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많은 회중 가운데에서 의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내 입술을 닫지 아니할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시편 40:9
감리회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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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하나님의 심판
작성자
함창석
작성일
2024-10-04 17:04
조회
546
주 하나님의 심판
함창석
너희는 남을 판단하지 말라
너희는 고집을 피우지 말라
너희는 당을 짓지 말라
도덕성과 양심을 지녀라
본질적인 마음을 가져라
모세 율법을 통하여
선악을 판단할 수는 있으나
예수 복음이 우선이라
이신칭의가 바울사상이고
행함이 있어야 하는 믿음이
요한의 사상이 아닐까
너희는 온전해야 하리라
종교개혁에 대한 견해의 차이는 그것을 해석하는 역사가의 견해나 신학적 입장과 전제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을 바로 이해하려면 바른 신학적인 전제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바른 신학 운동은 신학 활동에서 인간의 이성보다는 성경의 권위를 중시하며, 성경의 영감과 무오를 믿음으로 가능하다. 이런 바른 신학은 성경의 권위를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개혁주의 신학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신학적인 전제를 강조하는 개혁주의자의 입장에서 본 종교개혁의 정의는 무엇인가?
첫째, 환원운동이다. 즉 초기교회의 가르침으로 돌아가려 했던 운동이라는 것이다. A.D 30년경부터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초기교회는 380년 테오도시우스 대제 때 기독교가 국교로 공인되어 교권의 움직임이 로마교회로 집중되어 590년 그레고리 1세가 로마교회 교황으로 취임하면서 중세교회로 전환되었다. 이후 약 1000여년 동안 로마 가톨릭교회가 지배하면서 교권의 확장에서 파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생 되어 초기교회의 가르침으로 돌아가고자 1517년 종교개혁(Reformation)이 발생했던 것이다. 이처럼 종교개혁은 중세교회를 부정하고 초기교회의 참된 모습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환원운동이었다.
둘째, 개혁의 기준은 성경이다. 종교개혁은 가톨릭교회를 지배해왔던 전통이나 교황의 결정 및 교회의 권위에 반대해서 성경과 초대 정통교부들의 가르침으로 돌아가려고 했던 운동이다. 즉 종교개혁은 오직 성경의 가르침으로 돌아가려는 운동이였다. (Returning to the Bible)
셋째, 종교개혁의 슬로건이다. 오직 성경 (Sola Scriptura).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는 대중으로부터 성경을 빼앗었으나, 종교개혁은 대중에게 성경을 돌려주었다. 루터는 1522년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하였다. 오직 믿음 (Sola Fide). 중세교회의 공덕사상에서 비롯된 면죄부 판매, 고행, 고해성사들에 반대해서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이신득의 교리를 새롭게 했다.(롬 1:17) 오직 은혜 (Sola Gratia). 자연은총과 일반은총을 강조하는 아퀴나스를 중심으로 하는 스콜라 신학을 반박하고 특별은총 즉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는 어거스틴 신학으로 return을 주장했다. 오직 예수 (Solus Christus). 교회의 전통과 교권 위에 오직 예수님을 통한 구원을 강조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다. (Soli Deo Gloria)
함창석
2024-10-04 17:24
예수 당시 고대 지중해 세계와 팔레스틴 사회에서 ‘부자’는 단순히 경제적 측면에서 돈이 많다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권력을 통해서 부를 쉽게 형성하였다. 그리고 누가복음 16:19-31에서 등장하는 부자가 당시 사회에서 최고의 권력층만 사용할 수 있는 ‘자색’ 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비유는 사회-정치-문화적 관점에서 해석됨을 요청받고 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자기 탐닉에만 몰두하였고 또한 가난하고 의로운 자들을 박해한 자였다. 이런 그의 행동에 대한 보상은 사후에 음부로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악한 통치자 밑에서 고난받았던 의인인 나사로는 사후에 아브라함의 품에 간다. 악한 통치자는 사후의 세계에서도 자신의 권력을 사용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의 어떠한 요청도 허락되지 않는다. 자신의 형제들이 음부 세계에 오지 않길 바라고, 나사로를 지상으로 보내 줄 것을 열국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요청하지만, 거부당한다. 그들도 권력을 가진 오만한 자들이기에 모세와 예언자들의 가르침에 순종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도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력을 이기적인 욕망과 의인을 억압하는 데 사용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도 자색 옷을 입은 자처럼 음부에 오는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함창석
2024-10-04 17:34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막 15:17-20)
종교개혁에 대한 견해의 차이는 그것을 해석하는 역사가의 견해나 신학적 입장과 전제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을 바로 이해하려면 바른 신학적인 전제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바른 신학 운동은 신학 활동에서 인간의 이성보다는 성경의 권위를 중시하며, 성경의 영감과 무오를 믿음으로 가능하다. 이런 바른 신학은 성경의 권위를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개혁주의 신학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신학적인 전제를 강조하는 개혁주의자의 입장에서 본 종교개혁의 정의는 무엇인가?
