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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신학대학교 성경암송대회-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작성자
박온순
작성일
2020-11-28 10:31
조회
616
오늘 아침 카톡을 확인하니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이 도착하였습니다.

“목사님 ‘죄인 중에 괴수임’을 고백마저 올려주세요 그래야 마무리 될 것 같습니다 미안^^”

이 카톡을 보내신 분은 제가 어제(2020.11.27.) 본 감게에 올린 글 “감리교신학대학교 성경암송대회 - 낙태한 죄를 회개하며”라는 제하의 글에 등장하는 감신대의 성경암송대회를 시작하신 분이기도 하며 장학금을 후원하는 분이기도 합니다. 어제 올린 글(KMC 뉴스 기사 외 첨가된 부분)도 사모님의 요청으로 올려드린 글이었습니다. 주님만이 아시기를 바라면서 한 생명을 살해한 것에 대한 속죄하는 마음으로 은퇴 후에 후학들의 영혼을 위하여 섬기는 일이 혹여 본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포장이 되어 평가를 하거나, 그 누군가에게라도 의로운 행위인 것처럼 비춰지는 것에 대한 노파심 때문인 듯합니다. 이미 본인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주변인들이 소문을 내어 이 분들이 누구인지 알만한 분들은 알고 있고, 좋은 소리들로 수없이 칭찬을 받은 바 있기 때문에 그동안 마음의 부담이 크셨던 듯합니다.

저 또한 믿음과 배움의 후배로서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는 시간입니다. 이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칭찬에 목말라 있는 세대, 인정의 욕구에 주려 있는 세대, 섬김보다는 이익이 될 만한 것이 있으면 하이에나처럼 먹거리를 향해 달려드는 세대, 명예와 권력과 재물과 색욕을 탐하는 일에는 수치도 창피함도 모르는 이마가 굳고 뻔뻔한 세대, 무엇보다도 참된 회개가 없는 세대입니다. 그러하기에 이 아침에도 사랑하는 우리 주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여, 제발 제 마음에 정한 마음을 부어 주소서! 제 힘으로는 도저히 제 자신 안에 일고 있는 죄악의 본성을 감당할 수 없사오니 성령님께서 온전히 사로잡아 주셔서 제 속에 일고 있는 죄악의 쓴 뿌리들을 모두 불 살라 주시고, 오직 주님만이 제 안에, 제가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하며 오직 주님만 드러내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주님의 성품이 저의 성품이 되고 주님의 온전함이 저의 온전함이 되게 하소서!”

아래의 글은 2014년 04, 17년도에 “창골산 봉서방”이라는 카페에 위에 소개해 드린 원로 사모님께서 올리신 글입니다. 되도록 원문 그대로를 싣고자 하였으나, 읽기에 편하도록 편집하였으며, 약간의 탈 오자를 수정하였습니다. 위 사모님의 진심이 이 글을 읽는 독자의 마음에 그대로 전달이 되길 소망합니다.


『사순절 기간을 말씀 묵상과 기도로 보내면서 나 스스로를 밝히 볼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윤곽이라도 그려놓고 나의 날을 계수하며 살아가지만 나의 계수함과 하나님의 정하심과는 오차가 있을 수 있으니 그날이 내일 일지 오늘 일지 모르기에 영혼의 준비를 위하여 방해되는 것이 많은 세상, 연락의 분요함을 가지치기하며 살아가니 이제는 조금씩 거룩함에 대한 접근이 느껴집니다. 또 그렇게 살기를 소원 하니 하나님께서 친히 나의 남은 생의 패턴과 싸이클을 조정해주시며 불필요한 것들을 막아 주시는 것을 알게 되어 감사드릴 뿐입니다.

온종일 혼자 있는 것 같으나 그분과만 있어도 얼마나 하루가 짧은지! 천국을 소망하며 사는 것이 얼마니 큰 복인지, 그러면서도 혹여 내가 그분 앞에 설 때에 결산 받아야 할 회개치 못한 부분들이 없는가? 생각나게 해 주십사고 기도하며 말씀을 읽고 암송하는 대부분의 시간가운데 성령께서 다시 깨닫게 해주신 나의 엄청났던 죄를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고백합니다. 그래야만 죄에 대하여 말끔하게 도말 받을 것 같은 부담 때문입니다. 또한 온전한 칭의를 받고 싶어서입니다.

" 허물의 사함을 받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 32:1)

20여 년 전에 이미 깨닫고 회개하여 자유함을 얻었지만 요즘 와서 그 죄가 얼마나 중죄였던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니 다시 그 죄의 자국이 확대되어 분명하게 보여서 한없는 눈물로 회개 합니다.

"하나님! 어떻게 제가 그렇게 무지막지 했을까요?“

혼자 똑똑 했었어요. “개척교회에서는 자녀가 많으면 안 된다”, “자녀에 매달리다보면 사역을 할 수 없으니 자녀는 아들이든 딸이든 간에 두 명이면 족하다” 이러한 생각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고 정한 그럴듯한 결론이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사역은 그만 두었더라도 살인은 하지 말았어야지...”

