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1(설교:왜 지도자가 되지 말…)의 주경신학적 연구
Author
최세창
Date
2025-04-03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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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에 대하여 경고해 온 야고보(1:19-26)는, 말을 많이 하게 되는 교사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다. 【1】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내 형제들아는 1:2의 주석을 보라.
선생은 디다스칼로이(διδάσκαλοι)로서 권위의 의미를 대표하며 강조하는 것이다(G. Poteat). 이 말에 대해 파커(P. Parker)가 더욱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 용어(master)는 그리스 문학에 종종 나타나는데, 존경의 칭호로서 ‘주’와 ‘왕’이란 말과 쌍을 이룬다. 신약 성경에서는 가끔 세례 요한과 같은 비크리스트교 지도자들에게 적용되거나(눅 3:12), 또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눅 2:46, 요 3:10)에게 적용되었다. 또한, 이 용어는 주로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되며, 그 외에 거의 공적 지위란 암시로서 초대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적용되었다.①
여기의 선생이란 구체적으로 그 자신을 포함한 ‘교회의 지도자들’(A. E. Barnett)을 의미하는데, 크게 두 부류로 구별된다. 하나는, 일정한 교회에 적을 두고서 가르치는 선생(행 13:1)과 교회들을 순회하면서 가르치는 바울이나 바나바 또는 실라와 같은 선교사들이다.
바울은 교사(개체 교회)를 사도와 예언자 바로 다음에 둘 정도로(참조: 고전 12:28, 엡 4:11) 교사직을 중요시하고 있다. 어드만(C. R. Erdman)은 “종교적 진리를 가르치는 교사란 참으로 존귀한 직분이며, 반드시 있어야 할 직분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교사란 존경과 신뢰의 대상이었다.
초대 교회의 선생들이 가르친 대상에 대해 바클레이(W. Barclay)는 크리스트교로 개종한 사람들이라고 하며, 윌리암즈(R. R. Williams)는 세례를 받기 위해 준비하는 자들을 첨가시킨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크리스트교 교육의 대상이란 모두를 포괄하는 것이다.
교회 교사와 일반 교사의 다른 점은 그 내용에 있다.
교회에서 교사가 갖추어야 할 필수적 요소는 영적 지혜와 영적 지식이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구원 행위, 즉 복음인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 행위란 인간의 전 삶의 영역을 포괄하는 것이며, 끊임없는 신앙적 실존의 성장을 위해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이와 같이 중대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교사가 유의해야 할 두 가지 점을 바클레이(W. Barclay)가 잘 지적하고 있다. (1) 자신의 의견도 아니며 자신의 선입관도 아닌 진리를 가르치는 일에 항상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2) 항상 자신의 생활과 자신의 교훈이 모순되지 않도록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상, 교사의 직분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교사직을 수행하는 교사 자신의 책임 의식이다.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교사의 철저한 책임 의식이란 반드시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토대로 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철저하게 책임을 의식한다고 해서 교사로서의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에게 부과된 일에 대해서 책임을 질 각오로 착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든지 일을 그르치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 까닭은 중요성을 인식하고 확고한 책임 의식이 있지만, 그 일을 감당할 능력이나 자질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사가 가르치는 일에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 일을 감당할 능력과 자질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고전 14:9).
교사가 반드시 갖춰야 할 또 하나의 요소는, 이 일은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일이라고 하는 확고한 소명 의식이다(米田豊).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인간으로서(신자라 할지라도)완벽한 능력과 자질을 갖춘다는 것이 가능한가? 더욱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그 외의 모든 영적 세계에 관한 것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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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 Parker,“Teacher” in IDB, Vol, pp. 522-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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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 먼저 우리는 크리스트교의 교사직의 특이성을 살펴보아야 한다. 크리스트교의 교사란 자신의 사상이나 지식 또는 지혜를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교훈과 죽음 그리고 부활 및 재림에 관한 영적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며, 창조주 하나님의 그리스도 안에서의 우주 구원의 도리를 가르치는 것이다. 동시에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인간을 포함한 전 우주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도록 교훈하는 것이다.
러셀(L. M. Russell)은 “기독교 교육이란 인간들의 참된 인간성을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도록 부르시는 그리스도의 초대에 참여하는 것이다.”②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크리스트교의 교사란 크리스트교 교육의 시작과 진행과 목적을 그리스도 안에서 수행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마 28:16-20).
