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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63회 b. 땅에서 올라온 짐승 II cf. 한국 교회 안에도 '666'이...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1-05-25 21:25
조회
293
땅에서 올라온 짐승(거짓 선지자)이 사람들에게 자신의 표를 받게 한 다음에 하는 일에 대해, 요한은 【17】[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라고 하였다.
땅에서 올라온 짐승(거짓 선지자)은 자신의 표를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삶의 기본적인 단위가 되는 경제 활동을 못하게 하여 생존의 위협을 가한다(2:9, 히 10:34).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는 짐승을 추종하는 자들에게 찍힌 표는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철자가 표상하는 숫자라는 뜻이다 “고대 히브리 풍속과 헬라 풍속에는 그 방언(邦言)의 문자(文字)로 수치를 표시하는 일이 있었다”(박윤선).
이어서 요한은 【18】[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 육이니라]라고 하였다.
[지혜](소피아, σοφία)는 5:12의 주석을 보라.
[총명]은 눈(νούν: ‘마음’, ‘이성’)인데 바울 서신에 21회 나타나며, 철학이나 신비종교와는 상관없는 것이다.① 보른캄(G. Bornkamm)도 “바울은 스토아 철학과 같이 사람이 신적 이성을 나눠 갖는 로고스로서의 누스(νούς: νούν의 원형)를 지시하거나 사용하지 않는다. 또한, 영지주의와 같이 인간을 빛의 세계의 일원으로 만드는 초자연적 영으로서의 누스를 생각하지 않는다.”②라고 하였다.
바울에게서 누스는 다양한 의미를 갖는데 ‘마음’(카르디아, καρδία)과 비슷하게 사용되고 있다. 불트만(R. Bultmann)은 “그 자신의 의도와 행위의 주체인 특별한 자아를 의미하는 인간 존재는 누스란 개념에 의해 가장 명백하게 표현된다.”③라고 하였다. 그 낱말은 또한 알고 이해하고 판단하는 기능을 나타낸다. 같은 견해를 말하는 보른캄(G. Bornkamm)④은 누스가 창조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본성을 지각할 수 있으며(롬 1:20), 또한 누스가 불신자에게도 하나님의 율법을 승인하도록 안내한다고 설명하고 있다(롬 7:22).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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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해당 성구가 있으므로 저자의 이름만 밝혔음.
1) G. Kittle, ed., TDNT, Vol. Ⅳ, p. 958.
2) G. Bornkamm, Paul. trans. by D. M. G. Stalker(London: Hodder and Stoughton, 1972), p. 132.
3) R. Bultmann, op. cit., p. 211.
4) G. Bornkamm, op. cit. 그 근거로 고후 4:4, 10:5, 롬 12:2, 살전 5:21, 롬 3:28, 고전 4:1 등을 들고 있다.
5) Ib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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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바울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기뻐하시는 뜻과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기 위해 누스가 새로워져야 한다고 하여(롬 12:2), 누스의 부패를 말하고 있다(딤전 6:5, 딤후 3:8, 딛 1:15). 부패한 누스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싫어하는 것으로 온갖 죄 된 행위의 주체이다(롬 1:28-32).
여기의 지혜와 총명(마음 또는 이성)은 자연적 인간의 지혜와 총명이 아니라, 성령을 통한 지혜와 총명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 육이니라]의 [그 수는 사람의 수니]에 대해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숫자라는 설⑥과 사람의 계산법대로 센 것, 즉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숫자라는 설⑦이 있는데 후자가 유력하다. 전자는 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온 짐승(13:11)이라는 점과 육백 육십 육에 해당되는 문자로 구성된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 아닌게아니라, 여러 실존 인물들이 제시되어 왔다. 그 예로, 로마 황제 티토, 베스파사누스, 트라얀, 이단자 유리안과 겐세릭, 법왕 베네딕 9세와 바우로 5세, 모하메드, 개혁자 루터와 칼빈, 베자, 낙스, 또는 나폴레옹, 라이크스탇공, 히틀러 등을 들 수 있다.⑧
[육백 육십 육이니라]에 대해 김철손 님은 “이 숫자는 짐승의 수도 아니고 짐승의 이름도 아니다. 짐승의 이름으로 표기된 철자에서 수치로 따질 수 있는 것을 종합해서 ‘666’으로 만든 것이다.······상징적인 숫자다. 그렇다고 수의 개념이 없는 심볼로만 사용된 것은 아니다. 그 수치를 계산해서 그 수치에 맞는 실체를 찾아내는 것이 하나의 해석 방법이 되겠다. 이 방법에 의해서 어떤 사람의 이름을 숫자로 표시하는 ‘암호 표기법’(Gematria)이 있다. 이 방법에 의하면, ‘예수’라는 이름의 헬라어 철자의 수치가 ‘888’이 된다(Ι=10, Η=8, Σ=200, Ο=70, Υ=400, Σ=200 도합 888이 된다. Sibylline Oracles 1:324ff).”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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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Bousset, Moffatt”(in 이상근), 黑崎幸吉, W. Barclay.
