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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의 위기 때의 기도와 감사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0-12-03 21:21
조회
273
(설교 동영상: 유튜브)

<다니엘 6:10-18>

10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11그 무리들이 모여서 다니엘이 자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을 발견하고 12이에 그들이 나아가서 왕의 금령에 대하여 왕께 아뢰되 왕이여 왕이 이미 금령에 어인을 찍어서 이제부터 삼십 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왕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 일이 적실하니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대로 된 것이니라 13그들이 왕 앞에서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여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 그 다니엘이 왕과 왕의 어인이 찍힌 금령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하루 세 번씩 기도하나이다 14왕이 이 말을 듣고 그로 인하여 심히 근심하여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을 쓰며 그를 건져내려고 힘을 다하여 해가 질 때까지 이르매 15그 무리들이 또 모여 왕에게로 나아와서 왕께 말씀하되 왕이여 메대와 바사의 규례를 아시거니와 왕의 세우신 금령과 법도는 변개하지 못할 것이니이다 16이에 왕이 명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굴에 던져넣는지라 왕이 다니엘에게 일러 가로되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하니라 17이에 돌을 굴려다가 굴 아구를 막으매 왕이 어인과 귀인들의 인을 쳐서 봉하였으니 이는 다니엘 처치한 것을 변개함이 없게 하려 함이었더라 18왕이 궁에 돌아가서는 밤이 맟도록 금식하고 그 앞에 기악을 그치고 침수를 폐하니라

1. 시작하는 말

‘자존심이 있지 만물의 영장인 내가 어떻게 죄의 종이 되냐.’라는 각오로 창조주께 감사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감사는 평안을 부르고, 불평은 슬픔을 부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감사하는 것은 감사거리가 있기 때문이고, 불평하는 것은 불평거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 위해 애쓰지는 않고, 감사 거리가 생기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러나 유의해야 할 사실은 불평하면서 사는 사람에게도 감사거리가 있고,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에게도 불평거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보아, 감사와 불평은 조건의 문제만 아니라 인생관의 문제이며, 살아가는 기본자세의 문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형편과 처지에서라도, 창조주시며 생사화복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다니엘의 한결같은 감사와 기도의 삶

