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주라 한 그리스도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4-10-24 15:32
조회
777
<마가복음 12:35-37>
35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쌔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뇨 36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37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더라 백성이 즐겁게 듣더라
1. 시작하는 말
한때 로마에서는 황제를 주라 일컬었고, 중국이나 일본 등에서는 왕을 천자, 또는 천황이라 하여 신격화하는 어처구니없는 잘못을 범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에도 창조주요 섭리자, 구원자요 심판자, 생사화복과 흥망성쇠의 주관자이신 영원불변하신 사랑의 하나님께서 살아 역사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성육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구원을 위해 강림하셔서 역사하셨습니다.
이런 내용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종교학이나 종교 철학이나 종교 교리나 이념이나 퀴어설 등에 입각하여 해석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이나, 동성애자나, 많은 주들 중 한 주로 폄훼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주장들에 대해 성경은 단호하게 반대하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영원부터 존재하신 유일한 주이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2. 서기관들의 잘못된 주 이해인 메시아관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어째서 율법 종교의 지도층인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느냐고 어이없어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대한 배경 설명은, 마태복음 22:41 이하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그리스도가 누구의 자손이냐고 질문하셨고, 그들이 다윗의 자손이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몇 가지 그리스도관 곧 메시아관이 있었습니다. 로마의 식민 통치에 저항하던 마카비 시대에는, 레위족에서 제사장이자 왕인 메시아가 나온다는 기대가 높아졌습니다. 유대교의 한 종파인 쿰란 공동체에는, 제사장으로서의 메시아와 왕으로서의 메시아라고 하는 두 사람의 메시아에 대한 기대가 있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유대인들의 주된 메시아관은, 다윗의 자손 중에서 메시아가 나타나서 지상에 다윗의 왕국을 정치적으로 확립하는 인물이고, 무력으로 독립은 물론 온 세상을 정복하고 지배하는 왕이라는 사상입니다.
유대인들의 다양한 메시아관에 대한 예수님의 비판의 취지는,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뇨”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주 곧 그리스도가 인간의 혈통만을 따지면 다윗의 자손이라고 할 수 있지만, 보다 더 근본적인 면에서 주 곧 그리스도는 다윗과는 비교 불허인 그 이상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주 곧 그리스도는 사람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주 곧 그리스도 예수는 하나님의 성육신이십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는 서기관들을 비판한 목적이 있습니다. 청중에게 당신에 대한 믿음인 주 곧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도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을 깨우치는 것입니다. 유일신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율법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하는 유대교의 지도층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가히 혁명적인 선언입니다.
예수님이 아닌, 어떤 다른 존재를 주로 믿는 모든 사람들은―그들이 아무리 뛰어난 어떤 종교인이라 할지라도―구원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8:4 이하를 보면,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수없이 많은 주나 재림주가 나타나서, 사람들을 미혹하여 몸과 재산을 바치고 헌신하게 하다가 마각이 드러나는 바람에 쇠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현재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이단의 폐해는 인생과 가정을 망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지옥의 멸망을 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영생교의 교주가 영생의 주, 혹은 영생의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면서 사람들을 끌어 모으다가 구속된 사건도 있었습니다. 영생의 주라고 하면서 철야 심문에 꾸벅꾸벅 졸았다고 해서, 세간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누가 무슨 그럴 듯한 말이나 이론을 전개하더라도 미혹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교회나 교역자나 기독교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이 들리더라도, 영생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이신 교회를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일도,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아무리 나쁜 것이라도 영생과 바꿀 만한 가치는 없습니다.
