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나그네 장로
작성자
함창석
작성일
2024-10-23 17:50
조회
602
몽골 나그네 장로
함창석
몽골에 잠시 머물거나
떠도는 명예 장로라
산돌교회 성도들은
예배당을 방문하면
낯선 남자 어른으로
대하는 것이 보통인데
산돌교회를 돌보고
성도를 섬기기도 하니
남은 생을 바치는
몽골 나그네 장로로서
아주 좁은 길을
잘 걸어가고 있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벧전 1:1-4)
나그네는 자기 고국이나 고향을 떠나 다른 장소에 저주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히브리어 '게르'(어떤 곳에서는 '이방인'이라고도 번역되었음)는 그들이 거주하는 곳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거주지(대부분 영주하였음)에서 어느 정도의 권리를 보장 받았다. 나그네들은 거주지에서 가족이나 씨족을 형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분상으로는 대체로 종취급을 받았다(창 19:9; 22:4; 출 2:22). 구약의 율법은 나그네들을 보호해주려 했으며, 그들이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어떤 신분인지를 명확하게 규정해 주었다. 또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그네로 있을 때 받았던 학대를 상기시키면서, 이스라엘 안에 거주하는 나그네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고 가르쳤다(출 23:9; 레 19:34; 신 23:7). 어떤 권리들, 곧 안식일의 쉼(출 23:12), 공정한 재판(신 1:16), 칠칠절의 제사음식을 같이 나눔(16:11), 추수 때 남겨놓은 이삭과 열매(레 19:9-10) 등에 관한 규례에는 나그네들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등한 권리를 누렸다. 나그네들도 절기와 희생 제사와 여호와 종교와 관련된 금지 사항들은 반드시 준수해야 할 의무가 주어졌다(출 12:49; 레 16:29; 17:8-9; 18:26; 민 15:29). 그리고 나그네들도 할례만 받으면 이스라엘 공동체의 구성원이 될 수 있었다(출 12:43-44, 48: 참조. 45절). 간혹 이스라엘 사람이 부요한 나그네의 종이 되는 불행한 경우도 발생하였다(참조. 신 28:43). 이러한 경우에는 이스라엘 사람을 위한 입법상의 특별한 배려가 규정되었다(레 25:47-35). 비록 어떤 경우에는 나그네들이 이스라엘 사람들과 거의 동등하게 간주되었으나, 특별한 경우에는 이와 같은 개념이 전혀 적용되지 않던 경우도 있었다(대상 22:2; 대하 2:17-18). '외국인들'에게는 여러 가지 다른 히브리어가 사용되었다. '자르'는 '외국인'을 지칭하는 가장 넓고 다양하게 쓰인 말이다. '토솨브'는 간혹 '게르'(“이방인”)의 동의어로 사용되었으나(창 23:4), 어떤 경우에는 이스라엘에 덜 동화된 외국인들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출 12:45). '노크리'와 '벤네카르'란 말은 외국풍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이스라엘 본족과 뚜렷이 구별되는 자들에게 사용되었다(예. 신 17:15; 왕상 8:41-43). 이러한 자들의 법적인 신분은 이스라엘 본족 또는 '게르'(나그네)와 많은 차이가 났다(출 12:43; 레 22:25; 신 14:21; 15:3). 종말론적 이스라엘에 관한 성경의 기록들을 보면 외국인들 곧 '게림'과 '베네 네카르'를 이스라엘 안에 포함시킬 준비를 한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사 56:3, 6-7; 겔 47: 22-23). 이러한 소망의 성취가 엡 2:11-13, 19에 기록되어 있다('외인과 손' : 19절. 헬. '크세노이 카이 파로이코이')나그네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이란 개념은 구약에서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상이다. 비록 족장들이 나그네로 머물던 가나안 땅이 하나님의 약속에 의하여 이스라엘의 소유가 되었으나(창 17:8; 출 6:4), 그 땅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소유였다. 이스라엘은 단지 나그네로서 그 땅에 거주하였던 것이다(레 25:23; 대상 29:15; 참조. 히 11:8-16). 이와 유사하게, 시편의 예배자도 하나님의 소유인 성전에 나그네로 머무르면서 예배를 드린다고 고백하였다(시 15:1; 참조. 61:4). 또한 시편의 예배자는 자신의 생명도 일시적이고 급히 사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나그네 일뿐이라고 고백하였다(시 39:12). 벧전 1:1, 17; 2:11(참조. 히 13:14)에서는 기독교 공동체를 이 세상 속에 머무는 나그네라고 묘사하였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 11:8-16)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시 15:1-5)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나는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이며 나의 모든 조상들처럼 떠도나이다.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시 39:12-13)
