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이 된 에베소서 4:6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1-03-20 18:17
조회
306
Eph 4:6 εἷς Θεὸς καὶ πατὴρ πάντων, ὁ ἐπὶ πάντων, καὶ διὰ πάντων, καὶ ἐν πᾶσιν ὑμῖν.

끝으로, 그는 【6】[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라고 하였다.
(7)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란 교회의 일치의 궁극적 근거가 되는 것이다.① 한 하나님이라는 생각은 우리에게는 이상할 것이 없으나, 바울 당시의 이교도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이 생각 속에는 혁명적인 무엇이 있었다. 저들은 많은 신과 많은 주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유대인에게는 하나님의 유일성은 근본적 신앙이었다(C. R. Erdman). “유대인의 유일신의 굳은 신조는 유대인들의 단결의 초점이었다. 또한, 이것은 유대교에서(신 6:4) 물려받은 기독교 신앙의 유산이다. 동시에 여기에는 성령(4절). 성자(5절), 성부(6절)가 언급됨으로써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도 보이고 있다”(이상근).
유일신인 [만유의 아버지}의 헬라어 파테르 파톤(πατὴρ πάντων,)은 우주 창조와 통치라는 의미에서 우주적 부성을 말하는 것②이 아니라, 교회의 일치라는 면에서 언급되었으므로 모든 신자의 아버지로 이해해야 한다.③
{{하나님 아버지(테우 파트로스, θεού πατρὸς)라는 바울의 사상은 베드로(1:17)나 예수님과 다를 바 없다. 그 사상은 구약 성경에도 나타나나(출 4:22, 시 68:5, 89:26, 사 9:6, 63:16, 64:8, 렘 3:4, 9, 말 2:10) 미미한 것이었는데, 예수님에게서 본격적으로 개인화 내지 신령화되었다. 따라서 아버지로서의 신관은 신약 성경의 주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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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해당 성구가 있으므로 저자의 이름만 밝혔음.
1) E. F. Scott, H. C. G. Moule, F. Foulkes, C. R. Erdman, 이상근.
2) “Westcott, Salmond”(in 이상근), C. W. Carter, G. H. P. Thompson.
3) M. Henry, H. C. G. Moule, R. C. H. Lenski, C. R. Erdman. A. S. Wood, H. Hendriksen, 黑崎幸吉, 이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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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첸(J. G. Machen)은, “하나님의 부성의 교리는 예수와 바울이 똑같다”④라고 하며, 케네디(H. A. A. Kennedy)는 더욱 구체적으로, “예수의 교훈의 근본적 취지인 하나님의 부성의 계시는, 바울의 종교적 개념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지배했다.”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사실은, 바울이 자신의 모든 서신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롬 1:7, 고전 1:3, 고후 1:2, 갈 1:3, 살전 1:1, 살후 1:2, 골 1:2, 몬 3 등).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의 의미에 대해 바르트(K. Barth)가 자신의 「교의학 개요」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아버지란 인간관계에서 하나님께 적용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게서 인간관계에 적용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자신 안에서, 또 자신의 본성에서도 영원히 아버지이시다.······당신의 피조물인 우리를 위한 아버지이시다.······참되고 정당한 부성은 하나님 안에 있고, 바로 이 하나님의 부성으로부터 우리 자신의 부성이 생기는 것이다. 신적 부성은 모든 자연적 부성의 근원이다.”⑥
하나님 아버지의 주도적이며 자유로운 은혜에 의해서만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 즉 하나님의 양자(빌 2:15)가 될 수 있다. 양자란,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인간’을 표현하는 하나의 개념이다.
고대 세계에서 가족이 양자를 삼는 것은 매우 평범한 일이다.바클레이(W. Barclay)는 양자 결연 의식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양자 결연 의식은 매우 인상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동전과 저울을 사용한 상징적인 매매 행위에 의해 진행되었다. 아들의 친아버지가 자기의 아들을 한 번 팔았다가 다시 사고, 두 번째 팔았다가 또다시 산다. 그리고 세 번째 팔고는 다시 되사지 않는다. 그런 다음에 양아버지가 로마의 행정 장관인 집정관에게 가서 양자 결연의 건을 신청함으로써 성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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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J. G. Machen, The Origin of Paul's Religion(Michigan: Eerdmans, 1973), p. 161.
5) H. A. A. Kennedy, The Theology of The Epistles(London: Duckworth, 1959), p. 105.
6) K. Barth, Dogmatics in Outline. trans. by G. T. Thomson.(SCM Press Ltd, 1966), p.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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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양자가 되면, 그의 과거의 모든 빚과 계약은 무효가 된다. 그는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사는 새사람으로 간주된다. 미래의 모든 면에서도 그는 다른 아들과 똑같은 근거를 갖는다.”⑦
바울은 양자의 개념을 구속과 유사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롬 8:23). 하나님은 우리를 예정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당신의 자녀가 되게 하셨는데, 그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사랑 안에서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것이다(엡 1:4). 이 아들은 무서워하는 종의 영 대신에,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도록 양자의 영을 받았다 (롬 8:15, 갈 4:6). 이 영은 곧 하나님의 영이며, 양자의 모든 삶을 지배한다(롬 8:14). 따라서, 케네디(H. A. A. Kennedy)는 “양자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모든 환경들, 즉 세상과 생명과 죽음과 현재적인 것들과 다가올 것들의 주인이다. 바울은 항상 이 승리적 조건들을 성령의 선물과 결합시킨다.”⑧라고 하였다. 이러한 양자의 삶은 모든 피조물이 고대하는 자유로 특징지어진다(롬 8:21, 고후 3:17).
양자란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로서, 그분과 함께 영광을 얻기 위해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롬 8:17). 이 고난은 죄악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나누는 고난이요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이다(고전 4:10-13, 9:19, 고후 1:5, 4:8-10, 11:23-32, 빌 1:29, 3:10, 골 1:24, 살후 1:5, 딤전 4:10, 딤후 1:8)}}(갈 1:1의 주석).
바울은 그 아버지 하나님에 대해서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라고 하였다.
[만유 위에 계시고]는 하나님의 본질과 능력에 있어서 초월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초월해 계셔서 만유, 특히 교회를 섭리하신다.
[만유를 통일하시고]의 헬라어 디아 판톤(διὰ πάντων,)은 문자적으로 “만유를 관통하시고”이며, 하나님의 내재성 곧 우주 안에서의 하나님의 역사를 의미하는 것이다.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의 헬라어 엔 파신 휘민(ἐν πᾶσιν ὑμῖν.)은 어떤 사본에는 “너희 (안에)”, 또는 “우리”란 말이 삽입되어 있다.⑨ 이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성령과 특별한 은총에 의하여 성전에 거하시는 것처럼 모든 믿는 자들 가운데 내주하심을 의미하는 것이다(요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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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W. Barclay, Ambassador for Christ(The Saint Andrew Press, 1973.), p. 170.
8) H. A. A. Kennedy, op. cit., p. 138.
9) 이상근: 전자는 Chrysostom, Theophylact 및 초서체 사본이고, 후자는 D, G, K, L 사본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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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갈라디아서, 에베소서(서울: 글벗사, 2002, 2판 2쇄), pp. 404-405.

