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여러분께.
현재 ‘감리회소식’이 ‘자유게시판’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정치적 입장표명이나 감리회정책과 관계되지 않은 내용 등
‘감리회소식’과 거리가 먼 내용의 글은 ‘자유게시판’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길 위에도 계시는 하나님

작성자
백승학
작성일
2020-07-29 13:34
조회
559
길 위에도 계시는 하나님

백승학

예로부터 새가 날아 넘기에도 힘든 고개라고 알려져 있는 문경새재의 입구에는 ‘옛길’이라 이름붙여진 오래된 박물관 하나가 들어서 있다. 오래 전에 그곳에 들렀을 때 나는 박물관 측에서 판매하는 ‘길 위의 역사, 고개의 문화’라는 책을 사서 찬찬히 읽어본 적이 있다. 박물관 곁 자작나무 그늘에서였다.
책의 두께에 비해 집필진이 열 명이나 되었다. 집필자는 주로 사학자, 민속학자, 지리학자 등이었는데 특이하게 시인도 두 명 포함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길’이나 ‘고개’가 삶과 인생을 연상시킬 뿐 아니라 그러한 이미지로서의 ‘길’이나 ‘고개’의 의미를 문자로 해석하고 표현하는 일에는 시인이 적절하다고 여겨서 학자들 틈에 두 명이나 포함시킨 듯 보였다.
신학교 시절에 이마의 주름살이 마치 걸어온 삶의 구비진 길인 듯이 깊고 굵으면서도 자연스러워 보이던 노 교수님이 계셨다. 수업 시간에 그는 신학이 역사나 정치를 바라보기 전에 먼저 시를 바라보아야 제대로 바라보는 것이라며 ‘공중의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를 보라!’같은 성경 구절을 틈틈이 상기시켜주곤 하였다.
문경새재는 남쪽 지방의 선비들이 과거시험을 보러가려면 반드시 넘어야했던 거칠고 외로운 고갯길이었다. 그들이 치루었던 과거시험의 과목에는 길처럼 굴곡지고 고개처럼 험한 인생과 역사를 각자의 문장으로 잘 담아내야하는 시작(詩作)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문경새재의 ‘옛길 박물관’에는 이처럼 길과 고개에 관한 것은 물론 주막에 관한 역사도 잘 보존되어 있었다.
선비들 뿐 아니라 곡류와 물품을 지고 나르던 상인들을 포함한 많은 과객(過客)들이 피곤한 몸을 쉬며 묵어가던 곳이 바로 주막이었다.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에서 강도 만난 자가 치료를 받고 다시 살아난 곳도 다름 아닌 주막이었다. 그리고 구약성서에서 엘리야 선지자가 간사하고 잔혹한 이세벨의 살해 위협에 쫓겨 바란 광야로 피신한 후 지친 몸으로 로뎀나무 아래에 누워 ‘하나님! 차라리 지금 제 생명을 가져가십시오!’하며 탄식했을 때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위하여 숯불에 구운 떡과 물 한병을 놓아두시는 장면은 하나님께서 지친 엘리야 한 사람을 위해서 직접 주막을 차리신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교회는 삶의 길 위에서 지친 자들에게 물을 마시게 하고 떡을 먹게 하시는 주막 같은 곳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처럼 나그네를 쉬게하는 일 외에 주막이 가진 또 하나의 역할이 있었다. 그것은 혹여 낯선 곳에서 길을 잃은 자가 볼 수 있도록 사립문 기둥에 밤새도록 등불을 밝혀두는 것이었다.
어느 힘겨운 날에 날은 저물고 어둠은 점점 깊어질 때 불현듯 길을 놓친 채 이리 저리 헤매다가 그 외지고 낯선 곳에서 주막집 마당에 내걸린 등불을 발견한다면 얼마나 감격스럽겠는가. 우리나라 문단에 최인호라는 아름답고 뛰어난 이름의 작가가 있었다. 그는 일찍이 천재소리를 들으며 남보다 이른 나이에 문단에 데뷔를 하였지만 어쩐 일인지 오랫동안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하였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이 길을 잃은 자가 된 것만 같은 울적한 마음에 꽤 여러 날을 정처도 없이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니다 집으로 돌아왔다.
허름한 방안에는 아내와 어린 딸이 초라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었다. 최인호는 어느 글에서(아마 샘터라는 월간지의 지면에서였을 것이다.) 그 때의 상황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그 때 나는방안에서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비쩍 말라서 마치 죽어가는 쥐새끼 같은 모습으로 누워있는 아내와 어린 딸을 내려다보며 길을 잃은 것은 내가 아니라 나를 길이라 믿고 살아온 저 두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길로 뒷방에 들어가 문을 닫아걸고 비장한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였고 그 때 쓴 글이 출간되자마자 백만 부가 넘게 팔린 ‘별들의 고향’이었다.”
성전에서 우리의 예배와 영광을 받으시기를 무엇보다 기뻐하시는 하나님은 또한 우리가 걸어가는 길 위에도 계시는 분이시다. 또한 골방에도 계시고 별빛 아래, 이슬 가득 내리는 밤길에도 계시고 고갯마루의 허름한 주막에도 계시는 분이시다. 길 위에도 계시는 하나님은 내내 우리와 함께 걸으시며 심지어 우리가 길을 잃었을 때도 그 곁에 계신다. 그 곁에서 나하고 같이 헤매고 헤매시다가 내가 마침내 희미한 주막집 마당의 불빛을 발견하고 좋아하면 나보다 먼저 좋아하고, 나보다 훨씬 좋아하신다.

출처/백승학 글모음 블로그
https://greenword.postype.com/series
또는
https://facebook.com/seunghaak.baik



전체 0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공지사항 관리자 2014.10.22 67449
공지사항 관리자 2010.12.29 65579
13671 홍일기 2023.11.20 296
13670 홍일기 2023.11.19 323
13669 홍일기 2023.11.18 309
13668 함창석 2023.11.18 339
13667 홍일기 2023.11.18 329
13666 최세창 2023.11.17 243
13665 박영규 2023.11.16 245
13664 박영규 2023.11.16 217
13663 홍일기 2023.11.13 345
13662 홍일기 2023.11.12 301
13661 박영규 2023.11.09 242
13660 장병선 2023.11.09 1067
13659 홍일기 2023.11.08 350
13658 홍일기 2023.11.08 305
13657 최세창 2023.11.06 268
13656 홍일기 2023.11.06 305
13655 함창석 2023.11.04 312
13654 장병선 2023.11.03 1121
13653 홍일기 2023.11.03 348
13652 박영규 2023.11.02 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