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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예수를 존귀케 하자 cf. 예수를 동성애자라고 하는 그리스도인(?)들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1-05-22 20:53
조회
315
(설교 동영상 : 유튜브)

<사도행전 20:17-27>

17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18오매 저희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 바니 19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20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21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22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25보라 내가 너희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지금은 너희가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26그러므로 오늘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27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

1. 시작하는 말

사람들은 해가 바뀔 때마다 보다 나은 목표를 세우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을 세웁니다. 그들 모두가 후회 없이 한 해를 보내고, 또한 남은 평생을 후회 없이 보내기 위해 유념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야고보서 4:15을 보면,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분야에 종사하든 간에 모든 사람의 목표와 계획은 생사화복과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주님의 뜻에 맞지 않으면 안 됩니다. 특히, 우리 믿는 사람들은 주님을 존귀케 하기 위한 목적으로, 모든 목표와 계획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밀레도에 간 바울 사도는,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도착하기 위해 에베소를 들르지 않고 급히 갈 계획을 세웠습니다.

2. 주님을 존귀케 한 바울의 생활과 각오

바울 사도는 밀레도에서 사람을 45㎞쯤 떨어진 에베소로 보내어, 장로들을 초청해서 이별 인사를 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로마의 행정 구역인 소아시아에 속한 아시아의 수도인 에베소에 들어온 첫 날부터 그때까지, 항상 에베소 교인들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그들도 안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언제나 한결같은 자신의 복음 전파와 복음에 합당한 생활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을 상기시켰습니다. 벵겔(J. A. Bengel)은 “자신의 생활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와 같이 말을 시작할 수 있는 바울은 행복한 것이다.”라고 주석했습니다.
바울 사도처럼 값지고 보람되고 행복한 생활을 하려면, 바울 사도의 고백인 빌립보서 1:20을 명심해야 합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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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리스도 예수를 존귀히 되게 하기는커녕, 동성애자라고 주장하거나, 동성애자인 것처럼 교묘한 속임수를 쓰거나, 동조하는신학자와 교역자와 일반 교인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무엇입니까? 우리 모두 살든지 죽든지 우리의 인격과 우리의 일과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는 무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역시 바울 사도처럼, 우리 자신의 신앙 인격과 직무 수행과 실생활에 의거해서 호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설교자의 신앙 인격과 신앙생활은 무언의 설교가 되어야 하고, 교인들의 신앙 인격과 신앙생활은 무언의 전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고린도전서 11:1의 바울 사도의 권면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미국의 어느 대통령이 바람피운 것이 들통나서 곤욕을 치를 때, 워싱턴 타임스지에 재미있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켄터키 주에서 7년을 복역한 윌리엄 아서 버체트라는 은행 강도가, 대통령에게 감형 탄원서를 냈습니다. 그 내용은 대통령이나 그나 통제할 수 없는 성적인 욕망으로 죄를 지어 몰락하게 됐다는 점에서 한 배에 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은행을 턴 것은 바람피운 것 때문에 이혼한 아내가, 돈이 있는 줄 알면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더 가관인 것은 “성경은 ‘우리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가르치고 있다.”라고 하며 거듭 사면을 촉구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복음의 일꾼으로서의 자신의 생활을 네 가지로 되새겨 주었습니다.
첫째, 겸손입니다. 렌스키(R. C. H. Lenski)는 “모든 겸손이란 참된 주의 종인 사람의 참된 내적 지각이다. 겸손은 언제나 바울의 성격의 특징이었고, 사람들에게 매우 다양한 면에서 드러났다.”라고 주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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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성교회를 개척하기 전에, 갈라져 나온 교인들이 개척한 교회들에서 목회하면서 강단을 빼앗기는 등의 상상을 초월하는 환난과 고통을 겪었고, 또 다른 교회에서 어려움을 겪는 다른 교역자들의 얘기를 들은 제가 얻은 결론은, 교회에 하나님 아닌 하나님들이 있다는 겁니다. 주님 안에서 성령을 좇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일해야 하는 교역자들에게,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는 교인들과 교역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그들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해서는, 남들이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면 심히 언짢아하는 것입니다.
