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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목회자 & 자신을 잃어 버린 목회자

작성자
노재신
작성일
2021-02-04 11:26
조회
610
교권을 두고 일어난 20여년 동안의 감리회의 갈등과 다툼 그리고 싸움은 상대방을 인정하지 못하는 감리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두둔하여 글을 쓴다고 모두가 최전방 소총수가 아닙니다.
누군가의 글에 대하여 항의하고 반론을 제기하고 변론을 하여 한다 하여 모두다 싸움닭은 아닙니다.
특정 누군가를 상대로 비난하고 비판하고 책망하고 권면하는 글을 쓴다고 모두가 저격수는 아닙니다.

그러나 왠지 그러한 편견과 선입견을 갖지 않을 수 밖에 없는 감리회의 현실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에 대하여 너 누구의 소총수냐? 넌 누구를 위해 등장한 싸움닭이냐?
"니가 뭔데 감게에 불쑥 나타나 건방지게 그 분을 저격하려 하느냐?"고 하여도 어쩌면 그럴 수 밖에 없는 감리회의 현실입니다.

마음은 씁쓸하고 눈살은 찌푸려져도 어쩔 수 없는 감게의 현실임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보았고, 들었고, 느꼈으며, 더 나아가 그에 대한 교권의 횡포(괘씸죄)에 쓰라린 보복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감게와 감리회가 변해야 할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감리회는 미래의 희망이 진정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감게와 감리회의 현실이 이렇게 된 것에는 많은 요인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모든 이유의 근저에는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목회자들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을 합니다.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음, 이거 아주 나쁜 마음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에 반하는 죄악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목회의 현장에서 알게 모르게 받은 상처들 때문에 갖게 된 트라우마 때문이라 생각을 합니다. 우리를 옛 구습으로 그리고 죄인의 모습으로 이끌어 가려는 사망의 역사이며 사탄의 역사이자 미혹하는 거짓의 영이 만든 허상 때문이기도 합니다.

트라우마는 쉽게 치유되지 않습니다.
정신과의 치료는 마음속 깊은 곳에 쌓아 두었던 트라우마의 원인이 되었던 그 때의 사건이나 상황을 밖으로 쏟아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 것만으로도 트라우마의 치유엔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트라우만은 마음의 병이며 생명에 드리운 사망의 그림자이며 영적인 절망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트라우마의 치유는 오직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이 됩니다.

마태복음11장 5절엔 이와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소경, 앉은뱅이, 문둥이, 귀머거리, 죽은 자로 표현된 이들은 실제 육체의 모습을 뜻하기도 하겠으나 각각의 모습은 영적인 병이자 마음이 병을 비유적으로 의미하기도 합니다.
곧 이들 각각이 갖고 있었던 육체의 질병은 내적 트라우마에 대한 비유적인 표현이라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1) 마땅히 보아야 될 것을 보지 못하고 보지 않아도 될 것을 보는 트라우마,
2) 일어나 걸어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일어날 수 없다고 좌절하여 한 걸음도 앞으로 걸으려 하지 않는 트라우마,
3) 하늘로부터 버림을 받아 하나님의 징계 혹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인생이라 삶의 무게와 인생의 버거움을 하늘이 내릴 벌이라 생각하며 스스로 절망 속에 살아가는 트라우마,
4) 마땅히 들어야 할 것을 듣지 못하며 듣지 않아도 될 세상 소리에 민감하여 스스로 세상에 이끌려 살아가야만 하는 트라우마,
5) 하나님의 생명으로 태어났음에도 그 생명의 가치를 잃고 세상의 허망한 것(권력과 돈)에 굴복하여 살아 있으나 죽은 자와 같이 살아가는 트라우마,
6) 세상의 가장 귀한 가치를 잃고 그보다 못한 가치에 마음을 빼앗겨 하나님이 허락하신 부함을 잃어버린 세상의 가치에만 집중하며 살아가는 트라우마,