7) “Holtzmann, Gunkel”(in 이상근), A. Plummer, 박윤선, 이상근, 김철손, 요한계시록.
8) 참조: A. Plummer, W. Barclay, J. M. Ford, 이상근, 김철손, 요한계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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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드(G. E. Ladd)는 “헬라어도 히브리어도 숫자의 체계를 사용하지 않았다. 숫자 대신에 알파벳 문자가 숫자를 나타내었다. 예를 들면, A-1, B-2, C-3 등이다. 이처럼 이름은 이에 상응하는 문자로 바뀔 수가 있었다. 다이스만(Deissmann)⑨은 ‘나는 숫자가 545인 여자를 사랑합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폼페이 벽의 낙서를 언급하고 있다(ΦΜΕ).”라고 하였다.
[육백 육십 육]에 대한 그럴 듯한 해석은 다음과 같다.
(1) 네로(Nero) 황제라는 견해가 있다.⑩ 네로의 히브리음 NRON KSR(네론 카이사르)의 숫자들(N=50, R=200, O=6, N=50, K=100, S= 60, R=200)을 합하면 666이 된다.⑪ 어떤 학자들(“Abbott, Gunkel”,⑫ “J. B. Smith”⑬)은 1에서 36까지의 수를 합하면 666이 되는 사실을 내세워 본서에는 짐승의 악한 활동이 36회 나타난다고 하였다.
김철손 님은 “네로(Nero)는 라틴 말로 NERON인데, 철자를 수치로 계산하면 N=50, E=6, R=500, O=60, N=50을 합하면 666이 된다. 여기서 마지막 자 N=50을 빼면 616이 된다. 어떤 사본 ‘C’에는 ‘616’으로 되어 있다.······그런데 네로 케사르(Nero Caesar)를 헬라어 철자로 계산하면 1005가 된다. 그러므로 정당한 해석이 못 된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보아 네로 황제는 해당되지 않는다.”⑭라고 비판하였다.
래드(G. E. Ladd)는 “어떠한 사람도 왜 요한이 헬라어를 사용하는 독자들에게 글을 쓰면서 그 이름에 대한 헬라어 형태 대신에 히브리어 형태로 제마트리아의 정교한 상징을 사용하였는지를 설명하지 못하였다. 요한계시록에 대한 고대의 어떠한 해석자들도 이 해결점을 찾지 못했다는 사실 또한 의미심장하다.”라고 비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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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Adolf Deissmann, Light from the Ancient East(New York: Hodder and Stoughton, 1910), p. 276, in A. Barnes.
10) “J. B. Smith”(in 이상근), R. H. Charles, W. Barclay, 이상근.
11) 참조: A. Barnes, 黑崎幸吉, 박윤선, 이상근.
12) in 강병도 편.
13) in 이상근.
14) 김철손, 요한계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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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안타스(Euanthas)라는 견해가 있다. 헬라어로 E=5, U=400, A =1, N=50, TH(헬라어 Θ, theta)=9, A=1, S=200이고, 그 합계는 666이다. 이 견해를 내세운 이레니우스(Irenaeus)는 유안타스의 뜻에 대해서는 전해 주지 않았다.⑮
(3) 테이탄(τειτάν: 300+5+10+300+1+50=666)이라는 견해(Abbott, Irenaeus)가 있다. 테이탄은 헬라 신화에 나타나는, 하나님을 적대하는 거대한 신이다.⑯ “베스파시안(Vespasian) 황제와 티투스(Titus) 황제와 도미티안(Domitian) 황제의 성은 티투스(Titus)이었고, 아마도 그들은 타이탄(Titans)들이라고 불렸을 것이다”(W. Barclay). 이 견해는 땅에서 올라온 짐승과 조화되지 않는다.
(4) 바벨론 신화에 나오는 악신 티아맡(Tiamat)이라는 견해가 있다(Gunkel).⑰ 이 견해 역시 땅에서 올라온 짐승과 조화되지 않는다.
(5) 도미티안(Domitian) 황제라는 견해가 있다. 김철손 님은 “일찍이 보수파 신학자인 스타우퍼(Stauffer)는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라틴어 칭호 ‘Imperator Caesar Domitianus Augustus Germanicus’를 헬라어 약어로 써서 계산하여 666을 만들었다.”⑱라고 하였다. 크라프트(H. Kraft)는 666을 표시하는 로마자 DCLXVI의 DC는 Domitian Caesar의 첫 글자, L은 λυκάβαντος(햇수, the year)의 첫 글자, XVI은 도미티안(도미티아누스) 황제가 통치한 지 16년 만에 암살당한 사실에서 유래한 ‘16’으로 볼 수도 있으므로, DCLXVI(500+100+50+10+5+1)은 도미티안(도미티아누스) 황제가 16 년간 왕위에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런 식의 해독은 놀랄 만큼 단순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DC를 도미티아누스 카이사르로 해결할 경우, 그것은 순전히 환상의 산물이라는 것을 거의 망각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해석들은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무리한 작위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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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참조: W. Barclay, G. E. Ladd, 이상근,
