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운양 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 멜기세덱(히 7:1-3)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1-02-02 11:33
조회
395
먼저, 그는 멜기세덱을 가리켜, 【1】[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라고 한다.
히브리서 저자는 [멜기세덱]에 대해서 이미 세 번 언급하였고(5:6, 10, 11), 바로 앞 구절(6:20)에서도 언급하여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의 모형이요 그림자임을 밝힌 바 있는데, 여기서는 그에 대해 보다 더 구체적으로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참고로 멜기세덱에 대한 여러 가지 설명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휴스(P. E. Hughes)는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일부 문서에는 멜기세덱이 사단을 섬겨 자신을 더럽히지 않은 충성된 유대인들의 보호자인 종말론적 구원자로서 나타난다. 그의 도래는 대속죄일과 희년을 의미하며 하나님의 사령관으로서의 그의 위엄은 대단히 높아서 천사장 미카엘과 동일시되기도 하였다.”라고 하였다. 헤위트(T. Hewitt)는 “필로는 멜기세덱을 로고스(Logos) 혹은 말씀(Word)의 표상으로 이해하였다”라고 하였다.
미헬(O. Michel)은 “하가다①에서 멜기세덱은 노아의 아들인 셈과 동일시된다. 그는 창세기 14:18로 인해 하느님의 대사제직을 맡은 사람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창세기 14:19을 보면 그는 하느님 앞에서 아브라함의 이름을 불렀기 때문에 대사제직은 그로부터 아브라함에게 이양되었다(Ned 32b; Sanh 108b; Str. B. IV 1, 453). 사마리아 사람들도 멜기세덱을 셈으로 부른다(Epiphanius, Panarion 55, 6).…필로는 멜기세덱을 추상적이고 우화적이며 형이상학적으로 해석하여(Philo, Legum Allegoriae iii. 79ff.; De Migratione Abrahami 235.; De Congressu Quaerendae Eruditionis Gratia 99.)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한 인물을 사색적이며 철학적인 사고로 왜곡했다.…요세푸스에 있어서 멜기세덱은 예루살렘의 토대를 놓고 아브라함의 승전 이후 그와 우호 관계를 맺은 가나안의 지도자이다(Josephus, Bell. VI. 438; Ant. I. 179-182). 유다교 집단뿐 아니라 그리스도교 집단의 사람들이 멜기세덱을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던 천사로 보았다는 교회 교부들의 진술은 매우 흥미롭다(Ambrosius, De fide Ⅲ 11).…오리게네스(Origan)와 디디무스(Didymus)에게 있어서 멜기세덱은 천사이다(Hieronymus, Ep. 73. 2). 오리게네스의 제자인 히에라카스(Hierakas)는 멜기세덱을 성령의 성육신으로 본다(Epiphanius, Panairon 55, 5; 67, 3·7). 에피파니우스와 마르꾸스 에레미따(Marcus Eremita)가 맞서 싸운 교회의 교사들은 히브리서 7:3에 근거하여 멜기세덱이 하느님의 아들의 성육신이라고 가정하고자 하였다(Epiphanius, Panairon 55, 7). 실로 하느님 자신도 멜기세덱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 같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7:3의 위대한 언명은 오로지 하느님 자신에 의하여 요청된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Epiphanius 55, 9). ‘멜기세덱파 사람들’은 ‘영지주의적 노선을 걸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단지 멜기세덱의 능력(δύναμις)의 모사체에 불과하였다(Hippolyt, Refutatio VII 36; X 24; Epiphanius, Panairon 55, 1; …). 히브리서에 멜기세덱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에 불과한 데 반해, 후대의 그리스도교 영지주의에서 그리스도는 멜기세덱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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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해)서에서 인용할 경우, 주석되는 성구가 있으므로 저자명만 밝혔음.
