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영혼의 때(時間)를 위하여...
작성자
오재영
작성일
2024-09-11 11:53
조회
676
나쁜 버릇 끊어 버리지 못하는 이유.
우리에게 “순종”의 저자로 기억되는 존 비비어 목사가 한 교회에 초청되어 집회를 인도했다.
집회 후 그 교회 중직자 한명이 다가와 얘기했다. 자기는 예수님을 믿고 모든 잘못된 습관을 고쳤는데 담배를 피우는 버릇 만은 고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담배를 끊기 위해서 2년을 씨름 했는데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던 차에 전도 집회가 있어 친구를 초청했다. 그런데 친구가 집회에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바로 답배를 끊었다. 중직자는 하나님께 서운했다. 자기는 담배를 끊게 해 주지 않으시면서 자기 친구는 너무 쉽게 담배를 끊게 해 주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대체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하나님께 따지듯 기도했다.
그러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고 한다. “네가 아직도 그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담배를 끊고 싶다고 말한 것은 막연한 바람이었고 속마음은 여전히 죄에 끌리고 있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청교도 설교자 토머스 브룩스는 “악한 사람들은 악한 본보기를 놀랍도록 사랑한다. 우리가 선한 본보기를 사랑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죄로 인해 완전히 망하기 전에 죄의 대가가 얼마나 큰지 생각하라. 왜 죄를 끊지 못하는지 한탄하지만 말고, 내 안에 죄에 끌리는 마음이 있는지 점검해 봐야 한다. - Q.T생명의 삶 P.81인용 -.
목사의 생명...
그리스도인들에게 생명력은 영혼을 사랑하는 ‘구령의 열정’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목사에게는 자기만의 주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주변을 보면, 이름만 목사일 뿐 이미 구령의 열정은 오래전에 식어버린 가엾은 이들이 한 둘이 아니다. 이들의 하는 행동을 보면 한마디로 교활하기가 그지없다. 교단을 대단히 염려하는 듯 하나 자신의 편협한 생각으로 기준도 모호하다. 교인이 많던 적던 목사에게 主日은 자신이 선포할 말씀으로 기대와 떨림으로 맞이하는 날이 아닌가? 이른 아침부터 남의 흠이나 교단의 얼굴인 게시판에 올리고, 지금도 여전히 하루에 한 번 이상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이게 교단을 염려하는 명분인가?
성경 말씀을 인용하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움이나, 잠언 22장 24-27,“怒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鬱憤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 그 행위를 본받아서 네 영혼을 올무에 빠칠까 두려움이니라.” 나는 사실인지 아닌지 자신은 못하나 많은 부분에 많은 이들이 연류 되었다는 사실은 안다. 함부로 “부화뇌동”한 이들은 그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성명서에 서명한 이들은 정확하게 회개가 전제 되지 않고는 그 사역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다.
지난 주간에 60여 년 전 교회학교 제자와 만났다.
지금은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는 “두레”교회 권사로 섬기며 지난 날 신문 방송의 헤드라인으로 실렸던 분쟁의 과정을 들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얼마나 알게 모르게 함부로 罪를 양산하고 있는 지를...
글을 마치며...
우리가 진정 자신의 영혼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미래 믿음의 가문을 이어갈 자신이 속한 교회와 교단을 위하여 관심을 가지고 열려하며 기도해야 한다. 그리하여 신앙을 빙자하여 함부로 교단을 능멸하는 이들의 만행을 무관심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명언이다.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급한 인간들에게 지배 당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순종”의 저자로 기억되는 존 비비어 목사가 한 교회에 초청되어 집회를 인도했다.
집회 후 그 교회 중직자 한명이 다가와 얘기했다. 자기는 예수님을 믿고 모든 잘못된 습관을 고쳤는데 담배를 피우는 버릇 만은 고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담배를 끊기 위해서 2년을 씨름 했는데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던 차에 전도 집회가 있어 친구를 초청했다. 그런데 친구가 집회에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바로 답배를 끊었다. 중직자는 하나님께 서운했다. 자기는 담배를 끊게 해 주지 않으시면서 자기 친구는 너무 쉽게 담배를 끊게 해 주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대체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하나님께 따지듯 기도했다.