16) 참조: W. Barclay, G. E. Ladd, H. Kraft, 이상근, 김철손, 요한계시록.
17) in 이상근.
18) 김철손, 요한계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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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줄리우스 케사르(Julius Caesar)부터 베스파시안(Vespasian)에 이르기까지 일곱 로마 황제의 첫 글자(A. T. C. C. N. G. V.)의 수치가 666이 된다는 견해가 있다(Giet).⑲ 이 견해 역시 작위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7) 라테이노스(λατέινος: 30+1+300+5+10+50+70+200=666)라는 견해가 있다. 라테이노스가 ‘라틴계 사람’, ‘고대 로마 사람’을 의미하므로 로마 황제를 표상할 수 있다.⑳
(8) 로마의 3대 황제인 칼리굴라(Caligula)라는 견해가 있다. 칼리굴라 황제의 헬라어 이름(Γαίος καίσαρ)의 수치가 616인데, 이는 666 대신에 616으로 되어 있는 C 사본과 같은 점에 의거한 것이다.㉑ 그런 식으로 하면, ‘이탈리 왕국’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이는 그 “헬라말(ἡ ἰταλἡ βασιλεἰα)의 수치도 616”(H. Kraft, 김철손㉒)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616으로 되어 있는 C 사본은 유력한 것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9) 상징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숫자라는 견해가 있다. 즉, 666은 어떤 사람이나 신들의 이름의 수치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완전수인 7에서 1이 부족한 불완전한 수 6을 세 번 반복해 놓은 것으로 보는 것이다. 김철손 님은 “6은 완전수 7에서 하나 부족한 불완전한 수로 삼중으로 겹쳐서 악의 삼위일체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본시 6은 유대교에서는 땅의 수로 간주된다.”라고 하였다.
헨드릭슨(W. Hendriksen)은 “짐승의 수는 곧 사람의 수임을 기억하자. 이제 명백히 알아야 할 것은 사람은 제 6일에 창조되었다. 여섯이란 숫자는 결코 일곱이 될 수가 없다. 일곱이 될 수가 없다는 것은 영원토록 완전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섯은 목표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 즉 실패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일곱이란 숫자는 어떠한가? 이 수는 완전, 완성, 그리고 승리를 나타낸다. 하나님의 교회여, 기뻐하라! 승리는 너희 것이다! 짐승의 수는 666이니 이 숫자는 실패를, 그리고 실패 위에 실패를 더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사람의 수인데 짐승은 사람을 번영하게 하고 자랑스럽게 만들기는 하나, 그러나 결국은 실패하고 만다.”라고 하였다.
래드(G. E. Ladd)는 “7이 완전한 숫자로 생각되어진다면 666은 적절함에 도달하지 못하는 인간이 행할 수 있는 최대한에 대한 상징적인 숫자를 의미할 수 있다. 이것이 ‘그것은 사람의 수니’라는 말씀의 의미일 수 있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만일 짐승의 숫자가 미래의 상황에 대한 예언이라면, 아직 어떠한 사람도 그 숫자의 의미를 해석하지 못했고, 그 의미는 때가 오면 밝혀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라고 하였다. 그렇기는 하나, 현재로서 666에 대한 가장 그럴 듯한 해석은 불완전성과 완전에 대한 마귀적인 모방, 현혹성, 저주 등을 의미하고, 우상 숭배와 신성 모독을 상징한다는 견해라 할 수 있다.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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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in 김철손, 요한계시록.
20) W. Barclay, G. E. Ladd, 이상근, 김철손, 요한계시록.
21) in 김철손, 요한계시록.
22) 김철손, 요한계시록.
23) C. L. Morris, C. R. Erdman, W. Hendriksen, G. E. Ladd, A. Plummer, J. F. Walvoord, “Minear, Newman”(in 강병도 편), “J. A. Seiss, T. F. Torrance, J. Ellul”(in A. Johnson), A. Johnson, A. C. Gaebel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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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요한계시록(서울: 글벗사, 2005, 1판 1쇄), pp. 300-306.