따라서 크리스트교의 교사의 능력과 자질이란 대 교사인 그리스도의 도구 됨이다. 다시 말하면, 교사란 자기 자신이 피교육자를 가르친다는 우월감을 버리고, 다만 자신의 입과 행위를 통해서 피교육자를 양육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가 된다는 것은 곧 그분의 교사직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점에 대해 러셀(L. M. Russell)이 잘 설명하고 있다. “교사란,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삶 속에 역사하시는 자신의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교사가 되시기 때문에 참여자이다.…또한, 교사는 결코 홀로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참여자이다.”③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교사는 항상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 늘 기도와 말씀을 통해 주님을 배우며, 그분의 영을 소유하려는 진지하고도 끈질긴 열정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④
선생의 위치가 이처럼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야고보가 믿음의 형제들에게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고 경고하는 이유에 대해, 칼빈(J. Calvin)은 “교사란 소명에 대한 너무 지나친 열정을 저지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견해이다. 이 점에 대해 이스톤(B. S. Easton)은 “야고보가 경고하는 것은 교사의 일을 책임질 만한 자질이 없으면서도 교사로서 행세하려고 하는 믿는 자들의 혀의 죄이다.”라고 잘 설명하고 있다.
더욱 구체적으로 말하면, 크리스트교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부족과 그에 따른 책임 의식의 결여, 그리고 교사의 일을 수행할 만한 능력과 자질이 없이, 다만 “교사직의 특권 및 부수입”(G. Poteat) 그리고 명예와 존경심을 얻기 위한 이기적인 목적으로 교사가 되었고, 또 되려고 하는 모든 이들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방금 열거한 것들을 갖추지 않은 채 교사가 될 때, 그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가르침은 자연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성숙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실족케 하는 것이다. 믿는 자들을 실족케 한다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죄인가는 예수님 자신의 말씀에서 분명해진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마 18:6-7).
야고보 역시 교사라는 특수한 위치 때문에 빚어지는 잘못에 대해 더 큰 심판을 받을 줄을 알고 함부로 교사가 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교사란 위치의 중요성으로 인해 그들은 잘할 때 상급도 크고, 잘못할 때 벌도 중한 법이다”(이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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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L. M. Russel, Christian Education in Mission(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p. 28, 35.
3) Ibid., p. 103.
4) 참조: B. S. Easton은 “당시의 유대교에서 선생(rabbi)이 된다는 것은 그 일을 감당함에 있어서 많은 종류의 경고를 받을 필요가 없도록 아주 길고도 엄격한 연구와 훈련을 받았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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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저자의 이름만 밝혔고, 같은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네 명 이하일 경우에는 본문의 괄호 속에 이름만 밝혔음.
출처: 최세창, 야고보서․베드로전후서(서울: 글벗사, 2001, 3판 1쇄), pp. 167-171.
내 형제들아는 1:2의 주석을 보라.
선생은 디다스칼로이(διδάσκαλοι)로서 권위의 의미를 대표하며 강조하는 것이다(G. Poteat). 이 말에 대해 파커(P. Parker)가 더욱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 용어(master)는 그리스 문학에 종종 나타나는데, 존경의 칭호로서 ‘주’와 ‘왕’이란 말과 쌍을 이룬다. 신약 성경에서는 가끔 세례 요한과 같은 비크리스트교 지도자들에게 적용되거나(눅 3:12), 또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눅 2:46, 요 3:10)에게 적용되었다. 또한, 이 용어는 주로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되며, 그 외에 거의 공적 지위란 암시로서 초대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적용되었다.①
여기의 선생이란 구체적으로 그 자신을 포함한 ‘교회의 지도자들’(A. E. Barnett)을 의미하는데, 크게 두 부류로 구별된다. 하나는, 일정한 교회에 적을 두고서 가르치는 선생(행 13:1)과 교회들을 순회하면서 가르치는 바울이나 바나바 또는 실라와 같은 선교사들이다.
바울은 교사(개체 교회)를 사도와 예언자 바로 다음에 둘 정도로(참조: 고전 12:28, 엡 4:11) 교사직을 중요시하고 있다. 어드만(C. R. Erdman)은 “종교적 진리를 가르치는 교사란 참으로 존귀한 직분이며, 반드시 있어야 할 직분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교사란 존경과 신뢰의 대상이었다.
초대 교회의 선생들이 가르친 대상에 대해 바클레이(W. Barclay)는 크리스트교로 개종한 사람들이라고 하며, 윌리암즈(R. R. Williams)는 세례를 받기 위해 준비하는 자들을 첨가시킨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크리스트교 교육의 대상이란 모두를 포괄하는 것이다.
교회 교사와 일반 교사의 다른 점은 그 내용에 있다.
교회에서 교사가 갖추어야 할 필수적 요소는 영적 지혜와 영적 지식이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구원 행위, 즉 복음인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 행위란 인간의 전 삶의 영역을 포괄하는 것이며, 끊임없는 신앙적 실존의 성장을 위해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이와 같이 중대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교사가 유의해야 할 두 가지 점을 바클레이(W. Barclay)가 잘 지적하고 있다. (1) 자신의 의견도 아니며 자신의 선입관도 아닌 진리를 가르치는 일에 항상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2) 항상 자신의 생활과 자신의 교훈이 모순되지 않도록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상, 교사의 직분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교사직을 수행하는 교사 자신의 책임 의식이다.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교사의 철저한 책임 의식이란 반드시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토대로 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철저하게 책임을 의식한다고 해서 교사로서의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에게 부과된 일에 대해서 책임을 질 각오로 착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든지 일을 그르치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 까닭은 중요성을 인식하고 확고한 책임 의식이 있지만, 그 일을 감당할 능력이나 자질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사가 가르치는 일에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 일을 감당할 능력과 자질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고전 14:9).