그러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고 한다. “네가 아직도 그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담배를 끊고 싶다고 말한 것은 막연한 바람이었고 속마음은 여전히 죄에 끌리고 있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청교도 설교자 토머스 브룩스는 “악한 사람들은 악한 본보기를 놀랍도록 사랑한다. 우리가 선한 본보기를 사랑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죄로 인해 완전히 망하기 전에 죄의 대가가 얼마나 큰지 생각하라. 왜 죄를 끊지 못하는지 한탄하지만 말고, 내 안에 죄에 끌리는 마음이 있는지 점검해 봐야 한다. - Q.T생명의 삶 P.81인용 -.
목사의 생명...
그리스도인들에게 생명력은 영혼을 사랑하는 ‘구령의 열정’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목사에게는 자기만의 주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주변을 보면, 이름만 목사일 뿐 이미 구령의 열정은 오래전에 식어버린 가엾은 이들이 한 둘이 아니다. 이들의 하는 행동을 보면 한마디로 교활하기가 그지없다. 교단을 대단히 염려하는 듯 하나 자신의 편협한 생각으로 기준도 모호하다. 교인이 많던 적던 목사에게 主日은 자신이 선포할 말씀으로 기대와 떨림으로 맞이하는 날이 아닌가? 이른 아침부터 남의 흠이나 교단의 얼굴인 게시판에 올리고, 지금도 여전히 하루에 한 번 이상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이게 교단을 염려하는 명분인가?
성경 말씀을 인용하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움이나, 잠언 22장 24-27,“怒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鬱憤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 그 행위를 본받아서 네 영혼을 올무에 빠칠까 두려움이니라.” 나는 사실인지 아닌지 자신은 못하나 많은 부분에 많은 이들이 연류 되었다는 사실은 안다. 함부로 “부화뇌동”한 이들은 그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성명서에 서명한 이들은 정확하게 회개가 전제 되지 않고는 그 사역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다.
지난 주간에 60여 년 전 교회학교 제자와 만났다.
지금은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는 “두레”교회 권사로 섬기며 지난 날 신문 방송의 헤드라인으로 실렸던 분쟁의 과정을 들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얼마나 알게 모르게 함부로 罪를 양산하고 있는 지를...
글을 마치며...
우리가 진정 자신의 영혼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미래 믿음의 가문을 이어갈 자신이 속한 교회와 교단을 위하여 관심을 가지고 열려하며 기도해야 한다. 그리하여 신앙을 빙자하여 함부로 교단을 능멸하는 이들의 만행을 무관심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명언이다.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급한 인간들에게 지배 당하는 것이다....”
먼저 저를 향해 주시는 사랑의 조언으로 받겠습니다.
그러나 질문은 해야겠습니다.
100만 뷰를 만든 영상을 제작한 자가 교단을 능멸하는 자입니까?
100만 뷰 영상 제작의 원인을 제공한 자가 교단을 능멸하는 자입니까?
그에 대한 문제점을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교단의 방치에 대해 해결을 촉구하는 자가 교단을 능멸하는 자입니까?
해결을 촉구하는 입을 봉하려고 하는 자가 교단을 능멸하는 자입니까?
또 가만히 들추지 말고 기도나 하면서 지켜만 보고 있자고 하는 자가 교단을 능멸하는 자입니까?
논쟁을 하고 싶지 않으나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그때도 똑같은 논리로 말씀하셨지요.
그런데 그렇게 했더니 문제가 해결되었습니까?
그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가 여전히 감독 놀음하는 것이 옳습니까?
감독 후보가 그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한 내용을 게시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해 내리게 한 이가
과연 옳다고 보십니까?
왜 그분에게는 더 이상 욕심 부리지 말라고 자성하라고 단 한마디도 못하십니까?
그 분은 여전히 다른 사람들이 쳐놓은 프레임에 걸려서 억울함을 당하고 있는 분이십니까?
