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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 성직(聖職)은 논공행상 전리품이 아니다.

작성자
오재영
작성일
2024-11-04 09:46
조회
892
올바른 천거

춘추 전국 시대, 진(晉)나라 황제 평공(平公)이 기황양(祁黃羊)에게 물었다. "남양현의 현령 자리가 비었소. 당신이 보기에 누가 이 자리를 맡을 만하오?" 기황양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해호(解狐)라면 잘 해낼 것입니다." 그러자 평공이 놀라 물었다. "해호라면 당신의 원수가 아니오?" 이에 기황양이 대답했다. "군주께서는 누가 적임자인가를 물으신 것이지 제 원수가 누구인가를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진의 황제 평공은 해호를 남양현의 현령(縣令)으로 삼았다. 현령이 된 해호(解狐)는 이후 백성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격려하여 폐정을 단시일에 없앴으므로 대단한 칭송을 받았다.

오래지 않아 진평공이 또 기황양 에게 물었다. "조정에 법관 자리가 비었소. 누가 적임자라고 생각하시오?" 이에 기황양이 대답했다. "기오(忌惡)라면 잘 해낼 것입니다" 그 말에 평공이 이상히 생각되어 물었다. "기오(忌惡) 는 당신의 아들이 아니오? 당신이 그를 추천하다니 두고두고 남의 이야깃거리가 될까 걱정이오." 이에 기황양이 대답했다. "군주께서는 누가 법관을 맡을 만한가를 물으신 것이지 기오가 제 아들인가를 물으신 게 아니지 않습니까?" 법관이 된 기오는 신중하게 법을 집행하여 해로움을 제거하고 이익을 주었으므로 그 또한 많은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다.

공자가 이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이 칭찬했다.
"그래 기황양이 인재를 천거할 때는 밖으로는 자기 원수도 피하지 않고 안으로는 자기 자식도 꺼리지 않았으니 진정 공평무사한 인사라 할 수 있다." - 여씨 춘추에서-

성직(聖職)은 논공행상의 전리품이 아니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이 있다. 그동안 남모르게 준비된 평판과 실력 있는 인재를 선택하여 적재적소(適材適所)에 세워 책임을 맡기면 교단에 소속된 이들과 주변에 주시하는 이들과 따르는 이들에게 신뢰와 기대감을 갖게 한다. 그러므로 인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불편 부당함과 공평 무사해야 한다. 만약 그리하지 못하고 한편에 치우치면 구성원들에게 신임을 잃어버리게 되고, 그가 아무리 거창한 비전을 제시하고 대단한 변혁을 외쳐도 자신의 편협한 안목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일 뿐, 공적(公的)으로의 의미 있는 역할을 감당하지 못함은 자명하다.

그동안 우리 교단은 교단의 지도자인 감독회장이 바뀔 때마다 가장 기본적인 상식을 벗어난 인사권(人事權)에 대하여 이러저러한 말들이 많았다. 일부의 내용은 그저 ‘카더라’ 하는 뜬소문에 불과한 것도 있으나 일부분의 내용들은 자기 성찰을 전제로 하는 구도자 집단의 책임 있는 지도자라면 필연적으로 갖추어야 할 직무(職務)에 부합하는 이를 분별할 안목(眼目)과 혜안을 염려케 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에 따른 결과로 지금까지도 교단에 피해를 주는 이들이 있지 않은가? 도대체 우리는 앞선 이들이 실패나 패가망신을 아무리 당하여도 정작 자신들은 제외함으로 전혀 교훈을 얻지 못하고 반복 적으로 교단과 본인까지 초라함으로 퇴장하는 가엾은 군상들이 아닌가? 이들이 아무리 겉을 꾸미고 미사여구(美辭麗句)로 거룩한 자리에서 교단의 발전을 위하는 개혁과 갱신을 외치는 구호 요란하여도 정작 듣고 공감할 이들에게는 결코 울림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이들의 행태를 보노라면 이들은 영적인 전투는 ‘애시당초’ 생각한 적도 없고, 한마디로 살아오는 동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한 모습이다. 과거에는 그런대로 통용 되며 덮어주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지내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그러한 두루뭉술함으로 지나는 시대가 아니다. 모든 권위주의가 이미 오래전에 허물어졌고, 발전한 매체와 SNS의 영향으로 쌓아온 연륜에 비례하여 허물어짐은 한 순간으로 변명할 틈도 없이 잊혀지고 만다. 그러므로 신앙의 기준에 맞춰 투명하지 않고는 견디기 힘든 시대이다. 더욱이 정직을 기본으로 하는 구도자 집단의 책임 있는 이라면 주변을 살피고 또 헤아림으로 일방적인 지시와 자신을 합리화하든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지도자가 아닌, 새로운 시대에 걸 맞는 지도자 상으로 감당하기 위하여 는 듣기에 더욱 힘쓰고 겸손히 다른 이들의 지혜를 구하는 “보스의 옷을 벗고 눈물로 서는” 리더의 모습이 되기에 힘써야 한다.

장정 유권해석 위원장이 행정 실장이 되었다?

이제는 너나 없이 기대를 접은 탓인가? 지난 36회 총회 감독, 감독 회장의 선거에 일부 자격이 되지 않는 이의 유권해석은 보고 듣는 이들을 놀라게 했다. 위원들은 한글도 모르는가? 또 전례(前例)에 따라 등단을 포기한 이들은 어떻게 되는가? 들리는 소문 기괴(奇怪)한 내용들 많으나 설마? 그렇게 하기 까지야, 하는 심정으로 기다려 보고자 한다. 그러나 전체를 책임져야 할 장정 유권해석 위원장의 책임은 가볍지 않다 이제 그가 감독회장과 교단의 모든 행정을 총괄하기는 부적절 하다는 생각이다. 영혼을 인도하는 성직(聖職)의 자리는 그리 만만한 자리가 아니다. 에픽테토스가 한 말을 기억하자. “자신이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배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큰 적(敵)은 알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모르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임을 깨닫는 냉철한 지혜와 겸손함이 필요하다. 이것이 오늘 소명자로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의 기준이다.

글을 마치며...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는 하인리히의 법칙, (일명 1 : 29 : 300)이라 고도 하는 교훈의 내용이다. 많은 이들을 슬프게 하고 경악케 하는 큰 사고는 어느 날 우연히 또는 어느 한 순간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전에 반드시 경미한 징조들이 쌓여 발생한다는 것을 통계적으로 입증한 내용이다. 과거에 교단을 섬기겠다 등장한 출마자 들 보다 빚진 것 없으리라는 생각으로 불필요한 공약(空約)에 매임 없이 정도(正道)로 행하면 오랫동안 모두가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해결 못했던 교단의 현안(懸案)을 해결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멀어지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다. 예고 없는 위기에 대비하는 마음에 개인이나 단체, 정부나 모두에게 예외가 있는가? 더욱이 영혼을 교도(敎導)하는 지도자에게는 누구의 지시가 아닌, 스스로가 엄위(嚴威) 앞에서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리라 는 생각이다.



전체 1

  • 2024-11-05 20:07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현직목사의 말도 듣지 않는데
    은퇴목사의 말을 들을 리 없지요

    윤석열과 집권당 국짐이 그러하듯요

    헌 가지 궁금하네요
    본부에서 성직은 뭡니까?
    감독회장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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