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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를 거부하고 차별을 반대하는 것은 준엄한 하느님의 명령이다. / 박승복 목사

작성자
김경환
작성일
2021-05-22 14:03
조회
756
<혐오와 차별을 반대하는 감리회 모임>에서 당당뉴스에 올려진 박승복 목사님의 글을 공유합니다.

혐오를 거부하고 차별을 반대하는 것은 준엄한 하느님의 명령이다. / 박승복 목사

근자 슬프고도 안타까운 일들이 내가 사랑하는 위대한 감리회에서 거리낌 없이 자행되는 것을 보고, 무겁게 손을 놀려 외치고자 한다.
감리회의 위대함은 한 가지 사건을 호출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1931년 기독교 조선감리회는 양주삼 총리사의 인도로 여성들에게 목사안수를 하였다. 이는 세계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당시로는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더하여 놀라운 것은 선교지에 선교사로 온 미국인 여성 선교사가 조선인 양주삼 총리사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여 안수를 받은 것이다. 서양적 시선으로 볼 때 100년 전 ‘일제 강점기’ 한반도는 ‘미개와 야만’이 가득한 장소였다.
이 사건 하나만으로도 감리회는 위대하다. 오늘 우리의 감리회와 한국 교회를 미개와 야만으로 이끄는 혐오와 차별은 반드시 척결되어야 하는 사타이며, 마귀이다.

-. 그럼 그 시작으로 부터 길을 떠나보자.

혐오(嫌惡)와 차별(差別)이 시작되는 지점은 천박하고, 유치하며, 졸렬(拙劣)하며, 살인적이다.
차별, 그 해소의 방식은 ‘품 넓은 시선’으로 유치(乳齒)를 지나면 그럭저럭은 해소될 수도 있다.
그러나 혐오는 사뭇 다르다. 혐오를 해소하는 방법은 오직하나다. 바로 ‘죽이는 것’이다. 살해하여 제거하는 것이 혐오를 해소하는 유일한 방식이다. 혐오를 조장하는 자들의 심리적 이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살해(殺害)’의 의도가 치(齒)떨리게 무서운 것은 차별과 혐오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자신들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21세기와 4차 산업혁명을 목도하고, COVID-19의 팬데믹(pandemic)을 이겨내는 대명천지에 아직도 구시대적인 사고에 포박되어 현대의 흐름도 모르고,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정신도 모르는 ‘어린이’들이 감리회를 망치는 것은 구슬프고 한심하다 할 것이다.

-. 쓰라린 가슴을 안고 소리 내어 외쳐본다.

1. 하느님은 누구의 하느님인가?

여러 성서 본문을 인용해 본다.
출애굽기에서 다음을 그대로 인용한다.
출 22,21 너는 異邦(이방) 나그네를 壓制(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虐待(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이었었음이니라.
출 23.9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사정을 아느니라.

레위기에서 다음을 인용한다.
레 19.34 너희와 함께 있는 他國人(타국인)을 너희 中(중)에서 낳은 者(자) 같이 여기며 自己(자기)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客(객)이 되었더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신명기에서 인용한다.
신 10.18. 孤兒(고아)와 寡婦(과부)를 爲(위)하여 伸寃(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植物(식물)과 衣服(의복)을 주시나니
19.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前(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

예언서 중 스가랴와 말라기에서 인용한다.
슥 7.10. 寡婦(과부)와 孤兒(고아)와 나그네와 窮乏(궁핍)한 者(자)를 壓制(압제)하지 말며 남을 害(해)하려하여 心中(심중)에 圖謀(도모)하지 말라 하였으나
말 3.5.내가 審判(심판)하러 너희에게 臨(임)할 것이라 術數(술수)하는 者(자)에게와 거짓 盟誓(맹서)하는 者(자)에게와 품 군의 삯에 對(대)하여 抑鬱(억울)케 하며 寡婦(과부)와 孤兒(고아)를 壓制(압제)하며 나그네를 抑鬱(억울)케 하며 나를 敬畏(경외)치 아니하는 者(자)들에게 速(속)히 證據(증거)하리라 萬軍(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하느님은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의 하느님임을 토라와 예언서에서 지속적으로 주창하고 있다. 심지어 말라기의 입을 빌어 그들을 억울하게 하는 자들은 나 여호와를 무시하는 자라며 준엄한 심판도 천명하신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 하느님이 아끼시고, 도우라고 명령하는 우리의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는 누구인가?

