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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집(성전, 교회)을 사랑하고 사모하자 : 비대면 예배(?)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0-10-26 13:14
조회
586
(설교 동영상: 유튜브)

<시편 84:1-7>

1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2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3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4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셀라) 5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6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 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7저희는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1. 시작하는 말

삼국 통일에 큰 공을 세운 김유신 장군은, 젊은 때인 화랑 시절에 기생인 천관녀를 사랑해서 허구한 날 말을 타고 그 기생집에 놀러 다녔습니다. 수련을 게을리 하며 기생에게 빠진 사실을 안 어머니는 준엄하게 꾸짖었고, 청년 김유신은 어머니께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엄숙한 마음으로 약속하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술에 잔뜩 취한 채, 말을 타고 집에 가다가 꾸벅꾸벅 졸았습니다. 졸던 그가 말이 서는 바람에 퍼뜩 정신이 들었는데, 보니까 집이 아니라 기생 천관녀의 집이었습니다. 이에 화가 난 그는 애마의 목을 베어 버리고 마는 잘못까지 저질렀습니다.
성령을 좇아 믿음으로 구원받은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의 교회에 드나들며 예배하고 충성하고 있습니까? 주님이 머리이신 하나님의 교회가 우리의 마음과 생활의 중심이 되고 있습니까?

