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牧會란 성도에게 피(血)를 먹이는 겁니다.(긴 글 입니다)

작성자
오재영
작성일
2020-07-23 20:41
조회
891
보리스, 니콜라예비치 코른펠드(Boris Nicholayevich Kornfeld)

스탈린의 공포정치 시대, 악명 높은 구, 소련의 정치범수용소, 그 속에서 고통 속에 죽어간 수백만의 사람들, 그들 대부분 그들과 관계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기억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참혹함 속에서도 극소수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보리스 니콜라예비치,코른펠드(Boris Nicholayevich Kornfeld)다.

그는 내과 의사였다. 기록에 의하면 아마도 그의 선조들은 합리적인 철학을 수용했고 자연과학지식을 배웠으며 예술을 애호하는 ‘하스칼라’, 이른바 ‘계몽된 유대인’ 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언어, 의상, 사회적 관습 등에서 가능한 한 러시아인 이웃들과 똑같이 되려고 노력했다. 왜냐하면 혁명이후 소련에서 의사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짜르 시대의 왕정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가문에게는 절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의 부모는 공산혁명에 큰 기대를 건 사회주의자였을 것이다. 제정시대의 악랄한 반유대주의가 근 200여 년 동안이나 그들의 삶을 거의 견디기 힘들게 만들었고, 반면에 사회주의는 과거의‘기독교국’ 러시아보다 훨씬 나은 삶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보리스라는 이름과 니콜라예비치라는 성이 그들도 선대 때에 이미 러시아식 성과 이름을 취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 유대인들이 레닌의 공산혁명을 지지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제정시대의 악랄한 반 ‘기독교국’ 러시아는 유대인을 대량 살육해 왔다. 차라리 무신론적인 러시아가 그들을 구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코른펠드 역시 부모들의 입장을 따라 공산주의를 역사의 필연적인 진로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 당시 정치범들이란 공산주의에 반대하거나 짜르 시대로의 복귀를 원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런 사람들은 곧바로 총살이었다. 정치범들은 혁명 신봉자들이었지만, 단지 스탈린의 영도력에 전적으로 충성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코른펠드가 구체적으로 무슨 죄를 지었는지는 모르나 그것이 정치적 죄목이라는 사실은 안다. 어쨌든 코른펠드는 에키바스투츠에 있는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그가 수용소에 있던 몇 년이 그가 공산주의를 치료할 수 있는 훌륭한 치료기간이었다. 무자비한 야만성, 인명의 소모, 사소한 죄목들은 코른펠드 같은 사람들로 하여금 공산주의 체제에 의심을 품게 만들었다. 지난날 그들을 바쁘게 하고 사상적으로 고착되게 하던 모든 과거의 관계들에서 벗어나, 철조망 뒤의 수감자들에게 생각할 시간이 생겼다. 그 결과 이 소련 의사는 자신이 갖고 있던 모든 사회주의적 이상들을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이 의사는 그의 조상들이 경악할 만한 일을 했다. 그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다. 전 세계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진정한 메시아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겠지만, 이 러시아계 유대인이 그렇게 되기는 더욱 쉽지 않았다. 근 200년 동안 러시아의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로부터 가장 지독한 증오를 받아 왔다.

시련 중에 예비하신 소중한 사람들...

스탈린은 그의 정부에 조금의 의심이나 이견도 용납 않는, 절대적인 충성을 요구했다. 그러나 유대인이나 그리스도인이나 자신들의 궁극적인 충성은 하나님 한분뿐이었다. 자연히 두 부류의 사람들은 신앙 때문에 박해를 받게 되었고 종종 같은 수용소에서 함께 지냈다. 이러한 와중에서 코른펠드는 어느 신실한 그리스도인을 만나게 된다. 그는 훌륭한 교육을 받은 상냥한 동료수감자였는데,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을 성취하러 오신 유대인 메시아에 대해 늘 이야기했다. 이 그리스도인-그의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다-은 예수님이 주로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유대인들에게 처음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러한 사실은 선택된 민족으로서의 유대인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을 의미하며, 성경이 새로운 평화의 왕국이 올 것을 약속하고 있다고 설명을 했다.

