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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계시록] 4회 / 5회 (대상, 통일성, 내용 및 특징, 연대와 장소)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0-07-27 22:53
조회
615
# [요한계시록] 4회 (대상, 통일성, 내용 및 특징①)

Ⅲ. 대상

본서의 대상은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즉 에베소‧서머나‧버가모‧두아디라‧사데‧빌라델비아‧라오디게아 교회이다(1:4, 11). 이 일곱 교회들에 대한 설명은 주석하는 과정에서 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소아시아에는 “일곱 교회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밀레도, 앗소, 드로아, 아드라뭇데노, 골로새 등 여러 교회가 성장하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교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령께서 사도 요한에게 일곱 교회에 국한시켜 편지를 하게 하신 것은 완전을 상징하는 ‘7’이라는 숫자에 주안점을 두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즉, 성령께서 당시에 존재했던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만 편지를 전달하고자 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시대와 모든 장소에 존재하는 교회들을 향하여 편지하고자 하셨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서는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도 한결같이 해당되는 하나님의 영구 불변한 말씀이라 하겠다.”1)

Ⅳ. 통일성

하르낙(Harnack)은 본서가 근거가 없는 여러 환상의 집합체이며, 단권의 책이 아니고, 여러 책의 부분적인 것들의 수집이라고 주장하였다2). 그러나 본서에 대해서 계속 단편적 접근을 시도한 찰스(R. H. Charles)조차도 계시록 재료의 대부분이 사고의 통일성을 이루고 있다고 인정하고 있다3). 본서가 세 사람에 의해 쓰여졌다고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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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저자의 이름만 밝혔고, 같은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네 명 이하일 경우에는 본문의 괄호 속에 이름만 밝혔음.
1) 참조: W. Hendriksen, pp. 9-11. 黑崎幸吉, p. 30. 이상근, p. 17. 강병도 편, p. 180.
2) in A. Johnson, p. 403.
3) R. H. Charles, pp. lxxxvii-x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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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명한 포드(J. M. Ford)도, 본서는 그들 외에 다른 한 사람이 편집한 것으로 매우 놀랍고 능란한 문학적 통일성이 있다고 하였다.4)
본서의 통일성을 주장하는 존슨(A. Johnson)은 한 사람의 저자가 쓴 것이 아닐 것이라는 주장의 근거에 대해 네 범주로 분류하고 있다. (1) 이중의 표현, 즉 동일한 장면, 또는 환상이 두 번 기술되었다. (2) 이미 언급된 사람이나 사물이 마치 처음인 것처럼 소개되었다. (3) 본문에서 절과 큰 단락이 잘못 놓여진 것으로 보인다. (4) 어떤 부분의 특이한 내용이 책의 다른 부분과 맞지 않는다.5)
이어서 그는 “어느 경우에나 다 납득이 갈 만한 설명의 대안들이 있다. 사실상, 본문 자체보다는 독자의 예상에서 문제점이 더 일어나고 있다.…우리는 현대와 서구의 사고방식으로 계시록의 내용이 바뀌는 곳마다 판단하는 것보다는, 그것을 온전한 문서로 보고 접근하는 것이 저자의 본 의도를 발견할 가능성이 더 많아질 것이다.”6)라고 하였다.
해리슨(E. F. Harrison)은 “동일 사건을 각각 다른 관점에서 논술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히 있는 것이다. 본서의 상호 조화는 본서의 저작자의 단일성을 보여 준다.…중대 사건 시에 삽입된 사건들을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사건들도 본서 전체의 일부분이다.…분명히 극적인 연속을 본서에서 찾아볼 수 있으므로 독립된 문서들을 단순히 수집해서 본서가 되었다는 설은 성립될 수 없다.”7)라고 하였다. 헨드릭슨(W. Hendriksen)은 본서의 통일성을 부정하는 견해들에 대해, “이러한 견해들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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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J. M. Ford, p. 46.
5) A. Johnson, p. 403.
6) Ibid.
7) E. F. Harrison, op. cit., pp. 508-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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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는 잡동사니가 아니라, 극히 유기적이고 조직적으로 정돈된 책이다.”8)라고 하였다. 이 점은 본서에 대한 필자의 ‘내용 분해’(차례 제 2부)에 자세하게 표명되어 있다.
본서의 통일성에 대한 존슨(A. Johnson)의 결론은 매우 탁월하다. “우리는 이 책이 어느 곳에서든지 한 사람의 저자가 기록했다고 기대할 수 있는 문학적‧개념적 통일성을 보여 주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렇다고 어떤 어려운 해석상의 문제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며, 또한 이 책의 현존하는 사본들에서 볼 수 있는 생략이나 개찬이 있을 수 없다는 말도 아니다. 또 한 사람이 썼다는 견해가 요한이 그리스도에 의해 그에게 주어진 계시를 글로 표현함에 있어서 구전이든 문서든 간에 여러 가지 자료를 사용한 일을 배제하는 것도 아니다(1:2의 본문 해석을 참고하라). 그러나 원저자는 어디까지나 성령이므로 그 인도를 받은 요한은 어디서나 이런 자료들을 완전히 소화하여 그것을 철저하게 기독교적 방향과 내용에 일치시키고 있는 것이다.”9)

