思자는 田(전)과 心(심)의 합자이다. 두뇌(囟→田)와 마음(≒心)이라는 데서 「생각하다」를 뜻한다. 옛날 사람은 머리나 가슴으로 사물을 생각한다고 여겼다. 소전에서는 囟(정수리 신)자가 들어간 恖(생각할 사)자가 ‘생각’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囟자는 사람의 ‘정수리’를 그린 것이다. 옛사람들은 사람의 정수리에는 기가 통하는 숨구멍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囟자는 그러한 모습으로 그려졌었다. 그러니 恖자는 머리(囟)와 마음(心)으로 생각한다는 의미에서 깊게 생각한다는 뜻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해서에서부터는 囟자가 田자로 바뀌면서 본래의 의미를 유추하기 어렵게 되었다. 慕자는 心(심 마음)의 변형인 뜻을 나타내는 마음심밑(㣺(=心, 忄) 마음, 심장)部와 음을 나타내는 동시에 모습ㆍ모양의 뜻을 가지는 莫(막)으로 이루어진다. 마음에 모습을 회상한다는 뜻이다. 莫자는 해가 저무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석양이 지는 저녁 하늘을 바라보면 마음이 적적하면서도 누군가가 그리워지기도 할 것이다. 慕자에 쓰인 莫자는 그러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쓰였다. 慕자는 이렇게 쓸쓸함이 느껴지는 莫자에 心자를 결합한 것으로 ‘사모하다’나 ‘그리워하다’라는 뜻을 표현하고 있다. (디지털 한자사전 e-한자)
사모는 우러러 받들고 마음속 깊이 따름이다. 애틋하게 생각하고 그리워함이다. 몇 차례 그와 만나다 보니 사모의 정이 우러나게 되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를 사모하는 마음이 가슴에 사무쳤다. 그는 선생님을 학문적으로 사모하고 존경하는 정이 깊었다. 신라의 중 의상을 사모한 당나라의 선묘가 이별을 슬퍼하여 떠나는 배를 바라보다 바다에 몸을 던졌다. 한층 더 존경하는 마음과 사모하는 정이 은근히 스며나는 한상이의 눈치를 살살 보아가며 잔을 입에 대는 것이었다. 상사화는 꽃과 잎이 서로 다른 시기에 피고 지기 때문에 서로 떨어져 만나지 못한 채 사모하는 정에 비유해 불리고 있는 식물의 고유명이다. 단속곳 춤은 주인의 딸을 사모하다 상사병으로 죽었다는 총각 머슴의 넋을 달래고자 아낙네들이 속옷을 머리에 쓰고 바지통에 팔을 넣고 춤을 추는 해원굿이다.
임(님)은 그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로서 ‘씨’보다 높임의 뜻을 나타낸다. 주로 인터넷상에서 잘 모르는 상대방을 높여 이르는 이인칭 대명사이기도 하다. 속담으로 ‘임도 보고 뽕도 딴다’는 뽕 따러 나가니 누에 먹이를 장만할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애인도 만나 정을 나눈다는 뜻으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이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사모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은 '임'입니다. '님'은 '임'의 옛말입니다. 김소월은 ‘임’을 읊은 시인이다. 그는 이념의 ‘임’을 현실의 ‘임’ 곁에 앉히고 조국의 상실을 ‘임’의 여읨으로, ‘오는 봄’을 ‘임’과의 재회의 날로 형상화하고 있다.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에는 서시 「군말」에서 결시 「독자에게」에 이르기까지 9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그 중 ‘님’이라는 말이 나타나는 작품은 「님의 침묵」을 포함 46편이다. 서시와 결시를 연결해보면 나라 잃고 헤매는 백성들에게 하나의 방향을 제시하려는 의도에서 『님의 침묵』을 쓴 것으로, 나라를 찾기까지 당대의 읽을거리에 한하기를 희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의도와는 달리 실제의 작품을 보면 현실의 ‘임’을 노래한 것이 가장 많고, 이념의 ‘임’이 그 다음이며, 지향의 ‘임’을 읊은 경우가 가장 적다. “님이 오시면 그의 가슴에 천국을 꾸미려고” 돌아온 것이다. 이렇게 지향의 ‘임’보다 이념의 ‘임’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는 데서 한용운 시의 한 특성을 보게 되며, 그의 종교시가 가지는 한계와 만나게 되는 것이다. 김소월이 현실의 ‘임’과 이념의 ‘임’을 동궤에 놓고 읊은 데 대하여 한용운은 현실의 ‘임’과 이념의 ‘임’뿐만 아니라 지향의 ‘임’까지 같은 궤에 놓고 있다. 이들의 시에서 양적으로 보면 현실의 ‘임’이 대다수요, 이것이 시적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지만, 1920년대라는 문학사적 관점에서 보면 이념의 ‘임’이 더 중요시된다. 