흔들릴 때에, 요한복음 6:66 이하의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영적 이해력과 영적 지각이 마비되어, 다만 이성적인 관점에서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는 유대교 지도층에 대해 예수님은 시편 110:1을 인용하여 비판하셨습니다.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친히 말하되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이 시편 110:1은, 예수님과 신약성경 기자들이 메시아적 의미로 해석하여 자주 인용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에게서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는 것은, 승천과 재림 때의 마지막 성취 사이의 주 예수님의 위치를 묘사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예수님이 관심을 가지시는 말씀은, ‘다윗이 주 곧 여호와께서 내 주 곧 아도나이께 이르시되’입니다. 즉, 다윗은 하나님 이외에도 자기의 주 곧 아도나이라고 부를 존재를 인정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중보자인 주 곧 아도나이께 영원부터 영원토록 하나님의 존재에게만 합당한 탁월하고, 능력이 있고, 권위가 있는 장엄한 약속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약속은 주 곧 아도나이로 하여금 마지막 원수인 죽음마저도 이기고, 부활하여 만물을 통치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을 믿고 주 예수님 안에 거하는 우리는, 주 예수님의 은덕으로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판 내용은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했는데, 어째서 주가 다윗의 자손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백성은 즐겁게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인간인 다윗의 자손이 될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은, 그리스도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이 아니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육체로만 알고, 근본적으로 영적인 면에서는 알지 못하여, 찾아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는 유대인들을 문제 삼으시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지상적이며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제이의 다윗 왕으로서의 메시야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시고, 성결의 영으로는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재확인되실 만민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을 천국의 주권자시요, 믿는 우리를 영생으로 인도해 주시는 주로 믿고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적지 않은 기독교인들이, 아직도 예수님을 인격 수양의 본인 성인 정도로 믿고 따르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16에,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라고 한 바울의 고백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예배드릴 때에나 기도할 때에는 분명히 예수님을 향해 주라고 부르는데, 실제의 생활에서는 예수님이 정말 주이신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은 기독교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그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우리의 믿음은 변화무쌍할 때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만사가 형통하고, 기쁘고 즐거운 일이 생기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니라, 자기가 잘나서 된 것으로 생각하느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잊어버립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만사가 불통하고 슬프고 괴로운 일이 생기면 사랑의 능력자이신 예수님을 주로 믿는 대신에, 번민과 원망을 주로 모셔 들이고 종노릇을 하기도 합니다. 행복할 때에는 그렇게 해 주신 예수님을 주로 모셔 기뻐하고, 불행할 때에는 죽음까지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로 모셔 해결 받으시기 바랍니다.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실제 생활에서, 우리의 주 노릇을 제일 많이 하고 있는 게 무엇입니까? 우리가 알게 모르게, 주로 믿고 따르는 게 무엇입니까? 종교 교리나 사상, 재물이나 권력, 지식이나 명예, 유력자나 진영 논리, 감정이나 얄팍한 자존심, 고민이나 번민, 미움이나 증오, 슬픔이나 아픔, 불평이나 원망이 아닙니까? 그런 사람들이나 그런 것들로, 천하를 주어도 바꾸지 않을 우리의 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좇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 사함과 거듭남, 자유와 평화, 성결한 삶과 영생의 구원을 얻은 우리는 어떤 사람이나 어떤 것의 지배를 받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모두 십자가의 대속 제물이 되시고, 부활․승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우리의 삶의 주요, 천국 영생의 주로 믿고 따라야 합니다.
설교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신약_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7권/ 기타 다수
목사님
1. 예수님이 오시기전 구약의 사람들은 어떻게 구원을 받았을까요?
2. 우리나라 성도들은 신앙의 실질적인 목적이 자식축복, 물질축복, 건강축복, 노년축복인데 그러면 신앙의 진짜 목적은 무엇일까요? 죽어서 천국 가기 위해서? 그럼 믿자마자 죽으면 되지 인간은 왜 살아 가는 것일까요? 하나님께 영광돌리기 위해서? 그럼 자식축복, 물질축복, 건강축복,노년축복 추구는 이것과 배치되는 것이 아닐까요?
3.우리교회 장로님은 누구나 믿고 기도하면 서울대 입학할 수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이런 믿음은 올바른 믿음일까요?
필자의 설교에 관심을 보이셔서 감사합니다.
예수 오시기 전의 구원 문제는 필자가 처음 정립한 논문이며 책으로도 출판했습니다. 그 핵심 내용은 여기 '감리회 소식'에서 예수 오시기 전의 구원을 검색하시면 설교와 주석을 보실 수 있습니다.
나머지 답변은 인천에 갈 일이 있어서 저녁 때에나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엡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갈 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 언급하신 복들 외에도 신령한 복도 있습니다. 어떤 복이든지 복을 받는 것 자체가 궁극적인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그 복을 나누는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의 삶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비롯한 소유가 하나님 사랑과 인간 사랑을 위한 방편이 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입니다.
# 믿고 기도한다고 해서 다 서울대에 입학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그 대학에 들어갈 실력을 갖춰야 입학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상, 하나님을 믿지도 않고, 기도도 하지 않는 학생들도 실력이 갖춰지니까 그 대학에 입학을 하지 않습니까? 물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지혜와 명철과 총명과 인내력 등을 구하는 기도를 하고, 임마누엘의 믿음으로 안 믿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수고와 노력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친절 자세한 지도 감사드립니다.