Ⅴ. 내용 및 특징

요한계시록의 내용 및 특징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먼저 사도 요한이 본서를 쓴 동기와 목적을 알아야 한다.
본서의 기록 동기는 당시의 상황과 관련되는 것이다.
(1) 초대 교회는 로마 제국의 핍박으로 위기에 처했고, 교인들 중에는 배교하는 이들이 있었다. 헨드릭슨(W. Hendriksen)은 “로마는 성도들에 대한 핍박의 기세를 더욱 높였는데, 황제 숭배로 거짓 종교를 고취했으며, 환락과 육욕의 중심이 되었다(13:7, 15, 17:18).”10)라고 하였다. 黑崎幸吉은 더욱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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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W. Hendriksen, p. 27.
9) A. Johnson, p. 403.
10) W. Hendriksen, p.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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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유대인에게 받은 박해는 별도로 하고, 크리스천은 또 당시의 세계적인 권력인 로마 황제에게 박해를 받아야 했다. 네로(54-68)가 로마 도성의 화재의 책임을 전가시키려고 크리스천들을 살육한 것은 유명하지만, 이는 로마 온 영토에 미치지는 않았다. 도미티안 황제(Domitian: 81-96)에 이르러 비로소 그리스도교를 믿는 사람을 처벌하도록 법률이 제정되어 황제 예배를 강요하고, 이에 거스르는 사람을 처벌했다.”11)라고 하였다.
요한계시록의 박해들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전적으로 세상이 교회에 대해 품고 있었던 적대감을 표현한 것이다.
(2) 초대 교회는 유대교뿐만 아니라, 이방의 사상과 종교들로 인해 위기에 처했다. 그러한 사상이나 종교 교리들과 대립하거나 혼합되거나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초대 교회는 유대교 외에 이교 사상과 이방 종교들과의 정면 대결을 피할 수 없었다. 주후 1세기경 로마 제국의 각 도시들에는 황제 예배와 에니미즘(animism)과 같은 원시 종교와 밀의 종교들(the mystery religion) 및 각종 주술 숭배와 점성술 그리고 여러 가지의 철학적 종교들 등 수많은 이교 사상과 종교들이 팽배해 있었던 것이다.”12)
(3) 교회 내부에 문제가 있었다. “교회 자체 내에는 신앙 퇴보의 징조가 나타났다. 교회는 열화처럼 번져 갔던 처음 열심을 상실해 갔으며, 더욱이 이교 사상의 영향으로 타락된 생활이 일반 성도에까지 만연하게 되었다.”13) 이상근 님은 “초대의 소아시아 교회는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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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黑崎幸吉, p. 30. 참조: 內村鑑三, p. 398. M. C. Tenney, pp. 22-23. 특히, W. Barclay, pp. 16-21에는 황제 예배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12) 참조: M. C. Tenney, pp. 23-25. 강병도 편, p. 182.
13) 강병도 편, p.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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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내적 적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니골라 당으로서(2:6, 14, 15, 20-25), 일종의 세속화주의 신자의 무리였다.…그들의 눈에는 황제 예배에 항거하며 순교하는 것은 무모하고도 어리석은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14)라고 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교회의 지도자인 사도 요한이 그러한 교회에 편지를 쓰는 동기가 되었다. 그 궁극적 배후는 사도 요한에게 환상을 보이시며 교회들에게 편지를 보내라고 지시하신 그리스도이시다.
그러한 동기에서 쓰게 된 본서의 기록 목적은 다음과 같다.
