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25회: 바.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 II(3:9b-13)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0-10-13 21:19
조회
90
빌라델비아 교회의 위기는 황제 예배나 니골라 당이나 이세벨 주의 같은 것이 아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인, 사단의 무리에 의해 비롯된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그릇된 교리를 주장하는 종교 사기꾼들이다. 그뿐 아니라, 그리스도교에 대해 신앙의 문제로 비난, 공격, 박해를 가하는 행악자들이다”(김철손).① 그들은 혈통과 할례를 내세워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지만, 참 유대인이란 그와 같은 표면적 유대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뤄지는 이면적 유대인이라는 것(롬 2:28-29)②을 알지 못하였다.
그[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자들이 언젠가는 그리스도 앞에 굴복할 것이고(사 45:14, 49:23, 60:14, 겔 37:28, 36:23, 마 22:44,③ 빌 2:10-11④),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셔서 그들이 와서 빌라델비아 교인들의 발 앞에 절하게 하실 것이라는 뜻이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자신이 빌라델비아 교인들을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실 것이다.
이 말씀은 유대인들의 회심을 의미하는 것(G. E. Ladd, 박윤선, 김철손⑤)이 아니라, 전후 문맥상 유대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하는 것⑥으로 보아야 한다.
계속해서 그리스도께서는 【10】[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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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동.
2) 필자의 로마서 2:28-29의 주석을 보라.
3) 필자의 마태복음 22:44의 주석을 보라.
4) 필자의 빌립보서 2:10-11의 주석을 보라.
5) 김철손, 요한계시록.
6) A. Johnson, J. F. Walvoord, R. H. Mounce, 黑崎幸吉, 이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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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내’(휘포모네스, ὑπομονής: 1:9의 “참음”의 주석을 보라.)의 말씀]에 대해서는 (1) 그리스도의 재림을 인내하며 기다리라는 말씀이라는 설(Zahn, Lohmeyer, Vincent),⑦ (2) 인내하라고 가르치신 그리스도의 말씀이라는 설,⑧ (3) 인내하신 그리스도를 본받으라는 말씀이라는 설⑨ 등이 있다. [지켰은즉]과 이후의 표현을 보아 대다수 학자들의 견해인 (3)설을 취해야 할 것이다.
헨드릭슨(W. Hendriksen)은 “이는 십중팔구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인내가 보여 준 십자가의 복음을 의미한다.”라고 하였다. 헨리(M. Henry)도 복음은 그리스도의 인내이며,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인내라고 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인내의 절정인 복음을 지킨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페이라스무, πειρασμού: 2:10의 주석을 보라.)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라고 하셨다.
이 말은 빌라델비아에서 빌라델비아 교회가 겪고 있는 환난과 핍박에서 보호하는 것(“J. Barton Payne”,⑩ R. H. Charles, 黑崎幸吉)이 아니라, 마지막 때의 대 환난(단 12:1, 욜 2:31, 마 24:29-30, 막 13:24, 살후 2:1-12, 계 14:7)을 면하게 하는 것이라는 뜻이다.⑪ 더욱 구체적으로 말하면, 재림하실 그리스도에 의한 마지막 심판으로 이어지는 고난을 면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 점은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1:7의 주석을 보라.)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라는 말로 뒷받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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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in 이상근.
8) J. Wesley, A. Plummer, “Bousset”(in 이상근), P. E. Hughes.
9) H. Alford, A. Johnson, G. E. Ladd, R. H. Charles, A. Barnes, R. C. H. Lenski, R. H. Mounce, “Swete”(in 黑崎幸吉), “Moffatt”(in 이상근), C. R. Erdman, 黑崎幸吉, 이상근.
10) in A. Johnson.
11) H. Alford, H. Kraft, A. Barnes, “Moffatt”(in 이상근), M. Rist, R. C. H. Lenski, J. F. Walvoord, G. E. Ladd, C. R. Erdman, A. Johnson, R. H. Mounce, 박윤선, 이상근, 김철손, 요한계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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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에 대한 임박성과 빌라델비아 교회가 해야 할 각오에 대해, 그리스도께서는 【11】[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라고 하셨다.
여기의 [내가 속히 임하리니](2:5, 16)는 그리스도께서 심판하시기 위해 속히 재림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충성된 빌라델비아 교인들을 축복하시기 위해 속히 재림하신다는 것이다(22:7, 12, 20).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2:25-26의 주석을 보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지키고, 그 이름을 배반하지 않은 믿음의 절개와 그리스도의 인내를 본받은 것을 확고하게 붙잡으라는 것이다.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의 [면류관]은 2:10의 주석을 보라.
그리스도께서는 빌라델비아 교회의 믿음의 승리자가 받을 상에 대해, 【12】[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라고 약속하셨다.
[이기는 자는] 2:7의 주석을 보라.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는 그리스도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의 믿음의 승리자에게 주시는 상을 비유한 것이다.
[성전]은 나오(ναῷ)이며, 성전 건물(히에론, ἱερόν)과 구별되는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스러운 지성소를 의미한다.
상을 [기둥]으로 비유한 것은 빌라델비아 교인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한 것이다. 당시에 지진이 자주 발생했던 빌라델비아에는 건물이나 신전이 파괴되어 폐허가 된 곳곳에 아름답게 조각된 돌기둥들이 남아 있었다(A. Johnson, “Ramsay”⑫). 그래서 그들은 아름다운 기둥이 건물이 존속하도록 지탱해 주는 막중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지진에도 끄떡없이 버티는 막강한 힘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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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in 이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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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신다는 것은, 마지막 구원을 받을 때에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는바 중요하고 흔들리지 않는 영예로운 자리를 주신다는 뜻이다.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역시 빌라델비아 교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빌라델비아는 17년의 대지진 이후 자주 일어나는 지진 때문에 시민들이 가끔 도시 밖으로 피난 나간 역사적 사실이 있다”(김철손).⑬ 그런 사실을 염두에 두고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라고 한 것이다. 즉, 믿음의 승리자가 받을 종말적인 상인 하나님의 성전의 막중하고 영예로운 자리는 안전하고 영구적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약속인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는, 빌라델비아의 믿음의 승리자가 얻는 두 번째 상인 천국 백성이자 하나님의 영원한 소유가 된 것을 확인하는 세 가지 이름을 그에게 기록할 것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그 믿음의 승리자의 이마에 기록하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영원한 소유가 된 것, 또는 하나님께 속한 것을 확인하는 표이다⑭(참조: 22:4, 민 6:27. 비교: 3:17).
그러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을 그 믿음의 승리자의 이마에 기록하는 것은, 그가 새 예루살렘(마 4:5, 갈 4:6, 히 12:22)의 완전하고도 영원한 시민이 된 것을 확인하는 표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새 이름]을 그 믿음의 승리자의 이마 위에 기록하는 것은 그가 완전하고도 영원한, 그리스도의 소유가 된 것을 확인하는 표이다.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주인이 되실 그리스도께서도 새 이름을 가지신다는 것이다. 그 이름은 그리스도의 기존의 여러 이름 중의 하나가 아니라, 그 자신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이름이다(19:12).
끝으로, 그리스도께서는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13】[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하셨다.
이 구절은 2:7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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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김철손, 요한계시록.
14) H. Alford, A. Barnes, W. Hendriksen, P. E. Hughes, R. C. H. Lenski, C. L. Morris, A. Johnson, G. E. Ladd, H. Kraft, 黑崎幸吉, 박윤선, 이상근, 김철손, 요한계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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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요한계시록(서울: 글벗사, 2005, 1판 1쇄), pp. 146-150.