1) Haggadah: 탈무드(Talmud) 중의 비율법적인 교훈적 이야기로 유월절 축하연에 사용되는 전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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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J. Brown)은 “초기 이단자들 중 한 파는 멜기세덱을 성령이라고 주장했고, 또 다른 한 파는 그가 능력에 있어서 그리스도보다 뛰어난 하나님의 천사이며,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그와 닮게 만드셨다고 주장했다. 또 어떤 파는 인간의 형상을 입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다.…어떤 사람들은 멜기세덱을 에녹이라고 추측하며, 다른 사람들은 그를 셈, 혹은 함, 혹은 욥이라고 생각하였다.”라고 하였다.
멜기세덱에 대한 이 모든 설명은 신격화하는 견해들과 아브라함보다 열등한 인간으로 격하하는 견해들로 대별할 수 있다. 전자의 예를 들면, 종말론적 구원자, 하나님의 사령관으로서의 천사, 로고스 혹은 말씀의 표상, 성령 혹은 성령의 성육신,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 그리스도보다 우월한 천사 등이고; 후자의 예를 들면 아브라함보다 열등한 인간, 가나안의 지도자, 셈, 에녹, 함, 욥 등이다. 물론, 히브리서 저자는 다른 성경 저자처럼(창 14:18-20, 시 110:4) 멜기세덱을 왕과 제사장이었던, 신비에 쌓인 인간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는, 창세기 14:18의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를 인용한 것이다.
[살렘](Σαλήμ)에 대해 이상근 님은 “예루살렘의 별명인지, 세겜 골짜기의 살렘(요 3:23)인지는 에피파니우스(Epiphanius: 제4세기의 구브로의 콘스탄티아 감독) 이후의 숙제였다. 제롬(Jerome)은 후설을 취하고 그 곳에 멜기세덱 왕의 궁전 유적이 있었다고까지 한다. 그러나 전설이 본서 저작 당시의 일반적 견해였던 것이 분명하다(Josephus, Ant. I. 10:2; B. J. vi. 10; 또 시 76:2 참조).”라고 하였다. 대다수의 학자들도 예루살렘의 별명(시 76:2)으로 추측하고 있다.②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살렘(σαλήμ)의 의미가 에이레네(εἰρήνη: ‘평화’, ‘평강’)라는 점이다. 따라서, 살렘 왕이란 고대 예루살렘의 왕인 멜기세덱이 “평화의 왕”(W. Barclay, 黑崎幸吉)임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τού θεού τού ὑψίστου)은 “상대적이거나 다신론적인 의미에서 높은 신이라는 뜻이나, 제우스(Zeus)가 최고신으로 일컬어지는 것처럼 많은 신들 중에 최고신이라는 뜻이 아니라, 절대적이며 유일한 신이라는 뜻이다. 즉, 다른 어떤 것들과 비교될 수 없는 높으신 하나님이라는 뜻이다”(R. C. H. Lenski).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은 물론 멜기세덱을 가리키는 표현인데 문제는 어떻게 우상을 숭배하는 가나안 땅의 나라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 있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문제에 대해 렌스키(R. C. H. Lenski)는 “노아의 참 종교(신앙)가 멜기세덱에게서 충분히 보존되었다고 대답할 수 있다.”라고 하였고, 휴스(P. E. Hughes)는 “아브라함처럼 멜기세덱도 유일하신 참 하나님 여호와 숭배자였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우리는 이 두 사람의 종교적 성향에 있어서 심원한 태도의 일치성을 볼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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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A. Clarke, “Zahn”(in 黑崎幸吉), W. F. Moulton, J. Brown, O. Michel, P. E. Hughes, L. Morris, J. Brown, P. R. Stover, 黑崎幸吉, 박윤선, P. Ellingworth(아람어 구약성경인 탈굼(Targums)의 대부분은 예루살렘으로 추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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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는 창세기 14:1 이하의 내용을 한 마디로 표현한 것이다. 당시에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과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이 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 왕과 싸웠다. 그 결과 엘람 왕 그돌라오멜이 주축이 된 연합군이 소돔 왕을 포함한 다섯 왕의 연합군을 참패시키고,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가고, 소돔에 거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다.
