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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9회: 다. 버가모 교회에 보내는 편지 I (2:12-13) ※믿음의 본질?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0-09-17 12:25
조회
356
그리스도께서 버가모 교회에 보내시는 편지는, 【12】[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죄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로 시작된다.
[버가모](Περγάμῳ)는 서머나 북방 100㎞ 떨어진 지역이자 소아시아의 서쪽 무시아 주의 수도이다. 에게 해에서 내륙으로 24㎞쯤 들어간 지점에 있으며, 카이쿠스(Caicus, 오늘날의 Bakir crai) 강가는 거기서 약 3㎞ 가까이에 있다. 버가모의 성채(acropolis)는 카이쿠스 강의 두 지류인 셀리누스(Selinus)와 케티우스(Cetius) 사이에 있는 약 300m 높이의 구릉에 축조되었다. 현 도시는 그 구릉 아래 있다.
버가모에 선사 시대가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이것은 버가모라는 전(前) 헬라적인 성읍 명(아마 ‘성채’의 뜻)으로부터, 또 부근에서 발굴된 청동기 시대의 유물에서 분명하게 되었다.
버가모는 알렉산더의 후계자들의 시대에 융성기를 맞았다. 성읍은 원래 안티고노스(Antigonus)가 점령한 지역의 일부였으나, 그의 사후(주전 301년) 루시마쿠스(Lysimachus)가 소아시아 서부의 패권을 장악했다. 그는 부장(部將) 필레테루스(Phileterus)를 신뢰하여 버가모를 다스리게 하고, 거기에 9,000달란트의 보물을 저장시켰으나, 필레테루스는 282년에 그에게 반역하여 셀레우쿠스(Seleucus) 편에 붙었다. 이듬해 루시마쿠스가 전사하고 셀레우쿠스도 살해된 다음에는, 버가모는 셀레우코스 왕조의 피지배적 지위를 벗어나서 필레테루스(주전 283-263)가 건설한 독립 왕조의 지위를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버가모의 헬레니즘 시대에 있어서의 세 가지 주요한 특징을 들면, 주전 278년 이래 소아시아에 침입한 갈라디아인과의 싸움, 로마와의 친선 관계, 특히 동성읍을 유명한 학예의 중심지로 삼은 왕들의 문화 보호책이다.
필레테루스는 갈라디아군을 격파한 최초의 버가모 왕이었는데, 그의 후계자 유메네스 1세(Eumenes I: 주전 264-241)는 그들에게 공납하여 평화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다음의 앗탈루스 1세(Attalus I: 주전 241-197)는 이 미개 민족인 고울족(Gauls)에 대승하여 그들을 브루기아 지방(후에 갈라디아 지방으로 불려짐)으로 격퇴시키고, 그 기념으로 버가모와 아데네 두 성읍에 많은 동상을 세웠다. 그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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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메네스 2세(주전 197-159)도 갈라디아군에 승리하였다.
버가모의 번영은 앗탈루스 1세 시대에 비롯되었다. 그는 로마의 대(對) 마게도냐 공격을 지원했다. 유메네스 2세는 이 정책을 계승하고, 또 로마와 동맹을 맺어 수리아의 안디오쿠스 3세(Antiochus III)에 대립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친 로마 정책에도 불구하고 버가모의 왕조는 그 후계자 앗탈루스 2세(주전 159-138)와 3세(주전 138-133) 시대에는 점차 쇠퇴하였다.
앗탈루스 1세는 알렉산드리아와 로마에 대항하여 산업, 학문(특히, 수사학), 미술을 보호 장려하고, 버가모의 문화를 왕성하게 하였다. 버가모의 문화가 전성기에 이른 것은 아마 유메네스 2세의 시대일 것이다. 그 도서관은 장서 20만 권을 헤아리는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버금가는 큰 것이었다. 왕조에 의한 이 문화 보호의 전통은 주전 133년에 앗탈루스 3세가 왕국을 로마에 위양하기까지 계속되었다.
로마는 버가모 왕국을 아시아 현(縣)으로 하고, 버가모를 그 도성으로 정했다. 위양의 결과는 조금도 버가모에 유익되지 못하였다. 앗탈루스 가(家)의 치부는 로마로 반출되었고, 이어서 시민 전쟁이 일어나 성읍의 자원이 낭비되고, 로마로부터는 고액의 세금이 부과되었다. 시민은 주전 88년, 성읍에 사는 모든 로마인을 죽이라는 미드라다테스(Mithradates)의 명령에 따라 반란을 일으켰는데, 그 결과 자유권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러나 버가모의 자유는 주전 47-46년에 가이사에 의해 회복되었다. 로마 제국 시대에 버가모는 과거의 번영을 회복하여 다시 중요한 성읍이 되었다.
아구스도(Augustus) 시대에 로마와 아구스도의 예배처가 성읍 내에 설치되고, 후에는 트라야누스(Trajanus)의 신전이 성채 위에, 또 카라칼라(Caracalla)의 신전이 극장 앞에 건립되어 아시아 현에 있어서의 예배의 중심지가 되었다.