이 사람은 종종 큰 소리로 주기도문을 외웠는데, 그 단순한 기도문에서 그는 묘한 진리의 울림을 들었다. 그가 변하게 된 과정은 정말 놀라웠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는 것, 즉 자기 민족을 늘 박해해 왔던 그리스도인의 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가족과 선조들을 모두 배반하는 일처럼 보였다. 그는 동족유대인들이 죄 없이 고통을 겪은 것을 알고 있었다. 코자크의 통치시대에도, 짜르의 통치시대에도, 유대인들은 죄 없이 당했다! 이제는 코른펠드 자신도 스탈린에게 반역했다는 혐의에 대해 무죄하면서도 그는 부당하게 투옥된 것이다. 그러나 코른펠드는 그 그리스도인 수감자가 해 준 이야기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수용소에서 이 의사에게 풍족한 것은 단 한 가지, 時間이었다.

예기치 않게 그는 유대인과 예수님 사이에 존재하는 뚜렷한 유사성을 깨닫게 되었다. 동시에 지나온 수천 년에 걸친 박해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유대인들을 멸절시키려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들 탄압자보다 더 큰 힘이 존재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예수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인간의 형태로 오셨다고 하는 것은 언제나 세상의 교만하고 권세 있는 자들에게는 예수님이 하나의 표적(sign)으로 그들 자신의 한계성과 죄악성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죽여야만 했다. 마치 권력을 쥔 자들이 자신들의 전능함에 대한 착각을 유지시키기 위해 유대인들을 죽였듯이, 따라서 혁명으로 이룩된 새로운 세계의 새로운 신적 존재로서 스탈린은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이 둘 모두가 자신의 불경스런 권력욕을 고발하는 산 증인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코른펠드는 수용소에서야 비로소 그러한 진리를 깨닫기 시작을 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의 내면에서는 더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가 비록 신분은 수감자였으나 다른 죄수들과 비교하면 훨씬 나은 조건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다른 수감자들이 소모용인데 비해 의사들은 벽지에 고립되어 있는 수용소에서는 귀한 존재였다. 간수나 수감자나 모두 의사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수용소 관리들은 가능한 한 의사를 잃지 않으려고 했다. 한편으로 어떤 간수도 의사를 괴롭히다가 오히려 그의 손에 목숨을 잃게 되고 싶어 하지를 않았다.

이처럼 기독교의 가르침에 대한 코른펠드의 저항은 그가 평소 아주 혐오하던 한 간수를 수술(手術)하는 과정에서 허물어졌다. 그 간수는 칼에 찔려 동맥이 끊긴 상태였다. 끊어진 혈관을 봉합하면서 코른펠드는 수술 직후에 꿰맨 곳이 바로 다시 터지게끔 특정한 방법으로 혈관을 봉합할 생각을 했다. 그러면 간수는 금세 죽게 될 것이고, 누구도 이 사실을 알지 못할 것이었다. 이 특이한 복수 과정을 상상하며 그는 그 간수와 같은 부류의 인간들을 향한 자신의 증오심이 불타오름을 느꼈다. 그동안 그는 자신을 괴롭히는 압제자들을 얼마나 경멸했던가! 그는 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들을 모두 학살할 참이었다. 생각이 그쯤에 이르렀을 때, 코른펠드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증오와 폭력성에 놀라 전율을 했다.

그는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도 지금, 그러한 증오심의 희생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선조들의 증오심은 지금 자신 속에 그칠 줄 모르는 또 다른 증오심을 부화시키고 있었다. 이 얼마나 무서운 악순환인가! 그는 자신이 경멸해 마지않던 바로 그 사악함에 사로잡혀 있었고, 이처럼 잔인한 증오심의 포로가 된 영혼을 가진 자신이 그 어떤 자유를 알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모두를 전 세계의 감옥으로 만들 것이다. 코른펠드는 간수의 동맥을 제대로 봉합하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동료 수감자에게서 들어왔던 말들을 반복하고 있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유대인으로서는 어색한 말이었으나 그는 그렇게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자신의 마음속의 악의실체를 본 그로서는 그것을 다스리고, 정결케 하기위하여 그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로도 그는 수용소 의사로서 몹시 고되고 희망 없는 작업을 할 때마다 그를 만나 그가 가르쳐주었던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반복했다. 정치범수용소에는 중노동으로 항상 환자가 많았다. 수용소자체가 환자를 죽이기 위해 고안된 시설물이었으므로 아무런 희망도 없었다. 그는 질병과 추위, 과한 노역, 구타, 영양실조 등 각 수감자들에게 밀려드는 죽음의 물결에 무기력하게 대항할 때마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드렸다.