교사가 반드시 갖춰야 할 또 하나의 요소는, 이 일은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일이라고 하는 확고한 소명 의식이다(米田豊).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인간으로서(신자라 할지라도)완벽한 능력과 자질을 갖춘다는 것이 가능한가? 더욱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그 외의 모든 영적 세계에 관한 것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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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 Parker,“Teacher” in IDB, Vol, pp. 522-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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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 먼저 우리는 크리스트교의 교사직의 특이성을 살펴보아야 한다. 크리스트교의 교사란 자신의 사상이나 지식 또는 지혜를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교훈과 죽음 그리고 부활 및 재림에 관한 영적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며, 창조주 하나님의 그리스도 안에서의 우주 구원의 도리를 가르치는 것이다. 동시에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인간을 포함한 전 우주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도록 교훈하는 것이다.
러셀(L. M. Russell)은 “기독교 교육이란 인간들의 참된 인간성을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도록 부르시는 그리스도의 초대에 참여하는 것이다.”②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크리스트교의 교사란 크리스트교 교육의 시작과 진행과 목적을 그리스도 안에서 수행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마 28:16-20).
따라서 크리스트교의 교사의 능력과 자질이란 대 교사인 그리스도의 도구 됨이다. 다시 말하면, 교사란 자기 자신이 피교육자를 가르친다는 우월감을 버리고, 다만 자신의 입과 행위를 통해서 피교육자를 양육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가 된다는 것은 곧 그분의 교사직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점에 대해 러셀(L. M. Russell)이 잘 설명하고 있다. “교사란,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삶 속에 역사하시는 자신의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교사가 되시기 때문에 참여자이다.…또한, 교사는 결코 홀로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참여자이다.”③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교사는 항상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 늘 기도와 말씀을 통해 주님을 배우며, 그분의 영을 소유하려는 진지하고도 끈질긴 열정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④
선생의 위치가 이처럼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야고보가 믿음의 형제들에게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고 경고하는 이유에 대해, 칼빈(J. Calvin)은 “교사란 소명에 대한 너무 지나친 열정을 저지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견해이다. 이 점에 대해 이스톤(B. S. Easton)은 “야고보가 경고하는 것은 교사의 일을 책임질 만한 자질이 없으면서도 교사로서 행세하려고 하는 믿는 자들의 혀의 죄이다.”라고 잘 설명하고 있다.
더욱 구체적으로 말하면, 크리스트교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부족과 그에 따른 책임 의식의 결여, 그리고 교사의 일을 수행할 만한 능력과 자질이 없이, 다만 “교사직의 특권 및 부수입”(G. Poteat) 그리고 명예와 존경심을 얻기 위한 이기적인 목적으로 교사가 되었고, 또 되려고 하는 모든 이들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방금 열거한 것들을 갖추지 않은 채 교사가 될 때, 그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가르침은 자연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성숙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실족케 하는 것이다. 믿는 자들을 실족케 한다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죄인가는 예수님 자신의 말씀에서 분명해진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마 18:6-7).
야고보 역시 교사라는 특수한 위치 때문에 빚어지는 잘못에 대해 더 큰 심판을 받을 줄을 알고 함부로 교사가 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교사란 위치의 중요성으로 인해 그들은 잘할 때 상급도 크고, 잘못할 때 벌도 중한 법이다”(이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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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L. M. Russel, Christian Education in Mission(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p. 28, 35.
3) Ibid., p. 103.
4) 참조: B. S. Easton은 “당시의 유대교에서 선생(rabbi)이 된다는 것은 그 일을 감당함에 있어서 많은 종류의 경고를 받을 필요가 없도록 아주 길고도 엄격한 연구와 훈련을 받았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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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저자의 이름만 밝혔고, 같은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네 명 이하일 경우에는 본문의 괄호 속에 이름만 밝혔음.
출처: 최세창, 야고보서․베드로전후서(서울: 글벗사, 2001, 3판 1쇄), pp. 167-171.
아멘.
최 목사님께서 주안에서 영육 간에 늘 강건하시길 기도합니다. 본문에 대한 제 소견을 별도 게시물로 공유합니다.
필자의 주경신학적 연구에 "아멘."으로 화답하시고, "최 목사님께서 주안에서 영육 간에 늘 강건하시길 기도합니다. 본문에 대한 제 소견을 별도 게시물로 공유합니다."라고 하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