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환목사 안수보자에 관하여

작성자
신동근
작성일
2021-04-23 06:57
조회
1215
샬롬! (혐오와 차별을 반대하는 감리회모임)변영권목사 글이에요 정♡♡목사의 목사안수는 하나님과 감독, 그리고 부여받은 그 공동체에서 주는 거에요

http://m.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5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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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환 목사 안수 보좌 문제에 관하여>

신학교 시절 교회사를 가장 재미있게 공부했습니다. 지금은 감신 총장이신 이후정 교수님의 수업을 꽤 많이 쫓아 다니면서 들었습니다. 교회사를 배우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어떤 교리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없고, 언제나 당시의 문화, 사상, 정치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시대적 산물이라는 점, 특히 초기 그리스도교의 역사에 등장하는 신학 논쟁 대부분에는 당시의 교단 정치가 깊숙이 개입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아마, 먼 미래에 누군가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성소수자와 관련된 일련의 논란을 기록한다면 분명히 교리적인 논쟁과 함께 그 뒤에 있는 정치적인 배경과 교단 내부의 권력 다툼 문제도 다룰 것 같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교단 정치에 거의 관심이 없고, 교단법에 대해서도 잘 모르기 때문에 중부연회 안수식과 관련된 법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쓸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동환 목사의 자격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 안수식이 무효라고 하는 주장에 대해서는 조금 할 말이 있습니다. 교회사 속에서 이와 비슷한 상황이 있었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아마 교회사 공부를 한 분들이라면 그 이름 정도는 누구나 알고 계실 “도나투스 논쟁”입니다. 간략히 설명하자면, 로마의 박해 기간 동안 교회를 배반한 사람들이 베풀었던 성례전이 유효하냐는 문제였습니다.

“아프리카와 누미디아 지방(튀니지와 모로코)에서 멜리티우스의 역할을 한 사람은 도나투스(Donatus)라는 불같고 열정적인 한 사제였다. 그는 로마인들의 고문과 감금 속에서도 살아남았으며, 귀향 즉시 제의 도구들을 넘기고 이교 희생제사를 드린 주교들, 혹은 다른 방식으로 스스로 타협했던 주교들을 비난했다. 도나투스파에 따르면, 죄의 용서를 인정하고, 성만찬을 베풀며, 사제 서품 권한을 포함한 사제의 신성한 권한은 타락한 성직자에 의해서는 행사될 수 없었다. 그 후 몇 차례의 교회 회의에서 이 문제를 여러 각도에서 다루었지만, 대부분 성직자의 전반적인 견해는 306년 페트루스 주교가 알렉산드리아로 돌아온 직후 그가 보낸 편지에 잘 나타나있다. 페트루스 편지의 핵심 메시지는 "용서하고 잊어버리라"는 것이다. 그가 볼 때, 사실상 당국자들을 자극하여 처벌을 자초했던 사람들은 칭송할 가치가 없다. 신앙을 변절하지 않고 처벌을감수했던 사람들은 크게 칭송되어야 하지만, 그러한 영웅적 행위는 모든 사람에게서 기대할 수가 없다. 그러나 3, 4년의 고행이 끝나면 가장 심했던 변절 행위도 용서되어야 하고, 그에 따라 실제로는 누구도 다른 신앙인들과의 교제에서 배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배교와 같은 가장 심각한 경우들을 제외한다면, 사제, 장로, 그리고 주교들은 적절한 고행을 한 후에 용서되고 본래의 직무로 돌아올 수 있어야 한다. 페트루스가 확립하려고 했던 원칙은, 사제로서 활동할 권리와 힘은 사제 개인의 거룩함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사제의 직무 자체가 갖는 신성함에 기초한다는 것이었다. 도나투스파는 오직 타협하지 않은 주교와 사제들만이 참된 권위를 갖는다고 주장함으로써, 카톨릭(보편교회)교회를 그들의 교회로 대체했고, 폭발하기 쉬운 새로운 갈등의 소지를 교회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리차드 루벤슈타인, “예수는 어떻게 하나님이 되셨는가?”)

