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이 아닌 검을 주러 왔노라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1-02-12 17:41
조회
446
(설교 동영상 : 유튜브)

(마태복음 10:34-37)

34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5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37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1. 시작하는 말

기독교는 부모를 모르는 종교라고 하거나, 기독교는 불효의 종교라고 하는 말들을 합니다. 오랜 세월 불교와 유교 사상에 영향을 받아 온 우리 한국인들이, 제사도 안 드리고, 부모와 온 집안이 멸문지화를 망할 것을 알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교인들을 보면서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교독한 성경 본문도, 기독교를 불효의 종교라고 오해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실상, 구약성경의 집약인 십계명의 인간에 대한 계명 중 첫 계명이,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신약성경 곳곳에도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또한, 주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지시고, 극도의 고통과 극도의 치욕인 십자가에 못 박히신 상태에서도, 성모 마리아를 제자인 요한에게 부탁하시는 효심을 드러내셨습니다.

2. 검을 주러 오셨다는 말씀의 속뜻인 가족 사랑

하나님의 성육이신 주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설명하신 말씀에는, 가족 사이의 사랑을 얼마나 중시하시는가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피상적인 이해로는 깨달을 수 없습니다.
주 예수님은, 믿음으로 구원받은 교인들과 핍박하는 불신자들로 인해 양측에 발생되는 불화에 대해 예언하셨습니다. 주 예수님은 인간 세상이나, 각 집안을 불화하게 하시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인간을 지옥으로 끄는 죄와 불신앙을 사하시고, 주님 안에서 성령을 좇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성결한 삶과 영생의 구원을 얻게 하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그 놀라운 사랑의 주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지각을 뛰어넘는, 우주보다 더 큰 사랑의 주 예수님을 믿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좇아 믿어 구원받은 사람들을 불신자들이 배척하거나 핍박하기 때문에, 양측에 불화와 분쟁이 발생되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아시는 주 예수님은,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주 예수님은 불신앙과 죄악과 탐욕으로 인해 불화와 반목과 분쟁 아래 있는 인간 세상에 구원과 화평을 주시려고, 죄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회개하고 믿도록 징계하시고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주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아 하나님께 속한 교인들과 세상의 권세 잡은 자인 마귀에 속한 불신자들 사이에 불화와 분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 예수님이 화평이 아닌 검을 주러 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 예수님의 말씀은 믿는 교인들에게 안 믿는 사람들과 불화하고 분쟁하라는 것이 아니라, 발생되는 현상을 알려 주어 대비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죄 아래 있는 인류 구원을 위해 강림하신 주 예수님을 부인하고 배척하고 핍박하는 불신자들 때문에, 발생되는 불가피한 불화와 분쟁에 대해 지혜롭게 대처하도록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과 핍박하는 사람들 사이에 발생되는 불화와 분쟁과 다툼이 세계 곳곳에서 발생했고, 또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 예수님은 그러한 현상을 다른 곳들을 다 제쳐놓고, 집안에 적용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라.”
집안 식구들의 불화와 분쟁은 주 예수님을 믿기 때문이 아니라, 불신앙과 강퍅함 때문입니다. 주 예수님에 대한 믿음 여부로 인한 분쟁은, 그때 이후 지금까지도 세상의 모든 집안에서 발생해 오고 있습니다. 주 예수님은 단적으로,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주 예수님의 단언은, 안 믿는 식구를 원수로 여기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단자들은 자기들의 교리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는 가족들을 구원의 길을 막는 원수라고 가르치곤 했습니다. 그래서 세계 곳곳의 무수한 가정들이 불화와 반목과 분쟁으로 생지옥이 되거나, 무너진 것을 우리도 잘 알지 않습니까?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거듭 말씀드리지만, 믿는 식구하고 안 믿는 식구하고 원수지라는 뜻이 아니라, 원수지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안 믿는 식구를 원수 취급하지 말고, 원수지는 현상을 사랑으로 극복하면서 전도하여 차원 높은 영적 가족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피를 나눈 가족을 주 예수님의 보혈을 나눈 신령한 가족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2004년, 「기독교세계」에서 읽은 박 모 사모님의 간증입니다.
그 사모님은 47세 된 어머니에게서,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할머니 같은 어머니를 창피해 했지만, 자라면서 어머니를 자랑스러워하고 존경했습니다. 그런 그녀를 어머니도 더욱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녀가 예수님을 믿은 것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얼굴을 붉히게 하는 일이 없었던 그녀였지만, 신앙 문제로 어머니 얼굴을 붉히게 하곤 했습니다.