둘째, 눈물입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겪은 박해와 핍박, 그리고 안타까움과 괴로움과 슬픔 등이 바울 사도의 복음 선교의 삶의 특징이었습니다. 물론, 사사롭고 사치스러운 감정의 눈물이 아닙니다. 지옥 불못을 향한 삶을 살면서도 알지 못하고, 영생의 주 예수님을 배척하며, 전도자들을 핍박하는 자들에 대한 안타까운 눈물입니다. 때로는 외롭고 힘들어서, 때로는 죽을 정도로 돌팔매질과 채찍질을 당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바울 사도의 눈물 중 눈물은 구원받은 후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교인들 때문에 흘리는 눈물일 것입니다. 빌립보서 3:18에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가족이나 친척, 친구나 이웃을 영생의 주께로 인도하기 위해서 얼마나 눈물을 흘려 보셨습니까?
셋째, 섬김입니다. 바울 사도는 주님을 전파하는 것을 반대하며 핍박하는 유대인들의 간계로 인해 당한 시험을 참고, 주님을 섬기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사람들, 특히 유대인들의 간사한 꾀와 박해를 무릅쓰고 주님을 섬겼습니다. 또, 그 동족 유대인들에게 사사로운 원한을 품기는커녕,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게 하려고 끈질기게 복음의 섬김을 하는 전도를 했습니다. 그런 바울 사도의 동족애가 로마서 9:3에 여실히 나타나 있습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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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울 사도는 주님을 섬겼고, 주님 섬김의 일환으로 사람들에게 그 영생의 주님을 전파하는 복음의 섬김을 했습니다.
넷째, 복음의 가르침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한결같은 선교 활동에 대해서,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라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떠난 세상적으로 유익한 것이 아니라, 구원받는 데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두란노 서원이나 개인의 집을 찾아다니면서 거리낌 없이 전파하며 가르쳤습니다. 그는 유대인들과 헬라인들로 대표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증거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지옥으로 끄는 죄의 사함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성결한 삶과 영생 구원의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전파했습니다.
우리 모두 주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겸손과 눈물, 섬김과 복음적 교훈의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복음에 합당하게 행하는 복음 선교의 삶으로 주 예수님을 존귀케 해야 합니다.
그 동안의 복음 선교의 삶에 대해 설명한 바울 사도는, 이어서 현재의 자기 상황에 대해서도 설명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시자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 붙잡혀서 박해의 중심인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를 핍박하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난 이후에는, 사도가 되어 자기 자신이 아니라 성령께 붙잡혀 살았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주님 안에서 성령께 붙잡혀 행동할 때가 많습니까, 세상 안에서 내 감정이나 원한이나 욕심이나 죄에 붙잡혀 행동할 때가 많습니까?
바울 사도가 예루살렘에 가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한다고 한 것은 괜한 고민이나 자기 과시가 아니라, 성령께서 알려 주신 것입니다. 말하자면,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성령 충만한 교인들을 통해서 바울 사도가 예루살렘에서 불행을 당할 것이라고 계시하신 것입니다. 물론, 바울 자신도 같은 계시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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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놀라운 것은 복음 선교를 위한 바울 사도의 각오입니다. 바울 사도는 복음 전파를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0:23 이하를 보면,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라고 했습니다. 천하를 준다고 해도 바꾸지 않을 존귀한 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않을 정도로,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 완수를 위해 매진하는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그들과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을 말하면서, 그 동안 거리낌 없이 하나님의 뜻을 다 전했기 때문에, 들은 모든 사람이 멸망의 심판을 받는다고 해도 자신은 깨끗하다고 했습니다.

3. 맺음말

여러분! 우리는 주님을 위해서는 어떤 목표와 계획이 있습니까? 바울은 여러 계획과 목표 달성을 거치면서 히브리 사상과 헬라 사상에 정통해진 상태에서 주님의 교회를 핍박하다가 부활의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사도가 되어 복음 선교의 삶을 살았습니다. 주님 안에서 생사를 초월한 복음의 투사가 된 바울 사도는 죄악의 확신을 막고, 정신문화의 발전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성결한 삶의 확산과 영생 구원이라는 점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 비결은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하는 것을, 자기 생명보다 더 귀히 여긴 것입니다.
우리 모두 복음 선교를 위해서 겸손과 눈물, 섬김과 복음적 교훈의 생활을 하여 주 예수님을 존귀케 해야 합니다.

