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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교단이 갈등에서 벗어나려면...

작성자
오재영
작성일
2021-01-07 14:01
조회
902
주후 381년...
니케아 콘스탄티노플의 신조는 敎會에 대한정의를, “교회는 하나의 교회이고, 교회는 거룩한 교회이고, 교회는 사도적 교회이고, 교회는 보편적 교회임을 우리는 믿는다.” 이처럼, 하나의 교회, 거룩한 교회, 사도적 교회, 보편적 교회 의 그리스도께서 주인이신 교회를 우리는 지체가 되어 섬기는 것이다.

크리스천이면 누구나 기억하고 있는 이 땅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도베드로의 고백,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시니이다”(마16장16절). 주님은 분명히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장18절).약속하셨다. 이 말씀을 고백하는 이들이 聖徒라는 존칭의 정체성을 갖고 모여 교회를 이루고, 그 교회들이 모여서 교단을 이루어, 사도와 선지자들의 후예들로서 아직도 사단의 지배하에 있는 이들을 향하여 복음(말씀)전할 사명으로 오늘도 존재하고 있다.

주님께서 주인이신 교회가 왜 분쟁에 휘말리는가?

교회가 이 땅에 이어오는 동안 본질에서 벗어나 우선순위를 잃을 때마다 지나온 역사의 기념비적인 표적과 관계없이 개인과 교회 교단은 큰 고통을 겪고 혼란에 빠져 힘을 잃고 선교의 대상들인 이교도들로부터도 버림을 당하여 맛을 잃은 소금과 같이 밖에 버리어져 사람들에게 밟히며 소멸의 길을 갔다. 오늘 우리도 시대의 혼돈 속에서 사막의 신기루에 홀린 듯, 수많은 이들이 권력과 물질에 목을 매는 이때 이교도들에게 파장을 일으키고자하는 각오는 되어있는가? 그리하려면 우리는 가장먼저 오늘의 세속화속에서 자신을 구별해야한다. 이 구별은 거룩함이고 능력이다. 이 거룩함이 세속화속에서 우리를 구별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교회와 교단을 그리고 세상을 변화 시킨다.

어느 시대이든 이 거룩함에서 이탈되어 우선순위가 바뀔 때마다 교회는 사명 잃어 어려움을 겪고 세상은 그에 따른 어둠속에서 대가를 지불했다. 사도바울의 지적대로 교회는 주님 오시는 날까지 언제나 변할 수 없는 진리가 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엡2:20절).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후예들로서 예수그리스도를 모퉁잇돌로 삼은 공동체마다 그리스도의 뜻을 받들며 사도들이 자신들의 죽음으로 지켜온 우리에게 전한 그 말씀을 우선순위로 삼아 자신을 드려 섬기는 삶 이것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이고 존재이유이다.

노인과 어른의 차이...

사전적 의미로 “노인(老人)”은 나이가 들어 늙은 사람을 가리키는 반면에 “어른”은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으로 표현한다. 어느 교회나 성장하고 성숙한 교회가 되려면 먼저주님의 지체가 되어 서로 섬기는 이가 되어야 한다. 구성원들 중에 섬김에는 소홀히 하면서 섬김을 받으려는 이들이 늘어날 때 그 교회는 성장하지를 못한다. 성장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그때부터 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사단의 조종을 받게 된다. 그러나 각자가 주께 하듯 말씀에 따라 서로 섬길 때 교회에 속한 이들이 연륜과 함께 나이가 들수록 그 교회는 노인이 많은 교회가 아닌 어른들이 많은 교회가 된다. 때문에 노인과 어른은 신앙적인 면에서나 인격적인 면에서 결코 같은 표현이 아니다.

사람의 일생을 보면 모태(母胎)의 시작에서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에 따른 호칭(呼稱)이 다르다.
태속에 있을 때는 ‘태아’로 갓 태어나면 ‘영아’로, 다음엔‘유아’로, 좀 더 자라면 ‘소년’과 ‘소녀’로 ‘청소년’이 되고, ‘청년’, ‘중년’으로 불리다가 50대 말경부터 두 가지 호칭으로 갈라지는 지점에 서게 된다. 결국 한길은 ‘노인’이라 불리는 길이고, 다른 한 길은 ‘어른’이라고 불리는 길이다. 문제는 노인의 불행은 건강하면 건강할수록 주위사람을 괴롭힌다. 노인의 특성중 하나가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기에게 맞춰주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이재철, 주님의 교회, 참고, 일부인용).