그 와중에서 도망한 자를 통해 조카 롯이 포로가 된 사실을 알게 된 아브라함은,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자 삼백십팔 인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그 가신을 나누어 밤을 타서 그들을 쳐서 파하고 다메섹 좌편 호바까지 쫓아가서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 조카 롯과 그 재물과 또 부녀와 인민을 다 찾아왔다.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곡에 나와 그를 영접하였다. 그 때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인 예루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고, 아브라함을 축복하여 말하기를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라고 하였다.
히브리서 저자는 멜기세덱의 축복을 받은 아브라함이 취한 태도와 멜기세덱이라는 이름의 번역에 대해서, 【2】[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라고 설명하고 있다.
창세기 14:20 후반에,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브라운(J. Brown)은 “아브라함도 그에게 십일조, 즉 자기 재산의 십분의 일이 아니라 전쟁에서 정복한 왕들로부터 탈취한 노략물의 십분의 일을 바침으로써 그의 제사장직을 인정했다.”라고 설명하였다. 그 사건에 대한 기록을 인용함으로써 히브리서 저자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보다 우월한 제사장이며, 따라서 아브라함의 자손인 레위 지파계 제사장들보다도 우월한 제사장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에게 준 것은 십일조의 기원이며, 그 후에 야곱이 벧엘에서 나타나신 하나님께 자신이 가는 길을 지켜 주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셔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오게 하시면 십일조를 바치겠다는 서약을 하였다(창28:20-). 이와 같은 배경을 근거로 십일조가 율법에 정식으로 제도가 된 것이다(레 27:32, 민 18:21, 24, 26, 28, 신 12:6, 11, 14:22, 23, 26:12, 삼상 8:15, 대하 31:5, 6, 12, 느 10:37, 38, 암 4:4, 말 3:8, 10. 참조: 마 23:23).
휴스(P. E. Hughes)는 다음과 같이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해석을 소개하면서 비판하고 있다. 아퀴나스(Thomas A quinas)는 이 이야기를 비유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네 왕은 네 가지의 주요한 악덕이며, 이것이 덕목들의 사촌이 되는 이성의 능력을 포로로 만들었으며, 오감을 한 번 정복했다.” 그리고 그는 10이라는 숫자의 완전함-십분의 일이라는 언급에서 추론된 일련의 사고-을 스콜라 철학적 방식으로 설명하여 다음과 같은 근거 없는 결론을 내린다. “모든 완전함의 충만함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아브라함은 십일조를 바친다.” 그러나 이런 류의 사변적인 해석은 본문의 평이한 의미를 무시한 것이며, 공상적 재간의 산물이며, 건전한 주석이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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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는, 히브리서 저자가 멜기세덱에게 풍유적(allegorical) 의미가 아니라 유형론적(typological)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멜기세덱과 살렘이라는 히브리식 이름의 메시아적 의미에 주목하고 있는데, 전자는 [의의 왕]이고 후자는 [평강]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의의 왕이자 평강의 왕으로서의 멜기세덱은, 제사장이시자 왕으로 오신 메시아의 모형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또, 멜기세덱의 왕국의 특징은 의와 평강인데, 이러한 점들 역시 메시아 왕국의 모형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이 메시아와 메시아 왕국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나라를 가리키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의와 평강이 넘치는, 다윗 계통에서 약속된 영존하는 왕의 모습을 볼 수 있다(시 72:7, 사 11:4, 사 9:6-7, 렘 23:5-6, 슥 9:9-10, 롬 14:17. 참조: 시 97:2, 98:9). 그 그리스도께서는 믿는 모든 사람에게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시고(행 13:39, 롬 3:24, 26, 4:25, 5:9, 18, 6:11, 딛 3:7), 하늘나라 시민으로서(빌 3:20, 엡 2:6. 참조: 골 1:13) 평강을 누리게 하신다(눅 24:36, 요 20:19, 21, 26, 골 3:15, 살후 3:16, 계 1:5). 이러한 사실을 잘 아는 바울은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 5:1. 참조: 롬 5:9-10)라고 권면하였다.
