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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을 시험하신 하나님 : 독자 이삭을 바치라니...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4-11-11 12:21
조회
825


<창세기 22:9-19>

9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10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11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13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14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15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16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내가 네게 큰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18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19이에 아브라함이 그 사환에게로 돌아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더라

1. 시작하는 말

인간을 타락하게 하고, 지옥의 멸망으로 이끌어 가는 마귀의 시험은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야고보서 1:13에는,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어떤 시험이든 간에 하지 않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쫓겨 가든 어디서 무엇을 하든 간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므로, 잘되는 것을 안 그랄 왕인 아비멜렉과 군대 장관 비골이 찾아와서 평화 조약을 맺고 떠난 후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2.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하나님과 순종한 아브라함

이 하나님의 시험은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당신이 지시하는 한 산에서 결박하여 칼로 죽인 후에 각을 뜨고 불에 태워 바치라고 하는 명령입니다. 이 명령은 그 심각성과 잔인성, 불가해성과 처절성, 부도덕성과 반 인륜성 때문에 순종하기는커녕, 납득하기조차 힘든 시험입니다.

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바치는 각종 헌금 등의 얘기만 들어도 거부 반응을 일으키고, 봉사와 섬김에 대한 얘기만 들어도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이들이 있지 않습니까? 심지어 영생의 주님이 머리이신 하나님의 교회를 떠나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에게 이삭이 어떤 아들입니까? 임신조차 불가능한 나이라서 포기 상태에 있던 아브라함 내외가 백세에 기적적으로 얻은 아들이 아닙니까? 그것도 하나님께서 특별히 약속하시고 주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아닙니까? 게다가 아브라함에게 자자손손 복을 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누릴 첫 번째인 아들이 아닙니까? 만일에 이삭을 번제로 바치면, 하나님의 그 모든 약속이 헛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치라는 말씀에 대해 자신이 오해한 것이라고 무시할 수도 있고, 잘못 받은 것이라고 묵살해 버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독자인 이삭을 아브라함이 얼마나 사랑했는지 압니까? 이삭에 대한 아브라함의 사랑에 대해서는 하나님까지도 인정하실 정도였습니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바로 이 사실, 곧 인간이 아닌 절대자요 창조조주이신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실 정도로 독자 이삭을 사랑하는 삶을 산 것입니다. 인간의 창조주요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사랑의 일환으로 자식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양육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히려 독자 사랑에 푹 빠져 사느라 하나님이 서서히 잊히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0:37에,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성육이신 주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인간 차원의 질투의 감정으로 해석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자가 아닌 것을 절대시하는 것을 금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상대적인 존재를 절대적인 존재처럼 여겨 사랑하는 것도 금하시고, 숭배하는 것도 금하십니다. 그러한 태도와 말과 행동은 지옥의 멸망을 향해 가는 우상 숭배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가장 소중히 여겨 우상시하는 것이나 사람을 요구하십니다. 소유하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인간이 깨닫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도록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유일한 절대자이신 하나님보다 우위에 두는 모든 것과 사람이나,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두는 모든 것과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지옥의 멸망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지시에 아브라함은 머리를 썩이고, 가슴이 미어지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고통 중에 뜬눈으로 밤을 새웠을 것입니다. 그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곳을 향해 순종의 길을 떠났습니다. 정말 어려운 믿음의 결단이며, 참으로 힘든 순종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시나 명령은, 옳은가 그른가 하는 인간의 판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시나 명령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할 것인가 불순종할 것인가 하는 인간의 결단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정말 어려운 결단을 하였고, 힘든 순종의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범사에 자기 위주, 자기 본위, 자기중심인 인간이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지시를 잘 순종하려면 몇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 믿음입니다. 생사화복과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영생의 주 하나님께, 목숨을 비롯한 모든 것을 전적으로 맡기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그 자신보다 더 소중한 독자 이삭의 목숨과 영원한 운명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부활하여 나타나신 주님을 만난 후의 바울 사도는, 자신의 생사를 전적으로 주님께 맡긴 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로마서 14:8에,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라는 놀라운 신앙 고백을 했습니다.

둘째, 확실한 하나님의 지시나 명령에 대해서 사람과 의논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내와 의논하지 않았고, 이삭과도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하고도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묵묵히 하나님의 명령만을 따랐습니다.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서 1:16에,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순종은커녕, 납득조차 안 되는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졌을 때, 사람과 의논하면 순종하기 어렵습니다. 유한한 인간의 지식이나 지혜나 경험 등을 얻기 위해 사람들과 의논하는 것은 바람직한 처사가 못됩니다. 똑같은 인생 문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진단이 다르고, 처방이 다르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 아닙니까? 다만 참고할 가치만 있을 뿐입니다. 그 모든 것은 구원자이시며 섭리자이신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더욱 정확하게 깨닫고 순종하기 위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인정에 끌리지 말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아버지로서의 정에 더 끌렸다면, 아브라함과 이삭의 운명이 어떻게 됐을지 모릅니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각을 떠 태워야 하는, 심장이 녹아내리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부정을 억눌렀습니다. 인정에 끌려 불순종하게 될까 염려한 아브라함은, 제 삼일에 지시받은 산이 멀리 보이자 그곳에 두 사환을 떼어놓았습니다. 그리고 번제할 나무를 독자 이삭에게 지우고, 자신은 아들을 태울 불과 각을 뜰 칼을 들고 목적지를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런데 동행하던 이삭이 뭔가 이상한 낌새를 채고는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라고 얼버무렸지만, 아브라함의 심정이 오죽했겠습니까? 아마도 이삭의 그 질문은, 그때까지의 아브라함의 모든 고통을 합친 것보다 더한 고통을 주었을 것입니다. 억장이 무너지는 고통에 통곡하며 포기할 법도 한데, 아브라함은 묵묵히 순종의 길을 갔습니다. 아브라함은 순종하되 끝까지 순종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독자 이삭의 놀라운 믿음과 아버지께 대한 절대적안 순종의 모습도 보게 됩니다. 이삭은 아버지가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자신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칼을 들어 죽이려 하는데도 조금도 거역하지 않고, 묵묵히 아버지의 처사에 순종했습니다. 부전자전이요, 그 아버지에 그 아들입니다.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독자 이삭을 잡으려는 순간에, 하나님의 사자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고 불렀고, 아브라함이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의 놀라운 말씀이 들렸습니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살펴보던 아브라함은 뒤에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 한 숫양을 가져다가, 독자 이삭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습니다. 감격에 겨운 아브라함은, 그 땅 이름을 ‘여호와께서 준비하심’이라는 뜻인 “여호와 이레”라고 했습니다.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와 이레는 숫양을 준비하신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믿음의 후손들을 위해 준비하신 것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우리의 믿음을 알아보시기 위한 것이고, 새로운 은혜와 풍성한 복과 승리를 얻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설교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신약_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7권/ 기타 다수



전체 2

  • 2024-11-12 09:29

    아멘.
    목사님께서 주안에서 영육 간에 늘 강건하시길 기도합니다. 본문에 대한 제 소견을 별도 게시물로 공유합니다.


    • 2024-11-12 19:04

      필자의 설교에 "아멘."으로 화답하시고, "목사님께서 주안에서 영육 간에 늘 강건하시길 기도합니다. 본문에 대한 제 소견을 별도 게시물로 공유합니다."라고 하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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