2. 성전을 사랑하여 주께 얻는 힘과 마음의 시온의 대로

우리가 교독한 시편은 예루살렘으로 순례하는 때의 찬양시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 순례자는 하나님을 가리켜 “만군의 여호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순례자는 하나님을 그 어떤 잡신들과 비교될 수 없는 절대 능력자인 하나님으로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어디에나 계시지만, 특별히 우리의 예배와 예물을 받으시고, 말씀의 은혜와 필요한 복을 주시는 곳인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하고 사모하여 예루살렘으로 순례의 길을 간 것입니다.
이 순례자는 아름답고 웅장한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면서,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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짖나이다”라고 토로했습니다. 우리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바라보면서, 진정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볼 수 있는 영안이 열려 있는 겁니까? 세상의 그 어떤 아름다운 건물보다도, 그 어떤 웅장한 건물보다도 더 주님의 장막을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까? 너무너무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고 사모하기 때문에, 영혼이 쇠약해지는 경험을 해 보았습니까? 사람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생명 없는 우상들과 달리,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난 기쁨과 즐거움의 환성을 질러 본 적이 있습니까?
이 순례자는 얼마나 하나님과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하고 사모했던지, 심지어 주님의 제단에 보금자리를 얻어 사는 참새와 제비를 시기하고 부러워하기까지 했습니다.
다니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갖은 고생 끝에, 바벨론의 총리가 되어 정치할 때에 벌어진 일입니다. 왕의 총애를 받는 다니엘 총리를 시기하여 제거하려는 모든 총리와 수령과 방백과 모사와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율법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요청했습니다.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 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그런즉 왕이여 원컨대 금령을 세우시고 그 조서에 어인을 찍어서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그것을 다시 고치지 못하게 하옵소서” 다니엘 6:7 이하입니다. 다리오 왕은 조서에 어인을 찍어 금령을 내렸습니다.
누구보다도 이 법령을 잘 아는 다니엘 총리가 어떻게 한지 압니까? 다니엘 6:10을 보면,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라고 했습니다. 평소에 하던 대로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열린 창에서, 매일 세 번씩이나 무릎을 꿇고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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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보혈의 은혜로 지옥으로 끄는 죄의 사함과 성결한 삶과 영생의 구원을 받은 우리는 주님이 머리이시고, 우리가 몸의 지체인 하나님의 교회를 다니엘보다 더 사랑하고 사모하며 하나님께 감사해야 되지 않습니까?
오래 전 일입니다. 형님이 목회하시던 시골 교회에 문OO라는 청년 교인이 있었습니다. 믿지 않는 집안에서 핍박을 받으면서도, 얼마나 열심히 주님을 믿고 충성하고 봉사하는지 모릅니다. 언젠가 추수하느라 무척 바쁜 가을 어느 주일에, 예배를 드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교회 문이 열리더니, 땀으로 목욕을 한 이 청년이 헐레벌떡거리며 들어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예배가 끝나기가 무섭게 부리나케 달려나갔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연인즉슨, 추수하느라고 온 식구가 동원되어 정신없이 일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예배드리러 교회는 가야겠는데, 영 기회가 나지를 않아서 애를 태우며 눈치를 보던 중에 드디어 기회를 잡았다는 겁니다. 새참을 먹는 시간이 되어 식구들과 이웃 사람들이 일을 쉬고 모일 때, 소변보러 가는 척하면서 떨어지다가 시야에서 벗어나는 순간에 죽을힘을 다해 뛰어왔다가 죽을힘을 다해 뛰어갔다는 겁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자기 교회를 두고 남의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는 것이 영 탐탁하지 않은 것입니다. 정말 부득이한 경우야 어쩔 수 없겠지만, 자기 학교의 자기 교실을 두고 남의 학교의 남의 교실에 출석한 것을 출석했다고 해야 할지 결석했다고 해야 할지 알쏭달쏭합니다.
이 순례자가 그토록 하나님과 하나님의 집을 사랑하고 사모한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고귀한 선물인 성전 예배, 곧 교회 예배에 참석할 수 있다는 행복감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왕’, ‘우리 하나님’이라는 신앙 고백이 아닌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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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왕’, ‘나의 하나님’이라는 신앙 고백을 하는 성도다운 모습이 아닙니까? 그는 시편 84:10에서,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정례적으로 드리는 예배는 그때그때 하나님과의 새로운 감격적 만남의 사건이 되어야 하고, 말씀을 깨닫는 영적 희열이 충만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에게는 거짓말과 위선, 비리와 부정, 몰염치와 뻔뻔함, 추악과 음란, 편파와 불공정이 난무하는 곳이나 장막보다 하나님의 집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더 좋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순례자는 하나님의 집에 거하며 일하는 사람들인 제사장들과 찬양대원들과 성전 문지기 등에 대한 부러움을 토로했습니다. 성전인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생활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복이 많으냐는 것입니다.
이 순례자는 주님께 힘을 얻고,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주님께 힘을 얻어서 순례의 길에 나선 사람은 복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세상 권세자의 힘을 얻어도 복이라고들 하는데,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힘을 제대로만 얻는다면, 정말 놀라운 복을 받은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능력인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들은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도, 그 곳을 많은 샘이 나오는 장소가 되게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여름 열기가 지난 후에 열렬히 바랐던 이른 비도 은택을 입혀 준다는 것입니다. 결국 주님의 힘을 얻은 순례자들은 다 시온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눈물 골짜기를 바카 골짜기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메마르고 황량한 골짜기라는 뜻입니다. 주님께 힘을 얻는 성도들, 즉 하나님을 바로 믿고 주님 안에 사는 성도들에게는 메마른 광야가 변하여 샘터가 되는 것입니다. 약한 것이 변하여 강해지고, 어리석음이 변하여 지혜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힘을 얻으면 불가능이 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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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가능이 되고, 교만이 변하여 겸손이 되고, 강퍅이 변하여 온유가 되고, 미움이 변하여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오래 전, 어느 선교사가 중국에서 활동하다가, 안식년이 되어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마침 중국에는 유행병이 돌고 있었는데, 중국의 의학이 발달되지 못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이 선교사는 유행병 환자의 혈액 속에 들어 있는 세균을 자신의 혈액 속에 주사하고는, 병든 몸을 끌고 미국으로 갔습니다. 그는 미국에 있는 유명한 병원을 찾아가서, 자기 혈액 속에 있는 세균을 연구하여 예방 주사약을 만들어 중국인들의 생명을 구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 결과, 그의 희생과 헌신으로 많은 중국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온갖 핍박과 환난을 이겨내면서 성령의 은사로 병자를 고치고, 복음으로 뭇사람의 영혼을 구원하고, 곳곳의 악습과 폐단을 없애고, 당시의 세계적인 대제국 로마를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정복했던 바울 사도의 고백입니다. 빌립보서 4:13을 보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피조물인 인생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힘을 얻는 일입니다. 베드로전서 4:11을 보면,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라고 했습니다.

