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를 맞고 고향에 돌아 왔으니, 나는 성공하기를 바랬다

작성자
이현석
작성일
2020-11-22 21:21
조회
988
박온순 목사님 글을 읽고, 글을 적습니다.
지나간 과거는 기억되는 사람의 형편에 따라 각기 다르니, 불필요한 논란은 원하지 않습니다.

1. 매를 맞고 고향에 돌아 왔으니, 저는 성공하기를 바랬습니다.
학원에서 과외를 했고, 용산과 거래하며 돈을 벌었습니다. 팔이 아파서 아이를 안지도 못하니까 어머니께서 비로소 물질적인 도움을 주셨습니다.
저는 이를 악물고 2년 동안 돈을 모아서, 어머니의 땅 위에 1층 교회를 짓고,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비참한 만큼 성공하고 싶었습니다. 저와 집사람 둘이서, 열심히 했고, 2-30명 성도들이 모였습니다.

저에게 제안이 들어와서, 지역사회에서 지역아동센터를 함께 만들기로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누구든 선뜻 돈을 내기 어려웠지요. 몸으로 노력 봉사하기로 한 제가 비용을 책임질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돈은 아까왔고, 성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돈을 계획하지 않은 곳에 지출할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에 있는데, 어떤 아이와 제 아이들이 너무 거칠게 놀았습니다. 저는 “저 아이는 안왔으면 좋겠어”라고 집사람에게 말했는데, 집사람은 “저 아이는 우리 집이 아니면 갈데가 없어..”라고 말했습니다. 아이의 가정형편을 듣고 나니, 목사 체면도 있고 해서 그냥 넘어갔습니다.
며칠 후, 집사람의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나가보니, 큰 아이의 손가락이 문틈에 끼어 절단되었습니다. 병원에서, “아버님, 아이의 손가락이 짧아지겠습니다. 제가 예쁘게 봉합해 드릴께요.” 저는 주저 앉아서, 엉엉 울었습니다. 몇 달 있으면 초등학교에 가는데..

내 아이만 잘 키우겠다는 저의 생각이 하나님 앞에 큰 죄였습니다. 제가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제 아이를 위해 천사를 보내주셔야 합니다. 주님은 제게, 나그네를 환대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제 아이의 왼손 새끼 손가락 손톱 반마디를 잃고 나서야 비로소 저의 죄를 회개했습니다.
‘왼손 새끼 손가락 손톱 반마디’는,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결심합니다. ‘아이들을 위한 센터는 내가 책임지겠다.’

2. 저는, 정말 제 인생을 어떻게 살았나 싶을 정도로 그렇게 살았습니다. 3년 후, 새롭게 센터의 공간을 마련해야 하는 문제도 생겼고, 시로부터 보조금도 지급받게 되었습니다.

<보증금 1억. 월세 100만원> 이 리스크를 제가 감당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남의 건물에 1억 보증금 집어넣고 탈이 나버리면.. 내부공사비용으로 이미 비싼 사용료를 지불한 격이 되어 버렸는데.. 월세 100만원.. 가장 좋은 방법은 센터를 남에게 넘기고, 저는 목회에 전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회공헌에 관심이 많은 기업 ○○에 의사 타진을 했고, 실무자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습니다. 즉, 금전적 보상 없이 아무 조건 없이 제가 운영권을 넘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세계경제위기가 터졌습니다. 순식간에 없던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당황했습니다. 저는 센터에 더 이상 돈을 쓰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건물 주인은 나가달라고 하고, 저는 기도하는 중에, 주님께서 저희 집을 아이들에게 주기를 원하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집사람에게 말하고, 살림을 콘테이너에 집어 넣고, 센터를 저희 집으로 이사했습니다.

손 버릇이 좋지 않은 아이들이 저희 집을 털기도 했는데, 저는 번번히 그냥 넘어갔습니다. 하루는 저희 집을 방문한 손님의 주머니에도 손을 댔습니다. 그날은 제가 굉징히 화를 냈습니다. 우리 집 안방에서 가져간 돈은 내가 너희와 친하니까 용서하지만, 친한 사람끼리 어떻게 나를 쪽팔리게 만드냐는 것이었습니다. 10분 뒤에 아이들이 잘못했다고 돈을 가져왔습니다. 이후 아이들은 더 이상 저희 가족의 돈을 훔치지 않았습니다.
저는 센터 아이들을 제 아이들처럼, 제 아이들을 센터 아이처럼 똑같이 대했습니다. 저희 아이들은 저에게 말합니다. “아빠 나는 우리 집이 세상에서 제일 가난한 줄 알았어요.”

당시 시공무원 최○○씨는 언제나 제 진심과 형편을 이해해 줬습니다. 주택에는 센터를 설치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저에게 마지막 재촉 공문을 보내니 미안하다고 말하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절망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너는 할수 있다”는 마음을 주셨지만, 저는 할 수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두가지 더 응답이 있었습니다. 제가 죽으면 법과 사람을 바꿔주시겠다는 응답입니다. 제 속마음은 교회 십자가에 목을 매달고 죽고 싶었습니다. 저는 제 기도의 내용을 성도들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위해서 건물을 지어야 합니다. 이 건물은 제가 짓겠습니다. 여러분은 헌금하지 않습니다. 기도만 해주십시오.” 저는 멀쩡한 건물을 부셨고, 다시 건물을 지었습니다.