그러한 분쟁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녀의 기도 제목의 1순위는 부모 형제의 구원이었습니다. 많은 형제자매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안타까워서 철원교회 지하실에서 때론 서너 시간씩, 때론 날이 새도록 목이 터지게 기도했습니다. 너무 연세가 많아 언제 돌아가실지도 모르는 부모님과 부모 같은 언니 오빠들의 구원 문제는, 그녀에게 아주 절박한 문제이었습니다.
그녀의 신앙이 심화되면 심화될수록, 어머니와의 대립도 심화됐습니다. 아버지는 무신론자이셨고, 어머니는 동네 무당을 가까이하셨습니다. 담 하나 사이를 두고 있는 옆집의 안 모 무당에게 가끔 점을 보시거나, 그 무당 앞에서 빌기도 하셨고, 봄가을로 그 무당을 불러 굿도 하셨습니다.
12월 어느 날, 청년부 예배를 마치고 왔는데,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막내야, 올해 성탄절 새벽송은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신앙을 포기하라는 겁니다. 게다가 크리스마스이브에 고사를 지낸다고 하셨습니다.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그 길로 교회 기도실로 들어가 목놓아 울면서 밤새도록 기도했습니다. 며칠 밤을 고민하면서 울고 다니는 그녀의 모습을 보신 어머니가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과자를 여러 상자 사다 놓을게. 성탄절 선물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결국 그녀의 뜨거운 가족 사랑과 끈질긴 눈물의 기도는 승리했고, 그녀의 가족은 영적 가족으로 승화되었습니다. 어머니는 73세에 구주 예수님을 영접하고, 91세까지 사시다가 하나님의 품으로 가셨고, 고희를 바라보는 큰언니와 큰오빠를 비롯한 형제자매들과 그 가족들까지 주님을 잘 섬기며 봉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최고 최대의 부모 공경이 뭡니까? 영생의 주님께 인도하는 것이 아닙니까? 어차피 죽을 가족인데,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있을 수 없지 않습니까? 우리는 부모님을 영생의 주님께 인도하기 위해 얼마나 절실하게 기도했습니까? 부모님의 기쁨인 형제자매를 영생의 주님께 인도하기 위해 얼마나 애타게 기도했습니까?
주 예수님은 믿는 사람들의 시험과 환난과 구원 상실을 우려하셔서, 영생의 주인 자신을 집안 식구와 동등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밝히셨습니다. 그것은 우상숭배이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님은,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라고 하셨습니다. 우상 숭배란 형체를 만들어서 신으로 믿고 사랑하고 섬기는 것만이 아니라, 절대자나 하나님이 아닌 유형무형의 것을 절대자나 하나님처럼 믿고 사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가족들이라 하더라도 주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면 안 되는 이유는,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성육이신 유일한 구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칠더즈(C. L. Childers)는 “물론, 주님의 말씀은 우리가 우리 친척을 미워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이는 예수의 다른 곳에서의 가르치심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그리스도는 우리 마음과 생활의 첫 자리를 차지하지 않으시면 우리 마음과 생활 속에서는 계실 곳이 없을 것이다.”라고 주석했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우리가 어떤 대상을 사랑해서 목숨을 비롯한 모든 것을 버려야만 한다면, 그 대상은 오직 주 예수님밖에는 없지 않습니까? 정말 주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부모님을 때리거나 버리는 짓은 상상조차 못할 것입니다. 정말 주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부모님을 어떻게 사랑하며 섬길 것인가에 대한 답이 뻔하지 않습니까? 믿는 우리가 부모님을 어떻게 공경하는 것이, 주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인가에 대한 답 역시 뻔하지 않습니까? 유일무이하신 영생의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우선적으로 부모님을 물질적으로나 심적으로나 영적으로 공경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모든 사람을 이웃으로 여겨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믿는 우리는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 것이, 주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인가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3. 맺음말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사는 동물의 효를 소개합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죽은 개의 곁을 떠나지 않고, 지키는 6개월 된 누렁이의 사연이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누렁이의 어미 개는 병든 채로 임신했다가, 누렁이를 낳고는 그만 죽었습니다. 그래서 개 주인이 어미 개를 야산에 잘 묻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누렁이가 땅속에 묻힌 어미 개를 끌어내서는, 그 곁을 떠나지 않고 지키는 겁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어김없이 자기 몸으로 시체가 된 어미 개를 덮어 주는 겁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우리를 낳아 주시고, 양육하셨습니다. 믿는다고 핍박하는 부모님이시라도, 주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부모님을 사랑해야만 합니다. 부모님에 대한 가장 값진 사랑은, 영생의 주 예수님께 인도하는 것입니다.