다니엘 총리는 30일 동안에 바벨론 왕이 아닌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는다는 조서가, 바로 자기를 죽이려는 두 총리와 방백들의 간계임을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집에 돌아가서는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해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했습니다.
그 역사적 배경입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포로였는데, 매우 지혜롭고 유능하고 진실해서 바벨론 왕 다리오가 편견 없이, 세 총리 중 한 사람으로 중용했습니다. 정치를 잘하는 다니엘의 지혜와 능력과 진실한 신앙 인격을 알아본 다리오 왕은, 다니엘을 수석 총리로 삼아 전국을 다스릴 권한을 주려고 했습니다.
왕의 의도를 알아챈 다른 두 총리와 방백들은 감사는커녕, 불평과 시기심으로 다니엘 총리를 죽이려고 눈에 불을 켜고 고소거리를 찾고 또 찾았지만 헛수고로 끝났습니다. 다니엘 6:4을 보면,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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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안 믿는 그들은 최소한의 자존심도 없었습니다. ‘총리인 내가 자존심이 있지 어떻게 정치를 잘하고 깨끗한 다니엘을 안 본받을 수 있냐, 방백인 내가 자존심이 있지 어떻게 뇌물을 받아먹는 왕거지가 되고, 횡령을 하는 큰 도둑이 되냐, 고위층인 내가 자존심이 있지 어떻게 깨끗한 인물을 죽이는 간교한 암살자가 되냐’라고 하면서 회개하고 다니엘의 하나님을 믿었어야 합니다,
다니엘 총리처럼, 하나님을 진실하게 믿는 사람은 깨끗하고 유능하며 충성스럽기 때문에 누구도 책잡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나라에나 시기와 비방을 하는 용렬한 사람이 있고, 공을 가로채는 사람이 있고, 앞에서는 칭찬하면서 뒤에서는 악선전을 하는 이중인격자가 있고, 제거하기 위해 모의하거나 악법을 제정하는 간교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은 일을 못하거나, 잘난 척해서만 적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책잡힐 문제나 허물이 없이 일을 잘하는데도 그와 같이 부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면 그러려니 해야 합니다. 민감히 반응하거나 대응하는 것이 자연스럽기는 한데, 책잡힐 거리를 제공하기 쉽습니다. 꼭 대응해야 할 상황이라면 상한 기분에 따른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분별에 따른 할 말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무엇보다도 모든 걸 아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포로인 다니엘을 바벨론의 총리 중 총리로 세우시는 데 우상 숭배자인 이방 왕 다리오까지 동원하시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유능하고 깨끗한 다니엘 총리와 달리, 선진국에도 통치자나 공직자나 지도자들 중에는 탁월한 지성과 권력을 가진 두 총리와 방백들처럼, 자기들이 하는 언행이 뭔지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두 총리와 방백들처럼, 뛰어난 지성을 가지고 범죄하는 어리석은 죄의 종들은 속히 회개의 열매를 맺고, 영생의 주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성의 어리석음과 갑작스러운 지옥의 멸망을 면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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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의 정적들이 다니엘 총리의 틈이나 허물을 찾지 못해서 하는 수 없이 한 말이 의미심장합니다. 다니엘 6:5을 보면,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그 틈을 얻지 못하면 그를 고소할 수 없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정적들은 칭찬하며 본받기는커녕, 왕을 알현하고 30일 동안에 왕 외에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는다는 조서에 어인을 찍도록 요청했던 것입니다. 믿음을 죽음의 덫으로 삼은 것입니다.
다니엘은 그들의 간계를 알았지만, 전에 하던 대로 한결같이 감사와 기도의 생활을 계속했습니다. 감사하며 기도하는 믿음 때문에 총리직은 물론, 절체절명의 위기를 만났는데도 전과 같이 매일 세 번씩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감사했습니다. 30일 동안만 기도를 안 하면 그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믿음을 지켰습니다. 우리도 ‘생사화복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믿는 내가 절체절명의 위기나 고난을 만난들 기껏 죽기 밖에 더 하겠냐, 죽은들 부활하여 천국밖에 더 가겠냐?’ 하는 신앙적 사고로 감사 기도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 맹인 처녀에게 하나님께서 영안을 열어 주셨습니다. 맹인 처녀는 영의 세계를 보게 되었고, 그 영광의 세계를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됐습니다. 이 맹인 처녀가 바로 페니 제이 크로스비(F. J. Crosby)입니다. 이 맹인 처녀는 ‘주 예수는 인간을 구원하신 참 놀라운 구주시라…’,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예수를 내가 주로 믿어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등 20여 곡의 찬송가를 작사했습니다. 크로스비는 육적인 조건이 작사하기에 최악의 상태였지만, 하나님께서 자기를 구원하셨고, 자기의 힘이 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가슴 벅찬 감격과 감사의 기도인 찬송을 부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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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런 감사 기도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고난을 지낸 다음에라도 그때 그 고난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성숙한 걸 보니, 이 복을 누리는 것을 보니 그 때의 고난이 감사할 거리였구나!’ 하는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고문당하지 않았다고 우기는 공처가에게 변호사가 물었습니다. “자네, 참 이상하네. 매도 맞았다고 하고, 목욕탕 물도 먹었다고 하고, 칠성판에도 누웠다고 하고, 잠도 못 잤다고 하면서, 고문을 안 받았다고 하는 이유가 뭔가?” 그러자 공처가는 “변호사님, 그 정도의 고문은 고문 측에도 못 듭니다. 평소에 마누라한테 그 이상의 훈련을 받아 전혀 괴롭지 않았거든요.”라고 했습니다.
다니엘 총리의 변함없는 감사와 기도는 일단은 예기된 재앙을 앞당기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정적들이 왕에게 다니엘의 감사 기도의 생활을 고한 것입니다. 현실적으로는 감사하며 기도하는 신앙생활이 무력한 것 같고, 때로 손해와 재앙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믿고 감사하며 기도하는 사람을 결코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영원 전에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를 구원하실 계획을 세우시고 성취하신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며 기도하는 믿음을 지켜 나가는 우리를 결단코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다리오 왕은 총리 일을 잘한 다니엘을 총애했으므로, 그가 사자들에게 잡아먹힐까 봐 심히 근심하며 시간을 끌었습니다. 그렇지만, 두 총리와 방백들의 성화에 못 이겨 다니엘을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했습니다. 왕은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라고 소리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 왕을 통해 구원의 약속을 들려주신 것입니다. 그 다리오 왕은 궁에 돌아가서 밤이 맟도록 금식하고, 그 앞에 기악을 그치고,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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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가 다니엘 6:23에 나옵니다.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함이었더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로 사자들의 입을 봉하게 하셔서 다니엘을 보호하시고, 결백을 증명해 주신 것입니다.

3. 맺음말

하릴없는 고난이나 죽음의 위기를 만나면 생사화복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더욱 믿고, 특별 감사 기도의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마틴 루터(M. Luther)가 종교 개혁을 할 때, 오른팔인 동역자요 친구인 프레드릭 니코니우스가 갑자기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더 이상 희망이 없음을 느낀 니코니우스는 떨리는 손으로 루터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를 본 루터는 깜짝 놀랐습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루터는 곧바로 답장을 보냈습니다. “친구여, 나는 자네가 더 살 것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명령하네. 내가 교회를 개혁하는데 자네가 필요하므로 주님은 자네가 죽었다는 소식을 내가 듣지 않게 하실 것이네. 자네가 살아야 한다는 것은 내 뜻이네. 하지만 내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영화롭게 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어 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네.”
임종을 앞둔 니코니우스는 루터의 편지 내용을 전해 듣고, 얼마 후에 기적처럼 살아났습니다. 그 후, 6년 동안 루터와 더 일을 하다가 천국에 갔습니다.

