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교의 결과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4-12-09 21:08
조회
572
<베드로후서 2:20-22>
20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21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 22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
1. 시작하는 말
배우다 마는 것은 위험한 것/ 시상의 샘도 마시려면 실컷 마셔라/ 조금 마시면 머리가 흐려지나/ 흠뻑 마시면 깨어나리라
시인 페페의 ‘Alps on Alps’라는 시의 한 부분입니다.
시의 세계뿐만 아니라, 모든 세계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좇아 창조주요 섭리자이신 하나님을 믿거나, 하나님의 성육이신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교인들의 세계도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예배할 때는 잘 믿는 것 같은데, 심취하려고 하지 않고, 믿음으로 언행을 하지 않고, 믿음으로 일하지 않고 생활하지 않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주 하나님께 심취하고, 말씀을 순종하여 말하며 행하고, 일하며 생활해야 제대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귀의 궤계에 휘말려 배교하기 쉽습니다.
2. 그리스도를 안 후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는 자들
베드로는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교인들, 특히 향락주의를 표방하는 종교에 물들어서 이성들이나 동성들과 함께 성적으로 방종한 생활을 하면서도, 교회에서 뻔뻔히 지도자 노릇을 하던 사람들을 경고한 것입니다.
교인은 주 되시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하게 된 사람입니다.
“구주”의 헬라어 소테로스(σωτήρος)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해 사용된 용어입니다.
이교도들은 제우스와 아폴로와 에스쿨라피우스를 구주라 불렀고, 로마에서는 가이사나 아구스도가 외국과의 전쟁에서 승전하고 개선할 때에, 백성들이 구주라고 부르면서 만세를 외쳤습니다.
베드로는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 예수님만이 믿는 사람들의 죄 사함과 성결한 삶과 영생 구원을 얻게 하시는 것을 강조하려고 구주라고 한 것입니다.
“앎”의 헬라어 에피그노세이(ἐπιγνώσει)는 단순히 이성적으로 아는 지식을 뜻하는 그노시스(γνώσις)와는 달리, 충분하거나 완전한 지식을 의미하는 용어입니다. 하나님의 영이시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의 감화와 감동으로 인한 영적 사고나 영적 지각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은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교인들 중에는 단순히 이성으로 하나님을 알거나,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속성을 아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와 달리, 성령을 좇아 주 예수님과 영적 연합을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고, 경외하며 섬기는 체험을 통해서 주 하나님을 더욱더 깊이 체득하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주 하나님의 치유의 기적을 부인하는 신학교 교수들과 교역자들과 교인들이 있지 않습니까? 직접 체험을 하거나,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는 것을 지켜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2020년 9월 27일 주일 밤이었습니다. “목사님, 혹시 지금 주무시고 계신 거 아니면 기도 부탁드려도 될까요? 4일 후에 큰 시험이 있는데 두통이랑 복통이 있네요. 보이스톡 해요.”
미국에 유학을 가서 열심히 공부하다가 몸이 아프거나 심신이 힘들 때면, 가끔 전화로 기도를 받고 치유되는 체험을 하였고, 귀국하면 안수 기도를 받고 치유되는 체험을 하곤 하더니 결국 미국의 내과 의사가 되었고, 남편도 미국의 치과 의사인 김 아무개에게서 온 것입니다.
밤 10시 30분쯤에, 다시 온 보이스톡으로 한 10분간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한국말을 모르는 남편과 함께 기도를 받은 내과 의사는, 밝은 목소리로 “기도 중에 몸과 마음이 시원해졌어요. 감사해요.”라고 했습니다. 필요하면 또 전화하고, 큰 시험도 찰 치르라고 권면했습니다.
며칠 후에 온 보이스톡입니다. “목사님, 사모님, 인사가 늦었어요. 목사님 기도 덕분에 시험 무사히 마쳤어요. 감사해요. 아직 결과는 안 나와서 모르지만 시험을 끝까지 아프지 않고 마쳐 감사해요.”