설교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신약 주석(마~계, 1-15권)/ 설교집 28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우린 신유의 도구/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다수의 논문들

전체 11

  • 2021-02-13 08:29
    사랑의 검, 집도의의 칼과 같은 것이겠지요?

    • 2021-02-13 11:09
      누군가는 사랑의 검과 집도의 검을 핑계로 강도의 검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 2021-02-13 11:34
      장병선 목사님, 필자의 설교에 관심을 보여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비유해도 무방하겠지요.

  • 2021-02-13 11:18
    최목사님은 "검을 주러 오셨다는 말씀의 속뜻인 가족 사랑"이라 하시며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라.”는 말씀을 재해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속에 담겨진 비(은)유적인 표현을 읽으려 하심이라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진정 예수님의 말씀이 화목한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비(은)유적인 표현이었을까요?
    여기에 저는 좀 의아함을 갖습니다.

    이미 예수님은 가족의 사랑을 직설적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이러한 직설적인 표현을 사용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가족사랑의 문제에 대하여 오해소지가 많은 비유적 표현을 하셨을까요? 여기엔 참으로 난해함이 있을 것입니다.
    그 난해함은 결국 예수님의 말씀을 자신의 생각대로 이해하거나 오해를 하게 되거나 오용 및 왜곡을 시키게 할 수 도 있음이라 생각을 합니다.

    최목사님의 해석은 설교가 아닌 난해구에 대한 주관적인 주석으로만 남겨 두셨으면 좋았겠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2021-02-13 12:03
      노재신 목사님, 필자의 설교에 관심을 보여서 감사합니다.
      (설교 본문에는 없으나 소제목을 '검을 주러 오셨다는 말씀의 속뜻인 가족 사랑'이라고 한 것을 오해한 것 같아서 이 답글을 아래와 같이 수정했습니다)

      아래 : 설교의 성경 본문의 속뜻인 가족 사랑은 여러 의미 중 하나이고, 근본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사람들 사이, 특히 가족 사이의 불화와 반목과 다툼이 되는 원인인 그리스도의 복음을 안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나 가족의 핍박 때문임을 밝혔습니다.

      혹시 해당 성경 분문에 대해 주경신학적 연구를 한 것이나, 그 성경 본문으로 설교한 것이 있으면 이 감게판에 등록해 주었으면 합니다. 그리하면 두세 번 정독하지요.
      필자의 설교에 관심을 보인 것에 대해 거듭 감사합니다

  • 2021-02-13 12:18
    사람에 따라서는 주관적이라고 하는 것이 객관적이기도 하고, 객관적이라고 하는 것이 주관적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기 성장을 위해 할 수 있는 한, 많은 학자들의 견해를 섭렵하면서 취사선택하거나, 종합하여 새로운 견해를 정립하거나, 많은 학자들의 다양한 견해를 섭렵하는 중에 새로운 견해를 얻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필자가 신약성경 전체를 ‘다자 대조연구 방법’으로 집필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 2021-02-13 13:03
      주관적인 생각이 객관적이 되기 위해선 대중화라는 과정을 거쳐야 하며 대중화라는 과정은 당시 역사적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많습니다.

      간혹 매우 주관적인 것이 객관적인 것이 되는 것에는 주관적이라는 그 표현엔 매우 중요한 통찰력이 있음이며 통찰력은 세상의 전후좌우를 볼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 생각을 합니다. 이러한 통찰력은 때론 사람의 깊은 수련을 통해서 나타나기도 하지만 때론 어느 순간 깨닫게 되는 깨달음과 같은 계시성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계시라 함은 하나님의 인치심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니 그 에는 하늘로 부터 내려오는 표적과 기사와 이적이 동반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관조적인 통찰력이냐! 혹은 계시적인 깨달음이냐! 로 구별할 수 있으리라 생각을 합니다.
      관조적인 통찰력은 단시간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으나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그 통찰력있는 내용이 대중들에게 흡수되고 인정을 받습니다.

