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랑하라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4-11-20 14:40
조회
520
<로마서 1:16>
16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1. 시작하는 말
구약성경에는 구원의 의미를 가진 여러 용어가 있습니다. 나찰(natsal)은 싸워서 구출해 내는 구원을 의미하였고, 후에는 죄에서 건져지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할라츠(halats)는 하나님께서 영혼을 사망이나 악인이나 원수에게서 건지시는 구원을 의미했습니다. 야사(yasha)는 여호수아와 예수의 어원이며, 속박에서 자유를 얻는 구원을 의미했습니다. 특히, 야사는 민족과 국가를 구출하는 영웅적이며 정치적인 구원을 의미했습니다. 또, 야사는 하나님께서 모든 악의 세력에서 구원하시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학프시(chaphsh)는 고대의 법률상 노예 해방이라는 구원을 의미했습니다. 가알(gảal)은 남의 손에 넘어간 노예나 가축 등을 대가를 지불하고, 도로 자기 소유가 되게 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2.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랑해야 할 복음
율법 준행에 철저했던 바리새인이요, 율법 박사라 할 수 있는 랍비로 알려졌고, 헬라 사상에도 정통했던 사울 곧 바울은 교회를 철저히 핍박했습니다. 어느 날, 다메섹의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받아 가지고, 기독교인들을 체포해서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려고 떠났습니다. 가던 길에 홀연히 하늘로서 태양보다 더 밝은 빛이 둘러 비취매 모두 엎드러졌고, 바울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 부활의 주 예수님을 만나게 된 놀라운 영적 체험을 통해서, 구원 방도가 율법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구약성경의 모든 구원의 의미의 완성 그 이상이신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고 하는 복음의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방인을 위한 복음의 사도로 부름 받았습니다.
흔히들 주장하는바 율법 행위나 양심 행위로 구원받거나, 다른 어떤 것이나 종교나 사람 등으로 구원받는다면, 주 예수님이 오실 리가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주 곧 메시아를 보내신다는 약속도 하실 리가 없지 않습니까? 양심이나 법, 도덕이나 종교 등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선과 악, 시와 비, 정의와 불의가 상반되기도 하므로 구원의 방도가 될 수 없습니다. 일부다처나 일처다부가 합법적인 국가와 불법적인 국가, 오랜 관습인 종족이나 그렇지 않은 종족을 떠올리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구원에 관한 중요한 말씀들입니다. 이사야 43:11에,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4:12에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2:8 이하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2:3 후반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복음 중 복음인 요한복음 3:16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했습니다.
구원받는 믿음은 머리만의 믿음도 아니고, 마음만의 믿음도 아니라,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이 행함은 율법 행위나 양심 행위나 도덕 행위가 아니라, 믿음에서 나오는 행위인 믿음의 행위입니다. 야고보서 2:22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좇아 하나님을 믿거나, 하나님의 성육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지옥으로 끄는 죄의 사함과 거듭남, 자유와 평화, 성결한 삶과 영생의 구원을 얻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창조주요 섭리자, 구원자요 심판자이시고, 생사화복과 흥망성쇠를 주관하십니다.