-. 생명이 담보되지 하지도 않는 공장에서, 생명의 값어치를 정당하게 보장 받지 못하는 노동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노동하는 노동자들이다.
-. 등골이 휘어지고, 손발이 부르트게 일하지만 제 값은 농협과 중간상에게 빼앗기는 농부들, 지주들이 가져가는 직불금에 또 한 번 가슴에 멍이 드는 농군들이다.
-. 18세가 되면 성인 이라는 이유로 무엇 하나 제대로 준비 되지 못한 채, 거리로 생존경쟁의 현장으로 참담하게 내 몰리는 아직 ‘어린 성인’들이다.
-. 철지난 색깔론과 사문화 된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감옥에 붙잡혀있는 양심수들과 그 가족들이다.
-. 권력자들과 그에 기생하는 언론 권력에 의해 사생활이 낮낮히 까발리고, 온 가족이 여론의 제물이 되어, 자살로 몰리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다른’ 성적경향성으로 인해 손가락질을 당하고, 상식적이며, 일반적인 사회 활동이 가학적인 제제를 통해 가족들과 친구들과 심지어 교회에서 배척(排斥) 당하는 ‘성적 소수자들’이다.

이들을 사회에서 교회에서 내쳐지게 하는 것은 ‘다름’에 대한 무지이며, 두려움이고, 공포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용기가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지극한 명령이다.

손 내밀지 못하는 감리회와 한국교회의 목회자와 성도들이여!!!

“무지에서 깨어나고, 두려움 없이 공포에 입 맞추라. 그래서 하느님의 지상 최고의 명령을 믿음으로 수호하라. 그리하지 않으면 살아 역사하시는 하느님이 진노하실 것이다.”

2. 오늘 우리를 비참하게 하는 문제. “소도미(Sodomy)”는 무엇인가?

소도미의 사전적 의미는 남색(男色)과 수간(獸姦)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소도미는 힘 있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자들에 의해 자행된 성적 도착과 타락이며 성적 착취의 끝자락에서 자행되는 가증(可憎)한 짓거리였다.
성서, 창세기 19장의 소돔과 고모라의 기사에서 등장하는 장면도 ‘나그네’를 내어 놓으라고 하는 권력자들의 간악함과 그에 동조하는 무리들을 하느님이 심판하신 내용이 그 내용이다. ‘나그네’를 함부로 하고, 핍박하려는 자들은 ‘용서 없는’ 하느님의 무서움을 알게 해 주는 장면이다.
“일찍이 존재한 가장 자유로운 정신” “권력구조에 대한 역설” “읽어버린 인간의 천재성을 회복하려는 금세기의 정신적 영위와 공명하는 20세기의 고전”이라는 찬사를 받는 사람이 마르키 드 사드(Marquis de Sade)이다. 소위 사디즘(sadism)이라는 말의 어원이 된 장본인이다.
그가 ‘감옥(監獄)’에서 ‘사디즘의 종착역’이라 호명되는 12m에 달하는 육필원고 작품.「소돔의 120일」은 4명의 권력자가 수십 명의 젊은 남녀들을 유린하고, 즐기는 120일의 기록이며, 도발적 고발이다. 120일 동안 공작과 공작의 동생주교, 법원장과 징세청부인이 벌인, 폭력과 광란의 성도착을 상세하고 섬세한 필치로 그려낸 시대적 역작이다.
이 작품에서 지배자와 피지배자, 부자와 빈자,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신과 인간 등 모든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도착(倒錯)적 행동들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이 작품은 ‘권력과 돈’을 가진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디까지 타락하고 부패하며, 가학적이며 위선적일 수 있는지 명증하게 고발하고 있다.
지배자들의 추악한 밑바닥까지 보여 주는 점에서 권력과 돈의 어두운 심연을 밝힌 노작(勞作)으로 평가 받고 있다.
소도미는 그 행위와 단어의 출발부터 하느님이 가증하게 여기는 자들의 소행(溯行)에서 비롯된다. 하느님을 거역하는 자들의 가증한 행위에서 시작된 ‘소도미’가 성적소수자들을 공격하는 무기가 된 것은 추잡한 역사적 아이러니다. 이것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참담한 최후를 맞이하였는지, 우리는 우리의 지성을 반추(反芻)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근대와 현대를 지나며 부침(浮沈)이 있기는 하였지만 “2003년 6월에 미국 연방 대법원은 로렌스 대 텍사스 사건에서 "성인 사이에 합의한 비 상업적이고 사적인 동성 간 성행위를 주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자유와 사생활을 침해할만한 타당한 이유가 없으므로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시하였다.” 이 판시를 통해 성인 사이에서 합의된 비 상업적인 ‘동성 간’ 성행위는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지탄의 대상도, 혐오의 대상도 되어서는 안 된다 할 것이다.
물론 현대에도 남색(男色)과 수간(獸姦)을 일삼아 자행하는 자들도 있다. 이것이 사회적으로 지탄의 대상이며, 엄연한 탈법으로 무겁게 처벌해야 하는 “동성애 범죄”이다. 이 간악한 범죄를 구축(驅逐)하는 것은 전(全)지구적 합의 사항이다.
이것으로 ‘소도미’와 ‘성적소수자’는 명증하게 구분된다. 소도미의 논리로 성소수자들의 천부 인권과 그들의 ‘사랑’을 매장하고 매도해서는 안 된다.