수용소 의료의사들은 수감자들 중에서 수용소 당국의 계획에 따르지 않거나 혹은 이 수용소 구역에서 쫓아내고 싶은 자들을 좁고, 어둡고, 추운 고문실인 독 감방들로 이루어진 처벌 동으로 보내기 위한 진단서에 서명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 서명이란 해당 죄수가 그러한 징벌을 견뎌 낼 수 있을 만큼 튼튼하고 건강함을 증명하는 것이었으나 이것은 물론 위증이었다. 독 감방에 갇힌 수감자 중 살아남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다른 모든 의사들처럼 코른펠드 역시 지금까지는 자신 몫의 진단서에 서명을 해 왔다. 자신이 거부한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수용소 당국도 의사의 서명 따위가 꼭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 외에도 자신들의 처벌을 ‘합법화’시킬 수 있는 많은 다른 방안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아무리 의사가 귀하다 해도 당국에 협조적이지 않은 의사들은 그리 오래갈 수 없었다.

그러나 코른펠드는 자신이 罪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시작한 이후 수감자의 처벌을 합법화시키는 일을 멈추었다. 진단서에 서명하는 것을 거부한 것이다. 지금까지 그는 그러한 서류 수백 장에 서명을 해 왔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가 없었다. 그의 내면에서 일어난 변화가 그런 일을 계속할 수 없도록 막았던 것이다. 이러한 반항은 아주 위험천만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코른펠드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가 어느 날, ‘당번’ 한명을 고발한 것이다. 당번은 수용소 당국에 협조적인 수감자 가운데서 차출되었다. 그들은 사형당하는 것보다 조금 나은, 이 수용소 당국에 협조한 대가로 이 직책을 받았다. 수용소에서 이들은 요리사, 제빵사, 사무원, 병원 보조원등으로 일했다. 수감자들은 이들을 간수들보다 더 미워했다. 당번들은 ‘배신자들’이었고, 결코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다른 수감자들의 음식을 훔쳤고, 누구든지 그것을 보고하거나 따지려 드는 사람이 있으면 손쉽게 제거해 버리곤 했다. 반면 간수들은 당번의 이러한 권력남용을 눈감아 주었다. 그 때문에 수용소에서는 매일같이 사람이 죽어 나갔다. 당국은 수용소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이런 배반적인 인물들을 필요로 했다. 어느 날 수용소를 돌던 코른펠드는 펠라그라를 앓고 있는 환자를 만나게 되었다. 수용소 내에서 이 병은 아주 흔한 질병이었다. 영양실조가 원인이었지만, 악화되면 음식물을 전혀 소화시킬 수 없게 된다. 환자는 말 그대로 굶어죽게 되는 것이다. 그 환자의 몸은 이병의 끔찍함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얼굴은 검어지고 한쪽 볼은 깊게 멍이 들어 있었다. 두 손의 살가죽이 벗겨져 있었고, 계속되는 출혈을 막기 위해서는 붕대를 감아야만 했다. 코른펠드는 설사를 멈추게 하려고 환자에게 분유와 맛 좋은 흰 빵과 청어 구이를 주었고, 혈액 속에 영양 주사를 놓았다. 하지만 그 남자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다. 이름을 묻자 그는 자기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코른펠드가 그 환자 곁을 떠난 직후였다. 그는 우연히 펠라그라 환자용 흰 빵을 훔쳐 먹고 있는 한 당번과 마주쳤다. 그는 입안에 빵을 잔뜩 문 채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코른펠드는 환자용 급식이 도난당하고 있다는 것과 그것이 환자들이 회복 못하는 이유 중 하나라는 것을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죽어가는 그 환자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는 더 이상 어깨만 움찔하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물론 환자들의 죽음을 단순히 환자용 빵을 도난당한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었다. 환자들이 회복되지 못하는 이유는 수없이 많았다. 병원은 배설물의 악취로 가득했고, 의료시설과 의약품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는 너무나 원시적인 환경에서 수술해야만 했고, 그래서 종종 수술은 좀 더 자비로운 사랑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상황 속에서, 특히 그 대가로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 무엇인지를 뻔히 알고 있으면서 원칙을 강조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멍청한 짓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이제 자신이 믿고 있는 것에 순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삶에 일어난 변화는 그를 다시 한 번 유별나게 만들었다. 그가 당번의 비리에 대해 수용소장에게 보고서를 냈을 때, 수용소장은 그 고발을 퍽 흥미로워했다. 최근 수용소 안에서 연이은 살인사건이 발생했는데, 그 피살자들은 모두 ‘고발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시점에서 누군가에 대해 고발한다는 것은 위험스럽고 어리석은 짓이었다. 수용소장은 코른펠드의 고발을 접수하고는 묘한 쾌감을 느끼면서 해당 당번을 사흘간 처벌 동으로 보내도록 조치했다. 수용소장으로서는 코른펠드가 죄수 처벌용 진단서에 서명해 주지 않는 것이 항상 골칫거리였는데 이번 사건이 이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의사는 자신의 무덤을 판 것이다. 그는 특별히 용감한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이 고발한 그 당번이 처벌 동에서 풀려나는 즉시,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울 것을 알고 있었다. 수용소에서 뽑은 당번들에 의해 통제되는 막사에서 잠을 잔다는 것 자체가 확실한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병원에 머물면서 짬이 날 때 적당한 곳에서 틈틈이 잤다. 그는 어느 순간이 그의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세계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불안 속에 지내는 그에게 엄청난 자유가 찾아왔다. 죽음의 가능성을 받아들이자 삶에 대해 자유로워 졌다. 그는 더 이상 수감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서류나 진단서에 서명을 하지 않았다.