이와 같은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이들에게 주님의 말씀이 전해졌으며 그 말씀은 살아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뜻 속 깊고 깊은 곳에 있었던 허망한 인간 죄악의 근원들을 치유하심으로 이들에게 있었던 그 갖가지의 질병(트라우마)들이 치유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각 종 트라우마(질병)에서 고침을 받은 이들에겐 주님의 말씀이 곧 복음이 된 것이며, 주님의 말씀을 거부한 이(바리세인, 사두래인, 율법사, 제사장과 장로 들)들에겐 주님의 말씀은 요망한 괘술이며 하나님을 모욕함이며 모세의 율법을 파하려 하는 망령된 소리일 뿐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복음이 된 사람들,
그들은 제 각 각 육체의 질병(트라우마)을 갖고 있었던 사회적 하층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님(상대방)을 자신들 보다 더 나은 분으로 인정한 공통점을 갖고 있는 이들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망령된 소리로 들려진 사람들,
이들은 제 각각 육체의 질병(트라우마)이 없었던 사회적 상류층에 속한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님(상대방)을 자신들 보다 못한 존재로 무시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의 모습이 현 감리회에 속한 중,대형 교회의 목회자들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사회적으론 성직자라 불려지며 사회 상류층들과 소통하며 어느덧 사회 상류층이 되어 있거나 스스로 상류층이 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감리회의 목회자들 입니다. 계층을 통해 상대방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아주 고약한 영적인 질병에 걸린 이들입니다.

상류층에 속한 이들은 자신보다 아래에 있다 여기는 이들을 자신의 아래에 두려 합니다. 줄을 세우고 패를 만들고 더 나아가 비밀스런 당을 만들며 다양한 사적 조직을 형성하여 세속 정치를 교회 안에서 행하려 하는 이들이 됩니다.

이런 이들의 밑 낯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사회 상류층에 속하지 못한 감리회의 목회자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밑 낯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그들을 따르지 않고 존경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무시하거나 그들을 비웃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을 인정하지 못하는 아주 고약한 영적인 질병에 걸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절대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정한다면 스스로 무너질 것을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목회자들은 세상의 말로 꼰조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자기애가 넘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때론 나잘난, 더잘난이 되어 있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러한 나잘난 더잘난의 모습이 저를 감게로 이끌었는 지도 모릅니다.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을 왜 보지 못하는 것일까?

그러나 그 분 들은 확실이 저보다 한 수 위였던 분들이었습니다. 모르는게 아니라 못 보는 게 아니라 알고 있으며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사실들을 스스로 거부하고 교권의 이익을 두고 파당 싸움질에 여념이 없었던 것일 뿐입니다. 심지어 감리회가 둘로 나눠져도 하나도 아쉽지 않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이와 같은 마음으로 감게에 글을 쓴 이들이 누군가를 위해 최전방에 선 소총수들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마음으로 정적을 위해 글을 쓴 이들을 무조건 무시하고 조롱하며 비웃으며 상대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싸움을 걸었던 이들이 감게의 싸움닭들이었습니다.

이들 때문에 감게는 진흙탕이 되었고 싸움터가 되었으며, 몸서리치는 전쟁터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감리회의 선거 철만 되면 어디선가 나타나 밀물처럼 몰려 왔다 썰물처럼 빠져가는 이들이었던 것입니다.
이들에게 상대방은 인정과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무조건 까내려야 하는 발의 때만도 못한 대상일 뿐이었던 것입니다.

감게에 논객이란 이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의 인격은 훌륭해 보였고 그들의 글들은 소총수나 싸움닭의 글들과 달랐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 또한 누군가를 위해 글을 쓰는 모습이나 누군가를 비방하고 비판하는 글을 쓰는 모습들을 보였습니다. 이러한 글을 쓰는데 있어 그들은 나름대로의 감리회를 위한 명분이 있었고 나름대로 사명감 같은 것도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감게의 논객들은 오랜 시간 감게에 글을 써 온 이들입니다. 그래서 감리회의 여론을 대변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논객이라 하는 이들도 비밀스럽게 감리회를 위하는 모임을 가장한 사조직들을 형성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둘 이상이 모이는 사조직엔 반드시 돈이 필요한 법입니다. 우리는 친목을 위해 각출을 한다고도 하였지만 돈이 필요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습니다. 전쟁터처럼 변한 감게엔 어느덧 상대 특정인을 글로써 이겨내야 할 저격수가 필요하였습니다. 감게의 저격수로 아주 적절한 이들이 바로 자칭 타칭 논객이라 불리는 이들이었습니다.