그렇다면
왜 그 오랜 시간동안 못풀어드렸습니까?
마냥 억울함을 당하신 희생양이라면
우리 공동체는 왜 그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못하고 방치하고 있습니까?
장광호 목사님!
三人成虎라는 말이 있습니다. 짧지 않은 세월, 아직도 목회 열정보다 온갖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이들의 사연에 목사의 職을 걸으십니까? 전목사, 나름의 사연이 있겠지요. 그러나 그에 따르는 과장된 선동과 음해로 인하여 수많은 이들이 선입견의 상처를 입었습니다. 나 또한 사역을 결단할 때 나름의 기대와 소망이 있었으나 돌아보면 남은 것은 義는 없고 罪의 무더기만 남아있습니다. 주변을 보면 우리는 깊은 생각 없이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이들이 많습니다.
전 목사? 감독 놀음을 한다구요? 하는 이들이나 그리 믿는 이들이나 모두가 가련한 이들입니다. 진정 교단을 염려한다면 우선 본인의 목장과 더불어 선교의 대상들인 제 삼자들의 선입견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어쨌든 그 집념 대단하십니다.
이현석 목사에게...
이현석 목사께서도 댓글을 달았더니 급한 일 있어 들어와 답을 하려 했는데 내렸네요?
적어도 40 여 년의 목회의 길을 걷고, 연회를 섬기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어떠한 자세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야 하느냐는 기본인데, 명색이 연회를 섬긴다는 이가 팔짱을 끼고 등장을 해? 그것을 지적하는 것이 무슨 누구와 연관되었다는 등 소설을 읊어 대더니, 본인 생각에도 지나쳤는가?
세월 붙들어 놓은 것 아니니 영혼 구원에 매진하기를. 누군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칼에 베인 상처는 시간이 가면 아물지만, 말에 베인 상처는 세월이 갈수록 깊어진다.” 가벼운 처신은 자신의 인격을 깎아 내리는 것, 인간관계는 신뢰로 쌓여가는 겁니다.
<누구와 연관되었다는 등 소설을 읊어 대더니, 본인 생각에도 지나쳤는가?>
이게 말이 되는 소리에요??
제가 삭제한 글의 요지는..
<은퇴하고, 전준○목사님 따까리 하는게 부끄럽지 않으세요?>입니다.
그럼, 왜 삭제했냐??
원로 목사님이 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삭제한 것이에요.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 하기엔, 너무 아픈 소리니까요..
쓰러지실까봐 무서워요..
원로목사님이.. 여기서, 장광호목사님과 <전준○목사님>을 주제로, 열심히 말싸움 해보세요..
PD수첩 방송 탄, 전준○목사님이 퍽도 기뻐하겠습니다..
밥 사주고, 봉투 주실 줄도 몰라요..
PS. 남들 생각에 원로목사 등 두들겨서, 게시판에 선거 관련 글 쓰다가, 꾀심쬐 걸리면.. 날러갈 수도 있을거에요.. 전목사님이 이것을 모를까요?
3명이 호랑이를 만들었다.
피해자들이 결국 가해자가 되어야 끝난다는 것이군요?
장목사님!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라 했습니다. 저에게 솔직하게 대답하라시면, 온갖 사람들 달려들어 뱀장어를 거대한 아나콘다로, 고양이를 대호(大虎)로 만들었다는 생각입니다. 고로 생각하면 모두가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로 인하여 패가망신당한이들 한둘이 아니건만, 아직도 호기심들을 유발시키시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진정으로 엎드려 보세요. 무엇이 옳은지...말씀대로 뉴-또라인지 다른 또라인지도...
오목사님!
우리 모두가 불쌍하다는 말에 동감합니다.
뱀장어를 아나콘다로,
고양이를 호랑이로
사람들이 만들었으니
결국 뱀장어와 고양이가 본 모습이라는 말이시군요.
그럼 지금 우리가 보는 진짜는 무엇입니까?
자신을 아나콘다와 호랑이로 생각하고
여전히 날뛰는 분을
우리가 보고 있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