왜냐하면 고려 때부터 군왕을 표상하기 시작하던 ‘임’이 신체시에 오면 ‘필요한 사람’이나 ‘국토’ 또는 ‘호국신’ 등으로 변용되다가 이 시대에 와서 잃어버린 조국을 전 생명적 애정의 대상인 ‘임’으로 표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유치환의 『청마시초』에 수록된 55편의 시 중에는 ‘임’이 표면에 나타나지 않고 현실의 ‘임’일 경우 ‘너’(그리움) · ‘그대’(병처) 등으로 나타나고 이념의 ‘임’일 경우 “마지막 우러른 태양”(日月), “운표(雲表)에 솟은 그윽한 바비론”(點景에서) 등의 상징적 표현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경향의 원인은 시대상황과 언어심리적인 측면에서 해명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1930년대 후반은 조선어의 말살정책과 더불어 파시즘이 더욱 강화되던 때라 1920년대의 김소월이나 한용운처럼 조국을 ‘임’으로 표상하는 시를 읊기가 어려웠을 것으로 내다볼 수 있다. 따라서 조국으로서의 ‘임’은 시적인 표현능력의 성숙과 함께 상징의 형태로, 보다 내밀화된 어휘로 변용된다. 이와 같은 경향을 언어심리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임’이라는 어휘가 관념적인 것이요, 구체성이 결여된 것이므로 앞 시대 사람들이 즐겨 쓰던 어휘가 진부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보다 구체적이고도 친밀감을 주는 새 어휘로의 대치를 요구하게 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서정주의 경우에서 보듯 ‘금녀’ · ‘수나(叟娜)’와 같은 이름의 사용이요, 유치환의 경우에서 보듯 ‘그대’ · ‘너’와 같은 대명사의 사용이다. 시에 쓰이는 언어는 새로운 문맥 속에서 문학언어로서 참신성과 새로운 의미를 지니고 형상화하게 된다. ‘임’이라는 말은 그 내포가 커서 의식의 분화와 더불어 그것이 문학언어로서 새로운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게 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뒤 우리에게는 조국의 광복과 더불어 이념의 ‘임’은 줄고, 현실의 ‘임’은 그대로 있으나 표면에 나타나느니보다 내밀화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思慕하는 임금님
함창석
思자는 田(전)과 心(심)의 합자이다. 두뇌(囟→田)와 마음(≒心)이라는 데서 「생각하다」를 뜻한다. 옛날 사람은 머리나 가슴으로 사물을 생각한다고 여겼다. 소전에서는 囟(정수리 신)자가 들어간 恖(생각할 사)자가 ‘생각’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囟자는 사람의 ‘정수리’를 그린 것이다. 옛사람들은 사람의 정수리에는 기가 통하는 숨구멍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囟자는 그러한 모습으로 그려졌었다. 그러니 恖자는 머리(囟)와 마음(心)으로 생각한다는 의미에서 깊게 생각한다는 뜻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해서에서부터는 囟자가 田자로 바뀌면서 본래의 의미를 유추하기 어렵게 되었다. 慕자는 心(심 마음)의 변형인 뜻을 나타내는 마음심밑(㣺(=心, 忄) 마음, 심장)部와 음을 나타내는 동시에 모습ㆍ모양의 뜻을 가지는 莫(막)으로 이루어진다. 마음에 모습을 회상한다는 뜻이다. 莫자는 해가 저무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석양이 지는 저녁 하늘을 바라보면 마음이 적적하면서도 누군가가 그리워지기도 할 것이다. 慕자에 쓰인 莫자는 그러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쓰였다. 慕자는 이렇게 쓸쓸함이 느껴지는 莫자에 心자를 결합한 것으로 ‘사모하다’나 ‘그리워하다’라는 뜻을 표현하고 있다. (디지털 한자사전 e-한자)
사모는 우러러 받들고 마음속 깊이 따름이다. 애틋하게 생각하고 그리워함이다. 몇 차례 그와 만나다 보니 사모의 정이 우러나게 되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를 사모하는 마음이 가슴에 사무쳤다. 그는 선생님을 학문적으로 사모하고 존경하는 정이 깊었다. 신라의 중 의상을 사모한 당나라의 선묘가 이별을 슬퍼하여 떠나는 배를 바라보다 바다에 몸을 던졌다. 한층 더 존경하는 마음과 사모하는 정이 은근히 스며나는 한상이의 눈치를 살살 보아가며 잔을 입에 대는 것이었다. 상사화는 꽃과 잎이 서로 다른 시기에 피고 지기 때문에 서로 떨어져 만나지 못한 채 사모하는 정에 비유해 불리고 있는 식물의 고유명이다. 단속곳 춤은 주인의 딸을 사모하다 상사병으로 죽었다는 총각 머슴의 넋을 달래고자 아낙네들이 속옷을 머리에 쓰고 바지통에 팔을 넣고 춤을 추는 해원굿이다.