그런데도 “잘 하는 거야. 잘 결단 했어. 애들 많이 낳아서 제대로 양육도 못시키고 방치하는 무책임은 더 큰 죄야 책임질 만한 숫자라야 돼." 하며 세상 기준을 갖다 맞춰주는 사탄의 연막에 결정적인 범죄의 오점을 남겼습니다. 젊은 사모가 아들 욕심도 부리지 않고 결단력 있게 잘하네, 라고 꾀는 거짓 자긍심까지 갖게 했습니다.

아들만 셋을 두었던 어느 집사님은 "사모님 둘하고 셋은 너무 달라요 누가 바를 사드래도 두개 사는 것과 세 개 사는 게 엉뚱해요." 그런 말만 옳게 들리도록 사단에게 빼앗긴 마음이 연배 권사님의 경험을 듣고 줄렁줄렁 따라가서 그 무서운 죄를 저지르고도 태연했습니다.

둘째 딸을 낳았을 때 장로님 부인인 권사님께서 "사모님 다음에 애기는 아들입니다. 그러니까 꼭 낳으셔야 되요" 둘째가 태어났을 때 그 탯줄과 복부를 보면 거의 알 수 있는지 그런 말씀을 하셨지만 하나님의 주권을 가로채고 우리 의지대로 정해진 단호한 생각 때문에 건성으로 대답했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양심은 있어 조금은 거리낌이 있었지만 죄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합리적인 핑계가 하나님께서 양육하시고 하나님께서 책임지시는 섭리를 내 주권으로 바꿔버린 것입니다. 더욱이 딸아이들이 잘 자라주고 곧 잘 기쁨을 선사해주기 때문에 그 아이들이 초. 중학교 에 다닐 때까지도 아무 생각이 없이 무감각 했습니다.

어느 날 지방 연합 부흥성회를 하는 데 강사님께서 내일 저녁에는 유산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낙태 회개헌금>을 준비해가지고 참석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든 생각은 "별 부흥 성회도 다 있네" 하며 준비는 하고 참석 했습니다.

그날 강사 목사님은 복부를 크게 개복하여 수술 받으셨던 흉터를 보이시며 낙태죄에 대한 엄중함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강사 목사님의 중병으로 수술을 하였는데 수술하는 동안 입신을 하셔서 천국체험을 하신 것입니다. 천국을 다 보시고 났는데 어느 한쪽 계곡 같은 곳에서 애기들의 울음소리 같은 소리들이 들려 무슨 소린가 알아보니 세상을 보지 못하고 어미들 뱃속에서 죽임을 당한 숱한 아이들이 "엄마~~~~ 엄마~~~"부르짖는 소리들이었다는 말씀을 듣고 많이 통곡하며 회개 했습니다.

처음으로 낙태에 대한 죄를 회개한 후 30여년을 죄사함을 받은 자유 함에서 열심이 사역하며 지냈습니다. 처녀시절에는 재건 국민운동을 하며 부락단위로 나아가 저녁이면 가족계획 강의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폭발적인 인구를 줄이기 위한 대책이었습니다. 우리가 결혼했을 때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캠페인이었지요. 지금은 아예 저 출산에 독신 세대이니 다 출산을 국가가 장려하며 대책마련에 고심을 하니 별별 세월을 다 경험해야 하는 것이 인생인가 봅니다.

자녀들이 다 성장하여 가정을 이루고 사랑스런 손자손녀들을 보게 되니 그들이 얼마나 귀한지요. 사위들 역시 법으로 맺어준 아들이라도 아들이니 너무 귀합니다. 날이 갈수록 그들 하나 하나가 소중하게 느껴지며 그들에 대한 장래를 축복하며 꿈을 꾸게 됩니다.

재작년에 작은딸 아이에게 9년차 늦둥이 딸을 주셔서 3남매가 되었습니다.
임신 사실을 알려줬을 때 절대 죄 짓지 말라고 당부 했습니다. 어미의 잠재된 죄책감을 깨워 준 것입니다.

“엄마의 범죄를 답습하지 말아야한다. 생명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일러주며 "엄마는 몰라서 너희들을 바로 태교 하지 못했으니 너는 그 아기를 말씀을 먹이면서 태교를 해라. 산상수훈을 필히 암송하고 그 외에 더 할 수 있는 특별한 은혜의 부분들을 외우며 묵상하도록 해라” 그 외에도 사랑 장, 시편 1편, 139편, 로마서 8장들을 열심히 암송했답니다. 비교적 두 딸의 손자. 손녀들이 많이 암송하는 것을 보며 얼마나 귀하게 느껴지는지 모릅니다.