이상근 님은 “의와 평강은 불가분의 속성들이다. 진정한 의가 실현되지 않으면 진정한 평강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실로 죄와 불의가 있는 곳에는 참된 평화가 있을 수 없다. 참된 평화는 죄 사함의 은총 곧 칭의의 결과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멜기세덱에 대해서 【3】[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라고 하였다.
이 구절 곧 멜기세덱에 대한 유형적 설명은 창세기에 언급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라고 했는데, 이는 멜기세덱이 천사나 잠시 현현했던 영원한 영적 존재나 성육신한 신이라는 뜻도 아니고, 또 출생이나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한다는 뜻도 아니라, 그 모든 것이 언급되지 않은 신비로운 제사장임을 의미하는 것이다.③ 휴스(P. E. Hughes)는 “성경에서 침묵하고 있는 것의 의미는 멜기세덱이 영원히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의 예표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침묵으로 둘러싸여 있는 멜기세덱은 모형이지만, 그리스도는 그것의 실체이다. 사실상, 성육신하신 아들은 인간 어머니와 인간의 계보가 있으며(참고: 마 1:1-, 눅 1:26-, 3:23-, 롬 1:3), 출생한 날뿐만 아니라 죽은 날도 있다(그런데 본서 저자는 이것에 관해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은 영원히 동일한 분이시며, 그분의 날수는 결코 끊이지 않을 것이다(히 1:12,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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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O. Michel: 필로(Philo)에 따르면, 사라는 창세기 20:12을 미루어 볼 때 “어머니 없는”(ἀμήτωρ) 자라고 한다(De ebriet. 61; Quis rer. div. her. 62). 아테네 여신은 어머니 없는(ἀμήτωρ) 자로, 헤페스투스신은 아버지 없는(ἀπάτωρ) 자로 언급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그들의 출생이 지닌 특수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프타(Ptah)신에 대한 에집트의 기도문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당신이 출현했을 때 당신에게는 당신을 낳은 아버지가 없었다. 당신에게는 당신을 잉태한 어머니도 없었다. 반면에 법률 문서들에서는 ἀπάτωρ라는 말이 매우 세속적인 의미 곧 ‘사생아’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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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4장에서 멜기세덱의 출생과 죽음뿐만 아니라 어떤 제사장적 계승에 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은 것은 영원한 제사장직에 대한 예표이며, 이것은 시편 110:4의 “너는 영원한 제사장이라”라는 선언에 따라 메시아에게서 성취되었다. 본서 저자가 간단하게 설명했듯이,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은 ‘무궁한 생명의 능력’(16절)이란 표현으로 특징지워진다.”라고 하였다.
[항상 제사장으로 있]는 멜기세덱에 대한 침묵은 그가 영원한 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모형임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족보와 생사가 분명한 후대의 레위계 제사장들보다 우월한 제사장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레위 제사장들의 족보는 아주 조심스럽게 보존되었다. 제사장의 아버지는 아론의 직계 후손이어야 했고(출 28:1), 어머니는 레위 지파의 정결한 여인이어야 했는데(레 21:7), 이러한 조건은 엄격하게 요구되었다(스 2:62, 63, 느 7:6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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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히브리서(서울: 글벗사, 2001, 1판 1쇄), pp. 213-220.

