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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로 잠시 도배성 글의 끝맺음을 하고자 합니다.

작성자
장운양
작성일
2021-03-28 01:35
조회
596
한국시인협회는 10여 년 전 '한국 10대 시인'을 선정했던 적이 있다. 이때 선정된 김소월, 정지용, 한용운, 서정주, 백석, 김수영, 김춘수, 이상, 윤동주, 박목월 시인은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시인들이다. 당시 시인협회는 현대시 100년을 맞아 한국시의 과거를 돌아보며 미래를 성찰해보자는 의미에서 10대 시인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그럼 한국 현대시를 연 시인은 누구일까? 한국 문학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고 기미독립선언문을 기초했지만, 훗날 변절하여 민족반역자가 된 최남선이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시인협회는 100주년이라는 말로써 육당 최남선이 우리나라 최초의 잡지 <소년>지에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한 1908년을 현대시의 시작으로 잡고 있음을 드러냈다.

최남선이 현대시를 열었을지는 몰라도 현대시를 대표하거나 사랑받는 시인은 아니다. 창가와 자유시의 중간쯤에서 다리를 놓았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친일문학인으로 지탄받아야 할 인물일 뿐이다.

한편 서정주는 친일 행적으로 따지면 최남선 못지않았다. 윤동주, 이육사가 감옥에서 고문당하고 죽어갈 때 서정주는 일장기 앞에 합장하며 친일문학에 헌신했다. 가미카제 특공대를 찬양하고 태평양전쟁을 사회발전을 위한 진리의 전쟁이라며 조선청년들에게 참전을 독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시 10대 시인에 선정된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해방 이후 한국 문단에서 시인들의 등단을 좌지우지하며 권력을 향유했던 서정주를 비호하는 세력들이 한국문단 권력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평생을 일제와 독재 권력에 빌붙어 기회주의적 행태로 일관했던 서정주를 떠받는 이들이 여전한 문단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현대 10대 시인' 어쩌고 하는 선정에 큰 의미를 둘 필요가 있을까 싶다. 다만, 선정된 시인들을 통해 현대시를 논할 수 있고, 시를 가까이 하는 기회로 삼으면 그만이다.

문제는 시를 가까이 하려고 해도 현대시가 갖고 있는 특징인 애매모호함 때문에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 가까이 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몇 번을 읽어도 독자들이 이해하기 힘든 시를 '좋다'고 하는 평론가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독자들로부터 외면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처럼 현대시를 읽고 이해하기도 어려운데, '시 쓰는 방법'을 들고 나온 시인이 있다. 2014년 <동료들이 뽑은 올해의 젊은 시인상>, 2015년 <시작작품상>을 수상한 전업 시인 박진성이다. 17년 동안 시인으로 활동했던 박 시인은 <김소월을 몰라도 현대시작법>을 통해 시를 쓰려는 이들과 시를 쓰고 있는 이들에게 작고 사소한 조언들을 모아 전하고 있다.

시작법을 다루는 이 책은 문장들을 '시'처럼 연과 행으로 편집하여 시집을 읽는 느낌을 준다. 내용은 가볍고, 경쾌하면서도 담백하여 손에 잡으면 금세 읽을 수 있다. 한 마디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김소월을 몰라도 현대시작법>. 제목을 보며 드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소월이 세대를 초월하여 사랑받는 국민시인이기는 하지만, 현대시의 아버지하면 정지용인데, 왜 하필 김소월일까? 좀 더 나아가 김수영이면 안 되나 하는 질문도 나올 법하다.

박 시인은 김소월이야말로 현대시에서 '한(恨)'이라는 민족 정서를 쉽게 잘 표현했기 때문에 택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시가 좋아하는 말들' 중에 '너'가 있다는 박 시인의 진술을 통해 김소월이 '님', '당신'과 같은 말을 좋아해서 택했을 거라고 유추해 볼 수도 있다.

"불특정 2인칭 "너"를 시는 좋아합니다. 시의 모든 발화는 나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너, 라고 쓰는 순간 그 안에는 내가 포함됩니다." - 60쪽.

<김소월을 몰라도 현대시작법>은 시가 갖고 있는 특징을 쉽고 짧게 설명한다. 말을 절약하는 대신 상상력을 자극하는 설명은 저자의 역량을 가늠하게 한다. 그와 함께 시를 쓰는 이의 윤리를 말하며 '타인의 고통'을 함부로 다루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은 읽는 이를 숙연하게 한다.

"함부로 시 안으로 가져온 타인의 고통은 그 시 시 자체의 재앙일 뿐만 아니라 자의식의 재앙이기도 하겠지요. 시의 윤리와 미학은 어쩌면 착한(착하고 싶은) 시선으로 쓸 때 얻어지는 게 아니라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말하지 않을 때 겨우겨우 시 안으로 스며드는 것 같습니다." - 99쪽

혹자는 시인이 하고 싶은 말과 비유, 상상을 간신히 참아내는 일을 '자기검열'이라고 비판할지 모른다. 그러나 '쓰면 안 되는 부분을 스스로 참고 제어하는 일'을 시를 쓰는 일의 시작이라고 하는 시인에게서 시인의 윤리, 타자에 대한 따뜻하고 겸손한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오늘날 가난한 누군가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빈곤을 자극적으로 묘사하며 동정심을 일으키는 빈곤 포르노(Poverty Pornography)가 넘쳐난다. 뼈만 남은 앙상한 몸에 힘없이 풀린 눈동자를 한 아이들에게 뭔가를 떠먹여주며 감성을 자극하는 모금 방식은 일반적이다.

그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모금 단체들은 '타인의 고통'을 소환한다. 시인은 최소한 빈곤 포르노처럼 내가 보고 있는 슬픔, 타인의 고통을 멀리서 관망해서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에 '타자'의 자리를 생각하며 글을 다듬는 일은 쉽지 않다. <김소월을 몰라도 현대시작법>은 그런 '나'를 '우리' 혹은 '너'의 자리로 '시'가 이끌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책을 덮으며 내 주변에 '너'의 자리를 마련해줄 수 있는 '나'를 상상하고, 실천할 수 있다면 행복한 일이다.



전체 2

  • 2021-03-28 19:51

    매우 탁월한 논평입니다 장 박사님의 비범성이 녹아있는...


  • 2021-03-29 06:48

    주소 좀 알려 줘요 시집 보내드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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