그러나 어른은 다르다.
그가 나이가 들어 때로는 건강이 원활치 못하여 혹시 질병으로 자리에 누워 있어도 주위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그 이유는 어른은 그동안 다른 사람의 그늘이 되어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른은 남의아픔을 알고, 남의고통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어른은 때로 실패한 다른 사람의 등을 쓰다듬어 주는 손을 소유하고 있으며 자기주머니에 있는 것을 베풀 줄도 아는 펼쳐진 손을 가진 사람이다. 반면에 노인은 자기중심적인 받기만 하는 사람이다. 이토록 중요한 장래 의미를 알면 누구나 노인보다는 어른의 반열에 들고자 할 것이지만 그것은 하루아침에 욕심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별히 주님의 인도와 은혜를 아는 이들에게는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심을 믿고, 그 갈림길의 지점이 너무나도 선명하기 때문에 모두가 두려워해야한다. 그 깨달음은 본인의 손과 발로 다른 이들을 섬기는 삶이 곧 주님의 지체를 섬김과 자신을 위함을 알아 눈에 보이는 대로, 기질에 따름이 아닌 섬김의 의미를 체득 한 이로 살아가야한다. 이것이 장차 자신을 어른과 노인으로 갈라지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 중에는 아직도 신앙의 길에 들어 선지가 꽤 오래임에도 여전히 유아기(幼兒期)적 행태를 벗어나지 못한 가엾은 이들이 있다. 여전히 자기주변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의 손과 발을 내밀어 다른 이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격려해주며 자기 것을 나눠주는 일들에 변화를 거부하는 노인의 길을 가는 이들이다.

갈등(葛藤)왜 일어나는가?

하늘양식 2020년 11월 30일자 가정예배서 안양교회 임용택 목사의 말씀에 등장하는 갈등(葛藤)의 문제 해설이 있다. “‘갈등’이란 단어는 칡과 등나무를 의미 합니다. 칡과 등나무는 어떤 대상을 휘감으면서 자라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칡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감고, 등나무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감습니다. 나무 하나를 두고 칡과 등나무가 동시에 감고 올라가면서 서로 반대방향으로 감는 습성 때문에 엉켜서 풀기 어려워집니다. 여기서 유래해 서로 대립하고 엉켜서 풀기 어려운 상황을 갈등이라고 말합니다.”

죄와 사망으로부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받게 하시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라 하시며 성도(聖徒)라는 존칭(尊稱)으로 부름 받게 하심을 깨달은 이들이라면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그에 따르는 구별된 삶으로 거룩하게 살아야 할 의무가 주어진 것이다. 아직도 자신의 위치를 고수하면서 구습(舊習)에서 탈피하지 못한 생활에 매여 있다면 그는 지금도 조급함과 목마름으로 메마른 광야를 걸어가는 불행한 사람들이다. 누군가 그런 표현을 했다. 불과 서너뼘의 거리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머리와 가슴사이”라고... 가장 큰소리를 지르는 일이라고해서 가장 급한 일이 아님을 생각을 깊이 하는 이들은 모두가 안다.

지금도 목소리 큰 자들이 옳다고 윽박지르면 정의(正義)가 되는 세상, 온갖 처방전 난무하지만 여전히 우리앞에 갈 길이 선명하지 않음은 모두가 이런 까닭이다. 결국 금년한해도 근본적인 변화의 회심(悔心)은 자신의 상태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근본적인 신앙의 체험이다.



전체 6

  • 2021-01-07 14:44

    오 목사님께,
    항상 감리회에 대해 고민과 경륜이 밴 내용으로 글을 올리셔서 글을 대할 때 제게도 도움이 됩니다. 오늘 올리신 글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위에 소개하신 니케아 신조에 있는 敎會의 정의가
    1. 하나의 교회 ---> 로마 카톨릭 교회뿐이고,
    2. 거룩한 교회 ---> 교회행정이 거룩하고 ,
    3. 사도적 교회 ---> 베드로의 유골에 적통성이 있고,
    4. 보편적 교회 ---> 교회를 평균치에 적용한, 가장 일반적인

    오늘 올리신 내용을 보면서 의문과 우려되는 부분이 있으며, 혹 제가 잘못 이해한게 있으면 지적해 주시길....


  • 2021-01-07 16:06

    장로님!
    모두 대답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요,
    라틴어 원문‘카똘리깜’을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천주교Catholic or
    개신교Universal Church로 사용했으나 의미와 뜻은 모두가 보편적 교회로,
    ‘보편적 교회’란 남녀노소 빈부귀천이 차별되지 않고 모두가 한데 어우러지는
    교회를 의미한다고 되어있습니다.
    - 평안 하십시오.-


    • 2021-01-07 17:18

      확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다시보니 간단한 일이 아닌거 같아서요, 불쑥 질문드린 점은 송구하며,

      전에 길에 지나면서 보았는데 천주교에서 "Catholic의 의미는 보편적"이라고 게시했습니다. 저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보편적인 평균적 교회인가? 확인하신 Universal Church (우주적 교회)라면 범신론을 지지하는 교회로도 보입니다.