나중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미국 남부 지방에 사는 어느 청년이, 한겨울에 와이오밍에 사는 친구를 방문했습니다. 날씨가 영하 15도 가량 내려간 어느 날 오후에, 두 사람은 차를 타고 시골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꽁꽁 언 호수를 보고, 그들은 차를 세워 놓고 호수를 구경하기로 했습니다. 와이오밍에 사는 친구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호수 한가운데로 뛰어 들어갔으나, 남부에서 온 청년은 호수 한가운데로는 갈 엄두도 못 내고, 호숫가에서 발뒤꿈치를 든 채로 불안해하며 가만가만 걸어 다녔습니다. 그때 청년의 눈에 한 농부가 트랙터를 몰고, 호수 한가운데로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엄청난 차이는, 남부 지방에 사는 청년은 그 호수를 겪어 본 적이 없었고, 와이오밍에 사는 친구와 트랙터를 몰고 간 농부는 꽁꽁 언 호수가 어떻다는 것을 수없이 겪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 하나님을 믿되 주 하나님의 은혜의 호숫가를 의심과 불안한 마음으로 오가는 교인들이 있고, 아이큐 세 자리인 자기 머리로 이해되는 것만 인정하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주 하나님의 은혜의 호수 한가운데 들어가서 마음껏 사랑과 기쁨을 누리며 받은 은혜와 복을 나누는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으로 사는 교인들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하나님의 말씀이 잘 이해되지 않더라도, 믿고 순종해서 주님의 말씀대로 이뤄지는 것을 체험해야 합니다. 그런 영적 체험을 많이 해서, 주 하나님을 깊이 알면 알수록 그 만큼 더 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영생의 주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되면, 살고 죽는 것까지도 전적으로 맡기게 되는 것입니다. 주 하나님 안에서 생사를 초월하며, 감사와 영적 기쁨을 누리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23 이하를 보면,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라는 바울 사도의 고백이 나옵니다.
주 하나님을 앎으로 부정과 부패, 음란과 불의, 거짓과 위선, 왜곡과 음해 등 세상의 온갖 죄악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패배하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나중 형편은, 주 하나님을 믿기 전보다 더 심해질 것입니다. 의의 도인 구원의 복음을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릴 것이었더라면, 아예 주 하나님의 말씀을 몰랐던 것이 구원은 못 받지만 형편은 더 나은 것입니다.
배교의 결과는 그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을 엄청난 불행 속으로 휘몰아 가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을 판 가롯 유다는 양심의 가책을 못 이겨 몹시 괴로워하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참한 종말을 초래했습니다. 불완전하고 부족하고 병약한 인류 중 한 명인 자기의 양심을 붙잡고 씨름하는 대신에, 주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처럼, 회개를 했으면 어떠했을까 싶습니다.
아합 왕은 왕이 되는 특권을 누렸으므로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잘 섬기고, 앞장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정치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합 왕은 이방 여인 이세벨을 왕비로 삼고, 외국의 우상들을 믿고 섬긴 탓에 그 자신과 백성들이 심한 고통을 당했습니다.
가끔 배교로 인해 불행과 고통을 겪으면서도 회개하지 아니하고, 자기 합리화 내지는 자기 정당화에 급급한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그런 식으로, 우주보다 더 큰 사랑의 주 하나님께 다시금 용납될 기회를 날려 버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더 큰 불행과 고통을 막기 위해서 고쳐야 할 악습은, 책망과 징계와 징벌에 대해 깨닫고 회개할 기회로 삼는 대신에, 어떻게 해서라도 자기 합리화 내지는 자기 정당화를 하는 것입니다.
하녀가 임신한 것을 눈치 챈 김 대감 댁 마님이, 하녀를 야단쳤습니다. “내가 뭐라더냐. 그러기에 사내놈들 조심하라고 했잖아. 동네 창피하니 어서 나가!” 그러자 하녀가 “마님, 아이를 낳는 게 창피한가요. 마님께서도 아이를 낳지 않으셨어요.” 마님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그건 달라. 내가 낳은 아이는 대감의 아이이잖아.” 하녀가 아주 다행이라는 듯이 말했습니다. “사실은 제 뱃속에 아이도 대감님 아이에요. 이젠 괜찮지요?”
몸은 교인이고, 마음은 배교자인 교인들도 있지 않습니까? 교회 안에서는 믿는 사람이나, 교회 밖에서는 안 믿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배교자들, 특히 가짜 지도자들에 대해 불결과 경멸의 대상으로 여겨지던 개와 돼지의 구역질나는 습관에 대한 속담을 인용했습니다.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이 오신 것은 인격 수양이나 인격 개선, 시대와 장소에 따라 선과 악, 시와 비가 뒤바뀌기도 하는 양심 행위나 율법 행위나 종교 행위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온 인류와 온 인류의 모든 유형무형의 결실을 다 동원해도 얻을 수 없는, 지옥으로 끄는 죄의 사함과 거듭남, 자유와 평화, 성결한 삶과 영생의 구원을 믿음으로 얻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들의 공동체인, 하나님의 교회를 떠난 교인들과 떠나는 교인들을 권면해야 합니다. 다니엘 12:3 후반에,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5:7에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설교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신약_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7권/ 기타 다수
아멘.
목사님께서 주안에서 영육 간에 늘 강건하시길 기도합니다. 본문에 대한 제 소견을 별도 게시물로 공유합니다.
필자의 설교에 "아멘."으로 화답하시고, "목사님께서 주안에서 영육 간에 늘 강건하시길 기도합니다. 본문에 대한 제 소견을 별도 게시물로 공유합니다."라고 하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