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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받으신 그리스도를 본받자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4-12-02 20:38
조회
459


<베드로전서 4:1-6>

1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2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3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4이러므로 너희가 저희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저희가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5저희가 산 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직고하리라 6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니라

1. 시작하는 말

고난을 안 받는 사람은 없습니다. 고난의 원인과 내용이 다를 뿐입니다. 어차피 고난을 받을 바에는 죄악의 고난이 아니라, 값진 고난을 취할 필요가 있습니다.

초대 교회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성육이신 주 예수님 그리고 주 하나님을 믿게 하시며 신앙생활을 지도하시는 성령에 대해 가르치고, 우상 숭배를 배격하는 바람에 이교도들의 박해를 받았습니다. 또, 음란한 세대에 성적인 순결을 강조하고, 성령을 좇아 성결한 생활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에, 그리스도인임을 표명하거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은 고난은 물론, 목숨을 거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소원 성취만을 위해 교회를 다니는 이들이 있습니다.

2. 고난 받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자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고난 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신 것과 그 경이로운 결과가 빌립보서 2:6 이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요는 그리스도께서 죄와 멸망의 길을 가는 인류 구원을 위해서, 이미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성육하셔서 극도의 고통이자 극도의 치욕인 십자가의 대속 제물이 되시기까지 고난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지극히 높여서 모든 존재로 하여금 무릎을 꿇게 하시고, 주로 시인해서 당신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좇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지옥으로 끄는 죄의 사함과 거듭남, 자유와 평화, 성결한 삶과 영생의 구원을 받은 우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아야 합니다. 대속 제물이 되신 은혜를 생각하고,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을 받을 정신 무장을 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탐욕 성취를 위한 정신 무장이나, 권력을 잡았을 때 부정 축재를 위한 정신 무장이나, 침략 전쟁을 위한 정신 무장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나, 복음 전파를 위해서나,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나, 교회 안팎의 모든 임무 수행을 위해서나 고난 받을 정신 무장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그리스도의 구속 은혜를 생각하면서 정신 무장을 하라는 것입니다.

1813년에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영국 선교사인 리빙스턴(D. Livingstone)은 10살부터 20살까지 방적 공장의 직공으로 있다가, 고학으로 글래스고 대학에서 헬라어와 신학과 의학을 배웠습니다. 1840년에, 런던 전도 협회의 의료 선교사로서 아프리카에 파송되어 위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유럽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아프리카 대륙을 횡단한 탐험가로서도 위대한 업적을 남겼고, 노예제도 폐지 운동가로서도 위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암흑대륙의 아버지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리빙스턴이 아프리카의 정글 속에서 고독과 싸우면서 선교를 하다가 잠시 귀국했을 때, 한 학생이 물었습니다. “그렇게 고생스럽고 고독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16년 동안이나 살 수 있었습니까?” 즉시 리빙스턴이 대답했습니다. “주님의 두 마디 약속이 나로 하여금 불평 없이 찬송을 부르며 16년 동안을 무사히 지내게 해 주었습니다. 그 첫 번째 약속은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겠다는 말씀[요 14:18]이고, 두 번째 약속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말씀[마 28:20]입니다.

어차피 인생에 고난이 있게 마련이라면 실수나 잘못이나 죄악의 고난이 아니라, 값진 고난을 취할 만도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 곧 주님의 구속 은혜를 생각하면서, 주님의 영광을 위해 어떠한 고난이라도 받을 정신 무장을 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주님 안에서 어떤 핍박이나 환난이나 고난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극심한 고난을 받는다고 해 봐야 기껏 죽기밖에 더하겠습니까? 죽어 봐야 주님을 믿었는데 부활밖에 더하겠습니까?