내 딸들에게는 말씀 양육보다 세상 기준 따라 욕심냈던 것에 용서를 구하며 뉘우쳤습니다. 목회자이면서도 세상도 겸하여 함께 배웠었습니다. 엄마태중에서 열달 동안 말씀을 먹고 태어난 아이는 확실히 다릅니다. 가문에까지도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느낍니다. 그 아이가 화목의 매체가 되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그 생명의 존귀함을 보며 " 생명이 저렇게 귀한 존재인데 내가 영이 어두웠어도 너무 어두웠었구나!" 하며 저질렀던 죄악을 깨닫고 뉘우칩니다. 내가 책임져 성장시켜야 될 줄 알았던 두 딸도 내가아닌 하나님의 순간마다 보호하심이 그들을 만드셨던 것을 체험했기에 얼마나 사랑하는 생명들인지를 잘 압니다. 그런데 ... 내 맘대로 하나님과 심각한 의논도 없이 내 맘대로 처단 했던 이 생명에 대해 나중에 하나님 앞에 이르러서 빛도 못 보고 가게 한 그 순결한 영혼에게 어떻게 빌어야합니까?
내 맘대로 저질렀던 살인 행위는 아무도 보지 못했고 아무도 책망하거나 비난 하지 않으며 아무런 법적 구속력이 없다 해도 내속에서 내 영혼이 소리칩니다. 내 영혼이 질책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의 생애에 대해 얼마나 큰 환상을 가지며 축복 하여야 했을 생명이었는데....얼마나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생명이었을지 모르는데... 어미 보다 몇 배를 값진 인생으로 유익을 끼쳤을 터인데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하게 무참히 없애버렸나? 지금 네 눈앞에 보이는 자녀들만 네 아이고 그 생명은 네 아이가 아니었더냐? 어떻게 그렇게 눈이 멀었었을까? 어째서 내 심령이 사단이 주는 생각에만 끌려갔었을까?’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시139:15-16)

지난해부터 이 말씀을 암송해 오면서 내 죄악이 너무 분명하여 이 말씀 앞에 제가 죄인 중에 괴수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바울은 자신을 죄인의 괴수라고 했지만 타인을 살인하려는 살인 미수에 그쳤지 나처럼 자신 안에 주신 생명을 맘대로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을 죄인의 괴수라 했거든 저야말로 그 말이 내게 타당한 말이 됩니다.

요즘 계모의 살인 사건들이 세상을 경악하게 하며 소름 끼치게 했습니다.
뉴스를 보면서 나라고 그들보다 나은 게 없구나, 자기 자신 속에 주신 생명도 사랑하지 못한 죄인 괴수임을 깨닫고 나니 어느 누구도 나만 못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인의 회개를 받으시고 용서하신 하나님 사랑을 받은 내가 용서 못할 사람이 없고 누구에게도 고개를 처 들고 교만 할 것이 없습니다. 해결 못할 나의 죄를 위하여 친히 죽으신 주님의 보혈이 이 몸을 정결케 하셔서 죄인 괴수의 죄까지 속량해 주시고 받아 주신 사랑을 힘입어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가며 하나님 나라를 바라봅니다. 용서받은 죄인이 하나님 자녀로 영혼의 자유함을 누리며 팔복의 사람으로 심령이 가난한 자 되어 산상수훈의 삶이되기를 소원하며 나의 죄악을 고백합니다.

돌이켜보니 하나님의 사역은 만들어 진 사람을 쓰시기보다 만들어지기를 기대하시며 설익은 채라도 써 주신다는 사실에 죽도록 감사드릴 조건입니다. 세상이 평가하는 사람으로는 비교적 착한 사람 축에 들어갈 겁니다. 그러나 엄연한 하나님의 섭리와 질서 안에서는 파괴자요 행악자입니다. 이미 주님께서 재림 하셨으면 미처 회개하지 못한 죄악을 어찌 하였겠습니까?
저를 위해 오래 참아주시고 인내하시는 우리 주님께 한없는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 하는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

할렐루야! 나의 왕 나의 하나님 평생토록 감사드립니다. 이 땅의 여인들이여! 용서받은 죄일 지라도 흔적은 부끄럽고 괴로운 것이니 나와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맙시다. 생명은 외경 스러운 실존이며 하나님의 소유라서 그분이 책임지십니다.

"나만 그랬나? 다른 이들도 흔히 저지른 일들인데 뭘 그걸 가지고?" 라는 사단의 선심에 속지 맙시다. 저도 그래서 무감각한 때를 천연스럽게 보낸 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남들이 간다고 지옥 길도 같이 따라 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 받아 영생에 들어가기는 하겠지만 그때에 세상 기준과는 너무 다른 하나님 나라를 보며 기절할 것 같은 이질감에 우리 영혼이 낯선 이방인 같으면 얼마나 불쌍합니까? 남들을 관심하지 말고 하나님과 나사이의 문제로 그분 앞에 해결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그의 순교의 죽음을 예언 하셨을 때,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요한에 대해 궁금하여 여쭌 말에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로 답하셨듯이 오늘도 남들을 상관치 말라고 하실 것입니다. 이 사람은? 저 사람은? 하고 궁금해 하다가 자기를 상실합니다. 그것이 우리 육성의 대표적인 기질입니다. 각자가 하나님 앞에선 단독 자입니다. 범죄마저도 세상 풍조의 유행 따라 하는 우리 세대의 종말을 근심하며 경성하여 죄 짓지 않아서 나중에 천국에서 거룩한 주의 신부가 됩시다.

부끄러움을 무릎 쓰고 속량 받은 은혜를 고백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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