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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1-04-20 22:34
조회
895
예수님은 자신의 말씀이 단순한 이성적 차원의 것이 아니라 영적 차원의 것임을 밝히신다. 【요 6:6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살리는 것은 영이니]는 목숨이 있는 인간에게 생명을 주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시자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이시라는 것이다(5:21의 주석을 보라).
[육(3:6의 주석을 보라.)은 무익하니라]는, 인간 또는 인간적인 모든 것은 인간에게 생명을 준다는 점에 있어서 전혀 유익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는, 말 그대로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으로 오해하여 어리벙벙해 하는 그들에게 알아듣도록 예수님이 해석해 주신 것이다. 즉, 예수님이 그들에게 하신 말씀이 인간적인 것이 아니라, 죄와 허물로 인해 영적으로 죽은 자들에게(5:24, 25, 엡 2:1, 5, 골 2:13) 생명을 주시는바 영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5:24-25의 주석을 보라).
이와 비슷하게 바울은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고후 3:6)라고 하였다.
특히, 이것은 하나님은 영이시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역사를 배제한 채, 인간의 [육] 곧 이성만 가지고 연구하는 신학자들에게 경종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신학자들은 합리적이어야 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해석만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하는데, 어이없는 것은 그들 각자의 해석이 같지 않다는 것이다. 같은 말씀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해석들을 하고는 자신의 해석만이 합리적인 해석이라고 하는 불합리한 주장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말씀에 대한 상이한 해석이란 어디까지나 같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성서 기자들의 해석의 다양성이라는 원리를 벗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다. 즉, 같은 말씀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다양할 수는 있으나, 근본적인 점에서는 일치해야 하는 것이다.

출처: 최세창, 요한복음(서울: 글벗사, 2006, 1판 2쇄), pp. 267-268.

필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다수의 논문들/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설교집 28권/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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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9

  • 2021-04-20 23:03

    오히려 유한한 인간의 이성의 영역인 선입견이나 고정 관념, 시대와 장소에 따라 선과 악 그리고 시와 비가 뒤바뀌기도 하는 윤리 도덕 교훈이나 교리, 이념이나 사상을 힙리화하기 위해 영이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왜곡하는 일이 적지 않다. 오히려 인간의 그 모든 것이 빛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조명되어야 한다.


  • 2021-04-21 12:21

    최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바에 저도 동의 합니다.

    오늘날 강단과 신학이 무너진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듣지 않고 육의 소욕을 따라 가기 때문입니다. 이성 즉 혼적 접근을 통한 가설들이 난무하는데, 이 결과 생기는 종교적 행위들은 전부 폐역과 반란과 배교에 해당합니다. 만일 누가 영과 혼과 육을 분별 할 수 있다면 그 신앙은 바뀌게 됩니다. 영과 육은 속성이 정반대입니다. [요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욥33:4 하나님의 ※영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 [요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고전15: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 2021-04-21 13:35

      필자의 글(주석)에 동의하셔서 감사합니다.


    • 2021-04-21 19:48

      엄재규 글러버님,
      1. 진리와 가설의 차이가 진정 무엇일까요?
      2. 과연 우리 신앙인들이 그 가설과 진리를 분별을 할 수 있음일까요?
      3. 진정 분별을 할 수 있다면 어떻게 가능할까요?
      제 글러브입니다.


      • 2021-04-22 08:28

        A1. 사전에서 진리(眞理)란?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승인할 수 있는 보편적인 법칙이나 사실. 가설(假說)이란? 어떤 사실을 설명하거나 어떤 이론 체계를 연역하기 위하여 설정한 가정. 명제의 단계를 보면, 처음 가설 ⇛ 나중 이론/논문 ⇛ 진리 (시간에 따라 바뀌지 않음)

        A2. 신앙인은 분별해야 한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 본문 사례) [레10:10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마16:3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고전14:7 혹 피리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나타내지 아니하면 피리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딤후2: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A3. ‘분별함’은 성령의 은사(선물)이며 성령께서 인도하십니다. [고전12: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추가 질문은 사양합니다.