필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신약 주석(마~계, 1-15권)/ 설교집 28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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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3

  • 2021-05-26 10:53

    최 목사님께, 안녕하세요? 게시하신 내용을 통해 잘 공부하고 있습니다. 또한 본문에 대한 저의 소견을 아래와 같이 공유합니다. 오늘도 주안에서 영과 육이 늘 강건하시길 기도하오며,

    §17 ‘짐승의 표’는 중요한 개념으로 ❶ 표를 받는 대상자는? 모든 사람 (16절) ❷ 표의 하는 위치는? 사람의 오른손 / 이마 (16절) ❸ 표의 기능은? 표를 가져야 매매가 가능; 매매의 허가증 (17절) ❹ 표는 무엇인가? 짐승의 이름 / 짐승의 이름의 수 (17절) ❺ (지혜로) 명철이 있는 자는 사람은 그 짐승 수를 셀수 있음 / 666 (18절) ※ 이 짐승의 표는 계13,17,18 뿐 아니라 16:2 19:20에도 나옴.

    ‘매매’는 [창34:10 너희가 우리와 함께 거주하되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여기 머물러 매매하며 여기서 기업을 얻으라 하고] [렘32:14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 증서 곧 봉인하고 봉인하지 않은 매매 증서를 가지고 토기에 담아 오랫동안 보존하게 하라] ☞ 대표적인 매매는 토지를 구매하고 매매증서 (등기서류 같은)를 남긴다.

    ☞ 매매는 상인이 상품을 가지고 매매를 한다. ‘상인’과 ‘상품’은 겔27장과 계18장에 자주 등장한다. [겔27:13 야완과 두발과 메섹은 네 상인이 되었음이여 ※사람과 놋그릇을 가지고 네 상품을 바꾸어 갔도다] [겔27:17 유다와 이스라엘 땅 사람이 네 상인이 되었음이여 민닛 밀과 과자와 꿀과 ※기름과 유향을 네 물품과 바꾸어 갔도다] [겔27:21 아라비아와 게달의 모든 고관은 네 손아래 상인이 되어 ※어린 양과 숫양과 염소들, 그것으로 너와 거래하였도다] [겔27:22 스바와 라아마의 상인들도 너의 상인들이 됨이여 각종 ※극상품 향 재료와 각종 보석과 황금으로 네 물품을 바꾸어 갔도다] [계18:11 땅의 상인들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들의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 12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그릇이요 값진 나무와 구리와 철과 대리석으로 만든 각종 그릇이요 13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이요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 ☞ 매매에서 재미있는 것은 ❶ 사람과 사람의 영혼이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 되고 있다. ❷ 기름과 유향, 어린 양, 극상품 향 재료와 황금은 구약의 제사와 성막에 관련된 상품들이다.