설교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다수의 논문들/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설교집 28권/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전체 4

  • 2021-05-25 09:22

    동성애가 가문의 영광이면 대낮에 거리에서 대 놓고 하고, 부끄러우면 밤에 숨어서 해야 합니다. 동성애자들의 목표는 ❶ 음란과 타락을 기독교의 교리로 용납 받고 ❷ 추악을 사회 운동으로 위장하고 퀴오축제처럼 죄를 선동하고 ❸ 공법으로 무흠하다고 인정받는 것으로 보입니다.

    동성애자들의 사회 운동의 구호에서, 인간이 선과 악, 죄와 선을 차별하면 안 됩니까? 기본적인 인간의 도덕성, 사회의 윤리관까지 붕괴시키면서 항문음란범죄를 즐겨야 합니까? 인간이 살인, 음란, 마약을 혐오하고 이를 회피하고 외면하면 안 됩니까?

    이를 공법으로 인정받으려는 것과 관련하여, 차별, 혐오 같은 머릿속의 생각, 사상, 철학을 처벌하려는 사악한 짓입니다.

    이를 성경과 교리를 바꾸어 인정받으려고 하는데,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맘대로 해석하는 게 인간의 교만이고 배교이고, 반란입니다. 하나님께서 3500년 전에 모세를 통해 성문법으로 죄를 규정하신 이유는 바로 인간들의 말장난을 대비하신 게 분명합니다. 이들은 벨리알의 자식이기에 교회를 무너뜨리는 일에 앞장서서 건전한 교리를 왜곡하고, 하나님의 말씀들에 배교하고, 도전하고, 나아가 죄를 죄가 아니라고 거짓말을 하고, 건전한 교리를 왜곡하고 거짓을 교리라고 비틀어 강요하고 있습니다.

    살인자가 형기를 마치고 출옥을 했다고 할 때, 이를 불쌍히 여기고 가엽게 여기고 그에게 기회를 주는 사랑과, 대신에 살인을 미화하는 사회운동, 기독교 교리로 무죄라 하고, 법으로 미화하고 장려하는 건 전혀 다른 영역의 도전입니다. ‘혐오와 차별’은 개인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의 영역이지, 법으로 인간의 모든 일상과 머릿속까지 통제하려는 건 악마적입니다. 자녀를 사랑하고, 인간이 어려움에 처할 때 돌보는 측은지심은 법이 없어도, 교리가 정하지 않아도 할 수 있습니다.

    만일 누가 동성애가 죄가 아니라고 가르친다면, 이는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에 반란하고 배교이기에 이렇게 가르치는 교회와 목회자는 버려야 합니다. 이는 인류의 죄로 인한 타락하고, 하나님의 심판, 그리고 예수께서 대속재물로 구속의 구세구로 오신 사역을 거부하는 기독교 교리의 뼈대를 흔드는 도전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성경과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 2021-05-25 10:54

      필자의 설교에 공감하시고, 관련하여 의견을 피력하셔서 감사합니다.


  • 2021-05-25 11:21

    창조주요 섭리자요 구원자요 심판자이신 하나님의 성육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좇아 믿음으로 말미암아 지옥으로 끄는 죄의 사함과 중생과 평화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성결한 삶과 영원한 생명의 구원을 얻은 사람을 그리스도인(교역자, 신학자, 평신도)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한 것을 신학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동성애자라고 하는 이들은.......


    • 2021-05-25 22:54

      동성애자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제5복음서인 '내가복음'을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들에 따라서 죄인 동성애를 죄가 아니라고 새로 단정하고, 예수님을 동성애자라고 하면서 죄의 아들로 만들어 아예 구세주가 되지 못하는 신분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만일 이런 자들이 강단에 서면 강단은 오염되게 되고, 그들이 선 땅은 저주 받을게 분명합니다. 이들의 가르침을 받는 성도들이 염려되기에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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