        • 2021-04-22 09:00

          감사드립니다. 역시 엄장로님의 성경적 지식은 대단하시다 생각을 합니다.
          한편으로 목사인 제가 부끄러워지고 부럽기조차 한 장로님의 달란트이자 실력이라 생각을 합니다.

          제가 드린 3가지의 질문에 대하여 정확한 답변을 하셨다 생각을 합니다.
          문제는 3번째 분별은 전적으로 성령님께 있음인데.... 성령의 감동과 성령의 은혜로 진리와 가설을 분별한 다 것에 대한 또 다른 성령의 분별이 필요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신경을 통해 고백하기를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란 표현이 우리의 신앙의 삶속에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장로님의 성경적인 답변을 앍고 '맞습니다. 아멘' 하는 것과 같은 동일한 성도 간의 울림과 감동 그리고 공명이 있어야 성령 안에서 성도 간의 올바른 교(소)통이 이뤄짐이라 할 수 있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장로님의 맨 마지막 글이 문제가 됩니다. 즉 '추가 질문은 사양합니다.'라 하시며 저(성도)와의 교통을 스스로 단절시키고 있음이란 것입니다. 그것은 사도신경의 고백을 전면으로 부정하는 행위가 되는 것으로 더 이상의 울림이나 감동 더 나아가 공명은 불필요하다고 선언을 하고 있음인 것입니다.

          그렇게 장로님이 사도신경의 고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게 된 이유에는 장로님만의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을 줄 압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거짓 마귀 사탄은 성도 간의 교통(제)를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도록 방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장로님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 만들어진 성도 간의 교통(제)을 막으려는 것은 진리의 말씀인 성경과 위배되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즉 성경의 진리는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입으로 시인을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입으로 시인하지 못한다는 의미는 진실로 그 진리의 말씀을 믿지 못한다는 의미 입니다.
          알고 믿고 구원을 이뤄야 하는 데 알고 믿지 못하니 온전한 구원을 이루지 못하고 장로님 스스로 만든 진리의 성 안에서 스스로 왕좌를 만들어 앉아 있는 격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가설입니다. 즉 장로님은 진리을 알고 있지만 실제의 삶에는 가설로 살아가고 있음이란 의미인 것입니다.

          진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심이나 삶은 가설로 살아가니 결국은 가설과 진리를 성령의 은혜 가운데 분별하고 이해하고 보아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장로님은 성령의 은사로 분별함이란 진리를 잘 알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 진리 안에서 살아가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의 깊은 질문에 대한 답을 하실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심으로 장로님은 더 이상의 질문은 사양(절)한다는 명패를 걸어 넣고 그 누구도 장로님 스스로 만들어 놓은 성안으로 들이지 않으려 하심입니다.

          주님은 성문 밖에 서서 장로님의 진리의 성 안으로 들어가 장로님과 함께 먹고 마시고 쉬기도 하고 놀기도 하고자 이야기 하고자 하심인데 말입니다. 여기 까지가 제 글러브입니다. 성령의 은혜로 분별의 은사가 장로님에게 있으시길 기도합니다.


          • 2021-04-22 10:33

            제 생각은 전혀 다릅니다. 첫째로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에 대한 성경 근거를 통 모르겠고, 이를 로마의 계급장 종교가 만든 조각상의 그 성인들과 교통, 혹은 죽은 이들과 교통이라면 좀 심각하군요. 사도신경과 성경과 다를 경우, 난 성경을 지지합니다. 둘째로 '깊이 있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음' 지적에 대해 이는 고려하지 않은 사안이고 노닥대면서 시간을 낭비하기 싫습니다. 또 지적하시기에... (깊이 있으신 분들에게) 제가 깊이가 없긴하네요. 이제 됐나요? 너무 깊이 파고 내려가면 땅의 뿌리에 있는 그곳에 가는데, 또 예수님도 한 제자는 구원 못했는데...


