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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39회 b. 구원받은 자들의 찬양ⓐ(7:9-12)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1-01-06 11:39
조회
186
구원받은 자들이 재앙을 당하지 않도록 배려하시는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마에 인 맞은 환상을 기록해 온 요한은, 이제 그 구원받은 자들이 찬양하는 환상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 부분은 【9】[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로 시작된다.
[이 일 후에]는 4:1의 주석을 보라.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는 5:9의 주석을 보라.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7:4의 144,000이라는 수로 상징된(7:4의 주석을 보라.) 동일한 사람들이다. 이와 같이 요한이 중복해서 표현한 것은 144,000이라는 숫자가 영적인 의미의 수임을 암시하는 동시에 구원의 문이 차별 없이 세계 만민에게 열려져 있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박윤선 님은 “구원받은 자들의 수는 너무도 많으므로 누구나 셀 수 없으되, 하나님께서는 그 무리를 개인 개인으로 아신다(요 6:37-39①).”라고 하였다.
[흰옷을 입고]의 [흰옷]은 1:14의 주석과 3:4의 주석을 보라.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의 [종려]나무는 {“열대의 식물로서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가로에 아주 많았다고 한다”(이상근). “예루살렘에는 오늘날에도 몇 그루의 종려나무가 있으며, 또 Pseudo-Aristeas 112에는 예루살렘의 생산품들 간의 연대를 나열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가 유념한다면······요한의 설명은 가능한 것 같다”(Jeremias).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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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저자의 이름만 밝혔고, 같은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네 명 이하일 경우에는 본문의 괄호 속에 이름만 밝혔음.
1) 필자의 요한복음 6:37-39의 주석을 보라.
2) Jeremias, Jerusalem, 43, in C. K. Barr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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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종려나무 가지는 존경과 기쁨(레 23:40) 그리고 승리의 상징이며(계 7:9), 주로 환영할 때나 축제의 때에 사용되었다. 마카비 독립 운동의 영웅인 시므온이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민중은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그를 환영하였다(I Macc. 13:51).}(요 12:13의 주석).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의 [보좌]는 4:2의 주석을 보고, [어린양]은 5:6의 주석을 보라.
구원받고 마지막 때의 재앙을 면한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종려 가지를 들고 하나님의 보좌 앞과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찬양한 것에 대해, 요한은 【10】[큰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하니]라고 하였다.
[큰소리로 외쳐]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은혜로 구원해 주신 하나님과 그 그리스도를 큰소리로 찬양한다는 뜻이다. 특히, [외쳐](크라주신, κράζουσιν)가 현재 시제인 점에 대해, 알포드(H. Alford)는 “끊임없는 업무를 표현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의 [구원]은 소테리아(σωτηρία)이며, {“그 기본적 사상은 생명에 대한 위협적인 위험을 제거하여 그 생명을 자유롭고도 건전한 발전에 유리한 조건 속에 두는 것이다.······(1) 구약성경의 초기 책들에서 구원은 단순히 신체적 위험으로부터의 해방이다(삿 15:18, 삼상 11:9, 13 등). (2) 그러나 이 낱말은 더욱더 민족의 대 구출 또는 해방에서 적합해지는 경향을 갖는다(출 14:13, 15:2, 사 45:17, 46:13, 52:10). (3) 자연스러운 변화에 의해 그 낱말은 메시아적 구원 또는 해방과 결합되었다(하급 형태의 유대적 메시아 대망과 보다 더 높은 형태의 기독교적 소망<행 4:12, 13:26 등>). 기독교적 의미에서 구원은 메시아적 해방의 전 영역, 즉 부정적인 측면으로는 온 세상이 놓여 있는 진노로부터의 구조(롬 1:18-)와 긍정적인 측면으로는 영생을 부여하는 것(막 10:30, 요 3:15, 16 등)을 포함하는 것이다. 이 양편은 이미 최초의 현존하는 서신에서 결합되어 있다(살전 5:9, 10)”(W. Sanday & A. C. Headlam).}(롬 1:16의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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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구원이란 말은 ‘이미’와 ‘아직’이라는 역설적 개념이라는 점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와 죽음의 운명에서 이미 해방되었지만(롬 6:7, 18, 고후 6:2, 갈 1:4, 엡 2:5, 8) 죽음 이후,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이뤄질 최후 심판에서의 구원은 아직 성취되지 않았다는 뜻이다(롬 5:9, 고전 3:15). 미래에 성취될 구원, 즉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영생을 누리는 것(고전 15장)은 현재의 영적 구원과 불가분의 연관성을 갖는다. 지금 여기서 신자는 영적 생명을 맛보며 사는 것이다(요 3:36, 5:24, 6:51, 17:3, 딤전 1:16, 6:12, 요일 5:13).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는 것은 그 놀라운 치유의 기적과 구조, 더 나아가 영생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로만 이뤄진다는 것이다. 같은 의미에서 베드로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라고 하였다. 이 선언은 하나님께서 천하 인간이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인물이나, 다른 우상이나, 다른 사상이나, 다른 이념이나, 다른 종교나, 다른 교훈 등을 주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이 놀라운 구원의 진리를 알고 믿어 구원받는 것은 인간의 지혜나 지식, 사색이나 명상, 양심이나 도덕적 행위, 선함과 착함이나, 재물이나 권세 등등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인 성령의 역사에 의한 것이다(마 16:17, 고전 12:3, 엡 2:8). 제자들이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마 19:25)라고 질문했을 때, 예수님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마 19:26)라고 하셨다. 바울은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③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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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필자의 에베소서 2:8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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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아 천국에 거하는 성도들이 찬양할 때의 주변 광경에 대해, 요한은 【11】[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라고 하였다.
[모든 천사]의 [천사]는 1:1의 주석을 보라.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의 [장로들]은 4:4의 주석을 보고, [네 생물]은 4:6의 주석을 보라.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는 4:10의 주석을 보라.
그 모든 천사들이 한 일에 대해, 요한은 【12】[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 하더라]라고 하였다.
[아멘]은 1:6의 주석을 보라.
[찬송]은 율로기아(εὐλογία)이며 ‘찬미’(벧전 1:3), ‘감사’, ‘축복’(마 5:44) 등을 의미한다.
[영광]은 1:6의 주석을 보라.
[지혜](소피아, σοφία)는 5:12의 주석을 보라.
[감사](유카리스티아, εὐχαριστία)와 [존귀](티메, τιμὴ)는 4:9의 주석을 보라.
[능력](뒤나미스, δύναμις)3:8의 주석을 보라.
[힘](이스퀴스, ἰσχὺς)은 5:12의 주석을 보라.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의 [세세토록]은 1:6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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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요한계시록(서울: 글벗사, 2005, 1판 1쇄), pp. 204-207.