(1) 사도 요한은 교회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하는 외부의 가혹한 박해와 내부의 적들로 인해서 성도들이 낙담하고 좌절하여 믿음을 잃지 않도록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본서를 기록하였다. 헨드릭슨(W. Hendriksen)은 “계시록은 1세기경, 핍박받고 시달리는 성도들의 약해지려는 마음을 위로하고 굳게 하려는 데 그 직접적인 목적이 있다.”15)라고 하였다. 보다 자세하게 內村鑑三은 “계시록의 목적은 문학적인 것이 아니다. 실제적(實際的)이다. 이것은 철학의 서(書)는 아니다. 또, 문예(文藝)의 서(書)는 아니다. 위자(慰藉)의 서(書)이다. 흐르는 눈물을 닦기 위한 글이다.”16)라고 하였다.
본서의 정신과 내적 목적에 대해, 스웨테(Swete)는 “형식에 있어서는 묵시적 예언이 들어 있는 서신이고, 정신과 내적 목적에 있어서는 목회적이다.”17)라고 하였다. 이 말에 대해 존슨(A. Johnson)은 “이 책의 기본적인 의미를 포착한 말이다.”18)라고 하였다.
사도 요한은 교인들이 굳건한 제자가 되도록 격려함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골 2:15)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는 연합 의식을 심어 주고 있다. 존슨(A. Johnson)은 “요한은 예수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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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이상근, p. 20.
15) W. Hendriksen, p. 49. 참조: R. C. H. Lenski, p. 23.
16) 內村鑑三, p. 395.
17) Swete, p. xc, in A. Johnson, p. 407.
18) A. Johnson, p. 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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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심이 어떻게 악에 대한 승리를 가져 왔는가를 감안하여 그리스도인의 고난과 순교를 설명함으로써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제자화를 격려하며 바라고 있다.”19)라고 하였다.
(2) 사도 요한은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들의 궁극적인 축복과 배교자나 불신자나 핍박자들의 궁극적인 멸망을 깨우치기 위해 본서를 기록하였다. 렌스키(R. C. H. Lenski)는 “계시록은 약속과 심판의 책이다.”20)라고 하였다. 이상근 님은 “이 계시는 예언인 동시에 수난의 신자들에 대한 보장과 배교자에 대한 경고가 되었다.”21)라고 하였다. 존슨(A. Johnson)은 “요한은 예언자로서 아시아의 성도들의 실패를 폭로해서 참 믿음과 거짓 믿음을 갈라놓으라는 소명을 받은 것이다.”22)라고 하였다.
보다 넓은 의미에서, 왈부드(J. F. Walvoord)는 “요한계시록의 목적은 예수의 재림에 앞서, 그리고 그 기간 동안과 그 직후에 일어나게 될 사건들을 드러내 보여 주는 데 있다.”23)라고 하였다. 존슨(A. Johnson)은 “요한은 또 악과 짐승을 좇는 자들의 종말도 노출시키고 있고(19:20, 21, 20:10, 15), 또 어린양의 승리와 그를 따르는 자들의 궁극적인 결과도 기술하고 있다.”24)라고 하였다.
(3) 사도 요한은 교인들에게 궁극적인 승리와 축복을 믿고 주님 안에서 거룩하게 살라고 권면하는 동시에 배교자나 불신자들에게 최후 심판에 대해 경고하기 위해 본서를 썼다. 왈부드(J. F. Walvoord)는 “한편으로 신자들은 거룩한 삶을 살도록 권면되고 있고, 다른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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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Ibid.
20) R. C. H. Lenski, p. 21.
21) 이상근, p. 20.
22) A. Johnson, p. 407.
23) J. F. Walvoord, p. 9.
24) A. Johnson, p. 407. 참조: R. C. H. Lenski, p.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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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으로 불신자들은 다가올 심판에 대한 경고를 받고 있다.”25)라고 하였다. 이어서 그는 “많은 절들은 예언적 진리들을 그리스도인의 삶에 실천적으로 적용해야 할 것을 제안한다. 하나님의 미래 계획에 대한 구체적 지식과 예측은 거룩한 삶과 그리스도께 대한 헌신을 촉구하는 역할을 한다.”26)라고 하였다.