3. 맺음말

오늘 이 말씀을 들은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특별히 거하시면서 역사하시는 교회를 사랑하고 사모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믿는 우리의 마음과 생활은 하나님의 집인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가 중심이 되어야만 합니다. 교회 예배란 신앙생활의 기본이자 집약이며, 바른 신앙생활을 위한 교육과 훈련이며, 절대자 하나님과의 감격적인 만남의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곳에서 천 날을 보내는 것보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한 날을 보내는 것을 더 즐거워하며 찾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힘이 공급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고 사모하며, 기쁘고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예배함으로써 주님께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설교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신약 주석(마~계, 1-15권)/ 설교집 28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다수의 논문들/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전체 4

  • 2020-10-26 22:43

    말씀 고맙습니다.
    그러나 토로나 19 상황은 한마디 언급이 없습니다.
    어제도 코로나 19확진자가 119명이 늘어 총 확진자는 25,955명입니다.
    적은 수라고요?

    전 세계 코로나(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하루 50만명에 달하면서 누적 총수 4300만명을 목전에 두고 있고 사망자는 115만명을 넘었습니다. 미국 8만명, 인도 5만명, 프랑스 4,5천명, 브라질 1,5천명, 영국2,3천명.... 국민이 많은 나라라고요?

    코로나 19로 모이면 확진환자가 될 공산이 큰데....
    모이면 사람들이 확진되고 죽어가는데...
    과연 사람을 살리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모여서 살리는 것이 있다면 흩어져야 사는 것이 있다면...

    요한복음 4: 20-24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23.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이 말씀을 보면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 진정이 문제라는 말씀으로 와 닫습니다.
    예루살렘은 교회를 의미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은 아니라고 하시니... 필자의 오만인가요?

    교회에 와서 사람이 모여 확진이 된다면....
    어떻게 방역을 하고 어떤 최소한의 여건에서 예배를
    어떻게 드릴 수 있는지에 대한 제안이 나와야지
    무조건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을 만나는 사건이라면 무리한 설교라고 감히 말씀드려 봅니다.


    • 2020-10-27 10:27

      필자의 설교에 관심을 보이셔서 감사합니다.

      댓글에 대한 답변입니다.
      ㅡ. 중국의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19가 중국에서 확산되어 세계 각 나라로 감염되어 무수한 확진자가 생겨서 고통을 당하거나 죽고, 그로 인해 경제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 어마어마한 피해를 주고 있다는 소식은 YTN, 체널A, TV조선, MBN, 연합뉴스, 조선일보, 경향신문, 인터넷 등등을 통해 남들이 아는 만큼은 알고 있습니다.

      ㅡ. 은퇴 전에 시무했던 교회의 의사들도 코로나19에 대한 치료약도 없고, 백신도 없고, 다만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유지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되도록 안 가는 것밖에는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교회들처럼 마스크를 하고, 교회(구약의 성전)에 예배드리러 오는 교인들의 열을 검사하고, 1-2m 거리를 두고 앉게 해서 마스크를 쓴 채 예배드립니다. 못 오는 교인들을 위해서는 가정 예배를 드리게 하고 설교는 필자의 동영상을 보냅니다.
      수만, 또는 수십만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거리 유지를 안 한 채, 손을 잡아 끌어 주면서 함께 산행을 하거나, 해수욕장이나, 관광지나 놀이동산 같은 유원지 등에 몰려 든 모습을 보면서 걱정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이 주변 식당에서 1시간 정도 마스크를 벗고 식사하면서 담소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걱정도 했습니다. 전철로 출퇴근하는 교인들이 거리 유지는커녕, 어떤 때는 움직일 수도 없을 정도로 꽉 차서 불안하다고 하는 말을 듣고 큰 걱정도 합니다.
      이런 현상을 보면, 마스크를 쓰고, 거리 유지를 하고, 1시간 안팎의 예배를 드리는 교회는 비교적 안전하다고 할 수 있지요.

      ㅡ.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라는 말씀(요한복음 4:23-24)에 대한 주석은 이미 감게판에 등록해 놓았습니다.