버가모는 뛰어난 도시 계획에 의해 건설된바 소아시아의 제일의 장관인 헬라풍 도시이었다. 성채 남쪽에 있는 낮은 시부(市部)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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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이고, 중요한 공공 건물, 신전, 궁전 등은 산 사면에 인공적으로 만든 평지에 세워져 있었다. 그 평지는 3단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중단에는 세 체육장(gymnasium)이 있었다. 아크로폴리스의 상단에는 거대한 헬라풍의 극장을 중심으로 종교 및 왕실의 여러 건물이 방사상으로 늘어서 있었으며, 그 중요한 것은 제우스의 대제단, 아테네의 신전, 트라야누스와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신전, 반월형의 궁전, 그리고 시장 등이었다.
특히, 제우스의 대제단은 신들과 거인이 싸운 극적인 조각이 새겨져 있으며, 버가모에 보존되어 있는 가장 중요한 미술적 기념물이다. 이 조각은 아마 갈라디아인과의 전투에 관련되었을 것이며, 제우스에게 봉헌된 것이다. 대도서관은 이 제단의 평지에 있었다.
버가모는 2세기의 의사 갈레노스(Galenus)의 출생지이며, 아스클레피우스(Asclepius: 뱀으로 표시된 치유의 신)의 숭배로 알려져 있으며, 그 신전과 의학교에는 각지로부터의 내방자가 끊일 사이 없었다. 이 아스클레피우스 숭배와 황소로 상징되는 임금들의 신 디오니소스(Dionysos: 로마의 Bacchus에 해당되는 술의 신) 숭배는 버가모의 대표적인 두 종교이었다.
오늘날 버가모는 ‘버가마’(Bergama)라 불려지며, 통상적‧정치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고지의 발굴은 1878년 이래 행해졌으며,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①
[교회](에클레시아스, ἐκκλησίας)와 사자(앙겔로, ἀγγέλῳ)는 1:20의 주석을 보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는 1:16의 주석을 보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그리스도께서 가라사대, 【13】[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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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조: E. J. Banks, “Pergamos” in ISBE, Vol., IV, pp. 2322-2323. W. Barclay, G. E. Ladd, A. Johnson, A. Barnes, H. Kraft, W. Hendriksen, 이상근, 김철손, 요한계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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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2:2의 주석을 보라.)]는 단순히 버가모 교인들이 버가모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기보다는, 그들이 믿음을 순전히 지켜 나가느라 힘들게 살고 있는 처지를 안다는 뜻이다. 즉, 황제 숭배를 비롯한 온갖 우상 숭배의 소굴에서, 그것도 핍박을 받으면서 순전한 믿음을 지켜 사는 상황을 안다는 것이다.
우리의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런 상황과 처지를 누군가가 알고 있다는 것 자체도 위로가 된다. 그렇다면, 버가모 교인들은 그와 같은 자신들의 상황과 처지를 그리스도께서 아신다는 말씀에 큰 위로와 힘을 얻을 것이다.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는 버가모가 사단(2:9의 주석을 보라.)의 왕좌가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1) 버가모 지역의 대표적인 우상 신전 중 제우스(Zeus: 최고 신으로 로마의 Jupiter에 해당됨) 제단이라는 설(Deissmann),② (2) 아스클레피우스(Asclepius: 뱀으로 표시된 치유의 신)의 신전이라는 설(“Zahn”,③ J. F. Walvoord), (3) 버가모 도시가 언덕처럼 생겨서 평원 위로 솟아오른 모습이 제단처럼 보였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는 설(Wood),④ (4) 현실적으로 당시 교인들을 강제로 징용하거나 사형시킨 권력 기구를 가리킨 것이라는 설(김철손),⑤ (5) 핍박의 자리라는 설(A. Barnes, M. Henry), (6) 황제 숭배의 자리라는 설(M. Rist), (7) 버가모가 온갖 우상 숭배, 특히 황제 숭배의 중심지라는 사실을 가리킨 것이라는 설⑥ 등이 있다.
대다수 학자들의 견해인 (7)설을 취하는 것이 무난하다. 여기에 (7)설과 관련된 버가모 교인들에 대한 핍박의 자리라는 견해를 포함시켜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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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in 강병도 편.
3) in R. C. H. Lenski.
4) in 강병도 편.
5) 김철손, 요한계시록.
