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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대한감리회는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나?

작성자
송충섭
작성일
2020-12-27 15:25
조회
830
사태의 발단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미국연합감리교 (UMC, 이 후 사용)의 한인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고 있던 필자는 2008년 가을 어느날 우연히 기독교대한감리회 (기감, 이후 사용)에 사상 초유의 감독회장선거 후 그 건을 고스란히 일반법정으로 끌고 간 내용을 접하였다. 그러면서 아무 말성임없이 필자의 뇌리를 스쳤던 것은 바로 “기감은 이제 감독선거나 감독회장 선거가 끝나면 바로 사회법정으로 끌고가는 악순환이 이 날 이후 계속될 것이다.”라는 불길(?)함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의 불길한 예감은 지난 12년을 지나면서 단 한차례도 틀린 적이 없이 계속되어 왔다.

2010년도 가을 시애틀의 모병원에 채플린 레지던트로 사역지를 옮긴 뒤 필자는 UMC에서 기감으로 되돌아 왔고, 그 이후 줄곧 병원에서 사역하는 기관목사로 사역을 감당하고 었다. 사역지가 병원인지라 일선 목회지에서 사역하는 여타 목회자들보다는 기감의 돌아가는 것 들에는 늘 한 두 발 어두울 수 밖에는 없었지만 그래도 세월이 흘러가면서 우리 교단을 바라보는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답답한 것들 뿐이었다.

코로나와 기감, 그리고 세계교회

2019년 초겨울부터 시작된 코로나 역병은 그 동안 우리 기감 뿐 아니라 전 세계의 기독교에 많은 질문을 던져주었다.
“예배는 교회라는 건물에 모여서만 가능한 일인가?”
“예배론에 대한 새로운 접근은 무엇인가?”
“교회란 무엇인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모이기에 힘쓰는 한국교회에 던져 주는 코로나 교훈은 무엇인가?”
“포스트 코로나에 걸맞는 기독교 선교는 어떤 것인가?”
“교회에 모여서 예배함에 소흘한 자들은 구원받을 수 있는가 없는가?”
“구원론과 기존 예배론과의 상관관계에서 바라볼 때 코로나 시대에 던져주는 기독교 구원론은 무엇인가?”

기존의 기독교 신학만으로는 코로나 시대인 지금과 포스트 코로나에 쏟아져 나올 질문들에 적절한 대답을 해줄만한 답들이 전무하다시피한 이 시점에 과연 신학자들, 나아가 일선 목회자들은 얼마나 그 해답을 던져주기 위해 금식하며 기도하고 신학에 궁구하고 있는가?
일반 기독인들은 적절한 해답을 듣지 못해 답답함을 어찌하지 못하며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는 현실임을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어찌보면 신학자들의 직무유기와 일선 목회자들의 직무유기는 오늘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나 필자가 사역하고 있는 사역지에는 오늘 이 순간에도 뭇 영혼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현재의 성도들과 잠재적인 성도들까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니 굳이 필자인 내가 답답해하고 안타까워할 일은 아니지만서도 그러나 기감 전체를 생각하고 글로벌 기독교를 생각할 때는 차마 나몰라라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 메스컴에서는 현재의 바이러스보다 전염력이 70% 정도 더 강력한 변종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지구를 강타하고 있고 필자가 살고 있는 미국 엘에이 지역에서는 이미 병상이 부족하여 밀려들어오는 환자들을 어찌해야할지 모른다는 의료대란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진행형인 기감선거소송놀음

2008년 대란 이후 지난 해 겨울까지 기감 안에서는 여전히 선거 후 소송이 진행되고 있었고 게다가 지난 해 초겨울 이후 지금껏 코로나 역병이 온 세상을 뒤덮고 기독교에서 말하는 모든 신학에 대하여 깊은 질문을 던진 것도 모자라 현실적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수의 영혼들이 기존 교회를 등지고 떠나가고 있는 마당에 기감은 여전한 소송 놀음에 젖어 있다.

