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주 예수를 믿는가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4-11-01 20:29
조회
614
<골로새서 1:18-23>
18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19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21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23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1. 시작하는 말
‘예수님을 구세주요, 인생의 주권자요 주관자로 믿는다면 어떻게 그런 언행이 가능할까?’ 이런 의문은, 주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저명인사들이, 주 예수님의 뜻은 아랑곳없는 언행을 할 때마다 떠오르곤 하는 것입니다.
더욱 기막힌 것은, 왜정 시대에 앞장서서 신사 참배를 하고, 친일 매국을 일삼고, 남자들은 일본의 침략 전쟁의 총알받이로, 여자는 정신대로 내몰던 교회 지도자들도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왜정 시대에 어떤 교단장은, “교회의 철문, 철책, 그리고 종도 헌납하여 성전 완수에 협력하자.”라는 설교도 하고, 연설도 했습니다. 일본에 항거하다 변절한 어떤 교단장은, “조선을 일본에 넘긴 것은 신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을 섬기듯이 일본 국가를 섬겨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라고 했습니다.
2. 교회의 머리, 만물의 으뜸, 화목 제물이신 주 예수님
바울은 헬라의 종교들과 철학과 히브리의 종파에 정통하고, 율법에 철저한 유대교 지도자로서, 주 예수님을 메시아 사칭 죄인이라고 핍박했습니다. 그러다가 부활의 주 예수님을 만나 회개하고 믿어 구원받고, 사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좇아 믿음으로 구원받아 사도가 된 바울은, 한결같이 예수님만을 유일무이한 구세주로 믿고, 순교하기까지 죽도록 충성하는 복음 선교의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 사도가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목숨을 다 바쳐서, 주 예수님을 믿고 따른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바울 사도는 핍박하던 주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좇아, 예수님을 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이 머리가 되시는 교회의 지체인 우리기독교인들은, 주 예수님의 사랑의 지배를 온전히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손과 발을 비롯한 모든 지체는, 머리의 지배를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만약에 어떤 지체가 제멋대로 움직인다면, 그 지체는 머리와 단절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 예수님과 상관없이 자기 위주나 자기 본위나 자기중심의 언행을 일삼는 생활을 하는 교인이 있다면, 그는 이미 주 예수님에게서 끊어진 것입니다.
어차피 인간은 누구 또는 무엇인가를 믿고 따르며 살게 마련입니다. 또, 어차피 반드시 죽게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죄와 멸망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주 예수님―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가장 보람되고 영광스러운 삶이 아닐 수 없습니다.
머리의 지시를 따라 입이 말할 때에, 얼굴 근육과 손 등이 돕는 것처럼, 건전한 교회는 어느 기관이나 부서가 머리 되시는 주 예수님의 지시를 복종할 때에 돕는 것입니다.
중세 유럽의 어느 수도원에서, 제자로 삼기 위한 시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의 관문은, 밭에다 배추를 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수도원의 원장은, 이상한 주문을 했습니다. 배추를 심되 거꾸로 심으라는 것입니다.
제자가 되려고 찾아온 두 사람이 밭으로 나갔습니다. 한 사람은 원장의 말대로 꼬리가 하늘을 향하도록 심었고, 다른 한 사람은 원장의 말과는 반대로 꼬리를 땅에 심었습니다. 원장은 그들이 배추를 심은 것을 보고서는 후자의 사람에게, “당신 같이 똑똑한 사람은 혼자 가서 사십시오. 당신은 선생의 자격은 있어도, 제자로서의 자격은 없습니다.”라고 하며 돌려보냈습니다. 제자로 삼기 위한 첫 번째 시험은, 시키는 대로 순종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둘째, 바울 사도가 목숨을 다 바쳐서 주 예수님을 믿고 따른 이유는, 교회의 머리이신 주 예수님이 근본이심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근본”의 헬라어 아르케(ἀρχή)는, 기원의 능력이라는 ‘처음’을 의미합니다. 즉, 무엇인가가 발생하는 근원이고, 어떤 것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라는 뜻입니다. 실로, 주 예수님은 인간을 포함하는 우주 만물 창조와 섭리의 근원이시며, 새로운 피조물인 교회의 근본이십니다. 이 심원한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예수님을 사랑하여 섬기며 전파하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셋째, 바울 사도가 목숨을 다 바쳐서 주 예수님을 믿고 따른 이유는, 근본이신 주 예수님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부활하여 만물의 으뜸이 되셨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사도가 되기 전에, 바울은 십자가에 못박혀 운명하신 예수님이 다시 사셨다고 하는 제자들의 선포를 희대의 거짓말이라고 하면서 핍박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러 가던 다메섹 도상에서, 주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체험을 통해서 예수님의 부활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권능으로 부활하신 주 예수님만이, 죄와 죽음의 지배 아래 있는 모든 인간에게 부활의 소망이 되신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주 예수님만이 만물의 으뜸이 되시는 영생의 주님이심을 믿고 따른 것입니다.
주 예수님의 부활은, 초대 교회의 모든 사상과 모든 신앙과 모든 경험의 중심이 된 사건입니다. 믿는 우리의 중심과 우리의 전 삶의 중심에, 주 예수님의 부활이 확고히 자리잡고 있습니까? 그래서 실패와 패배, 아픔과 슬픔, 억울함과 원통함, 미움과 증오도 다 극복하거나 이겨내곤 합니까? 언제 죽어도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매우 감동적인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샘물 호스피스’에서 23일 동안 쉬다 가신, 54세인 간암 환자인 노씨는, 헌집에서 새집으로 이사 가는 설레는 마음으로 이 세상의 마지막 시간을 장식했습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간암의 극심한 고통을 달래면서, “내가 갈 곳은 천국밖에 없어요.”라고 속삭이던 확신 있는 음성은, 죽음의 화살을 여지없이 꺾어버린 승리의 노래였습니다.