요한계시록의 내용에 대해서는 이미 주제별로 비교적 자세하게 분해해 놓았고(차례의 제2부 내용 분해), 또한 앞으로 본서를 주석해 나가는 과정에서 더욱 자세하게 설명될 것이므로 여기서는 다루지 않아도 무방할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해리슨(E. F. Harrison)은 “요한계시록은 종말에 대해 집중적이고, 확고하며, 포괄적인 형식으로 나타내고 있다.”27)라고 하였다. 렌스키(R. C. H. Lenski)도 “저자가 볼 수 있는 한은 환상들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진로와 전망을 제시한다. 이러한 것들은 여러 가지 점에서 출발하지만, 수레바퀴의 살이나 광선처럼, 모두가 마지막 심판과 영원한 승리에 집중되고 있다.”28)라고 하였다.
요한계시록의 중요성에 대해, 內村鑑三은 “그 지위에서 말하거나, 길이에서 말하거나, 특히 신도의 주의(注意)를 끌 글(책)이 아니어서는 안 된다.”29)라고 하였다.
(2) 해리슨(E. F. Harrison)은 “계시록은 현대의 독자들에게 수수께끼로 가득한 신비스러운 책이다. 그러나 1세기말의 신자들에게도 그렇게 느껴진 것은 아니다. 당시의 로마 정권이 교회를 위협하고 핍박했기 때문에, 계시록의 내용은 상징과 암시로 기록되었다.”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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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J. F. Walvoord, p. 10.
26) Ibid.
27) E. F. Harrison, op. cit., p. 495.
28) R. C. H. Lenski, p. 25.
29) 內村鑑三, p. 393.
30) E. F. Harrison, op. cit., p. 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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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하였다.
요한계시록에 대한 올바른 해석의 가능성에 대해, 內村鑑三은 “처음으로 요한계시록을 읽은 자가, 지금의 많은 그리스도 신자가 읽는 때처럼, 기괴경악(奇怪驚愕)의 감(感)으로서 이것을 읽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요한계시록은 비밀문자(秘密文字)는 아니었다. 그들은 바울, 베드로의 서간을 해득(解得)한 것 같이 요한계시록을 해득했음에 틀림이 없다.”31)라고 하였다. 또, 그는 “계시록은 해득될 수 있는 글이다. 그리고 해득하여 가장 이익(利益) 많은 글이다. 계시록을 놓치고서, 우리들은 성서 중의 가장 좋은 부분을 놓쳐 버리는 것이다.”32)라고 하기도 하였다.
(3) 계시록은 세상의 지배자들을 지배하시는(1:5) 만 주의 주 되시는 그리스도를 강조하고 있다.33) 렌스키(R. C. H. Lenski)는 “계시록의 구성은 비극적인 희곡이 아니다. 계시록은 계속적인 승리의 예언이다. 즉, 절대적 승리가 그 끝이다.”34)라고 하였다.
(4) 계시록은 극적인 작품이다. 계시의 성격을 띠고 있으나, 예술적 묘사가 뛰어나다(E. F. Harrison).35)
(5) 계시록은 천지간의 상호 관련성이 두드러진다.36) 실제로 현실 세계의 일들은 영적 세계와 밀접하게 관련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영이신 하나님께서 세상을 섭리하시기 때문이다.
(6) 마귀의 작용에 의한 열방의 단합과 불신앙이 강조되어 있다(E. F. Harrison).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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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內村鑑三, p. 402.
32) 內村鑑三, pp. 394-395.
33) 참조: E. F. Harrison, op. cit., p. 495. 김득중, op. cit., p. 286.
34) R. C. H. Lenski, p. 23.
35) E. F. Harrison, op. cit., p. 495.
36) P. E. Hughes, p. 11. E. F. Harrison, op. cit., p. 495.
37) E. F. Harrison, op. cit., p. 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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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요한계시록(서울: 글벗사, 2005, 1판 1쇄), pp. 36-43.