영혼을 살리는 사람들...

그는 더 이상 수용소 내에서 일어나는 가혹행위나 불법을 외면하가나 방조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말했고,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얼마 안가서 그는 자신의 영혼에서 분노와 증오, 폭력성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동시에 이 참담한 러시아에서 이러한 자유 함을 알고 누리며 사는 사람이 자기 말고 또 누가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든 어느 흐린 날 오후, 그는 대장암 수술을 마친 환자 한명을 검진하고 있었다. 멜론처럼 생긴 머리와 고통스러운 어린아이 같은 표정을 한 이 청년은 바라보는 코른펠드의 영혼을 흔들었다. 청년의 눈은 슬픔과 의심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이미 수용소에서 보낸 오랜 세월이 깊게 새겨져 있는 그의 얼굴은 그가 이전에 보지 못한 깊은 영적 곤고함과 공허감을 보여주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 환자에게 그동안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말해주기 시작했다. 일단 이야기를 시작하자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 환자는 마취약 기운 때문에 잠이 들었다 깼다, 반복했으므로 그가 말하는 이야기의 첫 부분은 제대로 듣지를 못했다.

그러나 의사 코른펠드의 그 열정이 환자의 정신을 집중시켰고,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그는 그 의사의 이야기를 다 들을 수가 있었다. 의사는 그날 오후 내내, 그리고 밤늦게까지 자기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과 자신이 새로이 발견한 자유 함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수용소의 탐조등이 유리창에 희미하게 비쳐 오는 밤늦은 시각이 되자 코른펠드는 드디어 환자에게 이렇게 고백했다. “이보게, 그래서 나는 인생에서 우리에게 부당하게 주어지는 형벌은 없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네, 겉으로 보기에는 그 형벌이 우리가 실제로 罪의식을 느끼는 것과는 동떨어진 것일지 모르지만, 만일 자신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깊이 숙고해보면 지금 받는 형벌(刑罰)의 원인이 되는 자신의 죄를 언제나 찾아낼 수 있게 된다네...”

얼마나 놀라운 변화인가? 자기 자신은 아무런 죄가 없다고 믿었던 박해받는 유대인이, 이제는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고통을 받을 이유가 다른 그 누구 때문이 아닌, 자신에게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 환자는 지금 형언할 수 없는 육체의 고통 속에서 그토록 믿을 수 없이 놀라운 고백을 자신이 듣고 있음을 깨달았다. 수술 후의 통증이 몹시 심했고 뱃속은 녹은 납덩이가 누르듯 무겁고 아팠지만, 그는 잠이 들 때까지 의사의 이야기를 듣고 또 들었다. 이튿날 이른 아침, 젊은 환자는 수술실의 술렁거림과 다급한 발자국 소리에 잠이 깼다. 그는 가장먼저 어젯밤의 그 의사를 떠올렸지만, 그 의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후 한 동료 환자가 그 의사의 운명을 그에게 귓속말로 전해주었다.