6) H. Alford, J. Wesley, W. Hendriksen, R. H. Mounce, G. E. Ladd, R. C. H. Lenski, A. Johnson, 박윤선, 이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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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처지에 사는 버가모 교회에 대해, 그리스도께서는 [네가 내 ‘이름’(오노마, ὄνομά: 2;3의 주석을 보라.)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라고 칭찬하셨다.
[내 이름]의 [이름](오노마, ὄνομά)은 2;3의 주석을 보라.
[충성된 증인]은 1:5의 주석을 보라.
[안디바](Ἀντιπάς)는 박해 아래 있던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의 교인들 중에서 유일하게 순교자의 명단에 오른 인물이다. 그러나 그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모페트(Moffatt)에 의하면, 터틀리안(Tertullian)은 안디바가 버가모 교회의 명성 높은 감독으로 황제 숭배 거절로 인해 불에 타 순교했다고 한다.⑦ 후기 성인전 작가들(Simon Metaphrastes, The Bollandists)의 기록에, 버가모의 안디바를 놋으로 만든 황소 틀 속에 산 채로 잡아넣고, 서서히 불태워 죽였다고 한다.⑧
그와 같이 끔찍한, 안디바의 순교를 보거나 알았으면서도 버가모 교인들은 배교하기는커녕, 그를 본받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리스도의 칭찬을 받았다.
[믿음](피스틴, πίστιν)에 대해, 홍현설 박사는 “신조나 신앙 고백 자체를 믿는 것이 아니며, 또한 인간적 행위에 대한 신뢰와 확고 또는 심리학적 의미의 내적 신념이 아니다.”⑨라고 한 다음에, “새로운 창조의 주도자이시며, 세계의 화해자이시며, 정의의 근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행위를 의미한다.······하나님은 진실하시고 성실하시기 때문에 결코 인간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바 신의 믿음직함(信實性)에 대한 우리의 신뢰, 이것이 바로 구원의 방편이 되는 신앙이다.”⑩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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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in 강병도 편.
8) W. Barclay, Letters to The Seven Church 역본, p. 49, in 김철손, 요한계시록.
9) 홍현설,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서울: 기독교대한감리회 총리원, 1968), pp. 20-26.
10) Ibid., p.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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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트(K. Barth)는 “신앙은 우리가 그 위에 서 있는 근거지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에 대한 우리의 삶과 사고와 의지 및 감정의 전체에 관계되는 것이다. 신앙은 우리가 거기에 매어 달리는 한 가닥의 끈이며, 그것으로서 우리가 영양을 받는 유일한 음식이다.”⑪라고 하였다.
한 마디로 말해, 믿음 곧 하나님께 대한 신뢰의 행위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요(엡 2:8, 마 16:17, 고전 12:3) 성령의 은사(고전 12:9)로서,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인 인간의 전 인격적인 응답이다. 전 인격적인 응답이란 인간의 삶, 즉 사고와 의지와 정서 및 행위의 전체가 하나님께 대해 복종적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연합하며 사는 생활이다. 이러한 관계를 맺는 “믿음의 결단은 이미 인간이 태어날 때, 그에게 부여된 하나님의 선재 은혜에 근거된 것이므로”(J. Wesley),⑫ 인간이 믿는 것은 인간의 공로일 수 없으며, 반면에 믿지 않는 것에 대해 책임을 면할 길이 없는 것이다.
이 믿음은 또한 우리가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가는 완전한 구원을 얻기까지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방편이기도 하다(벧전 1:5).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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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in Ibid., p. 31.
12) 박장균, “웨슬레의 恩寵論” in 神學과 宣敎(서울신학대학, 1972), p. 73.
13) 필자의 베드로전서 1:5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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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요한계시록(서울: 글벗사, 2005, 1판 1쇄), pp. 113-119.