노씨는 준비된 한복을 입고 떠나겠다고 몇 번씩 옷을 갈아입고, 여유 있게 죽음을 준비하며 기다리는 동안에 간절히 소원했던 남편의 신앙 고백을 듣게 되었습니다. 큰아들의 극진한 간호를 받으면서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었고, 사랑하는 교우들과 모든 친척들의 마음을 하나님 앞으로 한데 모아주었습니다.
우리 모두 부활의 소망을 굳게 붙잡고, 승리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주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이시고, 우주 만물과 교회의 근본이시고, 부활하셔서 만물의 으뜸이 되신 것은 성부 하나님의 역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충만, 즉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과 권능을 주 예수님 안에 가득 채우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대해 막연하게 알거나, 잘못 알고 있던 사람들이 주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신학자들은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 근거이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인식 근거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성육이신 주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인간을 비롯한 천지 만물과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셨습니다. 로마서 3:25을 보면,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5:10에는,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 예수님을 화목 제물로 삼으신 첫째 목적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된 우리로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주 예수님 앞에 세우시기 위한 것입니다. 주 예수님 앞에 완전무결한 인간이 되어 서게 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주 예수님 앞에 서는 것은, 믿음에 거하되 탄탄하게 닦은 터 위에 지어진 돌집과도 같이 견고하게 거하는 것입니다. 또, 복음 곧 하나님을 믿거나, 하나님의 성육이신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 사함과 칭의와 거듭남, 자유와 평화와 성결한 삶, 그리고 영생의 구원을 얻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 목적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된 우리에게, 화목케 하는 직책을 맡기시기 위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18 이하를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과 칭의와 거듭남, 자유와 평화와 성결한 삶, 그리고 영생의 구원을 얻게 하시는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으로 믿는 겁니까? 우주 만물과 교회의 근본이시고 으뜸이신 주 예수님을 인생의 주권자요, 주관자로 믿고 추종하는 겁니까? 언제 죽어도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믿음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기독교인들 중에는 예수님을 보통 사람이나 성인, 예언자나 환생한 예언자, 동성애자로 여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입술로는 주 예수님이시라고 고백하지만, 생활은 주 예수님은 아랑곳없이 자기 본위와 자기 위주, 자기중심이나 탐심이 주도하는 미성숙한 기독교인들도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설교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7권/ 기타 다수
아멘.
목사님께서 주안에서 영육 간에 늘 강건하시길 기도합니다. 본문에 대한 제 소견을 별도 게시로 공유합니다.
필자의 설교에 "아멘."으로 화답하시고, "목사님께서 주안에서 영육 간에 늘 강건하시길 기도합니다. 본문에 대한 제 소견을 별도 게시로 공유합니다."라고 하셔서 감사합니다.
목사님의 화목에 대한 말씀 아멘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서 화목에 대한 설교는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성경에서 읽었습니다만.
대부분의 성도들은 예수를 잘 믿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으로 자녀들 서울대 입학하고 건물주 되고 만병통치 무병장수 노년 평안을 노리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대부분 기도 제목은 이 4가지입니다.
안타깝게도 수 많은 설교가 이렇고 수 많은 성도들의 믿음이 이렇습니다.
믿음 제일 좋다고 칭송받는 장로님이 누구나 기도만 하면 서울대 당연히 합격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믿음에 대해서도 설교 말씀 부탁드립니다.
강 장로님
제가 답을 할 위치는 아니지만, 그래도 게시 내용을 보면서 아래 생각을 해 봅니다. 불쑥 끼어든 점을 양해하시고요….
㈎ “자녀들 서울대 입학하고 건물주 되고 만병통치 무병장수 노년 평안을 노리고 있습니다.” ⇒ 이런 기도는 교회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종교, 경전이 없거나 부실한 종교와 원시 종교인 샤머니즘도 비슷한 형식과 내용으로 합니다.
㈏ “그런데 그 믿음으로” ⇒ 히브리서 11장은 믿음 장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1, 2절은 믿음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히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전체 내용에서 믿음의 선진들이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보여줍니다. 흔히 오해로 “오직 믿음으로 구원되고, 한번 받은 믿음은 없어지지 않으며, 나는 천국을 보장받았다.”라고 주장하는데 성경과 다릅니다. 혼적 생각의 영역에서 자기 신념이나 종교적 입장을 가지고 굳힌 확신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아닙니다.
㈐ 예를 들어 “공부하면 서울대 간다.”라는 말은 틀린 게 아니지만, “공부하면 서울대 다 간다.”는 틀린 말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된다.”도 비슷한 이치이며…. “기도하면 서울대 간다.”라는 말 안에는 학벌 지향, 서울대학 유일주의, “기도 같은 인간의 종교적 열심 대가는 보상된다.”라는 인간과 하나님 간 흥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불쑥 끼어든 것이 아니고 지혜의 조언이십니다.
엄장로님 신앙이 훌륭하십니다. 저의 신앙도 장로님 신앙과 같습니다.
강기승 장로님, 필자의 설교에 “아멘.”으로 화답하시고, 질문을 하셔서 감사합니다. "믿음 제일 좋다고 칭송받는 장로님이 누구나 기도만 하면 서울대 당연히 합격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믿음에 대해서도 설교 말씀 부탁드립니다."라고 하셨는데, 혹 시간이 되시면 여기 ‘감리회소식’에서 ‘이기려면 기도의 응답대로 하라’와 ‘틀림없이 응답받는 기도’를 검색하시면 그 두 설교에 참조할 만한 내용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