      ㅡ. “예루살렘은 교회를 의미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은 아니라고 하시니... 필자의 오만인가요?”라고 하셨는데,
      본 설교에는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예루살렘 성전)이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문장도 없고, 그런 의미로 해석될 문장도 없습니다.

      ㅡ. “무조건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을 만나는 사건이라면 무리한 설교라고 감히 말씀드려 봅니다.”라고 하셨는데,
      본 설교에는 무조건 운운한 문장도 없고, 그런 의미로 해석될 문장도 없습니다. 교회의 예배 때도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지 않고, 조는 사람도 있고, 설교 시작과 동시에 자기 시작해서 설교가 끝나면 깨는 사람도 있던데요.

      끝으로, 질문합니다. 코로나19나 질병이나 치유에 대한 설교가 아닌, 교회(성전) 예배에 대한 설교 내용에 설교자의 선입견과 고정관념과 편견에 맞춰 성경 본문을 왜곡했거나, 성경 분문의 의미를 틀리게 이해한 내용이 있습니까?


  • 2020-10-27 13:19

    난 교인들이나 교역자들이 영화관이나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이나 유튜브에서 장례식 예배나 결혼식 예배를 드리는 장면을 보았다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때, 말하는 그들이 그런 예배를 드렸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 그런 예배를 드린 것이라고 말해 준 적도 없다. 비대면 예배(?)도 정상적인 예배라고 주장하는 교역자들이나 신학자들은 코로나19가 종식된 후에도 교인들에게 교회 예배나 비대면 예배(?)는 다 정상적인 예배이니 꼭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할 것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교회에 안 다니고, 아무 데서나 스마트폰으로 예배를 드리겠다고 하는 교인들에게는 뭐라고 권할 것인지도 궁금하다.
    코로나19로 인해 주의 집인 교회에 붙어 앉아서 예배드릴 수 없으므로 일부 교인들은 교회에서 철저하게 안전 수칙을 지켜 예배드리게 하고, 안전 수칙상 교회 예배 때 수용못하는 교인들에게는 가정에서 가족이 다 모여 교회 예배 순서대로 예배드리게 하고, 설교도 교회 예배 설교의 설교문이나 설교 동영상을 시청하게 하면 어떨까 싶다. 물론, 교회 예배애는 교인들을 교대로 참석시켜야 할 것이다.


  • 2020-10-27 16:35

    제가 오해했나 보군요.

    현 시대가 코로나 19로 대면 예배냐? 비대면 예배냐?고 갈등하고
    비대면 종교행위에 대해 주장하는 정부를 향해 종교탄압이다. 예배탄압이다 하는 때에
    교회를 사랑하자하며 일터에서 일하던 청년이 새참을 먹는 타임에 소변보러가는 척하고 달려 교회에 가서 예배드렸다는 예화 등이 코로나 19상황이라도 교회에 가서 예배드려야 한다는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갑작스런 코로나 19시대에 목회자들의 갈등이 있습니다.
    모이면 코로나 19로 확진되거나 죽어가고
    예배는 드려야 겠으나 그렇게되면 대면으로 확진사례는 있으니...말입니다.

    "비대면 예배(?)도 정상적인 예배라고 주장하는 교역자들이나 신학자들은 코로나19가 종식된 후에도 교인들에게 교회 예배나 비대면 예배(?)는 다 정상적인 예배이니 꼭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할 것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교회에 안 다니고, 아무 데서나 스마트폰으로 예배를 드리겠다고 하는 교인들에게는 뭐라고 권할 것인지도 궁금하다. "

    이것 때문에 코로나 19에도 죽음을 무릎쓰고서라도 교회에 나와 대면예배를 드리라고 권면하고 강조하시는 것인지요?

    코로나 19로 비대면 예배가 가능했다면 이것이 종식된 이후엔 다시 대면 예배로 가야겠지요.

    그러나 코로나 19 이전의 교회와
    코로나 19이후의 교회는 전혀다른 형태가 되겠지요.
    그런 속에서도 성도들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져버리지 않고 믿음을 지켜 살아가야하는지의 책임은 목회자들에게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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