전날 밤, 새벽이 밝아올 무렵, 코른펠드가 잠든 때, 누군가 그에게 몰래 다가가 미장공의 망치로 그의 머리를 여덟 번이나 내리쳤다는 것이다. 동료 의사들이 그를 구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지만, 아침이 되자 머리가 깨진 코른펠드의 시신을 당번들이 싣고 나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사 코른펠드의 피(血)의고백은 죽지 않았다. 젊은 환자는 그 의사의 열정적인 그 마지막 말들을 생각했다. 그 결과 그 역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는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자신이 그곳에서 깨달은 것을 전 세계에 말하게 되었다. 그 젊은 환자의 이름이 “알렉산더 솔제니친”이다. (찰스콜슨, 러빙갓.P41-53.인용),

오늘도 변화 많은 시대, 모두가 선호하는 쉬운 길 거절하고 현혹됨 없이 오직 十字架지고 주님 가신 길 따르는 분들에게 허락된 본인 외에는 알 수없는 주님의 평강을 기도드립니다. - 샬 롬 -



전체 4

  • 2020-07-23 20:55

    에이쿠~ 어렵게 읽엇다.


  • 2020-07-24 08:52

    올리신 표제와 관련이 있고 내용과는 별 관련이 없는 제 의견입니다.

    1. 로마 카톨릭 신도이고 교황 추종자인 히틀러와 일당은 유대인을 말살해 기독교의 주류를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에서 로마로 옮기려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에 기록된 선지자들의 예언을 바꾸려한 짝퉁에 의한 진짜를 없애는 시도 입니다. 앞으로 교회사와 세계사의 오류를 고쳐야 합니다.

    2. 피를 먹는 의식을 로마 카톨릭은 '미사'라고 합니다. 이에는 뭔가? 오류가 있습니다. 피를 마시는 것은, 레위기에서 피는 생명으로 이를 먹는 것을 금하고 있기에,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는 것은 맞으나, 이 빵과 포도주를 먹는 의식이 성체를 두고 식인과 흡혈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고 보며, 저보다 더 신학적이고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분이 연구해 주시길....


  • 2020-07-25 09:51

    민목사께는 긴글 끝까지 읽어주었을 것으로 믿고 감사를 드리며,
    엄장로님께서는 연세와 함께 남다른 기본 지식도 갖추신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다만, 목회자들의 사역의 근본에 대한 깊은 靈性에 관하여는 많은고민을 하셔야할 것 같습니다.

    이땅의 삶 영원에 비하면 순간인데, 될수록 이땅에 있는 동안 우리 주위에 더 많은 형제
    자매들의 관계를 넓혀야하지 않겠습니까? 각자 받은 은사들 다양하니...
    주안에 평강을 기도드립니다.


    • 2020-07-25 17:49

      오 목사님, 그간 게시하신 글에서 목회자의 깊은 고민과 후학들에게 주시는 충언에 감흥을 받고, 그간 굳이 비평을 감수하면서도 개입해 하기 힘든 말씀들을 하신 걸로 압니다.

      제가 요즘 글을 올리는 이유는 몇 가지 배경이 있는데 (어쩌면 이도 한시적이겠으나) 이 땅에 헌신적이고 영성이 깊은 여러 목회자들의 수고를 생각하면 평신도인 제가 함부로 글을 올리기도 미안합니다. 다수자들의 침묵의 배경으로 보이며,

      하지만, 교회 안에서 '짜가'들이 영적 주머니를 독점한 것처럼 행세하고, 특히 하나님의 말씀에 반하는 전통에만 의존한 교리/성사/칙령/주장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졌을 때 이를 그냥 지나치는 것은 비겁함 혹은 무관심이며, 제 경우 고쳐야 할 우리의 허상과 우상들을 말하는 것은 어떤 용기라기보다는 갑갑함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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