필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신약 주석(마~계, 1-15권)/ 설교집 28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다수의 논문들/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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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6

  • 2020-09-17 20:44

    무종교인들과 통치자인 황제 숭배와 각종 신들을 믿는 각종 종교인들에게는, 유일한 창조주요 섭리자요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성육이신 주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라고 하면서 함께 모여 예배하며, 세대를 본받지 않고, 주 예수님을 본받아 살아야 한다고 하는 교회공동체는 대체로 미움과 핍박과 살해의 대상이었다.


  • 2020-09-18 08:07

    그 핍박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주 예수님님 재림하실 때 까지....말씀 감사합니다


    • 2020-09-18 09:55

      김정효 장로님, 필자의 요한계시록 연재에 공감하시고, 관련하여 의견을 표하셔서 감사합니다. 최근의 대표적인 핍박으로 배교하라는 명령을 따르지 않고, 함께 모여 주 하나님께 예배하고, 들은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을 학살하고, 교회를 박멸한 공산 정권들이 있습니다.


  • 2020-09-18 08:55

    버가모를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고 했는데, 이는 알렉산드리아의 거대한 장서, 로마 황제는 신으로 추앙되었고, 히랍문화의 신들이 있고, 이를 통합하면 정치적, 종교적, 군사적, 경제적 왕국인 사탄의 권좌가 완성됩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는 최초의 대학, 거대한 장서를 자랑하는데 인류는 거기에서 부터 철학을 통한 배교, 거대한 장서를 통해 스스로 얻은 지혜로 인한 배교가 시작되었을 수 있습니다.

    사탄이 그 반대편에 있는 그 어떤 세력을 공격하는 게 너무 당연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받는 고난과 핍박은 큰 유익이 됩니다. 다만, 대부분 이를 모르고 당하기에 고통스럽긴 하나,


    • 2020-09-18 10:06

      엄재규 장로님, 필자의 요한계시록 연재에 공감하시고, 관련하여 의견을 표하셔서 감사합니다. 종말이 가까워질수록 배교하게 만드는 사단의 교활한 갖가지 수단과 방법이 더욱더 극성을 떨 것입니다.


      • 2020-09-18 18:42

        예... 요즘도 그런 징후를 보게되고, 밖에서 공세도 그렇지만 안에서 부터 썩고 있는게 더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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