사실 필자는 이 글을 몇 달 전 감독회장 선거 직전에 게시하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거의 매일 응급상황과 같은 사역지의 일들로 인해 미뤄지고 미뤄지다보니 결국 올해 역시도 소송놀음이 전개되는 상황을 맞닥뜨리고서야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생각에 글을 다듬기에 이르렀다. 기독인들로서 우리는 옳고 그름을 반드시 따지고 따져서 분변해 내고 늘 정도를 걸어감이 주님 앞에 그리고 뭇 영혼들 앞에 바람직한 자세인 것은 부인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전3:1) 라고 설파한 전도서 기자의 말씀을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든 기감 형제 자매들에게 던져주면서 모두를 깊은 상념의 자리에 초청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리하여 같이 금식하면서 그야말로 나무뿌리가 뽑힐 정도로 같이 기도하며 여기 저기에서 알게 모르게 오늘 이 순간에도 해답을 던져주지 못하는 기독교를 등지고 세상으로 향하고자 방황하고 있는 뭇 영혼들에게 이제라도 일말의 희망과 소망의 희미한 빛이라도 안겨주자는 절박함으로 나는 모든 이들에게 초청장을 날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 옛날 이스라엘은 온 나라에 역병이 돌면 그 즉시 모든 것을 접어두고 왕과 모든 백성들이 하나가 되어 베옷을 입고 그 머리에 재를 뒤집어 쓰고 회개하기에 이르러 그 역병이 물러가기만을 부르짖으며 자신들을 살피는 일에 모든 것을 집중하였었다. 1년이 다 되어가는 전세계젹 역병 앞에 종교 지도자들이라는 우리는 그 동안 무엇을 해왔던가? 이리 저리 방황하면서도 주님만을 부여잡고 나가고가 하는 뭇 영혼들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온 역병이 1년을 넘게 그것도 의학발달, 과학발달을 외쳐대며 살고 있는 우리들 현실에서, 나아가 들려오는 암울한 예견은 새해에는 더 강력한 역병이 더 괴롭힐 것이라는 이런 판국에 여전히 끊어내지 못하고 다람쥐 챗바퀴 돌듯이 계속 이어져 오는 선거 이후 소송, 그야말로 지긋지긋한 기감의 원죄가 아닐 수 없다.

지금은 무엇을 할 때인가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그것들을 다 눈 감고 묵인하자는 말이 아니다. 반드시 옳고 그름의 길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손 쳐도 지금은 그 때가 아닌 것이다. 지금은 그야말로 금식하며 기도하며 회개하고 주님이 주시는 새로운 말씀을 귀담아 듣고 그 해답들을 온 백성에게 전하여서 백성들로 하여금 주님 주시는 새소망을 부여잡고 살아가도록 설파함이 기독인 선지자들의 사명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그것을 방기하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신학자들의 직무유기요 일선 목회자들의 직무유기가 아닌가?

멀리 갈 것도 없이 이제는 지긋 지긋하다는 뭇 영혼들의 한탄은 도저히 안 들린단 말인가? 과연 일선 목회자들이 이 코로나 역병에서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고 한숨으로 밤낮을 지내는 그 영혼들을 어떤 식으로 보듬어 주고 위로해 줄 것인가? 더 이상 희망도 보이지 않고 온갖 극혐만 가져오는 사회법정으로의 소송은 역병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로서는 이젠 그만 멈추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역병이 물러가고 1년 뒤 혹은 2년 뒤 다시 끄집어 내서 주님 앞에, 그리고 뭇 영혼들 앞에 그 누가 보아도 은혜스러운 방법으로 해답을 찾으면 된다.

지금 이 순간,
여전히 소송놀음에 취해 허우적대고 싶은가? 냉정히 말하여서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사역지에는 뭇 영혼들이 밀려들어오고 있다. 굳이 내 자신은 이런 사태에 나서서 같이 금식하고 기도하며 주님의 뜻을 구해보자고 안 해도 될만한 배 부른(?) 위치에 있다. 그러나 일선목회지에서 뭇 영혼들을 섬기고 있는 수 많은 목회자들은 어떤가? 매 주일이면 알게 모르게 이 성도 저 성도가 당신의 시선에서 멀어져 가고 있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은 당신 교회의 현실인가?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영분별력이 무디어진 상태라고 이 필자는 감히 말하고 싶다.

뭇 영혼들은 12년도 더 넘게 계속되고 있는 기감의 끝모를 소송놀음에 신물이 나 있다. 그렇다면 다른 때도 아니고 이 역병의 시대에 그래도 양심 있는 선지자라면 한시적으로라도 이 사태를 멈추고 주님의 새로운 멧세지에 귀 귀울이는 모습을 보여줄 때이다. 그래야 내일 모레 떠나가겠다고 이미 마음 먹은 한 영혼이라도 더 붙잡아 두고 그들과 더불어 영원불변의 주님 주시는 구원과 사랑에 대하여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젠 이 2020년도 며칠 후면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2020년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면서 동시에 당신 곁에 머물던 그 어떤 영혼도 우리 기감에서 그 어떤 희망과 소망을 보지 못한 채 영원히 우리와 작별할 지도 모른다.