임(님)은 그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로서 ‘씨’보다 높임의 뜻을 나타낸다. 주로 인터넷상에서 잘 모르는 상대방을 높여 이르는 이인칭 대명사이기도 하다. 속담으로 ‘임도 보고 뽕도 딴다’는 뽕 따러 나가니 누에 먹이를 장만할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애인도 만나 정을 나눈다는 뜻으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이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사모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은 '임'입니다. '님'은 '임'의 옛말입니다. 김소월은 ‘임’을 읊은 시인이다. 그는 이념의 ‘임’을 현실의 ‘임’ 곁에 앉히고 조국의 상실을 ‘임’의 여읨으로, ‘오는 봄’을 ‘임’과의 재회의 날로 형상화하고 있다.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에는 서시 「군말」에서 결시 「독자에게」에 이르기까지 9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그 중 ‘님’이라는 말이 나타나는 작품은 「님의 침묵」을 포함 46편이다. 서시와 결시를 연결해보면 나라 잃고 헤매는 백성들에게 하나의 방향을 제시하려는 의도에서 『님의 침묵』을 쓴 것으로, 나라를 찾기까지 당대의 읽을거리에 한하기를 희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의도와는 달리 실제의 작품을 보면 현실의 ‘임’을 노래한 것이 가장 많고, 이념의 ‘임’이 그 다음이며, 지향의 ‘임’을 읊은 경우가 가장 적다. “님이 오시면 그의 가슴에 천국을 꾸미려고” 돌아온 것이다. 이렇게 지향의 ‘임’보다 이념의 ‘임’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는 데서 한용운 시의 한 특성을 보게 되며, 그의 종교시가 가지는 한계와 만나게 되는 것이다. 김소월이 현실의 ‘임’과 이념의 ‘임’을 동궤에 놓고 읊은 데 대하여 한용운은 현실의 ‘임’과 이념의 ‘임’뿐만 아니라 지향의 ‘임’까지 같은 궤에 놓고 있다. 이들의 시에서 양적으로 보면 현실의 ‘임’이 대다수요, 이것이 시적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지만, 1920년대라는 문학사적 관점에서 보면 이념의 ‘임’이 더 중요시된다. 왜냐하면 고려 때부터 군왕을 표상하기 시작하던 ‘임’이 신체시에 오면 ‘필요한 사람’이나 ‘국토’ 또는 ‘호국신’ 등으로 변용되다가 이 시대에 와서 잃어버린 조국을 전 생명적 애정의 대상인 ‘임’으로 표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유치환의 『청마시초』에 수록된 55편의 시 중에는 ‘임’이 표면에 나타나지 않고 현실의 ‘임’일 경우 ‘너’(그리움) · ‘그대’(병처) 등으로 나타나고 이념의 ‘임’일 경우 “마지막 우러른 태양”(日月), “운표(雲表)에 솟은 그윽한 바비론”(點景에서) 등의 상징적 표현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경향의 원인은 시대상황과 언어심리적인 측면에서 해명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1930년대 후반은 조선어의 말살정책과 더불어 파시즘이 더욱 강화되던 때라 1920년대의 김소월이나 한용운처럼 조국을 ‘임’으로 표상하는 시를 읊기가 어려웠을 것으로 내다볼 수 있다. 따라서 조국으로서의 ‘임’은 시적인 표현능력의 성숙과 함께 상징의 형태로, 보다 내밀화된 어휘로 변용된다. 이와 같은 경향을 언어심리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임’이라는 어휘가 관념적인 것이요, 구체성이 결여된 것이므로 앞 시대 사람들이 즐겨 쓰던 어휘가 진부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보다 구체적이고도 친밀감을 주는 새 어휘로의 대치를 요구하게 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서정주의 경우에서 보듯 ‘금녀’ · ‘수나(叟娜)’와 같은 이름의 사용이요, 유치환의 경우에서 보듯 ‘그대’ · ‘너’와 같은 대명사의 사용이다. 시에 쓰이는 언어는 새로운 문맥 속에서 문학언어로서 참신성과 새로운 의미를 지니고 형상화하게 된다. ‘임’이라는 말은 그 내포가 커서 의식의 분화와 더불어 그것이 문학언어로서 새로운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게 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뒤 우리에게는 조국의 광복과 더불어 이념의 ‘임’은 줄고, 현실의 ‘임’은 그대로 있으나 표면에 나타나느니보다 내밀화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