필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신약 주석(마~계, 1-15권)/ 설교집 28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다수의 논문들/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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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계시록] 5회 (내용 및 특징②, 기록 연대와 장소)

(7) 계시록은 심판과 재앙을 말할 뿐만 아니라 경배와 찬양을 말하고 있다.38)
(8)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숫자가 많이 사용되었다. 黑崎幸吉은 “가장 필요한 수에 대해서 약술하면, ‘1’은 절대로 나눌 수 없는 것을 뜻하고, ‘2’는 증거 또는 증인에 관계되고, ‘3’은 삼위의 하나님, 거룩한 이름 삼창(三唱)과 같이 하늘을 이르는 수며, ‘4’는 동서남북, 흙, 물, 불, 바람과 같이 땅을 나타내고, ‘7’은 3과 4를 합친 것으로 완전을 나타내며, 이 책에서 가장 많이 쓰여지는 수다. 또 ‘10’은 인간적 완전을 의미하고, 3과 4를 곱한 수인 ‘12’는 이스라엘의 열두지파, 열두사도 및 새 예루살렘이 ‘12’의 수로 되어 있는 것 같이(21:12-21) 모든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나라에 관련되어 있는 수다.”39)라고 하였다.
(9) 요한계시록은 묵시 문학보다도 구약의 예언서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해리슨(E. F. Harrison)은 “계시록의 대부분은 형식에 있어서 율동적인데, 이것은 구약 선지자들의 특징과 같다.”40)라고 하였다. 김득중 님은 “요한계시록은 다른 외경 묵시 문학을 인용하고 있지도 않다. 오히려 요한계시록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책은 묵시 문학이 아니라 예언 문학이라고 보아야 한다.…실제로 저자는 자기의 임무가 옛날 선지자들의 임무와 비슷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1:10) 본 것을 써 보내라는 임무를 받는다. 그는 자주 자기의 책을 ‘예언’이라고 묘사하고 있다(1:3, 19:10, 22:7, 10, 18-19). 거기에 반해 ‘계시’ 혹은 ‘묵시’란 명칭은 오직 한 번(1:1)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유대 묵시 문학에서는 ‘선지자들’ 혹은 ‘예언자들’이 오직 두 번만 나오는데 요한계시록에선 일곱 번이나 반복되고 있다(10:7, 11:8, 16:6, 18:20, 24, 22:6, 9). 이런 모든 사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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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A. C. Gaebelein, p. 21. E. F. Harrison, op. cit., p. 496.
39) 黑崎幸吉, p. 30.
40) E. F. Harrison, op. cit., p. 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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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저자가 위대한 예언자들의 전통에 속하고 있음을 가리키고 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훌륭한 기독교 예언서라고 말하기도 한다.”41)라고 하였다.
(10) 계시록에는 구약성경이 많이 인용되어 있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의 인용은 없다(E. F. Harrison).42)
(11) 계시록에는 문법상 변칙적인 표현들이 자주 나온다. 아마도 시공을 초월하는 환상과 그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의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12) 김득중 님은 “요한계시록은 서신 문학 형태와 묵시 문학 형태와 예언 문학 형태를 갖추고 있다.”43)라고 하였다. 김철손 님은 “계시록의 문학 형식은 고대 예언 문학이나 후기 유대 랍비 문학을 그대로 답습한 것은 아니다. 저자 자신이 본 환상과 계시를 토대로 하여 독창적으로 구성한 문학이기 때문에 일반 묵시 문학으로 간주해 버릴 수 없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44)라고 하였다.