이 논쟁에 대해 공부하면서 저는 솔직히 도나투스파 입장에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저에게 세례나 성찬, 또는 목사 안수를 해 주었던 누군가가 배교를 했거나, 심각하고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고 밝혀진다면 그를 통해 받았던 모든 것을 다 취소하고 다시 받고 싶어질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행하는 교회의 모든 성례전이나 예식들은 그런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위에 인용한 내용에 나오듯이 그것은 “사제(성직자) 개인의 거룩함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사제의 직무 자체가 갖는 신성함에 기초”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목사 안수식에 대해서도 비슷한 관점에서 생각해 봅시다. 목사 안수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일까요, 아니면 사람이 하는 것일까요? 만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라면, 우리는 함부로 누군가의 목사직을 취소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일 사람이 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목사직을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소명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이해하는 목사직, 그리고 목사 안수식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의 공동체로서, 특별한 절차에 따라 목사를 세웁니다. 한 사람의 목사 후보자가 어려서부터 자라온 신앙 공동체, 신학교에서의 공부, 목사가 되기위한 모든 과정을 통해 하나님과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며, 성도들에게 목회자의 삶으로 신앙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품성을 함양하고, 그 모든 과정을 마친 후 (감리교의 경우 연회에서) 교단의 대표인 감독과, 동료 목회자들과, 감리교를 대표해서 자리한 연회원들 앞에서 목사가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소명이자, 동시에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공동체에게 목사의 직임을 위임 받는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그 안수식을 거룩하게 하는 것은, 한 사람의 감독이나 안수 보좌 목사의 거룩함에 의한 것도 아니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거룩해서도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인 교회이기 때문에 거룩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동환 목사가 안수보좌의 자격이 있고 없고는 그 안수식을 무효로 만들 수 없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연회대표들 중 누군가가 조금 전에 신호위반을 했거나, 옆차선 운전자와 멱살잡이를 하고 들어왔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해당 연회 감독이나 안수보좌를 한 이가 안수식이 끝난 뒤 교단법 위반으로 감독의 지위를 잃거나 목사직 정직을 당하더라도 해당 연회에서 안수받은 사람들의 안수를 취소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동환 목사의 현재 상황이 담임목사직 정직인지, 목사직 정직인지와 관계 없이, 앞으로 항소심에서 판결이 어떻게 내려질지 여부와 관계 없이, 그 연회는 거룩하며, 그 목사 안수는 유효합니다.

전체 6

  • 2021-04-23 12:01
    누가 정*권 목사의 안수를 취소해야 한다고 하는 가요?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정*권 목사의 안수 받음이 인정이 된다고 해도 이*환 목사의 안수보좌 논란도 아무 문제없음은 아닐 것 같습니다.
    이 또한 총재위가 알아서 잘 판단 하리라 생각을 합니다.
    개미들의 과열 투자는 결코 개미들에겐 유익이 되지 않을 듯 합니다. 폭망이죠 ㅎㅎㅎ

  • 2021-04-23 12:52
    목사님, 그럼 다행이에요 저도 정목사 일면식없지만, 연회시 오후에 김목사님께서 정감독님께 안수취소를 하라고 했다 들었거든요 아니면 다행이구요 이후에도 그 안수는 무효라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계신 거 같은데, 아니면 다행이어요 그쵸 정목사의 안수는 하나님의 신성과 감독님의 권위로 주었으니 어찌 취소되겠어요 감사합니다 목사님

    • 2021-04-24 09:51
      신동근 글러버님,
      정목사의 안수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저도 정목사라 칭합니다. 그러나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안수 보좌는 구냥 구색 맞추기일 뿐일까요? 안수 보좌는 말 그대로 보좌이니 안수 집례자만 감독이 하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음일까요? 아닙니다.

      바알 선지자를 통해 안수를 받으면 선지자는 될 수 있으나 바알 선지자의 역할을 할 뿐입니다.
      아세라 선지자를 통해 안수를 받으면 아세라 선지자가 되는 것이고 말입니다. 그러니 안수자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왜 케톨릭이 베드로를 1대 교황이라 주장하는 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안수자는 신앙의 전통을 계승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 케톨릭 신부들은 각각의 안수자들을 통해 안수를 받겠으나 그들의 믿음엔 베드로의 영성(믿음과 생활)이 대대로 이어져 자신들에게 전통이 되어 안수를 통해 이어진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그렇게 믿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젠 베드로가 케톨릭의 1대 교황의 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오고 싶을 것이라 생각을 하며 베드로 스스로 자신을 더 이상 케톨릭의 1대 교황이라 이용하지 말라고 할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난 너희들의 교황이었던 적이 없어' 왜냐하면 이젠 베드로의 영성이 케톨릭에 온전하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 입니다. 온갖 혼합된 영성과 왜곡된 영성과 이교도들의 교훈이 거룩한 곳에 서있기 때문입니다.