    §18 ‘지혜가 여기 있으니’는 [계17:9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에 유사한 표현이 나온다. ☞ 이는 계시의 비밀을 지혜와 명철로 열수 있다는 표현이다.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에서 ☞ ‘666’은 사탄의 종이 되어, 돈벌이로 성직을 수행하는, 거룩하지 않은 자이고, 거짓 선지자를 말한다. 이는 전통적인 해석과도 차별되며, 접근 방식과 해석에서 다르다. 읽는 분들께서는 이를 참조하시고 비교하시되 이단으로 몰아가면서 제게 시비하지 마시라. 성경의 한정은 ❶ 그 짐승의 수 ❷ 그것은 사람의 수 ❸ 육백육십육은 같다. 그렇다면 이는 사람의 수인데, 성경의 ‘666’에서 사람과 관련된 구절은 [스2:13 아도니감 자손이 육백육십육 명이요]이 있다. 다른 666은 [왕상10:14 솔로몬의 세입금의 무게가 금 육백육십육 달란트요]는 세금의 무게인 금의 중량이라 논외로 한다.

    ‘아도니감’과 관련하여 [스8;13 아도니감 자손 중에 ※ 나중 된 자의 이름은 엘리벨렛과 여우엘과 스마야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육십 명이요 15 내가 무리를 아하와로 흐르는 강가에 모으고 거기서 삼 일 동안 장막에 머물며 백성과 제사장들을 살핀즉 그 중에 레위 자손이 한 사람도 없는지라] ☞ 아도니감의 자손 666인데, 이들 중에는 제사장들을 있으나, 레위 자손이 한 사람도 없다. 이들은 신분 상 제사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돈벌이로 성직을 수행하는 직업 종교인을 말한다.

    ‘나중 된 자’는 ‘처음 된 자’의 반대이다. [민8:18 이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태어난 자 대신 레위인을 취하였느니라] [눅2:23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 처음 된 자는 거룩하나 반면에 ‘나중 된 자’는 거룩하지 않다.

    ‘스마야’는 [렘29:30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31.너는 모든 포로에게 전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느헬람 사람 스마야를 두고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그를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스마야가 너희에게 예언하고 너희에게 거짓을 믿게 하였도다 3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느헬람 사람 ※스마야와 그의 자손을 벌하리니 그가 나 여호와께 패역한 말을 하였기 때문에 이 백성 중에 살아남을 그의 자손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 내가 내 백성에게 행하려 하는 복된 일을 그가 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스마야는 ❶ 하나님이 보내지 않은 선지자이다. ❷ 그는 예언을 한다. ❸ 사람들에게 거짓을 믿게한다. ❹ 하나님께 패역한 말을 하는 것이다.


  • 2021-05-26 11:16

    현재도 세계 곳곳에는 하나님을 안 믿거나, 하나님의 성육이신 주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과 이교도들은 물론, 믿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신학자들과 교역자들과 평신도들 중에도 666의 의미에 해당되는 언행을 일삼으며 사람들을 미혹하는 이들이 있다. 이런 점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진리요 영원한 현재의 말씀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기도와 말씀에 착념하고, 순종할 필요가 있다. 죽음은 필자를 비롯한 누구에게나 잠시 후일 수도 있고, 그 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영원한 구원, 영원한 멸망)이 있기 때문이다. 또,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도록 전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 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 2021-05-26 11:20

      엄재규 장로님, 필자의 요한계시록 주석 연재에 대해, "게시하신 내용을 통해 잘 공부하고 있습니다. 또한 본문에 대한 저의 소견을 아래와 같이 공유합니다. 오늘도 주안에서 영과 육이 늘 강건하시길 기도하오며,"라고 하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내용은 늘 읽고 참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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