  • 2021-01-07 19:12

    보편적 교회란...

    행전 13장의 안디옥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선교초기에 서울 곤당골교회, 오늘의 승동교회
    의 이름도 없고 아이들까지 하대하던 백정 박성춘과 그의 아들
    박서양과 사무엘 무어(Samuel. Moore)선교사, 班常의 구별이 혹심하던 때에
    양반과 상민, 백정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고, 백정이먼저 장로가 되었다는...

    장로님! 오늘 우리는 대부분 영적 맹인들로서 죄를 짓고 있다는 두려운 생각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대부분의 분주함과 생각들이 영혼 구원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지금 감게의 아래위에 올린 글들을 보십시요, 갈 2장 20절과 무슨관계가 있는지를...


    • 2021-01-08 11:20

      오 목사님께

      말씀하신 안디옥 교회는 [딤전3:15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에 어울린다고 사료합니다. 선교사와 교회 초기엔 순수합니다. 거긴 인간의 탐욕이 거의 없으니까요, 선교사들은 헌신하여 죽으러 왔고, 초기 신자들은 정치적 박해, 전통의 사회적 문화적 압력과 싸워 이겨낸 위대한 신앙인들이죠. 하지만 모든 교회는 선교--> 문화의 유입--> 배교의 순환을 따라 가고 있습니다. 진리를 찾는데 온힘과 온 목숨을 다 걸어야 합니다. 아니면 내 영이 죽으니까요...

      ‘죄를 짓고 있다는 두려움’이라고 하셨는데, 이러한 ‘하나님을 두려워 함’이 신앙의 출발로 사료됩니다. 하나 많은 이들은 사람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도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이사야의 저주가 많은 이들이 깔려있습니다. 이런 사람일수록 ‘저주’란 말에 알레르기 반응을 하면서 ‘축복’에 목을 매지만 샤머니즘과 타종교가 말하는 복인지 구분이 안 되며,

      니케아 신조에 있는 敎會의 정의에서,
      1. 하나의 교회 ---> 로마 가톨릭교회뿐이라서 다른 종파는 전부 이단 취급해 종교 재판했고, 사도바울이 동유럽에 전한 교회가 저절로 없어진 게 아니라면 그들이 박해의 대상이고,
      2. 거룩한 교회 ---> 세상에 어떤 교회와 교단이 거룩할까요?? 제사장도 금기명도 거룩하지 않아, 피로 씻기는 성결의식을 했었는데, 성막과 이스라엘 백성이 거룩한 적이 없는데,
      3. 사도적 교회 ---> 12제자와 모든 사도들이 전한 복음에는 맞지만 유독 베드로의 유골에 적통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게 옳아 보이지 않고, 또한 구약의 제사장의 권위--> 사도의 권위-->교황/추기경/주교의 권위라는 식은 틀렸으며,
      4. 보편적 교회 ---> 이를 평균적인 감리교회라고 한다면, 여기에는 진리와 누룩이 함께 담기지 않았다고 누구도 말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로마의 다신교와 로마제국에 여러 종교를 함께 묶었다면 절대로 아닙니다. 오히려 ‘성서에 따른 특별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니케아에 모인 신학자/종교 지도자들의 평균적 지적 수준과 정치적 타협이 아닌가? 의문이며, 성경에서 공회들이 모순이 있는 것처럼 그들도 뭐가 뭔지 잘 모르는 말을 했을 수도 있고, 이게 성경과 건전한 교리와 일치하지 않은 부분은 앞으로 도려내야 한다고 사료합니다.


  • 2021-01-09 14:20

    장로님!
    사람은 누구나 만남을 통하여 역사가 시작됩니다.
    신앙의 바른 기초만 정립되면 그 어떠한 환경을 만나든
    퇴보는 없습니다. 모두가 反面敎師와 正面敎師의 소중한 것들
    아라 생각을 합니다. 목사도 좋은 장로님들을 만나고, 장로님들도
    목사다운 목사를 만남은 모두에게 큰 축복이라는 생각입니다.

    지나고 보면 너무나 짧은 시간들인데도 정작 해야 할 일에는
    눈을 감고, 하지 말아야 할 일에만 생을 허비하는
    이들이 우리주변엔 너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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