필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다수의 논문들/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설교집 28권/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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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7

  • 2021-03-20 18:32
    헬라어 성경의 Eph 4:6 εἷς Θεὸς καὶ πατὴρ πάντων, ὁ ἐπὶ πάντων, καὶ διὰ πάντων, καὶ ἐν πᾶσιν ὑμῖν.
    에는 '하나님 안에서"라는 표현도 없고, 그런 의미로 해석될 표현도 없다.

    • 2021-03-21 19:12
      목사님께 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분명 문자적으로 '하나님 안에서'란 표현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란 표현은 충분히 유추 가능한 것이라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엡4:6을 보면 1) 에피(ἐπὶ): ~위에 2) 디아(διὰ) : ~를 통(일)하여, 3) 앤(ἐν): ~ 안에 라는 뜻을 갖고 있는 단어들이 존재합니다. 이것을 합하여 표현을 해보면 1) 하나님은 만유 위에 즉 만유보다 크신 하나님이라 표현을 할 수 있으며, 2) 하나님은 만유를 통(일)하여 즉 만유와 동일한 크기의 하나님이라 표현을 할 수 있는 것이며, 3) 하나님은 만유 안에 즉 만유보다 작으신 하나님이란 표현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하여 엡4:6절은 '만유보다 크고 만유와 동일하고 만유 안에 계신 하나님'을 의미하고 있음인 것입니다. 곧 이것은 하나님 안에 부분 집합과 같이 만유가 포함되어 있음이란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만유는 그 말 자체가 하나 하나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뜻하니 이 또한 하나님 안에 존재하는 각각의 원소가 됩니다.
      이렇게 뿔뿔이 흩어져 있는 원소들을 하나로 묶여 한 집합을 이루는 데 이 집합의 이름을 만유라 부르는 것입니다.

      이 각각의 원소가 어떻게 하나의 집합으로 묶일 수 있을까? 사실상 물질 자체로만 본다면 불가능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니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역활입니다.

