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시대(예수를 모르는)의 구원(롬 4:2-5):행위(율법, 양심, 종교들) 아님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1-02-09 19:27
조회
130
바울은 아주 단호하게 【2】[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라고 하였다.
이 구절에서는 3:27 이하의 내용을 되풀이함으로써 율법의 행위와 자랑의 관계를 밝히고 있다.
“바울과 같은 시대의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이 그의 행위에 근거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가정하는 데 익숙하였다. Jub. 23:10을 따르면, 아브라함은 주님과 함께하는 모든 행위에 있어서 완전하였으며, 그의 생애에 의를 만족스러워하였다. Kiddushin 4:14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아버지 아브라함이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 그것을 온전히 행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 이유는 창세기 26:5에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 하시니라”라고 기록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세기 26:5을 글자 그대로 이해할 수는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후에 아브라함의 여러 가지 불신앙적 행동을 본다. 그는 기근 때에 하나님 대신에 애굽을 의지하는 잘못을 범하면서, 아내 사라를 이용하여 자기 목숨을 유지하려는 추태를 보였다(창 12:10-16). 또한,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창 15:4)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아내의 권고를 따라 그녀의 몸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기도 하였다(창 16:1-14).
그러므로 바울은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 할 것’(카위케마, καύχημα: 2:23의 주석을 보라.)이 있으려니와]라고 말하는 것이다. 즉,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랑할 것도 없다는 것이다. 혹시 자랑할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람 앞에서의 자랑거리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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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는 야고보의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약 2:21)와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약 2:24)라는 말씀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언뜻 보면, 아브라함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을 주장하는 것 같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야고보서 2:22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라고 하여, 그의 행위가 일반적인 선행이나 율법 행위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믿음에 근거한 순종의 행위임을 밝혀 주고 있다. 따라서 야고보서 2:23에서는,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라고 더욱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바울은 앞 구절의 ‘이유’(원문에는 가르, γὰρ가 있다.)에 대해서,【3】[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라고 설명하고 있다.
[성경](헤 그라페, ἡ γραφὴ)은 1:2의 주석을 보라.
여기에 인용된 성경은 창세기 15:6(LXX)이며, 이 밖에 갈라디아서 3:6과 야고보서 2:23에도 인용되어 있다.
율법주의자들은 아브라함의 믿음은 선행이었고, 그를 구원한 것은 그의 순종이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라고 주장한다. 바울은 아브라함의 경우에 근거해서 그의 믿음은 그를 구원하신 선행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믿음이 선행 곧 순종의 근거이었음을 뜻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또한, 아브라함의 할례는 그가 의롭다 하심을 얻은 방편이 아니라, 그 이전에 믿음을 통해 얻은 의의 표적이요 봉인이었다(롬 4:9-11). 아브라함의 의가 할례를 받기 이전이며, 율법이 있기 전 430년이라는 사실로 볼 때, 율법은 구원에 필수적인 것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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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바울의 주장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아브라함의 인격의 변화가 아니라, 오히려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관계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는 비록 의롭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의로운 존재로 간주하셨음을 의미하는 것이다”(R. C. H. Lenski)}(갈 3:6의 주석). 이것이 바로 칭의이다(롬 3:24의 주석을 보라).
칼빈(J. Calvin)은 “[믿으매]라는 말은 어떤 특별한 표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믿음에 의해 터득한 구원의 전 계약과 양자의 은혜를 언급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는 삼인칭 과거 수동형인 엘로기스테(ἐλογίσθη)로서 ‘계산하다’(눅 22:37), ‘간주하다’, ‘생각하다’(빌 4:8), ‘따지다’(막 11:31), ‘평가하다’(롬 6:11), ‘돌리다’(고후 5:19) 등을 뜻한다.
이제 바울은 일상생활의 한 예를 들어 자신의 논증에 대한 보충 설명을 한다. 즉, 【4】[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라고 하는 것이다.
[일하는 자]는 일함으로써 삯을 받을 권리가 있는 채권자가 되며, 고용주는 삯을 지불해야 될 채무자가 된다. 마찬가지로, 만일에 인간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면, 그 칭의는 하나님께로부터 빚을 받은 것이지 은혜일 수가 없다. 그러므로 행함에 의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 아님을 다시금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앞 구절과 대조하여, 【5】[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앞 구절과 이 구절의 [일](에르가조메노, ἐργαζομένῳ)은 2절의 “행위”와 같은 말이다.
[경건치 아니한 자](톤 아세베, τὸν ἀσεβή)는 ‘불경한 자’, ‘하나님을 모르는 자’, ‘믿음이 없는 자’, ‘악한 자’, ‘죄가 많은 자’, ‘허물이 많은 자’ 등을 뜻한다(유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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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지(Hodge) 교수는 말하기를 아세베라는 말이 복수로 쓰이지 않고 단수로 기록된 것에 관심을 표시하여, 하나님은 사람을 의롭다고 하시되 떼로나 무더기로 하시지 아니하시고, 개인 개인을 의롭다고 하심을 표시한 것이라 하였다”(김선운).
[의롭다 하시는 이]는 물론 하나님을 지시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짊어지워 십자가에 피를 흘리게 하심으로써, 그를 믿는 자들을 의롭다고 하시는 것이다(3:24, 25). 여기에 인간의 율법 행위나 도덕적 선행 또는 공로가 개입될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인 것이다. 칭의에 있어서 인간 편에 필요한 것은 다만 그를 믿는 [믿음](피스티스, πίστις: 1:5의 주석을 보라.)뿐이다. 바르트(K. Barth)는 “하나님 앞에서는 아브라함의 의든 불의든 간에 불경건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위기에 처한 입장을 각성하였다. 그는 이 위기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였고, 하나님의 ‘부정’(Nein)을 들었고, 그것을 그의 ‘긍정’(Ja)으로 이해하였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필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신약 주석(마~계, 1-15권)/ 설교집 28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우린 신유의 도구/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다수의 논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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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8