      웨슬리는 초대교회와 케톨릭과 성공회의 전통을 이어 성공회 신부로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웨슬리는 감리회의 영성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감리회 목회자들은 웨슬리를 본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웨슬리의 신앙의 전통이 안수를 통해 지금도 이어(교통)지고 있음이라 믿습니다.
      웨슬리는 감리회의 시작이 되었으나 신앙의 전통은 성공회와 케톨릭과 초대교회와 유대교와 유대교 이전의 성경을 통해 전해지는 신앙인들에게서 보이지 않게 전해 내려온 성령의 역사에 있음 입니다. 이것이 칼빈과 루터와의 차이점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기에 감리회는 교회의 전통 즉 성령의 역사 하심을 중요하게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 전통은 교회의 조직과 제도를 통해서도 후대의 신앙인들에게 전해질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감리교도들에게 말입니다.

      그런데 정목사는 안수를 받는 데 있어 감리교회의 전통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곧 2명 감독과 감리사는 전통을 따랐지만 1명의 안수 보좌는 감리회의 전통이 아닌 개인의 인연 즉 보은의 차원에서 결정하였던 것입니다.

      이 보은은 결국 장학금(돈)을 받았으니 안수 보좌를 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돈의 힘을 무시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이*환 목사의 동성애 지지자의 영성을 따르려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정목사에겐 감리회의 전통과 맘몬과 동성애 지지자의 전통이 함께 공존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이로써 목회의 혼란이 발생할 것이고 영적인 혼란이 발생할 것이고 이 문제는 목회를 하는 평생의 문제가 되어 따라 다닐 것입니다. 성령의 세례를 받는 날까지 말입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정목사에게 성령의 은혜가 임한다면 동성애 지지의 영성과 맘몬 숭배을 끊고 거룩한 성령의 역사에 동참케 되는 거듭남을 경험하게 될 것이며. 만약 자신은 끝까지 잘 못한 것이 없으며, 스스로 안수 보좌엔 전혀 문제가 없었음이며, 나는 감리회의 정당한 과정과 절차에 따라 안수를 받은 목사이니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음이라고 생각하고 고집을 부리며 교만과 오만의 모습을 보인다면 성령은 정목사를 변화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니가 하고 싶은 데로 어디 마음대로 해봐라'고 하실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곧 둘째 아들의 방탕함의 모습이 정목사에게 나타날 것이란 뜻입니다. 성경의 말씀처럼 정목사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간다면 하나님은 그를 위해 천국잔치를 베풀겠지만 돌아가지 않는다면 정목사 자신의 교만과 오만의 죄를 등에 업고 결국은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자신이 전하는 복음에 구원을 받는 이들은 있을진 모르지만 자신은 그 복음에서 제외가 될 수도 있음이란 것 입니다. 안타깝지만 이것은 정목사의 자유에 의한 선택이었습니다. 이 모든 책임은 이*환 목사에게 있음이 아니라 정목사 자신에게 있음입니다. 이것이 제가 말할 수 있는 글러브 입니다.
      그러니 정목사에게 주님의 자비와 은혜가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 2021-04-24 11:20
    목사직도, 어떠한 의식도, 안수도 항상 거룩하지 않습니다. 신약의 목사는 구약의 제사장과는 신분이 전혀 다르며, 신약은 만인제사장이기에, 비롯 백번을 양보해 비슷하다고 주장할지라도, 레위기와 신명기에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인 제사장들도 모든 금기명들도 피로 정결케 하는 정결의식을 반복해서 합니다. 인간과 관련해 영원히 거룩한 것은 없습니다. 종교적 성사, 성무, 성물.... 그 어떠한 것도

    • 2021-04-24 14:30
      엄글러버님의 말씀처럼 인간과 관련된 그 어떠한 것도 거룩하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원죄이든 자범죄이든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죄인을 온전케 하심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이 죄인을 의롭다 하실 이 또한 거룩한 아버지와 아들과 그의 영이신 성령입니다. 그러니 이 거룩함을 판단할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시고 내가 온전하니 너희도 온전하라고 하십니다.
      어찌 인간이 온전할 수 있으며 어찌 인간이 감히 거룩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의 요구이자 명령이며 하나님의 말씀인 것 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구약성경을 통해 대속의 희생제를 요구하셨습니다. 희생제가 거룩한 것이 아니라 희생제를 드리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을 거룩하다 하실 이는 오직 하나님 뿐이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거룩하다 하시면 거룩한 것 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한 번에 죽으심으로 더 이상의 동물 희생의 대속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되는 영원한 제사를 허락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허락하시는 대속의 은혜입니다.