함창석
몽골에 잠시 머물거나
떠도는 명예 장로라
산돌교회 성도들은
예배당을 방문하면
낯선 남자 어른으로
대하는 것이 보통인데
산돌교회를 돌보고
성도를 섬기기도 하니
남은 생을 바치는
몽골 나그네 장로로서
아주 좁은 길을
잘 걸어가고 있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벧전 1:1-4)
나그네는 자기 고국이나 고향을 떠나 다른 장소에 저주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히브리어 '게르'(어떤 곳에서는 '이방인'이라고도 번역되었음)는 그들이 거주하는 곳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거주지(대부분 영주하였음)에서 어느 정도의 권리를 보장 받았다. 나그네들은 거주지에서 가족이나 씨족을 형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분상으로는 대체로 종취급을 받았다(창 19:9; 22:4; 출 2:22). 구약의 율법은 나그네들을 보호해주려 했으며, 그들이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어떤 신분인지를 명확하게 규정해 주었다. 또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그네로 있을 때 받았던 학대를 상기시키면서, 이스라엘 안에 거주하는 나그네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고 가르쳤다(출 23:9; 레 19:34; 신 23:7). 어떤 권리들, 곧 안식일의 쉼(출 23:12), 공정한 재판(신 1:16), 칠칠절의 제사음식을 같이 나눔(16:11), 추수 때 남겨놓은 이삭과 열매(레 19:9-10) 등에 관한 규례에는 나그네들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등한 권리를 누렸다. 나그네들도 절기와 희생 제사와 여호와 종교와 관련된 금지 사항들은 반드시 준수해야 할 의무가 주어졌다(출 12:49; 레 16:29; 17:8-9; 18:26; 민 15:29). 그리고 나그네들도 할례만 받으면 이스라엘 공동체의 구성원이 될 수 있었다(출 12:43-44, 48: 참조. 45절). 간혹 이스라엘 사람이 부요한 나그네의 종이 되는 불행한 경우도 발생하였다(참조. 신 28:43). 이러한 경우에는 이스라엘 사람을 위한 입법상의 특별한 배려가 규정되었다(레 25:47-35). 비록 어떤 경우에는 나그네들이 이스라엘 사람들과 거의 동등하게 간주되었으나, 특별한 경우에는 이와 같은 개념이 전혀 적용되지 않던 경우도 있었다(대상 22:2; 대하 2:17-18). '외국인들'에게는 여러 가지 다른 히브리어가 사용되었다. '자르'는 '외국인'을 지칭하는 가장 넓고 다양하게 쓰인 말이다. '토솨브'는 간혹 '게르'(“이방인”)의 동의어로 사용되었으나(창 23:4), 어떤 경우에는 이스라엘에 덜 동화된 외국인들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출 12:45). '노크리'와 '벤네카르'란 말은 외국풍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이스라엘 본족과 뚜렷이 구별되는 자들에게 사용되었다(예. 신 17:15; 왕상 8:41-43). 이러한 자들의 법적인 신분은 이스라엘 본족 또는 '게르'(나그네)와 많은 차이가 났다(출 12:43; 레 22:25; 신 14:21; 15:3). 종말론적 이스라엘에 관한 성경의 기록들을 보면 외국인들 곧 '게림'과 '베네 네카르'를 이스라엘 안에 포함시킬 준비를 한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사 56:3, 6-7; 겔 47: 22-23). 이러한 소망의 성취가 엡 2:11-13, 19에 기록되어 있다('외인과 손' : 19절. 헬. '크세노이 카이 파로이코이')나그네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이란 개념은 구약에서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상이다. 비록 족장들이 나그네로 머물던 가나안 땅이 하나님의 약속에 의하여 이스라엘의 소유가 되었으나(창 17:8; 출 6:4), 그 땅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소유였다. 이스라엘은 단지 나그네로서 그 땅에 거주하였던 것이다(레 25:23; 대상 29:15; 참조. 히 11:8-16). 이와 유사하게, 시편의 예배자도 하나님의 소유인 성전에 나그네로 머무르면서 예배를 드린다고 고백하였다(시 15:1; 참조. 61:4). 또한 시편의 예배자는 자신의 생명도 일시적이고 급히 사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나그네 일뿐이라고 고백하였다(시 39:12). 벧전 1:1, 17; 2:11(참조. 히 13:14)에서는 기독교 공동체를 이 세상 속에 머무는 나그네라고 묘사하였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 11:8-16)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시 15:1-5)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나는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이며 나의 모든 조상들처럼 떠도나이다.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시 39: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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