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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철학들/종교들 vs. 기독교 구원 간 차이에 대한 소고

작성자
엄재규
작성일
2021-03-28 16:05
조회
353
어떤 이들이 자기 수양을 통해 혹은 다양한 철학들을 통해 혹은 다양한 종교들을 통해 "인간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는 소위 기독교의 신학자들 혹은 기독교 목회자들도 있어 보이는데, 이러한 주장은 하나님의 말씀들인 성경 본문과 건전한 교리와 차이가 있다.

㉮ '구원'은 인간의 어떠한 행위로부터 얻어지는 한 열매가 아니다. '구원'은 사람들의 행위/생각에 기인하지 않는다. 즉, 사람으로부터 나거나 출발하는 것들은, 예를 들어 모든 철학, 모든 사상(인문학 포함), 종교적 성사/성무/의식/성직/성의, 구약의 제사, 신약의 교회생활, 선행, 도를 터득(득도, 해탈, 무아지경, 열반), 경건한 생활(수양), 수도, (관상)기도, 자아에 대한 인식, 자기학대(가학적 노력), 자기희생(헌신), 빈곤/청빈, 봉사, 헌금 액수, 교권장악 여부, 예배당과 종교단체 크기, 높은 도덕성, 윤리적 우위, 종교적 조각상/오컬트/십자가 상의 보유, 성화/드라빔/부적의 보유 등, 이와 어떠한 관련이 없다.
[엡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 은혜 ∊ 구원, 믿음 ∊ 구원; 인간에게서 난 것이 아님. 행위 ∉ 구원 (기호설명; 은혜는 구원의 요소(조건)이다 ELEMENT OF, 행위는 구원의 요소(조건)가 아니다 NOT AN ELEMENT OF)
[롬11:6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 행위 ∉ 구원, 은혜 ∊ 구원
[딛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 행위 ∉ 구원, 긍휼하심 ∊ 구원
[딤후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 행위 ∉ 구원, 은혜 ∊ 구원

㉯ '구원'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선물이다. 이 '구원'은 하나님으로 출발한다. 이는 모든 시대에 걸친 진리이며ⅰ. 창세부터 모세의 율법 이전 ⅱ. 모세의 율법이후 유대인들에게 ⅲ. 초림 예수 이후 교회시대(이방인들에게) 마찬가지이며, '구원'을 얻기 위하여 인간이 스스로 지불해야 하는 어떠한 외형적 대가는 없다.
[행15:11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 은혜 ∊ 구원
[엡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은혜 ∊ 구원
[벧전1:10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 은혜 ∊ 구원
[고후6:2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 은혜 ∊ 구원
[딛2: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 은혜 ∊ 구원
[시106:4 여호와여 주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은혜로 나를 기억하시며 주의 구원으로 나를 돌보사] ☞ 은혜 ∊ 구원
[출18:9 이드로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큰 은혜를 베푸사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심을 기뻐하여] ☞ 은혜 ∊ 구원
[시86:16 내게로 돌이키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주의 종에게 힘을 주시고 주의 여종의 아들을 구원하소서] ☞ 은혜 ∊ 구원
[사33:2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 ☞ 은혜 ∊ 구원
[창19:19 주의 종이 주께 은혜를 입었고 주께서 큰 인자를 내게 베푸사 내 생명을 구원하시오나 내가 도망하여 산에까지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 은혜 ∊ 구원
[대하6:41 여호와 하나님이여 일어나 들어가사 주의 능력의 궤와 함께 주의 평안한 처소에 계시옵소서 여호와 하나님이여 원하옵건대 주의 제사장들에게 구원을 입게 하시고 또 주의 성도들에게 은혜를 기뻐하게 하옵소서] ☞ 은혜 ∊ 구원
[사49:8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를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에게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리라] ☞ 은혜 ∊ 구원

㉰ 인간은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된다. ⅲ. 초림 예수 이후 교회시대(이방인들에게) 마찬가지이며, 구원을 얻기 위하여 이 믿음의 대상은 오로지 주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외 다른 믿음의 대상은 없으며 이 경우 결코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딤후3: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 믿음 ∊ 구원
[벧전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 믿음 ∊ 구원
[야5: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 믿음 ∊ 구원
[살후2:13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 믿음 ∊ 구원
[야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 믿음 ∊ 구원, 행함 ∊ 구원
[행14:9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 믿음 ∊ 구원
[마9: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 믿음 ∊ 구원
[눅17: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 믿음 ∊ 구원
[눅18:42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 믿음 ∊ 구원
[히브리서 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 믿음 ∊ 구원
[눅8: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 믿음 ∊ 구원
[눅7: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 믿음 ∊ 구원
[히10: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 믿음 ∊ 구원
[막5: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 믿음 ∊ 구원
[딤전2:15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 믿음, 사랑, 거룩함 ∊ 구원
[막10: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 믿음 ∊ 구원
[벧전1: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 믿음 ∊ 구원
[유1:3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 믿음 ∊ 구원

㉱ 구원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믿음은 다양한 (행위의) 열매를 맺게 한다. 이는 구원의 요소(조건)이 아니며, 단지 심판과 받게 되는 상급(면류관)과 관련이 있다.