3. ‘야생의 사고(La Pensee Sauvage)’ 오늘의 감리회를 위해 호출되는 외침.

감리회의 목회적 동일성은 신학부와 대학원에서 훈련되는 목사후보들의 신학적이며 신앙적인 공부에 있다. 감리회의 목사를 양성하는 기관인 신학교에서는 ‘성서 비평학’을 공히 배우고 있음을 안다.
필자도 그렇게 훈련되어 성서를 해석하고, 시대적으로 적용하는 훈련을 배웠다. 그래서 나는 현대를 살아 내는 균형 잡힌 목회자가 되었다 자부한다.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 (Claude Levi Strauss)는 “야생의 사고의 목적은 세계를 하나의 통시적, 공시적 전체(全體)로 파악하려 하려는”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원시인들이 사용하는 논리 “하나의 구체적이고, 감지적이며, 심미적인 논법”이 당대의 서구의 자기중심적이고 2차적 사고-철학적 합리적 이성적 논리적-의 오만과 편협을 질타하고 대안적 사고이며, 이 “야생적 사고”와 ‘야생적 통찰’이 새로운 시대정신을 오롯하게 한다는 것이다.
즉, ‘통시적(通時的: diachronical)이고, 공시적(共時的: synchronical)인 사고’를 하고, 못하고가 ‘문명(文明)과 야만(野蠻)’을 나누는 바로미터가 된다는 것이다.
그의 훌륭한 혜안이 오늘의 감리회가 미개로 야만으로 가는 ‘슬픈 감리회’ 나아가 ‘슬픈 한국 교회’가 되지 않도록 기여하는 한 가지 지혜가 되기를 기도한다.
아직, 문자주의적인 성서 해석에 저당된 된 채, 몰(沒)시대적이며, 탈(敓)현대적인 성서해석에 머물러 있다면. 시대를 뒤로 살아가는 무지몽매한 ‘사드적 인간’들 일 것이다.
전근대적 사고인 문자주의를 외치는 인간들은 마치 몽고의 기마병이 한반도를 유린하고, 왜놈들이 한산도에서 수장될 때, 이미 침몰한 사고(思考)를 가지고, 21세기 인공지능과 사물 인터넷으로 소통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현대적 사람’들에게 그때로 돌아가자고 선동하는 자(者)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글의 마지막으로 이야기한다.
혐오를 부축키는 것은 사탄과 협착하여 하느님을 경외하지 않는 엄중한 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차별을 조장하는 것은 마귀와 입을 맞추어 위로는 하늘을 부정하는 것이고, 아래로는 ‘사람됨’을 저주하는 것이다.
오늘 감리회는 이 사탄과 마귀에 저당 잡혀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인간들과 간단없는 ‘영적 전쟁’을 분명히 선포해야 한다.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5515



전체 7

  • 2021-05-22 15:01

    박승복목사님 성경 어디에도
    *하느님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다시보시던지-
    하느님 섬기는 분들이랑 감리회를 나가던지 하세요.

    *기독교대한감리회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깁니다.
    그리고 혐오나 차별한 사실 없습니다. 왜곡하지 마세요.


    • 2021-05-22 18:49

      혐오와 차별 - 아마 있을 것입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고아들과 함께 예배드리기 싫다고 고아들을 내쫓은 교회도 있고요. (슥7:10)
      소돔보다 더 경악스러운 교회내 성적 타락의 소문이 들려오고요.(창19장)
      성직도 기득권자가 세습하고 있고요.(???)
      심지어 성직을 돈으로 매매(Simony)하고 있고요.(행8:20)
      교회 내에서도 부자와 권세가는 늘 우대받고 가난하고 힘 없는 이들은 소홀히 대접받고 있고요.(약2장)
      사명자끼리 학교 출신별로 차별하고 있고요.
      큰 교회와 작은 교회가 차별 대우 받고 있고요.