  • 2021-02-09 20:04
    저는 목사님께서 어르신의 품격을 지키시고,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평안하시기를 원합니다.

    • 2021-02-09 21:44
      필자의 글에 관심을 보여서 감사합니다. .

  • 2021-02-09 22:41
    (창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엡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 2021-02-10 09:15
    1. 유대인들은 전통에 따른 ❶ 할례 ❷ 구약의 제사 ❸아브라함 자손의 신분으로 자신이 충분히 의롭다고 여겼으나[롬4:2절], 예수께서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이다.”라고 정리 하셨습니다.

    2. 의로움의 출발점은 내 노력과 내 경건과 내 땀의 결실이 아닙니다. 자학적 수련, 무아지경, 관상기도, 깨달음, 철학, 신념, 헌신적 종교생활, 도덕적 생활, 해탈, 몰아일치, 무아지경, 궁핍한 생활, 수도원 생활...... 이런 것들은 내가 이만큼 노력했으니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께 청구하는 것입니다. [4절] 구원은 인간에게 나오지도 출발하지 않습니다. [3절, 5절]

    3.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 입문하여 요한 웨슬리의 설교에서 칭의, 성화, 영화를 거치면서 완성이 됩니다.

    4. 믿음은 기독교 신앙의 첫 출발점이며, 기초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계속 성장하게 됩니다.

    신앙의 계단: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우애 █사랑
    (벧후 1:4~7)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 2021-02-10 10:09
      필자의 주석에 관심을 보이시고, 의견을 표하셔서 감사합니다.

  • 2021-02-10 10:49
    대부분은 주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유대인들은 율법 행위로 구원받고, 이방인들은 양심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하는데 틀린 견해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필자의 본 글과 1981년에 출간한 「갈라디아서」의 3:6-9의 주석(이미 감게판에 등록함)에 논의되어 있습니다.

    (사 43:11)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호 13:4) 그러나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옴으로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눅 18:26) 듣는 자들이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눅 18:27) 가라사대 무릇 사람의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 2021-02-10 18:29

    • 2021-02-11 12:41
      잘 감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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