      성령은 만유의 원소인 각각의 존재들을 하나로 묶어(통일) 하나의 집합(만유)이 되게 하는 하나님의 한 위인 것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각각의 원소들이 성령에 의해 만유라는 집합으로 하나로 묶여질 때 이 자체가 또 하나의 하나님의 한 위가 됩니다. 곧 만유를 통(일)하여 계신 하나님을 뜻하는 것으로 만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하나 됨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 각각의 원소로 존재하는 것들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이는 하나님의 창조로 이뤄지는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불가시적인 창조주 하나님이 가시적인 각각의 만유로 드러내 보이심인 것입니다. 이것을 세속화(세속신학의 정의)라 할 수 있는데 인식할 수 없는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존재로 보이심이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에 있어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하나님께서 육신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볼 수 없고 인식할 수 없는 하나님을 볼 수 있고 인식할 수 있는 하나님으로 드러내신 은혜의 복음이 됩니다. 3) 이 은혜의 복음을 통해 만유 안에(ἐν πᾶσιν) 하나님이 함께 하고 계심을 증언한 것이 4복음서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이상은 좀 어렵고 받아 들이지 못할 수도 있음으로 생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창조주 아버지 하나님은 모든 만유 보다(위에 ἐπὶ πάντων, 초월하여) 크시며, 성자 하나님은 모든 만유와 함께(안에 ἐν πᾶσιν) 거룩한 영으로 함께 계시며, 성령 하나님은 만유를 통(일)하여 하나 되게 하시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시는 영이시니, 엡4:6 말씀은 성부, 성자, 성령께선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하나이심을 증언하는 역사하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에 대하여 성경은 아버지의 영이라고도 하고 아들의 영이라고도 함입니다. 어떻게 아버지의 영이 아들의 영이 될 수 있는가? 이것 또한 하나님의 신비이신데 이 신비가 곧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 모든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이 고백하게 되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니 성령의 감동이 아니시고선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한 것입니다.

      자동차가 100미터를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그 차에는 한 사람의 운전자 밖에 없음인데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을 합니다. 과연 이 차를 움직인 것은 누구일까요? 네 바로 그 운전자입니다. 그런데 안보고 어찌 알 수 있는 것일까요? 그것이야 상식적으로 알 수 있고 직관적으로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란 표현은 없지만 만유가 하나님 안에서 하나 임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상식적으로 알 수 있으며, 직관적으로도 알 수 있음인 것입니다. 다만 진실로 하나님을 알고 믿는 사람들에겐 말입니다.

      그러기에 이 상식적 이해를 웨슬리는 회복된 이성적 사고라고 하였으며, 직관적이라 함은 성령의 감동을 통해 수용된 지식이라 하였으니 신실한 성도의 체험이자 신실한 교회들을 통해 전해지는 전통을 의미하는 것이 됨입니다.

      • 2021-03-21 19:19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1:10)

  • 2021-03-21 19:39
    노재신 목사님, 필자의 글에 관심을 보여서 감사합니다.

  • 2021-03-21 19:49
    "헬라어 엔 파신 휘민(ἐν πᾶσιν ὑμῖν.)은 어떤 사본에는 “너희 (안에)”, 또는 “우리”란 말이 삽입되어 있다."고 하셨는데 휘민(ὑμῖν) 2인칭 복수 여격입니다. 그래서 '너희를 위하여'로 해석함이 옳다 할 수 있으며, 만약 목사님의 말씀과 같이 '너희'라 하면 2인칭 복수 주격인 휘메이스(ὑμεῖς)라 하여야 맞으며. 우리라 할 때 1인칭 복수 주격이므로 이것은 헤메이스(ἡμεῖς)로 기록이 되어야 합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럴 경우 앞의 ἐν πᾶσιν과 격이 다르게 됨으로 그 자체로 오기가 될 수 있음인 것입니다.

    휘민(ὑμῖν) 2인칭 복수 여격으로 앞의 ἐν πᾶσιν도 격을 따라 씌여진 것이므로 '너희에게 혹은 너희를 위하여 만유 안에'라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너희에게 만유 안에'라 함은 부자연스러운 해석이 될 수 있으니 '너희를 위하여 만유 안에'라 해석함이 합당하다 하는 것 입니다.

  • 2021-03-22 07:35
    노재신 목사 오버하지 말고 제발 자중좀 하시오 난 당신이 아직도 정신 못차렸다고 보오 쓰고싶으면 노탕하고서 필터링하고 쓰시오 이상탸라면 당신은 기회를 살리긴 틀렸소 실망이오 ㅠㅠ

    • 2021-03-22 12:11
      나는 목사요. 목사로서 행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행한 것이라 생각지 않소... 오히려 목사로서 행해야 할 일을 행했다 생각을 하는데 그것이 장운양 논객의 마음에 들이 않음이라면 난 장운양 논객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요.

      내가 목사가 된 것은 장운양 논객의 말을 들으려 함이 아니니 말이요. 내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마음대로 하시요. 무엇이든 자기 맘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장운양 논객이니 마음대로 하고싶은대로 하시요.

      이것이 장운양 논객에게 보내는 내 글Love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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