여말선초 고려 말 충신으로 ‘두문동 72인’ 중 한 사람이며, 포은, 목은, 야은, 도은 등과 함께 절의를 지킨 인물이다. 

선조 도응은 충남 홍성군 홍북면 노은리 닭제산 아래 강개골 마을에 은거하였으며, 이 때  그가 지었다는 고려 말의 찬역을 개탄하는 내용의 아리랑 2수가 구전되어 아리랑 및 국문학 역사에서 귀중한 연구 대상으로 꼽힌다.  아리랑의 기억이다.

우왕 13년인 1387년 추석날 대구 팔공산 동화사에서 있었던 시회(詩會)를 통해 알 수 있다. 이날 모임에 참석한 사람은 총 13명으로 여말을 대표하는 쟁쟁한 문사들이다. 그 면면을 보면 이보림(李寶林), 이종학(李種學), 길재, 홍진유(洪進裕), 고병원(高炳元), 김자수(金自粹), 김약시(金若時), 윤상필(尹祥弼), 홍로(洪魯), 이행(李行), 조희직(曺希直), 도응, 안성(安省)이다.

고려의 성리학은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의 문하에서 이색을 비롯한 정몽주, 김자수, 이숭인, 정도전 등의 명유(名儒)가 나왔고,

정몽주의 문하에서 권근, 길재 등의 유학자가 배출된다. 

이 모임에서 정몽주는 이날 동행한 동료와 후학들에게 초서체로 유려하게 쓴 「백원첩」을 보여주었고,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은「백원첩」을 보고 각각 한 구절씩 연구(聯句)로 시를 짓는다.

이 연구 중 맨 마지막 구절을
선조 도응이 썼으며, 현존하는 유일한 친필 흔적이다. 연시는 7명의 글이 남아 있고, 정몽주를 포함한 7명의 시는 전해오지 않는다. 

선조 도응은 동화사에서 이 가연(佳緣)을 맺은 후 불과 6개월 만에 무진화변이라는 전대미문의 참화를 겪었다. 그가 동화사에서 남긴 시 구절에는 닥쳐올 환란을 예감케 하는 어떤 징후도 발견할 수 없다. 삶이란 때때로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우연성과 엄혹함이 그 경로를 바꾸어버린다.  

삶의 급변은 무진화변을 주도한 최영에게도 일어난다. 최영은 무진화변 6개월 후 그 자신도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죽음을 당한다. 이 때 그는 무진화변에 대해 자신의 처사가 지나쳤음을 후회했다. 

최영은 고려왕실 구파세력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고려왕조를 지키려던 명장이었음에도, 당시 신진세력으로 부상한 이성계 일파에게 제거 당함으로써 고려왕조의 멸망을 재촉한 원인제공자가 되었다.

선조 도길부는 벼슬을 사양하는 도응의 글에 무고가 밝혀진 데 대해 감사하는 구절이 나온 데서 알 수 있듯, 사건 얼마 후에 역적의 누명을 벗게 된다.  

무진화변은 고려말엽 정치경제적 특수상황과 신진사대부들에 의 정치적 개혁의 대상이 된 것이다. 

무진화변을 주도한 이성계와 최영은 나의 선조를 도륙한 사람이지만 동시에 한명의 도응의 자손들을 살아남게 한 수혜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을 용서해서는 안된다. 충신의 집안에 몰살이라는 선언을한 장본인들이기에....

조선을 건국한 인물인 이성계도 최영과 더불어 나의 선조들을 형장의 이슬로 만들고 몰살시킨 장본인이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현존하는 성주도씨 청송당파 일족 최고의 유물은 이성계가 도응에게 내린 왕지와 관련한 충지의 유물들이다.
충절은 변하지않는다는 이야기다.

고려 말에 갑자기 일어난 무진화변이란 회오리바람은 피해자측의 순간적 판단미숙과 가해자의 무자비한 대응으로 인해 발생한 일대 회오리바람이었으며, 이 와중에 선조 도길부 일족은 무참한 죽음을 당했다. 도응 한분을 제외한체

선조 도길부의 삶과 관계된 직접적 유물은 일체 남아 있지 않고, 다만 무진화변에 대한 후대 사가의 기록과 그의 가문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도응 선조가 남긴 글을 통해서만이 삶의 단편을 가능하게한다.   

‘권력’과 ‘부’의 세습으로 인해 무진화변이라는 사건이 일어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인 사실이다.

역사는 사건에 대한 관점의 기술이다. 역사는 특정 관점에 의한 역사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무진화변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진실과 더불어 여전히 충절의 결과로 어려움을 넘어선 풍요로운 사건이 연속되는 현재적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감리교회 이익과 명예와 권력을 위하여 전력을 다하고 있지는 않은지

사위,딸들에게 이말을 전하고  주님앞에 충신으로 살아가라고 당부했다.   



전체 2

  • 2018-09-26 18:38

    도목사님, 선조께서 고려의 충신이시군요~ 족보를 보니 저의 22대조 박침 조부께서 고려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 전의판사를 역임하시다가 고려의 국운이 기울자 71현과 함께 두문동에 들어가 초야에 사신 기록이 있습니다.


  • 2018-09-26 19:00

    목사님 맞습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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