Ⅵ. 기록 연대와 장소

본서의 ‘내용 및 특징’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본서는 로마 제국이 초대 교회를 극렬히 박해하던 때에 기록된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본서의 기록 연대는 초대 교회가 극렬하게 겪은 박해가 로마의 어느 황제 시대이었는가를 규명하면 되는 것이다. 그 동안 제시된 몇 가지 견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제 3대 클라우디우스(Claudius: 주후 41-54) 황제 때에 기록된 것이다. 이 견해는 6:9과 11:1-2을 문자적으로 취하여, 예루살렘과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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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김득중, op. cit., p. 286.
42) E. F. Harrison, op. cit., p. 496.
43) 김득중, op. cit., p. 287.
44) 김철손, 요한계시록, pp.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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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 로마군에 의해 멸망되기(70년) 전으로 보는 에피파니우스(Epiphanius)의 것인데,45) 신빙성도 없고 추종자도 별로 없다.
김철손 님은 “당시 로마에 유대인들로 구성된 새 종교 단체에 대한 의혹과 불신 때문에 51년에 유대인들에게 로마 시에서 추방 명령을 내린 일이 있다(행 18:2). 이 시기에 사도 요한이 유배당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었으나(3세기 에피파니우스), 전혀 근거 없는 말이다. 당시는 소아시아에 교회가 세워지지 않았으며 황제 숭배가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46)라고 하였다.
(2) 네로(Nero: 37-68. 재위 기간: 54-68) 황제 때에 기록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47) 이 견해는 그럴 듯해 보이는 근거들을 가지고 있다.
첫째, 본서의 헬라어는 다른 요한 문서에 비해 미숙하므로, 보다 능숙한 다른 요한 문서들보다 먼저 썼을 것이다.48) 그러나 요한의 다른 문서에 비해 헬라어가 미숙한 것은, 본서의 특성상 시공을 초월하는 환상과 그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의도 때문으로 볼 수도 있다.
둘째, (1)설에 언급된 것처럼, 예루살렘과 성전이 멸망하기(70년) 전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이 견해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해당 구절에 대한 문자적 해석이라서 받아들일 수 없다.
셋째, 17:9-11에 의하면, 일곱 왕 중에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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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참조: R. H. Charles, p. xcii. 이상근, p. 21. 김철손, 요한계시록, p. 28.
46) 김철손, 요한계시록, p. 28.
47) “Baur, Reuss, Hilgenfeld, Lightfoot, Westcott, Selwyn, B. W. Henderson” in R. H. Charles, p. xciii. “Tertullian, Jerome, Salmon” in 이상근, p. 21.
48) “Lightfoot, Westcott, Hort 등 캠브릿지 학자들” in 이상근, p.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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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고 다른 하나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 “이 7왕을 아구스토의 양부 시이저에서 기산하면(Stuart), 여섯째 왕은 네로가 됨으로 네로 시대가 되고, 아구스토에서 기산하면(Ewald), 여섯째는 갈바가 되는데 그때(68년) 본서가 기록되었다고 한다”(이상근).49)
넷째, 13:18에 나오는 적그리스도의 상징인 “666”은 히브리 문자로 ‘네로 황제’(NERON-KAESAR)라는 글자의 수치를 모두 합한 숫자다. 그래서 계시록 배후에 네로가 생존해 있었다고 보는 사람이 있다. 이 견해에 대해, 김철손 님은 “네로의 박해는 로마 시에 국한되었으며, 짧은 기간에 끝난 작은 박해라고 하겠다.”50)라고 하였다.
(3) 베스파시안(Vespasian: 주후 69-79) 황제 때에 기록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51) “전 설의 셋째의 경우, 갈바, 옷토, 비델리우스 등(3대 합하여 1년) 과도기의 왕들을 계산하지 않으면, 베스파시안이 여섯째 왕이 되므로 생긴 설이다. 그 외에는 별 근거가 없다”(이상근).52)
헨드릭슨(W. Hendriksen)은 “초기의 연대를 정확히 뒷받침할 수 있는 수긍되는 논리를 발견해 낼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제시된 여러 논증들은 후기에 신빙성 없는 증거들과 요한이 계시록을 기록한 때에 헬라어를 전혀 몰랐다는 순전히 가상적인 생각과 가장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몇몇 구절의 애매한 문자적 해석에 의거하고 있다. 예를 들면, 계시록이 기록되었을 때에 예루살렘 성전이 아직 존재해 있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제 11:1에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라고 했기 때문이다.”53)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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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이상근, p. 21.
50) 김철손, 요한계시록, p. 28.
51) “B. Weiss, Dsterdieck, Bartlett, Anderson Scott” in R. H. Charles, p. xciii. “Eichhorn, Bleek” in 이상근, p. 21.
52) 이상근, pp. 21-22.