      계시적인 깨달음은 그 자체로 인간의 인식 영역의 밖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그 자체로서 공리적인 능력과 권위를 갖게 되지만 그 자체에 대하여 동일한 계시와 깨달음을 받지 않은 이라 한다면 이해할 수 없는 난해구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은 그와 같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지 못한 이들은 이해할 수 없는 하늘의 진리의 말씀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웨슬리의 "그리스도인의 완전" 개념이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이해 가능한 것 같지만 성령의 감동하심이 아니라면 본 의미는 이해 불가한 영역이기도 합니다.

  • 2021-02-13 12:34
    다자 대조 연구 방법이 매우 중요하고, 가장 권위가 있으나(대학 은사이셨던 고 김용옥 교수님의 말씀), 너무 어렵고 힘들어서 거의 모든 학자가 자기 견해 위주나 유사한 견해나 옳다고 생각되는 견해를 인용하는 정도로 집필을 합니다. 필자가 주석서를 집필하느라 읽은 신약 주석서 1250여 권 중 다자 대조 연구 방법으로 쓴 주석서는 The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뿐입니다.

    "최목사님의 해석은 설교가 아닌 난해구에 대한 주관적인 주석으로만 남겨 두셨으면 좋았겠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라고 했는데, 필자의 주석서들 중 거의 모두가 여러 교단의 신학대학(원)의 교재로 사용되었고, 되고 있어서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또, 초교파적으로 많은 교역자들이 성경 연속 강해 교재로 사용하고 있어서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요.

  • 2021-02-13 13:23
    필자가 성경을 대할 때에 유념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말씀들 :
    (고전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 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고전 2: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전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요 8: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막 4:23)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마 11:15)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 2021-02-13 13:33
      성령의 감동을 통해서만 이해 가능한 성경말씀들이군요.
      그러나 성령의 감동이 있음인 것처럼 거짓으로 말하는 이들도 있음이니 그들은 적 그리스도요, 그들은 거짓의 자녀이며 그들은 양의 가죽을 쓴 이리들입니다.

      오늘도 성령의 감동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감동이 있음과 같이 말하는 이들이 세상에 많음입니다.
      1. 그들은 하나님을 하나님이라 하지만 하나님이 어떻게 세상과 함께 하심인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곧 임마누엘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함입니다.
      2. 그들은 예수님을 주님이라 말은 하지만 주님이 어떻게 세상의 처음과 끝이시며 어떻게 세상의 주관자가 되시며, 어떻게 세상과 함께 하심인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3. 그들도 성령을 말하나 성령이 어떻게 세상에 역사하심이며 성령이 어떻게 신실한 믿음의 사람과 함께 함인지 이해하지 못하며 성령의 감동이 어떻게 예수를 그리스도 주로 섬기며 살게 하는 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웨슬리의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관한 이해가 바로 이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2021-02-13 13:3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

        이 말씀이 웨슬리의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이해하게 된 성경 말씀으로 웨슬리는 회심이 있은 후에서야 비로서 로마서의 말씀과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이해하고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주장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로인해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삼위일체와 더불어 후세인들에게 난해의 교리가 되었습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공지사항 박은영 2021.04.06 543
공지사항 관리자 2021.03.19 496
공지사항 관리자 2014.10.22 41290
공지사항 관리자 2010.12.29 40903
11082 김성기 2021.04.09 367
11081 최세창 2021.04.09 146
11080 최범순 2021.04.09 1244
11079 김연기 2021.04.09 262
11078 장광호 2021.04.09 822
11077 장광호 2021.04.08 926
11076 민경덕 2021.04.08 197
11075 장광호 2021.04.07 1183
11074 김재탁 2021.04.07 534
11073 이주익 2021.04.07 654
11072 백영찬 2021.04.07 1165
11071 함창석 2021.04.07 98
11070 최세창 2021.04.06 346
11069 강형식 2021.04.06 323
11068 이경남 2021.04.06 482
11067 박은영 2021.04.06 225
11066 한만경 2021.04.05 1368
11065 오재영 2021.04.05 919
11064 이현석 2021.04.05 1194
11063 함창석 2021.04.04 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