필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신약 주석(마~계, 1-15권)/ 설교집 28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다수의 논문들/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웃기는 이야기(편저)/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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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4

  • 2021-01-07 13:09

    안녕하세요? 올려주신 내용에서 공부하고 가면서, 저의 소견을 아래와 같이 올립니다.

    9절 ‘이 일 후에’에서 이는 시점에서 4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과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간에는 차이가 있고, 유대인 14만4천과 이방인들 간에는 구분이 된다. 이스라엘은 지금은 영적으로 눈이 감겼으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상태이나, 어떤 시점에서 그 중에 일부는 돌아오게 됩니다.
    10절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에서 구원은 철학, 사상, 헌신, 봉사나 구제 같은 선행, 자기 가학이나 자기 수양, 명상, 해탈, 무속, 잡신들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재확인한다. 이는 목사님이 표현하신 내용과 저도 일치합니다.


    • 2021-01-07 16:50

      필자의 요한계시록 연재에 관심을 기울이시고, 관련하여 의견을 표하셔서 감사합니다.

      유일한 구원자이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성육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믿어 구원받은 사람에 대한 요한계시록 7장의 내용 중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를 7:4의 144,000이라는 수로 상징된 동일한 사람들로 이해하는 이유입니다.

      1) 이어지는 7:10의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하니”가, 유일무이한 구원자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유대인들은 종족이라는 점 때문에 구원받은 선민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의해 구원받은 선민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사에 있어서 아브라함의 중요성은 종족의 조상이라는 점이 아니라, 믿음의 조상이라는 점에 있는 것입니다.
      2) 구원받은 사람을 의미하는 144000명을 실제의 수로 이해할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인류 중에서 딱 144000명만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할 것 없이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다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 2021-01-07 17:31

        감사합니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는 교회들에 속한 이방인들로 사료되오며, 저는 이를 14만4천 유대인과 더해서 교회에 속한 이방인들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KJV 본문에서도 “lo, a great multitude, which no man could number, of all nations, and kindreds, and people, and tongues,”에서 표현한 ‘people’는 ‘민족’이며 이는 이방인으로 확인됩니다. '셀수 없는 많은 무리'에서 이는 14만4천을 포함하는지?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수학 “무한 ∝ + 14만4천 = 무한 ∝”입니다. 유대인 14만4천은 현재의 유대인 인구수와 역사적으로 이 땅을 다녀간 수 없는 유대인들의 전체수를 대비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입니다. 다음에 14만4천이 한번 더 나오는 것으로 아는데 그때 다시 확인해 보겠습니다.


        • 2021-01-07 22:20

          성경 탐구 열정이 대단하십니다.
          본 글과 댓글에 대한 답글에 설명되어 있으므로 별도의 설명은 생략합니다. 한 가지 재언하는 것은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성육이신 예수 그리슫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사람들의 공동체에는 종족적 차이나 차별이 없고, 모두가 다 하늘 나라 시민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거나 변화되어 들어가는 천국에도 종족적 차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유대 민족이라는 것이 어떤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참조: (갈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 3:2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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