마태복음 19:16 이하에 보면, 율법의 계명을 지킨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주 예수님은 그 청년과 유대인들이 구원 방도로 믿는 율법 행위가 구원 방도가 아니라는 것과 구원받은 증거로 여기는 많은 재물의 소유가 구원받은 증거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영생 구원의 문제로 찾아온 부자요 관리인 청년에게, 주 예수님은 당신을 믿고 순종하여 재물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당신을 좇으면 하늘에서 보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재물이 우상이 된 그 청년은 영생의 주 예수님을 믿고 따르지 않고, 근심하며 제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은, 주 예수님은 등을 돌리고 가는 그 청년을 강제로 구원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영생 구원의 복음을 깨닫고, 사명을 깨달은 후의 자신의 삶의 근간에 대해,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라고 고백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인답게, 세계적인 대제국을 건설한 힘과 정치력을 자랑하는 로마에 대해서, 하나님의 복음이자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뛰어난 학문과 종교들과 철학적 지혜를 자랑하는 헬라에 대해서도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유일신 하나님의 선물인 율법을 자랑하는 유대와 유대교에 대해서도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 어떤 인간적이며 세상적인 업적들을 자랑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안타깝게도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기독교인들이 있지 않습니까? 더 심각한 것은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생활입니다. 아무리 지위가 높더라도, 놀라운 업적을 쌓았더라도 기독교인이면서 거짓과 위선, 아부와 아첨, 교만과 오만, 음해와 모함, 범죄와 범법, 부정과 불의, 반역과 이적의 언행을 일삼는 것은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 중 어느 한 언행을 일삼더라도 회개해야 합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바울 사도의 고백은, 복음만을 자랑한다는 것을 전제한 것입니다. 그는 갈라디아서 6:14에,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대립되는 삶의 원리와 단절되어야 복음을 자랑하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주 하나님을 떠나 전심전력을 다하거나, 죄악 수단으로 성취한 것들을 자랑하는 사람이 복음을 자랑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종 또는 죄수로 자처하였고, 그리스도의 지시와 명령만을 따라 일하며 사는 것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는 복음의 핵심이신 그리스도께 대해 고린도전서 1:24에,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박혀 대속 제물이 되셨고,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부르심을 입은 우리는 생사화복과 흥망성쇠는 물론, 부활의 소망이 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이신 그리스도를 자랑하며, 목숨을 걸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래 전에, 크리스챤신문에서 읽은 실화입니다.
동독 멕클렌부르트의 기독교 가정의 열 살 된 딸이, 지방 공산당 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이 학생들을 일어서게 하고는, “하나님은 없다.”라고 말하면서 따라 하라고 시켰습니다. 그러나 그 어린 소녀는 담대하게 “그렇지만 저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따라 하라고 해도 완강하게 거절했습니다. 선생님은 “너는 오늘 집에 가서 하나님이 없다는 말을 50번 써 와!”라고 말했습니다. 귀가한 소녀는 부모님과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한 후에, “하나님은 존재하십니다.”라는 말을 50번 썼습니다. 그것을 받아 읽은 선생님은 몹시 화를 내면서 “내일은 하나님이 절대로 없다는 말을 100번 써 와! 만약 계속 반항하면 내가 경찰에 가서 너와 네 부모를 고발할 것이다.”라고 소리쳤습니다. 그 어린 소녀와 부모는 하나님을 부인하기보다는, 고난을 당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어린 소녀는 “하나님은 절대로 계시다.”라고 100번을 썼습니다.
다음 날, 선생님은 그것을 읽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좋다. 이제 내가 경찰에 가서 너를 고발할 것인데, 네 하나님이 너를 도우시나 어디 두고 보자.”라고 소리치고는 운동장으로 나가더니 자전거에 올라탔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교문 밖을 향해 달려가던 선생님이, 교문을 지날 즈음에 갑자기 자전거에서 떨어지면서 그대로 심장이 멎어버리고 말았습니다.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인류와 인류의 모든 것을 다 동원해도 얻을 수 없는 구원을 얻는 믿음은 머리만의 믿음도 아니고, 마음만의 믿음도 아니라,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야고보서 2:17에,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이 행함은 양심 행위나 도덕 행위, 종교 행위나 율법 행위가 아니라, 믿음에서 나오는 행위인 믿음의 행위입니다. 야고보서 2:22에는,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믿음으로 죄 사함과 거듭남, 자유와 평화, 성결한 삶과 영생 구원을 얻은 사람들답게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하시기 바랍니다.
설교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신약_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7권/ 기타 다수
아멘.
목사님께서 주안에서 영육 간에 늘 강건하시길 기도합니다. 본문에 대한 제 소견을 별도 게시물로 공유합니다.
필자의 설교에 대해 "아멘."으로 화답하시고, "목사님께서 주안에서 영육 간에 늘 강건하시길 기도합니다. 본문에 대한 제 소견을 별도 게시물로 공유합니다."라고 하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