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주님의 고난을 본받을 정신 무장을 해야 할 이유가 뭡니까? 대속 제물로 운명하시기까지 고난 받으신 주님이, 죄의 세력을 분쇄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주님 안에 거하는 우리에게는, 죄의 그림자조차도 얼씬거릴 수 없습니다. 주님 안에 거하는 우리가 고난을 받는다면 죄로 인한 고난이 아니라,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주님을 위한 고난일 뿐입니다. 그 모든 고난은 주님 안에 거하는 우리에게 반드시 무릎을 꿇게 마련입니다. 줄기찬 환난과 핍박을 당하면서도 죽기까지 복음 선교의 삶을 살았던 바울 사도의 고백입니다. 고린도후서 2:14에,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 확고히 거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어떤 분야에 종사하든지 주님 안에 확고히 거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고난을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사방에 주님을 아는 냄새를 나타내십니다.

주님이 속죄의 제물이 되심으로써 인간을 지배하는 죄를 분쇄하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는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시기를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사람들을 지옥으로 끌고 가는 죄를 사하시는 주님의 용서의 사랑을 엉뚱하게 이해하거나 남용하거나 악용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스갯소리입니다.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빵 열 개 중에 여덟 개를 먹었으면 몇 개가 남았나요?” 한 아이가 손을 들고 말했습니다. “여덟 개요!” 의아스러운 얼굴로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열 개 중에 여덟 개를 먹었는데 왜 여덟 개가 남지?”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요. 먹는 게 남는 거래요!”

이런 줄 아는 잘난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 있지 않습니까? 주님을 믿어 구원의 은혜와 출세의 복을 받고는 먹는 게 남는 줄 알고, 주님은 아랑곳없이 먹어서는 안 되는 것까지 엄청나게 먹다가 형벌의 고난을 받는 이들이 있지 않습니까?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이 더 이상 죄악의 욕구를 좇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좇게 하려고 그들의 과거의 행실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열거한 죄의 항목들 중에 왜 “연락”이 들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연락은 ‘잔치를 베풀고 즐기는 일’이라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우상 숭배와 관련되거나 음란과 관련되는 잔치를 베풀고 즐기는 일’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죄악 생활을 그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 베드로는, “너희가 저희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저희가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라고 했습니다. 방탕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으레 방탕한 생활을 함께하지 않는 사람들을 이상히 여기며 비방합니다. 그러므로 믿는 우리는, “너만 깨끗하냐? 너만 잘났냐? 네가 무슨 성인군자냐? 세상이 다 그런데 왜 너만 그렇게 유별나냐?”라고 하는 사람들의 비방과 조롱에 대해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맞서 다툴 필요도 없습니다. 모든 걸 듣고 보시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우리는 다만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주님을 믿는 사람을 상대로 마음놓고 비방하고 조롱하지만, 실은 산 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하나님께 바른대로 고하여 알리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언행의 죄를 이실직고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근거를 만드시기 위해 죽은 사람들이 살아 있었을 때,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파하신 이유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 곧 성령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의 내주로 말미암아 주님을 믿어 의롭다 하심을 받은 교인들이, 죄성을 지닌 인간으로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지만 내주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부활되어 신령한 삶을 살게 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알게 모르게 죄의 종이 되어 멸망의 길로 끌려가던 인류 중에 속했던 우리가, 대속 제물이 되시기까지 고난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얻고 영생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그 엄청난 은혜를 생각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을 받을 정신 무장을 해야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지배하던 죄의 세력을 분쇄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자아의 욕구를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게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아무쪼록, 비방과 핍박과 조롱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보고 들으시는 심판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시기 바랍니다.

설교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신약_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7권/ 기타 다수



전체 2

  • 2024-12-05 09:00

    아멘.
    목사님께서 주안에서 영육 간에 늘 강건하시길 기도합니다. 본문에 대한 제 소견을 별도 게시물로 공유합니다.


    • 2024-12-05 19:15

      필자의 설교에 "아멘."으로 화답하시고, "목사님께서 주안에서 영육 간에 늘 강건하시길 기도합니다. 본문에 대한 제 소견을 별도 게시물로 공유합니다."라고 하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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