필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신약 주석(마~계, 1-15권)/ 설교집 28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우린 신유의 도구/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다수의 논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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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2-02 11:36
    귀한 글 감사합니다. 이제 바로 프린터로 출력했습니다. 차분하게 꼼꼼히 읽겠습니다. 전 감신 신약학 조경철 교수님의 책은 꼭 전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ㄱ 꾸벅~

    • 2021-02-02 11:44
      필자의 답글인 멜기세덱에 대한 주석을 출력하여 차분하게 꼼꼼히 읽겠다고 하시고, 또 전 감신 신약학 조경철 교수님의 책도 보낸다고 하시니 감사합니다.

  • 2021-02-02 12:49
    진짜. 차분하게, 꼼꼼히, 전부 다, 읽어야 합니다. 진짜루.

    • 2021-02-02 17:27
      필자의 히브리서 주석의 글에 관심을 보여서 감사합니다.

  • 2021-02-02 20:58
    올리신 내용에서 잘 배웠으며 본문에 대한 저의 소견을 공유합니다.

    ㈎ 멜기세덱은 히브리서와 창세기에 등장합니다. 공히 히브리 민족이 이 무대의 주인공들입니다. 즉 히브리 민족의 지위는 마지막에 회복됩니다. 반면에 로마가톨릭의 교황이나 혹은 동방정교 혹은 개신교의 권력자들이 대제사장의 반차가 될 수 없습니다. 비록 그들이 교회사적 비중을 가지고(이들을 주류로 삼은 교회사가 옳은지?) 현재 교권을 장악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 창14:18~20: 멜기세덱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 하나님께 축복을 의뢰함, 전쟁과 승리에 대한 감사와 찬송, 멜기세덱은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왔고, 아브람은 ‘십분의 일’을 가지고 옴.
    ‘살렘’은 [시76:2 그의 장막은 ∇살렘에 있음이여 그의 처소는 시온에 있도다] [요3:23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베푸니 거기 물이 많음이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떡과 포도주’는 마26:26~29에서 죄를 대속하시려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언약의 피’를 상징하며 [사36:17 내가 와서 너희를 너희 본토와 같이 곡식과 ∇포도주와 떡과 포도원이 있는 땅에 옮기기까지 하리라]
    ‘십분의 일’은 소득과 사람을 포함하는 모든 것에 해당. 세금과 관세도 1/10임 [레27:30 그리고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 [히7:9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할 수 있나니]

    ㈐ 시100:4에서: 재림으로 오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주로, 영원한 제사장으로 오십니다. 시편에도 많은 예언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10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2.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 3.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 도다 4.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5.주의 오른쪽에 계신 주께서 그의 노하시는 날에 왕들을 쳐서 깨뜨리실 것이라]

    ㈑ 히브리서에서 멜기세덱과 예수님과 연관성
    1) ‘멜기세덱’은 ❶ 살렘 왕이요 ❷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❸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❹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이상 히7:1절) ❺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❻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이상 2절) ☞ ‘멜기’와 ‘세덱’은 의와 왕이라는 단어이다. ‘살렘’은 ‘평강’의 뜻이다. ❼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 멜기세덱은 이 땅에 한정된 사람이 아니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도 아니다. 조상과 후손도 없다. ❽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 그는 영원하며 죽지 않는다. (히7:17 역시) ❾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이상 3절) ☞ 그의 직분은 대제사장이다. ❿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 그의 신분은 높다. ⓫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이상 4절)

    ☞ 제사장의 직분은 멜기세덱에서 ≫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짐... 히5:6,10, 6:20, 현재 예수그리스도는 대 제사장 신분임. 다른 대제사장은 없음. [히4: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 멜기세덱에 대해서는 신자들이 듣는 것이 둔해서 쉽게 이해하기 어렵고 설명하기 어렵다 [히5:11]

    ㈒ 최 목사님이 올리신 내용 중에서 다음의 학자들의 견해는 오류가 있다고 사료됩니다.; 휴스(P. E. Hughes), 헤위트(T. Hewitt), 미헬(O. Michel), 필로(Philo), 암브로스(Ambrosius), 오리겐(Origan), 디디무스(Didymus), 히에라카스(Hierakas), 에피파니우스(Epiphanius), 마르꾸스 에레미따(Marcus Eremita), ‘멜기세덱파 사람들’, '후대의 그리스도교 영지주의', 렌스키(R. C. H. Lenski), 아퀴나스(Thomas A quinas)의 위 인용된 견해들; 제 주장의 근거로 예를 들어, “멜기세덱은 노아의 아들인 셈과 동일시된다.”는 견해는 히7:3과 배치합니다.

    • 2021-02-02 21:53
      필자의 히브리서 주석서의 멜기세덱에 대한 주석에 관심을 보이셔서 감사합니다.

    • 2021-02-03 09:44
      엄재규 장로님은 장로님이시면서도 최목사님 못지 않은 신학적인 지식을 갖고 계신 실력자 장로님시네요.
      댓글을 통해 장로님께 인사를 드립니다.

      • 2021-02-03 10:50
        노목사님
        내용을 좋게 평가해 주신점 감사합니다.
        최목사님은 오랜기간 오래전에 한결같이 하나님의 말씀들을 '정금과 송이꿀' 처럼 여기시고 설교와 일선 목회현장에서 성경적 입장을 지켜오신 귀한 목회자이시고, 하늘의 상급이 크다고 봅니다. 제가 부끄러우니 저와 비교하지 마시고요..