      어찌 예수님을 믿는다고 죄인이 의로워 질 수 있으며 어찌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을 한다고 사람이 온전해 질 수 있는 것일까요?
      이 또한 하나님이 거룩하다 하신 것을 속되다 할 수 없음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룩하다 온전하다 판단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을 믿음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대속의 구원자, 메시야로 영접하는 것이 영접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허락하심이라고 성경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인간이 의롭게 행동하고 인간이 의롭게 말해서 거룩해지거나 온전케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하심을 영접하는 것 입니다. 이 영접은 곧 성경의 말씀인 하나님의 뜻을 알고 믿어 구원을 이루는 것이며, 이러한 구원을 이루길 원하는 자에겐 그에 대한 확증으로 거룩한 영 즉, 성령을 보혜사를 선물로 허락하여 주심인 것입니다.

      보혜사는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고백케 하고 온전헤 고백케 된 신실한 신앙인에게 신앙인 다움 삶과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인도하시며 지혜를 허락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한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죄인인 인간을 의롭다 하십니다. 대신 그에 상응하는 믿음의 고백이 필요한 것 입니다. 그러나 이 믿음의 고백 또한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은혜가 아니고선 인간은 감히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온전히 고백하지 못하게 됩니다. 곧 알고 믿지 못하게 된다는 의미 입니다.

      세상엔 예수를 그리스도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이는 적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는 것은 엄청 많으나 실상은 믿지 않습니다. 더 정확히 표현을 한다면 믿지 못합니다. 왜냐구요? 성령이 함께 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지 않음으로 감동와 울림이 없으며 공명도 없습니다. 그러니 성도라 하는 이들이 다 뿔뿔히 흩어져 따라 따로가 됩니다.

      원래부터 하나님 안에서 하나인 것을 분리하고 나누는 것은 인간입니다.
      이것이 곧 죄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흩어진 것을 하나되게 하시며 나뉜 것을 하나로 온전케 하심이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 증표로 허락하심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희생입니다. 그러니 이 3가지가 하나가 되어 온전히 알고 온전히 믿게 합니다. 이러한 영적인 상태 이러한 혼적인 상태, 이러한 육적인 상태 즉 영과 혼과 영이 따로 따로가 아니라 온전히 하나가 되는 상태를 웨슬리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라 하였습니다. 더불어 성경은 그리스도의 몸된 성전(첫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우리 인간 자신이 거룩케 되거나 온전케 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의 뜻과 역사 하심과 은혜로 온전케 되고 거룩케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모임 즉 교회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나타난 거룩한 변화 입니다. 이 변화는 성령에 의해 이뤄진 전적인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며 이를 통해 죄인인 인간이 감히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격을 온전히 얻게 됨이여, 예수 그리스도를 형제라 부를 수 있게 됨이며, 거룩한 영을 영원한 생명이라 고백을 하게 됨인 것입니다.

      이러한 거룩한 교회가 모여 성례를 행합니다. 이 성례는 주님의 언약의 약속입니다. 그 예식 행위가 거룩한 것이 아니라 그 행위를 통해 거룩케 하실 하나님 때문에 에식이 거룩케 됨인 것입니다. 그러니 그 성례를 행하는 이들의 어떠한에 그 거룩성과 온정성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그 순종이 거룩한 것이며 그 순종을 거룩하다 하실 하나님 때문에 거룩케 되는 것 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다 하심을 인간이 감히 속되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엄글러버님은 이러한 하나님의 거룩함을 믿음으로 믿지 않으십니다. 그리곤 말하길 "뭐가 거룩하냐? 인간과 관계된 모든 것은 거룩한 것이 없음이다."라고 말하십니다. 엄 글러버님이 하나님이신가요? 진정 그렇다면 아멘으로 화답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엄글러버님이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아멘으로 화답을 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부정하고 배반하는 배교의 행위가 될 수도 있음입니다. 아멘이 왜 배교가 되고 아멘이 왜 배반이 될 수 있음입니까? 아멘 자체는 거룩한 것 입니다. 다만 온전한 것과 거룩한 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탐욕적인 마음으로 아멘으로 말하니 배교가 되고 배반이 될 수 있음인 것 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아멘과 같이 성례도 그 자체론 거룩합니다. 다만 그 성례에 임하는 이가 믿음으로 성례를 받는 다면 그 성령의 거룩함이 온전히 이뤄질 것입니다. 그러나 믿지 못하는 마음으로 즉 믿음 없음으로 성례에 참여한다면 그 믿음 없음에 대한 징계가 그 성례를 따라 죄인인 인간에게 고스란히 그 댓가를 구하게 될 분이 게시는 그 분이 바로 모든 속된 것도 거룩하다 하실 것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그 성례를 인도(집례)하는 이나 그 성례에 참여하는 이가 온전한 믿음으로 성례를 행하고 성례에 참여함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가르침이며 이것이 성령의 역사하심이며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자 거룩한 제자의 삶을 살았던 베드로의 믿음이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베드로의 이름 때문에 그 거룩함이 후대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그 성례를 행함에 있어 거룩한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이름으로 행함이 거룩함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을 드린 성례를 행하는 자의 영성(믿음)은 개인의 영성(믿음)을 의미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따라 성령의 확증하심으로 부어주시는 역사하심 입니다. 그러니 베드로의 이름으로 되어짐이 아닌 베드로의 온전한 믿음의 영성 곧 성령의 역사하심이 교회의 전통이며 교회를 통하여 행해지는 성례의 전통이라는 의미입니다.