필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신약 주석(마~계, 1-15권)/ 설교집 28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다수의 논문들/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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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2

  • 2020-10-14 11:01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대하여 일정한 형식을 가지고 각각 1. 교회이름, 2. 교회의 그리스도, 3. 칭찬과 위로, 4. 책망, 5교훈과 경고, 6. 약속. 7 한정된 약속 등이 순서대로 기술되어 있는데, 이 빌라델비아 교회는 (서머나 교회와 함께) '3. 칭찬과 위로'는 있고 '4. 책망'이 없습니다.

    성전의 기둥은 역사적으로는 솔로몬 성전에 있는 ‘야긴’과 ‘보아스’의 두 기둥이 있습니다. (왕상 7:19~22) 주랑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의 네 규빗은 백합화 모양으로 만들었으며, 이 두 기둥머리에 있는 그물 곁 곧 그 머리의 공 같이 둥근 곳으로 돌아가며 각기 석류 이백 개가 줄을 지었더라. 이 두 기둥을 성전의 주랑 앞에 세우되 오른쪽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야긴이라 하고 왼쪽의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보아스라 하였으며, 그 두 기둥 꼭대기에는 백합화 형상이 있더라 두 기둥의 공사가 끝나니라 (대하 3:15~17) 성전 앞에 기둥 둘을 만들었으니 높이가 삼십오 규빗이요 각 기둥 꼭대기의 머리가 다섯 규빗이라. 성소 같이 사슬을 만들어 그 기둥 머리에 두르고 석류 백 개를 만들어 사슬에 달았으며, 그 두 기둥을 성전 앞에 세웠으니 왼쪽에 하나요 오른쪽에 하나라 오른쪽 것은 야긴이라 부르고 왼쪽 것은 보아스라 불렀더라. (렘 52:20~22) 솔로몬 왕이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만든 두 기둥과 한 바다와 그 받침 아래에 있는 열두 놋 소 곧 이 모든 기구의 놋 무게는 헤아릴 수 없었더라. 그 기둥은 한 기둥의 높이가 십팔 규빗이요 그 둘레는 십이 규빗이며 그 속이 비었고 그 두께는 네 손가락 두께이며, 기둥 위에 놋머리가 있어 그 높이가 다섯 규빗이요 머리 사면으로 돌아가며 꾸민 망사와 석류가 다 놋이며 또 다른 기둥에도 이런 모든 것과 석류가 있었더라.

    이 기둥의 머리에 있는 백합화는 성도들의 영광, 석류들은 성도들의 고백을 상징한다고 봅니다. 같은 이치로 대제사장의 겉옷의 하단에는 석류들과 금방울들이 교대로 달려 있습니다. 어떤 명철이 부족한 분이 설명하길, 금방울의 용도가 대제사장이 집례 중 죽으면 다른이가 지성소에 들어가지 못하니 밖에서 발에 줄을 매어 있기에 끌어내는 용도라고 하던데..... 당연히 성경에 없는데 이것도 이른 바 '전승'인가요? 쓰레기 처리는 번제단이나 '게헤나'에서 하고, 줄은 발목대신에 다른 곳 매야 합니다. ‘금방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석류 (혹 금방울)이 반복되는 것은 한 번이 아니라 여러번 반복해야 한다는 의미이라고 봅니다.

    일곱 교회에 꼭 같이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고 하셨는데 7번이나 반복된 중요한 말씀입니다. 모든 교회 안에도 '귀 없는 자' 여럿 있습니다. 본인들은 귀가 제자리에 있고 그 기능을 한다고 착각하지만,

    • 2020-10-14 12:08
      필자의 요한계시록 연재에 계속 관심을 보이시고, 관련하여 의견을 피력하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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