      안타깝게도 교회내 혐오와 차별은 현실입니다.
      부디 제 말이 왜곡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2021-05-22 20:11

    잘 읽었습니다.

    ㅡ.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는데, 인용한 성경 말씀들과 아래 동성애에 관한 성경 말씀들을 문자적이든 아니든 간에 주석하거나 해석해 주었으면 합니다.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 그들로 배표되는 가난한 사람과 약한 사람과 소외된 사람과 억울함을 당한 사람 등등만 편애하시지 않고, 온 인류를 사랑하시지요. 주 예수님은 앞서 열거한 사람 등등만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의 대속 제물이 되신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의 대속 제물이 되신 것이지요. 그러므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말씀에 해당되는 모든 사람은 아무런 차별없이 회개하고 주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지요.)

    # 동성애에 관한 성경 말씀들

    (창 19:4) 그들의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무론 노소하고 사방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창 19:5)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이 저녁에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레 18:22) 너는 여자와 교합[성교]함같이 남자와 교합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레 20:13)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성교]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신 23:17) 이스라엘 여자 중에 창기가 있지 못할 것이요 이스라엘 남자 중에 미동ㅡ비역 곧 동성애를 할 때 밑에서 당하는 아이ㅡ이 있지 못할지니
    (왕상 14:24) 그 땅에 또 남색하는 자가 있었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국민의 모든 가증한 일을 무리가 본받아 행하였더라
    (왕상 15:12)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 열조의 지은 모든 우상을 없이 하고
    (왕상 22:46) 저가 그 부친 아사의 시대에 남아 있던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었더라
    (왕하 23:7) 또 여호와의 전 가운데 미동ㅡ비역 곧 동성애를 할 때 밑에서 당하는 아이ㅡ의 집을 헐었으니 그 곳은 여인이 아세라를 위하여 휘장을 짜는 처소이었더라
    (고전 6: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딤전 1:10) 음행하는 자며 남색하는 자며 사람을 탈취하는 자며 거짓말하는 자며 거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위함이니
    (유 1:7)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유 1:8)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훼방하는도다

    ㅡ. 동성애에 관한 요한 웨슬리의 주장입니다.

    (롬 1: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롬 1:25)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롬 1:26)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롬 1:27)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 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 롬 1:24 그러므로 ㅡ 죄에 대한 하나의 징벌은 로마서 1:27처럼, 바로 그 죄의 본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다른 징벌은 여기처럼, 보복적인 정의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더러움 ㅡ 불경건과 불결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순수가 종종 결합되는 것처럼(살전 4:5), 종종 결합된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내버려 두셨다 ㅡ 하나님의 제지하시는 은혜를 베풀지 않음으로써 그들을 내벼려 두신 것이다.

    # 롬 1:25 진리를 바꾼 자들 ㅡ 하나님께 대한 진실한 예배.
    거짓 것으로 바꾸어 ㅡ 거짓되고 혐오스러운 우상숭배들.
    숭배하였다 ㅡ 내적으로.
    섬겼다 ㅡ 외적으로.

    # 롬 1:26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정 속에 버려두셨다 ㅡ 당시의 이교도인 로마인들은 극도로 버림받았는데, 로마의 황제들보다 더 심한 사람은 없었다.

    # 롬 1:27 그들의 잘못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음 ㅡ 그들의 우상숭배에 대한 처벌인 부자연스러운 육욕은, 그들의 우상숭배가 하나님께 대한 모독이 되는 것처럼, 몸을 지독하게 모독하는 것이다.

    # 고전 6: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 고전 6:9 여기서 우상 숭배는 음행과 간음 사이에 있는데, 이유는 그들은 대개 동반하기 때문이다.
    탐색하는 자 ㅡ 편하고 나태하게 살아간다. 즉, 십자가를 지지 않고, 어려움을 견디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어쩐 일인가? 이런 좋은 무해한 사람들을 우상 숭배자들과 남색하는 자들 사이에 놓지 않았는가! 우리는 이 사실에서 가장 작은 죄들이라고 생각한 죄들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큰 죄들로부터도 안전하다는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또한 정말로 우리는 모든 죄는 지옥을 향한 발걸음이므로, 어떤 죄도 작은 죄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출처: John Wesley, Explanatory Notes upon the New Testament.

    ㅡ. 남자가 한 남자 또는 여러 남자들과 짝지어도(우정이 아닌 성관계)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동성애는, 하나님께서 한 남자와 한 여자를 부부로 삼아 아이를 낳으라고 말씀하셨다는 사실로 보아 창조주요 섭리자요 구원자요 심판자이신 하나님의 말씀이나 뜻과는 정반대이지요.