      전통이라는 단어가 엄글러버님의 마음을 가로막았다 생각을 합니다. 어떻게 인간의 전통이 거룩할 수 있는가?
      맞습니다. 옳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을 드리는 것은 거룩한 믿음을 가졌던 사도들의 영성(온전한 구원)을 통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거룩한 말씀의 영성(하나님이 거룩케 하신 것을 속되다 하지말라)의 전통만이 거룩케 한다는 의미 입니다.

      이 거룩한 의식이 성령을 쫓으면 온전히 거룩케 되는 은혜의 선물이 될 수 있으나 거룩한 의식이라고 말하는 의식이 인간의 뜻을 쫓으면 오히려 거룩케 하시는 은혜의 선물을 부정하거나 배척하는 행위로 나타날 수도 있음이라는 뜻 입니다.

      제가 드리는 이 말씀 조차도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감동과 울림과 공명이 되지 못한다면 인간의 속된 교훈, 가르침, 개똥 신학처럼 들려 질 것이지만 성령의 역사하심 가운데 감동이 있고 울림이 있으며 공명이 나타나 아멘으로 화답하게 된다면 거룩한 하나님의 교훈, 가르침, 감리회의 신학이 되어 거룩케 하고 온전케 하여 구원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하심이 될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쫓아 성령의 감동과 울림, 그리고 공명이 엄글러버님에게 나타나길 기도드리며 이것이 제가 엄글러버님에게 드릴 수 있는 글러브 입니다.

  • 2021-04-24 14:43
    제 어리석은 자의 설명이 어려우실 수 있으니 교리와 장정의 내용을 첨부하여 드립니다. 읽고 이해하고 깨닫고 아멘으로 화답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교리와 장정 [32] 제16조 성례
    그리스도의 설립하신 성례는 그리스도인의 공인하는 표적과 증거가 될 뿐더러 더욱 은혜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향하시는 선한 의지와 확실한 표니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묵묵히 역사하시어 우리의 신앙이 활동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더욱 굳게 하는 것이다.

    복음에 우리 주 그리스도의 설립하신 성례가 둘이 있으니 곧 세례와 주의 만찬이다. 견신례와 참회와 신품과 혼인과 도유식들 다섯가지를 성례라 하나 이는 복음적 성례로 여기지 못할 것이다. 그 가운데 어떤 부분은 사도의 도를 오해하므로 된 것이며, 어떤 부분은 성경에 허락하신 생활의 정형으로 된 것이다. 그러하나 하나님께서 명하신 드러나는 표적과 의식이 없으므로 세례와 주의 만찬과 같은 성질이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설립하신 성례는 우리로 하여금 응시나 하든지 휴대하고 다니라는 것이 아니요. 우리로 하여금 적당히 사용하게 하심이다. 그러므로 성례를 합당하게 받는 이에게만 유익한 결과와 효력이 있고 합당치 아니하게 받는 이는 사도 바울이 말씀한 바와 같이 자기에게 정죄함을 받는 것이다.

    [33] 제17조 세례와 [34] 제18조 주의만찬은 교리와 장정을 참조하여 읽어 보시길 권면을 드립니다. 이것이 제 글러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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