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무엇때문인가

작성자
백승학
작성일
2020-08-05 14:19
조회
358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무엇때문인가

백승학

미하엘 숄로호프가 쓴 '고요한 돈 강‘에서의 돈 강 풍경은 고요하기보다 오히려 볼세비키의 적위군과 반대편의 소란하면서도 광기어린 전투장면으로 가득하다. 강줄기처럼 긴 분량의 이야기들이 다 끝나가도록 고요한 돈 강은 미처 고요할 날이 없다. 하지만 전투가 잠시 멈춘 어느 찰나같은 순간에 돈강을 비쳐내는 달빛만큼은 너무나 고요하고 아늑하다. 그렇다면 애초에 고요함과는 제목부터 거리가 먼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에는 얼마나 거칠고 황량한 바람만이으로 가득하였을까? 요크셔 지방의 유서깊은 언덕 위에 세워진 '워더링 하이츠' 라는 외딴 저택은 언뜻 보기에는호롱불빛 조차 흔들리지 않을만큼 조용하기 그지없고 한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이 그곳에서 겪어낸 힘겹고 아픈 사랑을 알고 나면 폭풍이 저택 밖에서만 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

나는 어린 시절에 강변 마을에서 살았다. 강이 내다보이는 집 뒤쪽은 가파른 언덕이었다. 강변과 언덕에는 늘 바람이 가득하였으며 때로 어둡고 슬픈 바람이 불기도 하였다. 강의 지류를 끼고 한 시간 쯤 걸어가면 나타 나는 유적지 한 곳은 친구들과의 소풍에 대한 추억이 가득하게 서려있는 곳이다. 그곳이 그토록 아름다운 곳이라는 것은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천 병상 시인은 '귀천' 이라는 시에서 삶을 소풍에 비유 하였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 나 하늘로 돌라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시인은 자신의 삶에 그토록 심하게 불어 닥치던 좌절과 고통의 바람들을 어떻게 다 잊고 세상이 아름다웠더라고 말하겠다는 것일까? 나는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치열한 격전이 휩쓸고 지나간 돈 강 가를 고요하게 비춰내던 달빛과 함께 폭풍 가운데서도 워더링 하이츠 저택의 창가를 밝혀내던 호롱 빛이 떠오른다. 고문의 휴유증으로 망가질 대로 망가진 시인을 간호해주고 기꺼이 반려자가 되어준 한 여인, 시인의 어눌한 손바닥에 아침마다 용돈을 쥐어주며 당신이 이 세상에서 최고의 시인이라고 말해 주던 한 여인의 존재야말로 시인에게는 돈 강의 고요한 달빛이었으며 워더링 하이츠 저택 창가의 호롱불빛이었으리라.

구약성서 아가서에도 빛나고 소중한 사랑의 이야기가 나온다. 포도원에서 일하는 술람미 여인은 게달의 장막처럼 그을린 피부에다 심신은 힘겨운 일상으로 인해 늘 지쳐있었다. 하지만 포도원 곁에서 그녀를 만나 사랑에 빠진 솔로몬이 그녀가 여인 중에 가장 예쁜 자이며 백합꽃 보다도 향기롭다고 말해준다. 그리고 그때 그녀는 비로소 인생이란 휘장처럼 빛나고 아름다운 것이라 고 생각하게 된다.(아가1:5)

인생을 아름답게 하는 많은 요인들 중에서 사랑이라는 요인과 다르지 않을만한 또 하나의 요인이 있다면 무엇일까? 나는 약속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어쩌면 약속이야말로 사랑을 지탱해 주는 이유이며 토양이며 근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서 고통 받는 내 백성들을 건져내고 그들을 아름다운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광대한 약속의 땅으로 데려가려 하노라.” (출애굽기 3:8)

하나님이 호렙산 기슭에서 모세를 부르시며 하신 말씀이다. 하나님은 아름다운 땅으로 명명되는 이스라엘의 구원을 아브라함 때부터 끊임없이 약속하셨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은 끊임없이 그 약속의 성취를 기다렸다.

그들에게 있어서 기다림은 삶의 일부였고 삶의 방식이었다. 그들은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은 아직 소망이 있다는 증거이며 여전히 가슴 설레는 이유를 지니고 있다는 의미라 여기며 때론 너무나 험하고 힘겨운 시절들을 견뎌나갔다. 더우기 지나고 나면 그들이 기다린 자리에는 늘 아름다운 표정들과 기억들로 채워지곤 하였다. '빈자의 미학'을 쓴 승효상은 건축이 주는 아름다움이란 건물 자체의 아름다움 이전에 비어 있거나 남겨 둔 자리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인생의 아름다움 역시 무엇인가를 이루어낸 성취나 업적 이전에 기다림의 과정이 빚어내고 드러내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인가일 것이다. 또한 약속이 아름다운 것은 기다림의 과정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기다림이 아름다운 것 역시 그 기다림이 약속받은 자로서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또한 전파하는 기회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독교 저술가인 C. S 루이스는 아름다움이야말로 전염되는 것이 라고 하였다.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 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이사야 52:7)

출처/ 백승학 글모음 블로그 https://greenword.postype.com/se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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