돈은 논객들을 은밀히 접근해 용병이 되게 하였으며 이 용병들은 빼어난 글 솜씨로 저격수의 역할을 훌륭하게 감당하였습니다. 용병들의 일들은 논객으로 활동하여 은밀하게 돈을 받아 이권을 챙기기도 하였고 때론 브로커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전쟁이 깊어지고 커지면 커질수록 용병들은 쓰임새가 컸고 저격병의 가치는 올랐으니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 글 솜씨를 뽐내려는 이들이 나타나기도 하였으니 시키지도 않은 저격병들이 감게에 등장하기도 하였었던 것입니다.

용병들은 감리회를 위해 감게에 글을 쓰는 모든 이들의 순수한 열정의 가치를 떨어트렸고 오염을 시켰습니다.
소총수들과 용병들의 활동은 감리회를 위해 글을 쓰는 모든 이들의 순수한 패기에 주홍글씨를 세기기도 하였습니다.

감리회를 위한 순수한 정의감에 불타올랐던 몇몇 이들은 돈과 교권을 갖은 이들에 의해 마녀사냥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갖은 자들의 횡포입니다. 불법을 행한 이들의 또 다른 불법이었으며 가증함을 감추기 위한 술수였던 것입니다.

어느 분은 감게에 순수한 열정과 패기 그리고 정의감이 사라졌다고 한탄을 합니다.
그렇게 된 이유를 알고 있을 텐데 말입니다.
그렇게 한탄하는 그 분과 같이 이들이 순수한 열정과 패기 그리고 정의감을 불태울 때 방관만하고 바라만 보고 고개를 돌리며 외면을 했던 분들이 아닙니까?

또 어떤 분은 '거들다가 같이 싸움닭 될까 두려워서 몸서리치고 물러나곤 한다.'고 한탄을 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감리회를 위해 순수한 열정과 패기로 정의감을 불태울 때, 그들의 순수함을 인정하지 않고 그들에게도 소총수라 싸움닭이란 주홍글씨를 세겨 놓고 무시하고 외면하였기 때문은 아닌가요?

감게의 소총수와 싸움닭과 용병들 때문만이 아니라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감리회의 목회자들 때문에 순수함은 희석이 되었고 그들의 열정은 무시를 당했으며 그들의 패기는 꺾이고 말았습니다.

상대방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은 자신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말을 합니다. 순수한 열정과 패기가 사라졌고 정의감도 보이지 않는다고.....
정작 하나님은 그를 감리회와 감게의 선지자(목회자)로 부르시고 세우시고 보내셨음이 분명한데 말입니다.

어떤 분은 또 다시 말을 합니다. 이 시대를 위한 진실한 선지가가 진정 보고 싶고 만나보고 싶다고 말입니다.
정작 하나님은 그를 감리회와 감게의 선지자고 부르시고 세우셨으며 보내셨음인데 말입니다.

어떤 분은 또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난세에 영웅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입니다.
정작 하나님은 이 시대에 부정과 부패 불법을 행하는 이들이 참으로 난무하니 그를 감리회와 감게의 영웅(선지자)으로 부르시고 세우시고 보내셨음인데 말입니다.

어떤 분은 진중히 말을 합니다. 감리회에 진정한 희망이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정작 하나님은 좌절과 절망을 할 수 밖에 없는 오늘의 감리회와 감게의 현실 앞에 그를 감리회와 감게의 희망이 되라고 글을 쓸 수 있는 용기과 능력을 주셨음인데 말입니다.

어떤 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합니다. 감리회와 감게는 이권을 쟁취하기 위한 더러운 똥구덩이가 되었다고 말입니다.
정작 하나님은 이 더러운 현실 앞에 그 분을 정화조가 되고 정화제가 되라고 감리회의 목회자로 감게의 글들을 읽게 하셨음인데 말입니다.

자신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방관자가 되고 관음증 환자처럼 떠돌아 다니며 사석에선 온갖 흠담과 불만만을 쏟아 놓습니다. 이들도 자신이 누구인지 잃은 것입니다.
자신이 무엇 때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세우심을 받았으며 보냄을 받았는지를 말입니다.

그리곤 상대방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잃었으니 자신도 모르게 포도밭을 맴도는 어리석은 여우가 되어 있을 뿐입니다. '아마 저 포도는 시어 못 먹을 거야'라고 말입니다.

"내가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흠 흠, 나는 절대 니덜 같은 지저분한 부류의 넘들과는 태생부터 다르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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