우리 교회에 서울대 입학생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장로님은 명문대에 못간 가정들을 믿음이 없는 가정이라고 하시며 안타까워 하십니다. 심지어 그 옆에 분은 수험생들이 모르는 문제 찍어서 만점 받는 복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교회의 신앙입니다.
강기승 장로님, 한마디로, 기독교 신앙과 미신의 근본적인 차이는 '내 삶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와 '내 삶에 내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 어떤 귀신(영)을 위해서 굿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부자가 되기 위한 것이나 병이 낫기 위한 것 등 내 뜻이나 내 소원을 이루기 위해 굿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피조물이므로 내 삶에 창조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으로써 내가 참 내가 되는 것이고, 내 삶이 참 내 삶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고백입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아멘.
목사님께서 주안에서 영육 간에 늘 강건하시길 기도합니다. 본문에 대한 제 소견을 공유합니다.
§막12:35 <서기관들> [대상2:55 야베스에 살던 서기관 종족 곧 디랏 종족과 시므앗 종족과 수갓 종족이니 이는 다 레갑 가문의 조상 함맛에게서 나온 겐 종족이더라] ☞ 서기관은 종족, 즉 세습된다. [렘8:8 너희가 어찌 우리는 지혜가 있고 우리에게는 여호와의 율법이 있다 말하겠느냐 참으로 서기관의 거짓의 붓이 거짓되게 하였나니] ☞ 서기관은 오늘 날 신학자에 해당 [마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 義가 최소한 ‘서기관과 바리새인’ 보다 못하면 지옥에 간다. [마9:2] ☞ 죄를 사하는 권세가 예수 그리스도께 있다. 대신 면죄부를 파는 로마 카톨릭 교황에게 없으며 이게 ‘신성모독’이다.. [마12:38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3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어리석음, 스스로 안다고 자부하나... ‘서기관’은 현대의 신학자, ‘바리새인’은 ‘기독교 직업종교인’에 해당. 이들이 ‘자유주의신학’ ‘성서비평학’처럼 ‘거짓의 펜’을 쓴다. [마15:1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2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 성경 말씀을 잊고 종교적 외형 [마16:21] ☞ 죽으러 오신 분 [막2:6] [눅5:21] [눅11:52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53 거기서 나오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거세게 달려들어 여러 가지 일을 따져 묻고 54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책잡고자 하여 노리고 있더라] ☞ 거짓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자기 정체가 드러나면 상대를 향해 달려든다 [눅19:46,47] ☞ ‘강도의 소굴’이라 말하면 ⇒ 살인 계획을 세운다. [눅20:46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 긴 옷, 문안받기, 높은 자리 ⇒ 거짓 서기관 [눅23:10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서서 힘써 고발하더라] ☞ 말씀으로 죄가 없는 타인을 트집잡아 정죄 [요8: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 레20:10을 어긴 서기관과 바리새인…. 말씀을 임의로 적용하는 사례.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렘23: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 재림 [렘33:15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22 하늘의 만상은 셀 수 없으며 바다의 모래는 측량할 수 없나니 내가 그와 같이 내 종 다윗의 자손과 나를 섬기는 레위인을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라] ☞ 다윗의 자손, 그리스도 [마22:42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 다윗의 자손 [눅1:27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 예수 그리스도는 처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이땅에 나신다. [계5:5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 주 예수 그리스도
§36 <성령에 감동되어> KJV에 ‘by the Holy Ghost’로 ‘성령에 의해’다. ‘성령 감동’은 오역이고, 성경을 번역할 때 이런 방식의 임의로 하는 삭제, 추가, 변개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 어렵게 하고, 관련 성경이나 짝 구절을 찾지 못하게 막는다. 비슷한 사례는 “성령 감화” 등 ❶이는 교회 안에서 소위 ’입신‘이라고 불리는 샤머니즘의 신접한 상태로 오해되고, ❷이는 여러 종교가 악하게 연대하는 구실이 되고 ❸이단이 거짓 교리를 만들기 쉽고 ❹교회 안에서 ‘성령 감동’과 ‘성령 감화’ 등 소위 ‘체험’으로 묶어 두리뭉실하지만 이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대신 성령에 의해 진행되는 일은 당사자의 영과 혼이 흐려지지 않고, 의식이 멀쩡하다. [눅2:26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 성령의 지시 [눅4:1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 예수님은 말씀으로 [롬5:5] [롬15: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 성령에 의해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 복음을 전하는 직분 [고전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 예수를 ‘주’시라 시인 [고후6:6] [후1:13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14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벧후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 예언.. ’성령의 감동하심.‘ ⇒ ’성령에 의해‘
<주께서 내 주께> ☞ KJV에서 ”The LORD said to my Lord“이다. 전자 ‘LORD’는 하나님이시고, 후자 ‘my Lord’는 예수 그리스도.