            • 2021-04-22 11:23

              성도가 서로 교통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마음 한 뜻을 품게 된다는 것이며, 이것이 곧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성전)를 이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성령의 은혜 가운데 각각의 곳에 세워(모여)진 교회는 이제 교회 간의 소(교)통을 합니다. 이러한 소통의 시작이 된 것이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제자들의 회의입니다. 흩어져 있던 제자들이 자신들의 처한 교회에서 경험하게 된 사실들에 대한 공개적 토론으로 서로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는 교회들임에도 불하고 공통된 현상들이 있음인데 그것이 곧 성령 세례이자 성령의 역사이며 성령의 충만 입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로 인해 드디어 예루살렘 공의회는 율법을 통해 유대인의 정체성을 결정하였던 할례를 이방인들에게 강요하지 않을 것을 결의하게 됩니다.(행15장) 또한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는 초대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의를 통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보내게 된 것입니다. 즉 성령과 우리의 요김 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지우지 않을 것을 공표를 하였으며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하라 권하며 스스로 삼가면 잘 될 것이라 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초대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정은 또 다시 시대를 거치며 많은 공의회의 결정들이 형성이 되는 과정에 이단들의 도전이 있음을 통해 이단과의 차(분)별을 위해 사도신경을 신앙의 표준으로 삼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로님의 표현 가운데 죽은 이들과의 교통이라 하셨는데 이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틀린 표현입니다. 성경 상의 실제의 표현으로 말하면 믿음으로 산자들과 교통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말씀이 아벨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 살아 지금 [*의도치 않은 글 겹침의 신비, 서로 교통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마음 한 뜻을 품게 된다는 것이며, 이것이 곧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성전)를 이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성령의 은혜 가운데 각각의 곳에 세워(모여)진 교회는 이제 교회간의 소(교)통을 합니다. 이러한 소통의 시작이 된 것이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제자들의 회의입니다. 흩어져 있던 제자들이 자신들의 처한 교회에서 경험하게 된 사실들에 대한 공개적 토론으로 서로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는 교회들임에도 불하고 공통된 믿음의 현상들이 있음인데 그것은 곧 성령 세례이자 성령의 역사이며 성령의 충만 입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로 인해 드디어 예루살렘 공의회는 율법을 통해 유대인의 정체성을 결정하였던 할례를 이방인들에게 강요하지 않을 것을 결의하게 됩니다.(행15장) 또한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직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는 초대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의를 통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보내게 된 것입니다. 즉 성령과 우리의 요김 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지우지 않을 것을 공표를 하였으며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하라 권하며 스스로 삼가면 잘 될 것이라 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초대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정은 또 다시 시대를 거치며 많은 공의회의 결정들이 형성이 되는 과정에 이단들을 도전이 있음을 통해 이단과의 차(분)별을 위해 사도신경을 신앙의 표준으로 삼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로님의 표현 가운데 죽은 이들과의 교통이라 하셨는데 이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틀린 표현입니다. 성경 상의 실제의 표현으로 말하면 믿음으로 산 자들과 교통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말씀이 아벨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살아 지금]도 말하느니라는 히11:4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무당들의 신접하는 것과 비슷한 모습으로 이해가 될 수 있으나 실상은 엄연히 다른 것입니다. 그 다름이란 성령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성령으로 살아 믿음의 교(소)통을 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인 성경을 읽고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 또한 그러한 것이며, 한 사람이 대표로서 기도를 함에도 회중이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 또한 이러한 경우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물론 '아멘'을 습관적으로 교회의 가르침으로 인해 모르고서 '아멘'을 하는 이들이 있음으로 '아멘'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하고 행하는 것이지만 그 또한 넓은 의미에선 성령의 은혜 가운데 행하는 것이라 인정을 하게 될 수도 있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신경의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은 성경에 위배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제 글러브 입니다.


              • 2021-04-22 13:20

                헐~~~ 의도치 않은 글 겹침(데쟈뷰)가 발생했네요. 나름 신비라 믿으며 댓글 내용 가운데 겹친 반복된 부분은 [ ]로 표시 수정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점 양해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이 또한 제 글러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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