다른 때도 아니고 역병의 시대 – 더 이상 소송놀음은 주 앞에 그리고 뭇 영혼 앞에 부끄러움만을 줄 뿐이다. 아울러 그 뭇 영혼들에게 소리 없이 주님을 떠나가라고 부추기는 일만 벌일 뿐임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전체 11

  • 2020-12-27 18:26

    차라리 떠났으면 좋겠네요
    왜 붙잡으려 하나요
    감리회에만 구원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중이 절이 싫으면
    중이 나가나요 절이 나가나요
    혹 감리교회를 떠난다고 해서 구원받지 못할까봐 걱정하시는 것은 아니시죠
    소송 놀음은 놀음 좋아하는 놈들이 하는 짓이고
    잘못되었으면 소송 아니라 소송 할애비라도 모셔와서
    이 지긋지긋한 부정의 고리를 끊고 뿌리를 캐내서
    다시 살아나길 바랄 뿐입니다


  • 2020-12-27 21:29

    혹시 Claremont에서 Racism 문제로 의로운 전투를 하신 전사이신지요?


  • 2020-12-28 00:06

    부정선거를 총특재가 공의롭게 다루지 못함으로 사회 법정으로 가는건 자연스럽습니다.

    성도들이 기감을 떠나는 것이 마치 부정선거 소송 때문이라는 글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전통적 유산인 중대형감리교회의 독점 향유,
    전통적 유산인 중대형감리교회 담임목사들의 성추행,
    감독회장 부정선거 등의 추태로 인하여 성도들이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약 절반의 어려운 교회 목사님들은 역병과는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누구를 위해서 소송을 멈추라는 것입니까?
    고급도자기와 만찬과 금품을 제공하고 당선된 목사를 위해서 소송을 멈추라는 말씀입니까?
    전통적 유산인 중대형 감리교회 목사들의 독점적 향유를 위하여 멈추라는 말씀입니까?

    앞마당의 강아지가 꼬리를 흔드는 것도 적당히해야 귀엽습디다.


  • 2020-12-28 01:03

    위의 본 글에서도 이미 밝혔듯이 난 매일 매일 배가 불러 몸이 무거운지라 꼬리를 흔들 수도 없고 배가 너무 부른 탓에 흔들 필요성을 못느낌. 벽면구년이라 했거늘...

    이창희님... 그 얫날 유학생 시절 클레어몬트 신학원에서 레이시즘으로 결국 학교 직원하나 그만 두게 한 적은 있습니다. 그 당시는 유학생 초기 시절이라서 교수, 한국 유학생 등등이 나서서 내가 그러다가 추방당하니 그만 두라고 회유도 하고 겁박도 하고 했었지만 결국 총장, 학장, 인사담당 백인 세 사람과 면담하고 기나긴 투쟁 아닌 투쟁 끝에 제 주장 관철시킨 일은 있습니다.
    백인 세 냥반: We think you are so brave... 니 참 용기 좋대이
    나: Why do you think like... 와 그리 생각하노?
    그 냥반들: We all white, but you alone coming... 우린 모두 하얀둥이인데 니 혼자 오고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뉘앙스?)
    나: Aren't you humans? I've come alone because I guess you are all human... 니덜 인간 아이가? (짐승이가? 뉘앙스) 난 니들 인간 인줄 알았데이 (내 알고보니 니덜 짐승이거나 짐승만도 못한??? 뉘앙스, 그러고 나니깐 다신 쓰잘데기 읍는 야그 안하더만여 푸허허)
    그 뒤로 그들 주둥이 닫고 오직 사건이 된 문제만 이야기 나누고 그들의 요구 거절한 뒤 내 자신의 세 요구 중 하나, "그 사람 당장 짤라"라고 말함으로 협상 결렬 아닌 결렬로 인해 지난한 싸움이 시작됐고 결국 그 당사자가 사직하며 학교 상대 소송걸어 (그 녀 남편은 개종한 백인 유대인으로 변호사란 정보를 나한테 그 누구가 미리 줬음, 왜 그런 정보를 흘렸을까? 그리고 훗날 그 남편이 자기 아내 사건 맡아서 소송걸었단 이야기가 파다했지만) 챙길 돈 챙기고 그 이듬해 학기부터 내가 요구했던 세가지 조건대로 학교가 바뀌었던 사건인데... 물론 온 신학교가 한 학기 내개 시끌벅적했던 것은 사실이었습니다만서도 까마득한 그 일을 기억하시니 솔직히 전 이창희님 (아마도 목사님)께서 누구신지 잘 모르는데... 놀랍기도 합니다. 오만 회유와 겁박 그것도 유학생 초년시절 몇 몇 한인학생, 한인교수가 나서서 회유와 겁박을 했었다는 사실에 지금도 씁쓸함을 잊을 수가 없으며 난 유학생 신분이라서 일부러 한인 유학생회에 일언반구 도와달란 말을 안했음. 왜냐면 우리 다 유학생인데 공부를 빨리 마치는 게 목적인 유학생들을 아무리 옳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나의 사적인 일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기에...