  • 2021-02-03 05:33
    이 귀한 글을 숙독하면서 멜기세덱을 문학적으로 접근했던 텍스트가 있나 섬세하게 찾아 보고 싶은 갈망이 생겼습니다. 기감의 각 교회의 목회자들이 이단으로 빠져서 헷갈리지 않도록 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는 내용이라 사려됩니다. 이렇게 탄탄하게 멜기세덱에 대한 이해를 정확하게 한다면 은근슬쩍 다가오는 신천지와 하나님의 교회?같은 세력들에게 시험들지 않으리라 봅니다. 벌써 2001년에 이렇게 작성하셔서 책으로 펴내셨다니 놀랍습니다. 다시 한번 존경의 마음을 담아서 감사함을 전합니다. ㄱ꾸벅--

  • 2021-02-03 05:36
    엄재규 장로님의
    엄청난 필력
    재미있고 신선한 관점의 그들
    규범이 될만 한 소중한 보석같은 통찰들

    늘 귀하게 받고 있습니다. 지금은 인터넷 검색의 시대지만 일전에는 백과사전의 시대였지요.
    엄재규 장로님은 정말 만물박사십니다. 그 박학한 지식이 살아있는 글로 표출되는 꿈틀거림이 놀랍습니다. 앞으로도 건필하셔서 후학들에게 주시는 귀한 권면이 계속해서 시나브로 이어지기를 빕니다. ㄱ꾸벅--

    • 2021-02-03 08:48
      장 목사님
      1. 저는 하나님의 말씀들을 이해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때 성령님께서 지혜와 명철을 주신다고 봅니다. 유의할 점은, 사탄은 지혜는 있으나 명철이 없습니다. 이를 구분해야 합니다.
      2. 목사남께서 '하나님의 말씀들'을 대언하시고, 강단에서 자기의 생각을 전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3. 저를 포함해서 인간들은 하나님 앞에서는 띠끌과 같습니다. 성경말씀들과 깨닫음은 성령께서 주신 것이며,

  • 2021-02-03 09:36
    교회는 하나님에 관하여 "삼위일체"라는 교리를 세움으로써 세속의 갖가지 이념과 사상 그리고 종교들로부터 교회를 방어하기 위하여 교회의 방어탑(공리) 세웠으나 오히려 성경을 통해 전해지는 임마누엘 하나님에 관하여 제한하고 축소하고 고착화 시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교회 밖에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배제하거나 배척하게 되었으며 이것이 교회다움을 지킬 수 있는 것이라 여기며 합리화 시켰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으시고 교회를 이루셨지만 가시적 교회는 지금부터 독단적으로 자신들이 하나님을 지키거나 방어하려 하는 오만함을 보였다 생각을 합니다. 세속 교회가 하나님을 지키거나 방어하려 함이 아니라 오히려 독점하려 했었던 것일 뿐 입니다.
    세속 교회를 이루신 것도 하나님이고 교회를 교회 답게 하는 것 또한 하나님께 있음일 뿐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거품을 물고 달려듭니다. 그러한 질문 자체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인 냥 방어망을 쳤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유대교 밖에도 하나님의 백성이 있음을 말입니다.
    그리고 케톨릭 교회나 정교회 밖에도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으며, 장로교나 감리교 밖에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세속 교회)가 진실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진실한 믿음으로 살아가려는 경건한 이들인가? 라는 질문은 내버려둔 채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멜기세덱을 임마누엘(하나님)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라 생각을 합니다.
    참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세상)와 항상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창조 이전부터 세상의 끝과 그 후(인지의 영역을 벗어나)에도 영원히 함께 하실 임마누엘 이십니다.

    댓글을 통해 최세창 목사님께 인사를 드립니다.^^

    • 2021-02-03 13:21
      노재신 목사님, 오랜 만에 글을 통해 대하게 되어서 반갑고, 필자의 주석에 관심을 보여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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