<주께서> [창2:4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5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 (이하 같은 방식으로) KJV ‘주 하나님’, 개역개정은 ‘여호와 하나님’으로 번역 [대하7:2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므로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전으로 능히 들어가지 못하였고] [대하14:11] [사26:4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 영원한 반석 하나님, 사도 베드로가 아니다. [사33:22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 [렘7:4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거짓말 [렘23:38] [렘33:2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 창조주 [슥1:3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 내게로 돌아오라 ⇒ 회개 [슥3: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 하나님께서 사탄을 책망 [계11:17 이르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계19: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 주 우리 하나님
<내 주께> [요20: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 나의 주님 [빌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 이는 그가 재림의 ‘주’로 다시 이땅에 오심을 예표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시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 하나님의 우편에 앉을 수 있는 자.. ⇒ 예수 그리스도 [마22:44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 시점이 초림과 재림의 사이에서, 재림으로 넘어간다. 이때 예수 그리스도는 ‘주’로 오시고 심판하신다. 이때 마귀는 최종적으로 심판된다. [눅20:43 내가 네 원수를 네 발등상으로 삼을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행2: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히1:13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느냐 14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 여기에는 ‘자기의 본분을 잊은 천사’ 즉 악한 영들도 포함된다.
<네 원수를> thine enemies [창14: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 대적을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붙이신다. 멜기세덱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다. [창49:8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 유다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 [출23:22 네가 그의 목소리를 잘 청종하고 내 모든 말대로 행하면 내가 네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네 대적에게 대적이 될지라 27 내가 내 위엄을 네 앞서 보내어 네가 이를 곳의 모든 백성을 물리치고 네 모든 원수들이 네게 등을 돌려 도망하게 할 것이며] ☞ 구약에서 표적을 행하시는 하나님 [신6:19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네 앞에서 네 모든 원수를 쫓아내리라.] [삼하7:9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11 전에 내가 사사에게 명령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아니하게 하고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 원수 ⇒ 대적 [ 시74:4 주의 대적이 주의 회중 가운데에서 떠들며 자기들의 깃발을 세워 표적으로 삼았으니] [시74:23 주의 대적들의 소리를 잊지 마소서 일어나 주께 항거하는 자의 떠드는 소리가 항상 주께 상달되나이다] ☞ 대적들의 소리 ⇒ 항상 하나님께 들린다. [렘15:14 네 원수와 함께 네가 알지 못하는 땅에 이르게 하리니 이는 나의 진노의 맹렬한 불이 너희를 사르려 함이라] ☞ 네 원수와 함께 ⇒ 네가 알지 못하는 땅 ⇒ 진노의 맹렬한 불 ⇒ 지옥 [미5:9 네 손이 네 대적들 위에 들려서 네 모든 원수를 진멸하기를 바라노라] [눅19: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 예루살렘을 원수들이 공격 ⇐ 하마스와 헤즈볼라와 이란
§37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듣더라> ☞ 왕의 신분인 다윗이 이땅에서 ‘주’라 부를 사람이 없고, 더구나 그의 후손을 ‘주’라 부를 이치가 없다. 더구나 초림의 예수 그리스도는 신분이 평민이다. 그의 가지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가 나심을 예언하며, 최종적으로 재림으로 오실 ‘주’를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 KJV는 ”common people“이고 이는 ‘평민’이고 보통 사람인 신분을 표시한다. 대신에 개역 개정은 사람의 숫자를 표현했다. [레4:27 만일 평민의 한 사람이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는데] ☞ 평민, 직업 종교인이나 바리새인이 아닌, [렘26:23 그들이 우리야를 애굽에서 연행하여 여호야김 왕에게로 그를 데려오매 왕이 칼로 그를 죽이고 그의 시체를 평민의 묘지에 던지게 하니라]
엄재규 장로님, 필자의 설교에 "아멘."으로 화답하시고, "목사님께서 주 안에서 영육 간에 늘 강건하시길 기도합니다. 본문에 대한 제 소견을 공유합니다."라고 하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