53) W. Hendriksen, p.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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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도미티안(Domitian: 주후 81-96) 황제 때에 기록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이 있는데, 가장 유력한 학설이다. 이들은54) 도미티안 황제 말기에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 유배되었다고 하는 외증을 근거로, 본서의 기록 연대를 95년에서 97년 사이의 어느 시기로 보고 있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레니우스[Irenaeus: 130?-202?]는 “그것은(계시된 환상) 과히 오래지 않는바 거의 우리 세대인 도미티안(Domitian: 주후 81-96) 통치의 말년에 이를 때쯤에 나타났었다.”라고 했고, 이어서 “…바울이 기초를 세웠고 요한이 거기서 트라얀 시대(Trajan: 주후 98-117)까지 시무했던 에베소 교회는 사도들의 전통에 대한 참된 증인이다.”55)라고 하였다.
둘째, 도미티안 황제의 박해는 아주 광범위하고 장기적이었다. 박해의 직접적인 원인은 황제 숭배 강요에 있다고 보는데, 네로 황제는 자신이 신의 대우를 받기 위해서 교회를 박해한 일은 없다. 네로 이후에 황제 숭배와 이교의 우상 숭배가 성하게 되었을 때, 제 8대 황제인 도미티안 시대에 와서 황제 숭배가 본격화하게 되었다. 도미티안 시대에 아시아에 교회가 설립되었다. 그 시기에 황제 자신이 ‘주와 신’(Dominus et Deus)이라는 칭호를 붙여 자신을 숭배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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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H. Alford, “Godet, Moffatt, Ramsay, Swete, Warfield, L. Berkof” in W. Hendriksen, p. 15. “Irenaeus, Clement of Alexandria, Origen, Victorinius” in 강병도 편, p. 181. “Melito, Eusebius, Zahn, Thiessen” in 이상근, p. 22. R. H. Charles, pp. xci-xcvii. M. Rist, pp. 355-356. A. Johnson, p. 406. E. F. Harrison, op. cit., p. 511. 박윤선, p. 18. 이상근, p. 22. 김득중, op. cit., p. 291.
55) Ante-Nicene Father, I, pp. 416, 457, in W. Hendriksen, p.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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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하게 되었다. 그의 통치 지구인 전 로마 식민지에 명령을 내려 지상 최고의 권력을 휘두르게 되었다(김철손).56)
셋째, 1:10의 “주의 날”은 유대인의 안식일을 대치한 그리스도 교회의 성일이며(Ignatius<주후 35?-107/17> 시대), 점차적으로 교회의 용어가 되었다.
넷째, 2-3장의 교회의 상태, 즉 에베소 교회는 첫사랑을 버렸고, 사데 교회는 죽었고, 라오디게아 교회는 미지근했다는 것은 상당한 세월이 흐른 후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다섯째, 2:6에 언급된 에베소 교회의 니골라 당이 바울 서신에는 언급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바울 이후에 생겨 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섯째, 2:8에 언급된 서머나 교회는 60년 이후에 설립되었다.
일곱째, 네로 시대에 지진으로 멸망했던 라오디게아에 있던 라오디게아 교회를 가리켜 부유하게 보인다(3:17)고 한 것을 보면, 복구하는 데 상당한 시일이 지난 후의 기록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견해 외에 19세기말의 독일 비평학자들의 견해인 ‘장기 편집설’이 있다.57) 이는 본서가 한 사람의 저술이 아니라, 유대 계시 문학 중에서 그리스도인의 손에 의해 취사 편집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추측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며, 결정적인 관심도 얻지 못한다(이상근).58)
헨드릭슨(W. Hendriksen)은 “계시록은 에베소가 첫사랑을 잃어버린 시대를 반영한다는 사실과 사데 교회는 이미 죽었으며, 라오디게아―네로 통치 시대에 지진으로 파괴된―는 재건되어 영적 풍요를 과시하고 있었으며(계 3:17), 요한은 밧모로 유배되었고,―도미티안(주후 81-96) 치하의 흔한 핍박―교회는 그 핍박을 이미 견디어 왔으며(계 20:4), 이렇게 해서 로마 제국은 교회의 큰 대적자가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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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김철손, 요한계시록, p. 28.
57) “Vischer, Pfleiderer, Spitta, Harnack” in 이상근, p. 22.
58) 이상근, p.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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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계 17:9). 이 모든 사실들을 생각한다면, 후기 연대(주후 95 혹은 96)에 기록되었다는 설이 옳다고 하는 결론을 맺지 않을 수 없다.”59)라고 하였다.
왈부드(J. F. Walvoord)는 “대부분의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요한계시록이 주후 95년 혹은 96년에 쓰여졌음을 확언한다. 이러한 추정은 사도 요한이 주후 96년에 죽은 도미티안 황제의 치세 기간 중 밧모 섬으로 유배당했었다는 초대 교회 교부들의 언급들에 기초한 것이다. 그 후 요한은 에베소로 돌아와도 좋다고 허락되었다.”60)라고 하였다.
본 계시를 받은 곳은 밧모 섬(1:9)이나, 1:9의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를 보아 에베소에 돌아와서 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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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W. Hendriksen, p. 15.
60) J. F. Walvoord, p.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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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요한계시록(서울: 글벗사, 2005, 1판 1쇄), pp. 43-48.