    물론, 배우자와 자녀에게 쏟아야 하는 사랑의 수고와 노력까지 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 쏟겠다는 결단을 한 신부님들이나 수녀님들의 경우는 동성애와는 전혀 다르지요.

    구원받아야 할 모든 사람들처럼, 동성애자들도 깨닫고 회개하고, 지옥으로 끄는 불신앙 및 죄의 사함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성결한 삶과 영생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대속 제물이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도록 사랑하는 신학자와 교역자와 교인들과 사람들이 더욱 많아져야 할 것입니다.
    구원받아야 할 모든 사람들처럼, 동성애자들도 깨닫고 회개하고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성육이신 주 예수님을 믿어 죄 사함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성결한 삶과 영생의 구원을 받아야 하는데, 그 길을 막는 사람들이야말로 동성애자들을 혐오하고 차별하는 사람들이지요.


  • 2021-05-23 01:05

    박학다식한듯보이나
    승냥이의음흉한노래
    복검을구밀로감추네


  • 2021-05-23 18:46

    아~ 가끔 한번씩 들어오면 이놈의 동성애 댓글 . . . 징글징글합니다!
    바퀴벌레처럼 끈질기네~
    동성애가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냥 하세요~ 여기다 댓글 올리지 말고~ 쫌!!!!


    • 2021-05-23 20:56

      40대인 우리 아들 또래의 목사로 목회해서 감사하고, 댓글에도 관심을 보여서 감사해요.


  • 2021-05-25 09:19

    동성애가 가문의 영광이면 대낮에 거리에서 대 놓고 하고, 부끄러우면 밤에 숨어서 해야 합니다. 동성애자들의 목표는 ❶ 음란과 타락을 기독교의 교리로 용납 받고 ❷ 추악을 사회 운동으로 위장하고 퀴오축제처럼 죄를 선동하고 ❸ 공법으로 무흠하다고 인정받는 것으로 보입니다.

    동성애자들의 사회 운동의 구호에서, 인간이 선과 악, 죄와 선을 차별하면 안 됩니까? 기본적인 인간의 도덕성, 사회의 윤리관까지 붕괴시키면서 항문음란범죄를 즐겨야 합니까? 인간이 살인, 음란, 마약을 혐오하고 이를 회피하고 외면하면 안 됩니까?

    이를 공법으로 인정받으려는 것과 관련하여, 차별, 혐오 같은 머릿속의 생각, 사상, 철학을 처벌하려는 사악한 짓입니다.

    이를 성경과 교리를 바꾸어 인정받으려고 하는데,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맘대로 해석하는 게 인간의 교만이고 배교이고, 반란입니다. 하나님께서 3500년 전에 모세를 통해 성문법으로 죄를 규정하신 이유는 바로 인간들의 말장난을 대비하신 게 분명합니다.

    살인자가 형기를 마치고 출옥을 했다고 할 때, 이를 불쌍히 여기고 가엽게 여기고 그에게 기회를 주는 사랑과, 대신에 살인을 미화하는 사회운동, 기독교 교리로 무죄라 하고, 법으로 미화하고 장려하는 건 전혀 다른 영역의 도전입니다. ‘혐오와 차별’은 개인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의 영역이지, 법으로 인간의 모든 일상과 머릿속까지 통제하려는 건 악마적입니다. 자녀를 사랑하고, 인간이 어려움에 처할 때 돌보는 측은지심은 법이 없어도, 교리가 정하지 않아도 할 수 있습니다.

    만일 누가 동성애가 죄가 아니라고 가르친다면, 이는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에 반란하고 배교이기에 이렇게 가르치는 교회와 목회자는 버려야 합니다. 이는 인류의 죄로 인한 타락하고, 하나님의 심판, 그리고 예수께서 대속재물로 구속의 구세구로 오신 사역을 거부하는 기독교 교리의 뼈대를 흔드는 도전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성경과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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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81 홍일기 2023.11.12 272
13680 박영규 2023.11.09 206
13679 장병선 2023.11.09 1034
13678 홍일기 2023.11.08 320
13677 홍일기 2023.11.08 266
13676 최세창 2023.11.06 224
13675 홍일기 2023.11.06 265
13674 함창석 2023.11.04 266
13673 장병선 2023.11.03 1073
13672 홍일기 2023.11.03 302
13671 박영규 2023.11.02 206
13670 엄재규 2023.11.02 427
13669 홍석민 2023.11.01 453
13668 최세창 2023.11.01 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