이는 크게 보아서 '구원'에 대한 개념 혹은 어떠한 주장의 근본이 어떤 인간에게서 출발한다면 이는 오류에 불과하다.



전체 9

  • 2021-03-28 21:16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언행일치의 삶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절대믿음이 십자가를 지게했고,
    십자가를 지기까지 순종하는 믿음이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켰습니다 ‘.
    예수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예수의 믿음이 참 믿음이요, 부활에 이르게 하는 믿음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의 삶을 따라 삽니다.


    • 2021-03-28 22:57

      글러버님의 답을 보니 의문이 듭니다.
      1) 성경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부르면'이라 하였는데... 진정 그렇다면 '예수님의 언행일치를 부르면' 이라 성경 말씀이 왜곡이 생기지 않을까요? 진정 예수님의 언행일치를 부르면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일까요?

      2) 예수님를 믿는 사람은 예수의 삶을 따라 산다고 하셨는데.... 이 또한 예수님의 삶을 따라 산 사람이 과연 예수님 이후 몇이나 될까요? 그나마 사도들 외에는 거의 존재하지 못함이라 생각을 하는 데 장병선 글러버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만약 그런 것이라면 구원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 되니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 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다시 한 번 장병선 글러버님의 답변을 부탁드려 봅니다.


  • 2021-03-28 18:25

    장로님의 대단한 신학적 소견에 글Love 합니다.


  • 2021-03-28 19:26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루터는 행함을 강조하는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복음이라 했지요.
    믿음과 행함은 새의 양 날개와 갖다 할 수 있겠지요.
    믿음만을 강조하는 것은 값싼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며, ‘한 번 구원받은 사람이 하는 말이나 행위는 어떠한 것이든지 죄가 되지 않는다’주장하다 집단자살사태를 불러온 소위 은혜파(구원파)의 오대양사건을 일으켰지요. 감리교 안에도 여전히 값싼복움을 전하는 망할 목사둘이 많아요


    • 2021-03-28 19:48

      장병선 목사님의 의견이 참으로 좋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장병선 목사님께 드리는 2가지 글Love입니다.
      글Love 1. 진실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인가요?
      글Love 2. 진실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의 참 된 의미는 무엇일까요?


    • 2021-03-28 20:48

      장목사님, 노목사님
      안녕하세요?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신바 있기에 야고보서에 대한 제 소견을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는 성경 본문에 대한 견해이며, 신학적 입장은 아닙니다.

      ㉮ 야고보서 2장에서 말씀을 주신 대상은 이미 구원을 받은 자입니다.
      [약2: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 여기에서 ‘형제들아’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진 자’와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는 자’와 사례로 든 21절 아브라함과 25절 라합도 다 구원 받은 자들이며, 이미 구원을 받는 믿음을 가진 이에게 한정된 말씀으로 당연히 행함은 구원의 기준이 아닙니다. 성경의 말씀들은 읽을 때 그 대상과 그 시기가 명시되어 조심해 살펴야 합니다.

      ㉯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은 행함(믿음의 열매)이 있습니다.
      [17.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8.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20.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6.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 2~6절, 믿는 이라면 교회에서 옷차림이나 빈부를 기준으로 사람들을 차별하지 말라.
      ☞ 7~13절, 믿는 이라면 교회에서 (자신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자이니) 율법을 지켜 행하라.
      ☞ 15~16절, 믿는 이라면 교회에서 말로만 하지 말라. Lip service only,

      ㉰ [21~25] 행함은 구원 받은 이를 의롭다 여김/평가하게 하고(21,23,24,25절), 믿음을 온전하게 하고(22절),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23절)을 받게 합니다.
      ☞ 이미 믿는 이는 행함으로 평가/상급/지위가 온전케 됨. 이는 구원의 조건이 아님. 만일, 누가 믿는 이라고 하면서 믿음의 행위에 열매가 없다면 그가 구원을 받은 자인지? 거꾸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한데 사례로 들은 아브라함은 아직 이방인에 불과하여 하나님의 벗이 되기 어렵고, 율법이 없던 시기이니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 의롭다 할 수 없고, 여리고성에 살았고 직업이 매춘부 ‘라합’은 평소 행함이 의롭다 할 수는 없을 겁니다.