필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신약 주석(마~계, 1-15권)/ 설교집 28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다수의 논문들/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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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4

  • 2020-07-28 08:54

    조직신학, 성서신학, 성서 해석학, 설교학, 목회학, 목회 상담학 등등의 근간이 되는 신학이 주경신학인데, 안타깝게도, 교계의 신학대학(원)들에는 주경신학을 강의하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필자는 감리교신학대학과 동 대학원에서 성경 과목을 '히브리서 연구', '마가복음 연구', '...연구' 등으로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은퇴한 이후 기도하며 생각한 끝에, 주경신학의 일환으로 필자가 쓴 주석책인 「요한계시록」을 연재할 생각을 하고, 시작한 것입니다. 미거하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여러분의 호응을 기대해 봅니다.


    • 2020-07-28 21:57

      기업들의 경우는
      포장기술은 좋은데 속 알맹이가 시원하지 않으면 과장광고를 해야 하고,
      생산 기술은 있는데 자기 제품을 연구하지 않으면 남의 기술을 베끼고 자기 것처럼 거짓광고를 해야 합니다.
      신학에서 알맹이가 뭔지?


      • 2020-07-29 10:28

        좋은 말씀입니다.
        신학교에서 일반 학문을 좇거나 흉내내지 말아야 하고,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거역하고 세상 조류나 풍조나 대세를 옹호하거나 지지해서는 안 됩니다. 그 모든 것들의 장점과 단점, 유익과 피해를 밝혀 주시고, 생사화복과 흥망성쇠는 물론, 영원한 구원과 영원한 멸망을 주관하시는 섭리자이신 하나님의 복음이 신학교에서 가르쳐야 할 알맹이입니다. 한마디로, 복음입니다.

        이 일이 제대로 안 되면, 모든 문제의 직접 또는 간접 원인인 '강단의 오염'이라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 2020-07-28 13:54

    # 성경 주석이나 성경 해석에서 간과하기 쉬운 문제

    1. 성경의 문장의 의미 파악을 위해 배경과 기록 동기와 목적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 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의미를 가진 문장을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의 근본 취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런 경우, 문장의 의미와 다른 의미나 상반되는 의미 파악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일하지 말고 쉬라는 의미인 안식일 계명을 잘 아시는 주님이, 안식일에 인간의 병을 고쳐 주시는 일을 하시거나, 귀신들린 사람들을 위해 축귀의 일을 하신 것이다. 일반적인 예를 들면, 부모가 자녀에게 “나가 죽어라!”라고 한 경우, 문자적 의미는 집을 나가서 죽으라는 것이지만, 그 근본 취지는 제발 속 좀 썩이지 말고 부모 말 좀 잘 들으라는 것이다. 이 경우, 문장의 의미(책망한 말의 의미)와는 전혀 상관없는 의미(책망한 말인 문장의 의미가 아닌 그 의미를 가진 말인 문장의 속뜻)가 맞는 것이다.

    2. 나만 옳을 수 없고, 어느 학자만 옳을 수 없으므로 할 수 있는 한, 많은 학자들의 견해를 섭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미 남들이 한 말(견해)을 그냥 인용하거나, 인용하여 비판할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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