설교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신약 주석(마~계, 1-15권)/ 설교집 28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다수의 논문들/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웃기는 이야기(편저) /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전체 4

  • 2020-12-04 10:28

    아멘.. 또한 성경의 본문을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와 세상권력 간에 타협하지 않음. 예루살렘을 기억함. 하루 세 번 무릎을 꿇고 기도, 포로생활 중에도 감사함.
    11.그 무리들이 모여서 다니엘이 자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을 발견하고 ☞ 무리들이 문제입니다. 정치인들은 군중을 끌어모으는 걸 즐기는데, 이는 끌어 모은 머릿수가 곧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를 못박은 것도 군중들입니다. 기도와 간구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가 기도하는 것은 새롭게 발견할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증거를 확보 했습니다.
    12.이에 그들이 나아가서 왕의 금령에 관하여 왕께 아뢰되 왕이여 왕이 이미 금령에 왕의 도장을 찍어서 이제부터 삼십 일 동안에는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니 왕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 일이 확실하니 메대와 바사의 고치지 못하는 규례니라 하는지라 ☞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구하면’ 다리오 왕은 이를 만들 때 자신이 생각하길 왕인 자신 대신에 세상의 어떤 권력에게 권력자에게 구하면 처벌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자신이 하나님과 대항하는 법인지? 몰랐을 겁니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도 비슷합니다. ‘참소’하는 자는 마귀의 권세에 속하고 있습니다. 특히 불의한 목표로,
    13.그들이 왕 앞에서 말하여 이르되 왕이여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 다니엘이 왕과 왕의 도장이 찍힌 금령을 존중하지 아니하고 하루 세 번씩 기도하나이다 하니 ☞ 왕과 하나님을 싸움 부추키고 있습니다. 왕은 곤란한 처지가 됩니다. 빌라도의 법정이 생각납니다. 법령을 들이 대면서, 유다의 자손은 사탄의 권세에게 참소를 당하고 있습니다.
    14.왕이 이 말을 듣고 그로 말미암아 심히 근심하여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을 쓰며 그를 건져내려고 힘을 다하다가 해가 질 때에 이르렀더라 ☞ 다리오 왕은 유다의 자손을 구원하려고 온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15.그 무리들이 또 모여 왕에게로 나아와서 왕께 말하되 왕이여 메대와 바사의 규례를 아시거니와 왕께서 세우신 금령과 법도는 고치지 못할 것이니이다 하니 ☞ 무리들은 법을 가지고 다리오 왕 마저 압박합니다. 로마의 법을 내세워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군중들이 생각납니다.
    16.이에 왕이 명령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 굴에 던져 넣는지라 왕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네가 항상 섬기는 너의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하니라 ☞ 다리오 왕은 “네가 항상 섬기는 너의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이방인이고 왕권을 가진 권력자이나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다. 한데, 다니엘은 자주색 옷과 금목걸이를 조심해야 했습니다. (단5:29 이에 벨사살이 명하여 그들이 다니엘에게 자주색 옷을 입히게 하며 금 사슬을 그의 목에 걸어 주고 그를 위하여 조서를 내려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니라) 그의 교만이 사자굴을 불렀을 수도 있습니다.
    17.이에 돌을 굴려다가 굴 어귀를 막으매 왕이 그의 도장과 귀족들의 도장으로 봉하였으니 이는 다니엘에 대한 조치를 고치지 못하게 하려 함이었더라 ☞ 법은 엄격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율례와 법도들도 엄격하며, 하나님의 말씀들은 영원합니다. ‘돌을 굴려다가 굴 어귀를 막으매’ 죽음의 초대장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받으신,
    18.왕이 궁에 돌아가서는 밤이 새도록 금식하고 그 앞에 오락을 그치고 잠자기를 마다하니라 ☞ 누구나 영적인 일을 수행해야 할 때는 육적인 일을 삼가는 게 옳습니다. 성경에서 금식과 기도는 한 쌍 처럼 늘 붙어 다닙니다.


    • 2020-12-04 11:06

      필자의 설교에 "아멘."으로 화답하시고, 관련하여 의견을 피력하셔서 감사합니다.


  • 2020-12-04 11:27

    (간구, 기도, 도고) 【딤전 2:1】"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의 주석 요약
    .
    간구(데에세이스, δεήσεις: 복수)가 ‘탄원’, ‘청원’, ‘간청’을 뜻하는 말임에 비해, 기도(프로슈카스, προσευχάς)는 간구를 포함하여 피조물이 하나님께 접근하는 모든 태도와 말과 행동을 포괄하는 말이다(딤전 5:5, 엡 6:18, 빌 4:16). 도고(엔튝시스, ἐντευξις: 복수)는 ‘왕을 알현하는 것’, ‘왕 앞에 나아가 청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트렌치(Trench)는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자유롭고도 친밀한 기도를 의미한다.”라고 하였다. 또, 오리겐(Origen)은 “엔튝시스의 근본 개념은 하나님의 임재에 접근하는 담대함이다.”라고 가르쳤다. .


    • 2020-12-04 13:18

      최목사님께서 표현하신 것처럼, 기도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샤머니즘이나 타종교의 기도와는 천양지차이나, 오랜기간 동안에 걸친 깊은 문화적 영향이 있었기에, 교회안에서도 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분들이 여럿 있습니다. 또한 '기도'와 '축도'간에도 이를 구분 못하는 이도 여럿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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