    그건 그렇고 무척 반갑습니다. 누구신지 좀 알려주시면... 제 이메일 rev.dr.cssong123@outlook.com 혹은 chung-seop.song@kp.org 로 연락한 번 주시기 바랍니다. 누구신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 옛날 일을 기억하시며 무지랭이에 불과한 저를 전사로 치켜 세우시다뉘... 누가 보마 우리 짜고 치는 줄 알거쓰여. 난 치매도 아닌데 까마득한 일을 기억하시는 이창희님이 무지 궁금하당게여. 이 메일 한 번 던지소마 누구신지 아주 궁금..


    • 2020-12-28 01:11

      ㅎㅎ e-mail로 연락드릴게요. West Dom.에서.


      • 2020-12-28 01:29

        West Dom 나오는것 보니 그 당시 저와 같은 유학생? 아니면 사모님? 아이고 지송.
        그라모 지금 한국에 계신가여 아님 미쿠케 계신가여?
        당장 전화 번호 올리고 싶었었지만 공개적 장소라서 참았습니다.
        꼭 연락 한 번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무척 반갑습니다.
        나중에 언제 뵈면 술잔 아니 아니 쥬스잔 (난 "술 마시지 마세요." 라고 설교하고 싶어서 마실 줄은 알지만 일부러 술 안 마심) 기울이며 담소 나누시지요. 반갑고 또 반갑습니다. 꼭 연락 주세요. 감사합니다.


  • 2020-12-28 06:12

    배가 부른 것과 진실을 추구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배가 불러도 진실을 추구해야 인간 아님니까?

    감리교회 소송사태는 총특재(사법), 입법(입법총회), 감독회장(행정)이 독립적으로 자신의 임무에 충실할때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입니다.
    절대권럭은 절대로 부패한다는 말이 감리교회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목사들의 그칠줄모르는 탐욕이 사회양극화의 원인이라고 말하면 과장입니까?
    부귀와 명예도 부족해 성추행까지 진행되어 PD수첩에도 나왔다고 하지 안씁니까?
    나는 TV를 안본지 여러해라 시청은 못했습니다만...
    배가 불러서 성추행까지 자행한 목사를 무죄라 판결한 감리교회 재판이 사회소송으로 나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상식 아님니까?
    감독회장 선거는 그 부정함의 정도가 혀를 찰 정도 아님니까?

    부정선거가 사회 소송으로 이어지는 것은 상식적입니다.
    감리교회가 몰상식한 이단은 아니지 안씁니까?
    부정선거를 정지시키기 위한 소송 원고들을 마녀사냥하듯하는 본문의 글이 부패한 권력앞에서의 꼬리흔들가 아니라면, 상식적인 글이라 할수도 없을 것입니다.
    끝으로,
    클레어몬트 욕먹일수도 있는 언행은 두분 모두 삼가해 주세요.


    • 2020-12-28 10:37

      진지한 공간에서 사담을 나누어서 죄송합니다.
      부디 넓으신 마음으로 이해하여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 2020-12-28 15:05

      이영구님 화이팅!

      그라고
      사람을 대놓고 개취급하는 것을 꿀떡 참고 응대해줬더니...
      아직도 뭐가 뭔지 분간을 못하시는???
      그것 참... 재미난 세상이긴 허요만...


  • 2020-12-28 08:21

    송충섭목사님ᆢ

    목사님의 글이
    제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신 듯하여 감사드립니다.

    제 주변에는 쓰신 글과 같은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아주 많습니다.

    감사합니다.


    • 2020-12-28 15:16

      정용인 님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잘모르는지라...)
      말씀마따나 지금쯤이면 기감 사태 후 12년이 더 지난 시점이기에
      이젠 좀 더 냉정해져서 다른 것을 살필 때가 아닐까 싶을 법도한데...
      그나저나 제가 사는 이 LA는 벌써 지난 주말부터 의료대란이 현실로 나타나고
      아마도 제가 내일 아침 출근도장을 찍은 후에는 이런 저런 충격적인 소식들로 가득하리라 여겨집니다.
      생사의 기로, 즉 인간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절박함 앞에 과연 무엇이 중요할까요?
      부디 정용인님 같은 분들이 하나 둘 더 많아져서 누가 뭐라하든 이 전세계적 대혼란의 시대에
      미래를 희망적으로 이끄시는 분들로 자리매김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런 떄일수록 정신 바짝차리고 선도자되시는 분들이 조금 더 희생하시는 자세로 나가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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