첫째, 환원운동이다. 즉 초기교회의 가르침으로 돌아가려 했던 운동이라는 것이다. A.D 30년경부터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초기교회는 380년 테오도시우스 대제 때 기독교가 국교로 공인되어 교권의 움직임이 로마교회로 집중되어 590년 그레고리 1세가 로마교회 교황으로 취임하면서 중세교회로 전환되었다. 이후 약 1000여년 동안 로마 가톨릭교회가 지배하면서 교권의 확장에서 파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생 되어 초기교회의 가르침으로 돌아가고자 1517년 종교개혁(Reformation)이 발생했던 것이다. 이처럼 종교개혁은 중세교회를 부정하고 초기교회의 참된 모습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환원운동이었다.
둘째, 개혁의 기준은 성경이다. 종교개혁은 가톨릭교회를 지배해왔던 전통이나 교황의 결정 및 교회의 권위에 반대해서 성경과 초대 정통교부들의 가르침으로 돌아가려고 했던 운동이다. 즉 종교개혁은 오직 성경의 가르침으로 돌아가려는 운동이였다. (Returning to the Bible)
셋째, 종교개혁의 슬로건이다. 오직 성경 (Sola Scriptura).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는 대중으로부터 성경을 빼앗었으나, 종교개혁은 대중에게 성경을 돌려주었다. 루터는 1522년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하였다. 오직 믿음 (Sola Fide). 중세교회의 공덕사상에서 비롯된 면죄부 판매, 고행, 고해성사들에 반대해서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이신득의 교리를 새롭게 했다.(롬 1:17) 오직 은혜 (Sola Gratia). 자연은총과 일반은총을 강조하는 아퀴나스를 중심으로 하는 스콜라 신학을 반박하고 특별은총 즉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는 어거스틴 신학으로 return을 주장했다. 오직 예수 (Solus Christus). 교회의 전통과 교권 위에 오직 예수님을 통한 구원을 강조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다. (Soli Deo Gloria)
예수 당시 고대 지중해 세계와 팔레스틴 사회에서 ‘부자’는 단순히 경제적 측면에서 돈이 많다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권력을 통해서 부를 쉽게 형성하였다. 그리고 누가복음 16:19-31에서 등장하는 부자가 당시 사회에서 최고의 권력층만 사용할 수 있는 ‘자색’ 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비유는 사회-정치-문화적 관점에서 해석됨을 요청받고 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자기 탐닉에만 몰두하였고 또한 가난하고 의로운 자들을 박해한 자였다. 이런 그의 행동에 대한 보상은 사후에 음부로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악한 통치자 밑에서 고난받았던 의인인 나사로는 사후에 아브라함의 품에 간다. 악한 통치자는 사후의 세계에서도 자신의 권력을 사용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의 어떠한 요청도 허락되지 않는다. 자신의 형제들이 음부 세계에 오지 않길 바라고, 나사로를 지상으로 보내 줄 것을 열국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요청하지만, 거부당한다. 그들도 권력을 가진 오만한 자들이기에 모세와 예언자들의 가르침에 순종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도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력을 이기적인 욕망과 의인을 억압하는 데 사용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도 자색 옷을 입은 자처럼 음부에 오는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막 15:1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