건축공학 책을 보고 철골의 단면적을 계산하기도 했고, 도면과 견적서 보는 법을 익혔습니다. 저는 주께서 말씀하신, 나는 나를 매일 죽였고, 내가 할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저는 짐승처럼 일했습니다. 당시 업자는 지역에서 3개 공사를 했는데, 마지막 공사의 건물주는 건물을 잃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수년이 지난후, 2년전 당사자로부터 들었습니다. 그분은 20억 건물이 경매로 넘어가던 날, 제대로 잠을 잘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공사를 마치고, 제 공사에 들어왔던 업자들이 가끔씩 술을 먹고 저에게 인생 하소연을 2년 동안 하였으니, 주께서 제 앞에서 사람을 변하게 하신다는 약속을 이뤄주신 것입니다.

이 일을 마쳐진 후 몇 달이 지났을 때, 관련 법이 개정되었습니다. 주택에 설치할 수 없었던 법령이 개정되었습니다. 시 공무원은 저에게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마음에 주신 모든 뜻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저는 두가지를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교회성장에 취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물질에 취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원하셨던 것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순종일 것입니다. 제가 그렇게 기가 잘 죽는 편이 아니니까요. 주님께서 저에게 주시는 말씀은 저를 다스리는 말씀이기에, 저는 이것을 제 일과 상관없는 이들에게 말한 적이 없습니다. 자랑할 것도 없습니다. 실상은, 저를 꾸짖는 말씀이고, 저의 부끄러운 치부일 뿐입니다.

3. 이후 저는 (제가 죽지 않았으니) 하나님께 세가지 착한 일을 하겠다고 기도했습니다.
2010년 저는 서울에 올러 다니면서 센터에 관련된 부처와 협의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이 일을 부탁한 사람은 “행시 출신자들과 대학교수들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너가 반드시 해줘야 한다”는 것이었고, 저는 비교적 일을 잘 마무리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너가 어떻게 이명박 정부를 위해 일을 할 수 있느냐며 나무라는 분들도 있었지만, 제 기준으로는 착한 일이었습니다. 일이 끝났을 때, 작은 기관 운영을 제안받았는데, 저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거절했습니다. 제 꿈은 목사였기 때문입니다. 제 역할은 그 거절과 함께 마무리 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두 번째 착한 일은 은급재단의 은급기금에 관한 일입니다. 이 일은 과거에 언급한 적이 있으니 생략합니다.
저는 세 번째 착한 일을 하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그리고 이 일을 끝내고 싶습니다.

4. 옛날 이야기를 하면, 고2때 저를 전도한 친구는 교회에서 쫓겨났습니다. 데모를 해서요. 저는 친구를 따라 유랑자가 되었습니다. 그때 교회를 그만두었어야 했는지 모릅니다.
제 친구의 담임선생님은 친구 아버지를 불러서, ‘당신 아들은 빨갱이입니다’라고 말을 했고, 저는 제 친구 대신 법원 시위를 주도했습니다. 그날 밤 저는 무서워 덜덜 떨면서 잠을 못자는 가수면 상태였는데,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라는 주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 친구는 고3때 자살을 시도합니다. 병원에 실려가면서 한 말이 “현석이는 내 마음을 이해할거야”라니, 인생이 참으로 비참했습니다. 그 친구는 지금 교회 밖에 있고, 저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한 첫 번째 기도는 “아버지 술 끊고 노름하지 않게 해주세요”라는 소원기도였습니다. 이런 기도는 잘 응답이 되지 않습니다. 제가 신학대학 3학년 때, 대학을 그만 둘 마음을 먹고, 고향 집에 갔습니다. 아버지는 병환중이었는데, 아버지께서 저를 부르셔서 하신 말씀이, “평생 살면서 돈을 함부로 쓰지 말고, 노름하지 말고, 술 취해서 살지 말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듣고, 그날 밤 다시 학교로 내려 갔습니다. 몇년 뒤 아버지의 심장이 멈췄으니, 이 말씀이 제게는 아버지의 유언과 다름없습니다. 저의 첫기도가 아버지의 유언이 되었으니, 하나님의 뜻은 제가 다 알수 없습니다.

박온순 목사님, 이렇듯 제 신앙은 처음부터 끝까지 체험적이지 이론적이지 않습니다.
경험한 것은 구태여 설명과 이론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아주 단순한 사람입니다. 감리교회 게시판에서 저의 주장도 단순했습니다.

1) 저는 현 감독회장 체제가 안정화되기를 바라는 입장에서 글을 썼습니다.
2) 퀴어축제 관련하여 감리교회 목사 일군은 형사처벌을 받았고, 이들과 다른 L목사는 정직 2년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런 현상을 비판했고,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과 ‘반동성애주의’를 구분했습니다.
감리교회가 세계교회, 세계감리교회 수준에 맞춰서, 천천히 가자고 주장했습니다.
3) 교회내 성폭력을 비판했습니다.

제가 감리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제가 생각해도 사실입니다.
제가 감리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났으니까요.
그런데 사실, 정이 떨어집니다. 저는 교회 권력에 대한 기대치가 없습니다.
또, 목사직의 끝에 대하여, 저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목사님과 임성모목사님께서 하시는 일이 잘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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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1-23 08:22
    본의 아니게 걱정을 끼쳐드리는 면이 있습니다.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저는 주님 일을 생각하며, 열심히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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