      ㉱ 마르틴 루터가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의 오류이며, 그를 하나님께서 개혁에 크게 사용하셨으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가 성경 전체를 제대로 이해한 게 아닙니다. 존 칼뱅이 요한계시록 3장까지 주석하고 4장 이후는 포기한 사실 등과 같이 사람들에게 회자되나, 성경의 말씀들은 적용되는 시대와 대상이 있는데 이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시대는 유대인들이나 선지자들이 교회시대에(신약시대에)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는 것을 이해하지 했습니다. 대상은 성경말씀들은 유대인들에게 주신 말씀과, 이방인들에게 주신 말씀, 그리고 영원한 언약 등이 구분되어야 합니다.


      • 2021-03-29 07:46

        성경 본문에 대한 견해가 바로 신학적 입장입니다.
        신학에 대한 거부감이 너무 과하신 듯 합니다. 이 과함이 자칫 자기 자신을 스스로 부정하게 만드는 일이 되어 질 수도 있음인 것입니다. 지난 번 감리회의 장로님이신데 감리회의 교리(K-신학)를 잡설과 요설이라 하심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철학을 통해 신학으로, 신학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깨달음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가 왜 성경 말씀이며, 성경 말씀이 왜 신학의 근본이자 목표인지 증거 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뜻으로 세워진 신학을 통해 진정한 철학이 무엇인지도 가르쳐야 할 사명이 있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선포이지만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 왜 진리의 말씀이며 생명의 말씀인지를 변증하는 것입니다.
        이 변증의 과정을 거치면 때론 설교도 하나님의 말씀처럼 생명과 진리가 사람들을 향해 선포되기도 할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이것이 제 글Love 입니다.


        • 2021-03-29 09:03

          댓글에서 주장하신 내용 가운데, 제 입장과 다른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누가 삼위일체 대신에 '만유일체'라고 주장한다면 나는 이를 잡설 요설로 봅니다.
          2. 나는 성경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교리를 주기에 이를 국가로 구분하여 A 신학 (미국), B 신학 (영국), C 신학 (카나다), D 신학 (독일).... K 신학 (한국)으로 구분하는게 적당하지 않다고 보며,
          3. 'K' 문자의 형상은 당초 '1' (하나)에서 출발 했으나 위 아래로 갈라져서 가지를 치는 형상이며, 나는 이는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상징으로도 봅니다. 그래서 'K 방역' 혹은 'K 신학'도 좋지 않은 느낌이 있습니다.


          • 2021-03-29 09:43

            1. 삼위일체는 성경을 통한 하나님의 속성에 관한 참 진리이며 만유일체는 인식적 차원에서 말하는 하나님에 관한 표현입니다. 그래서 단순한 만유일체가 아니라 삼위일체로 인한 만유일체인 것입니다.

            '만유일체'란 단어는 잡설과 요설일 수 있으나 만유일체적인 삼위일체 하나님에 관한 인식은 성경이 전하고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이 전하며 깊은 인식의 세계 속에 들어간 이들이 공통적으로 표현을 하고 있는 유사 진리이기도 합니다.

            2. K신학은 한국에 살고 있는 감리교인의 인식적인 표현일 뿐 입니다. 그래서 엄재규 글러버님이 주장하시는 누구에게나 동일한 교리를 갖기 위해선 먼저 언어가 하나로 통일이 되어야 합니다.

            언어가 하나로 통일이 되지 않는 한 동일한 교리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또한 문화와 역사를 비롯한 삶의 체험이 동일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또한 공간적 시간적 제약으로 인해 거의 불가능 합니다. 주님이 오신다면 그러한 일이 이뤄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주님이 오실 그 날을 기다리며 우리는 우리의 신학 즉 기독교대한감리회 신학을 진실한 믿음 가운데 성경의 말씀과 다르지 않은 믿음의 교리로 지켜 나가야 할 뿐이라 생각을 합니다.

            3. 엄재규 글러버님이 지적하심과 같이 K 방역' 혹은 'K 신학'는 그리 온전한 것은 아닙니다. K는 양극화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우리나라(KOREA)는 현재 S와 N으로 나뉘어 그 어느 나라보다 그 어느 민족보다 이념적 양극화 또는 대립이 심화되어 있음이도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국민을 통합시키기 보단 진영 논리로 대립을 극화 시키고 있음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 현실이 이 자화상이 최상의 모습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이 허락하실 최상의 것을 기대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그러다 보면 K신학이 U신학이 될 수도 있고 J신학이 될 수도 있으며 G신학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아직 그 때는 오지 않았음으로 현재의 현실에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으로 K신학인 것입니다. 현재의 자신을 인정함이 신실한 믿음의 사람으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 됩니다.

            현재의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이 보이는 진실한 회개의 모습이기도 하니 말입니다. 엄재규 글러버님에게 K신학을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제 입장이 그렇고 오늘의 현실이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드리는 것 뿐입니다. 이것이 제 글Love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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