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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사의 것, 하나님의 것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4-12-23 11:23
조회
654


<마가복음 12:13-17>

13저희가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14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15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 한대 예수께서 그 외식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 하시니 16가져왔거늘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화상과 이 글이 뉘 것이냐 가로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17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저희가 예수께 대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더라

1. 시작하는 말

세계 역사상 제일가는 대가도, 자기 분야의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 성장을 도모해야 하고, 실력을 배양해야 합니다. 모르는 것을 아는 좋은 방법은, 책에서 답을 찾는 것입니다. 보다 더 속히 아는 방법은, 보다 깊고 폭넓은 답을 아는 사람에게 질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질문하는 것을 자존심이 상하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고, 남을 폄훼하려고 질문하는 사람이 있고, 남을 곤경에 빠뜨리려고 질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남을 제거하려고 질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께 권위 문제로 따졌지만 패한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장로들은,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예수님께 보냈습니다.

2.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게 가한가, 불가한가?

유대교 권력층이자 유대 권력층이 율법을 잘 지킨다고 자부하는 바리새파와 친로마파인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낸 목적은, 예수님의 말씀을 책잡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책잡으려 하여”의 헬라어 아그류소시(ἀγρεύσωσι)는 사냥한다는 뜻입니다. 어처구니없게도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도 모르고, 예수님의 말씀을 은혜로 듣기는커녕, 사냥감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들은 주 예수님의 구원의 복음을 사냥감으로 삼으려고,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을 보낸 것입니다. 권력을 가진 종교 지도자들과 사회 지도자들 중에는 일반인들의 인격보다 못하고, 일반인들의 도덕 수준보다 못한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 특히 지도자들은 주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리새파와 헤롯당은 평소에 사이가 안 좋았는데, 주 예수님을 제거하는 일에는 야합하여 교묘한 궤계를 부렸습니다. 먼저 칭찬을 늘어놓았습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가하다고 대답해도 책잡히고, 불가하다고 대답해도 책잡히는 절묘한 질문에 대답을 회피하지 못하게 하려고 가식적인 칭찬을 한 것입니다. 절묘한 질문을 한 비상한 머리를 좋은 일에 쓰면 얼마나 좋습니까? 더 절묘한 것은, 예수님을 책잡아 제거하려는 악의에서 나온 그들의 가식적 칭찬 내용이 진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육이신 주 예수님은 사람을 대할 때에 사람의 외적 조건들인 종족, 성, 재산의 다소, 지위의 높고 낮음, 지식의 유무 등으로 차별하시지 않고,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사람들의 보편적인 잘못은 사람을 그 중심으로 판단하지 않고, 외적인 것으로 판단하는 데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적 판단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영적 문제에 소홀하거나 무관심하게 되고, 또한 자신의 내적 성장보다는 자신의 외적인 것들을 갖추기에 여념이 없는 것입니다. 부수적인 것들 때문에, 근본을 상실해 버린 인간의 비극이 매우 큰 문제입니다. 사무엘상 16:7을 보면,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시편 51:6에는,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라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2:5에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외모가 아닌 중심을 보시는 주 예수님은,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예수님의 관점으로, 사람을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또한,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아니라, 주 예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에 유의하며 살아야만 합니다.

유대 지도층이자 유대교 지도층의 말대로,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행위의 방도도 가르치셨습니다. 물론, 그들은 주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이자 주된 내용인 복음은 인정하지도 않았고, 믿지도 않았습니다.

드디어 그들은 예수님께 절묘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

그들이 예수님께 한 질문의 간교한 의도를 이해하려면, 가이사에게 바친 세금의 역사적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일 년에 한 번 내는 이 세금(켄손, κήνσον)은 14세부터 65세까지의 모든 남자와 12세부터 65세까지의 모든 여자에게 부과된 1데나리온의 인두세이었습니다. 1데나리온(denarius)은 로마의 은화이며, 그 가치는 로마 병정의 하루 급료, 또는 농원 자유노동자의 하루 임금에 해당되었습니다.

당시의 통치자는 로마의 제2대 황제로 14년부터 37년까지 통치한 티베리우스(Tiberius)이었습니다. 그 때에 나온 데나리온의 표면에는 신적인 신분의 상징인 월계관을 쓴 황제의 흉상이 있었고, ‘황제 티베리우스, 신적인 아우구스투스의 거룩한 아들’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 뒷면에는 ‘최고의 제사장’이라는 글과 신들의 보좌에 앉은 황태후 리비아가 있었고, 그 오른쪽에는 올림피아의 긴 홀이 있었고, 그 왼쪽에는 올리브나무의 가지가 있어서 그녀를 천상적인 평화의 화신으로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그 1데나리온의 세금은 유대인들에게 속국 백성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기 때문에, 대단히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인두세 외에도 지조와 소득세가 있었습니다. 지조(地租)는 모든 곡물의 10분의 1과 포도주와 과일의 5분의 1을 바치는 세금이었는데 일부는 현물로, 일부는 돈으로 냈습니다. 소득세는 수입의 100분의 1을 바치는 세금이었습니다.

이러한 세금들에 대해 바리새인들은 심히 반발한 반면에, 헤롯당은 대체로 받아들이는 입장이었습니다. 유다(Judas)를 중심으로 갈릴리인들 사이에 일어난 젤롯당 곧 열성당 운동은 이 세금들을 신학적인 문제로 삼았습니다. 요세푸스(Josephus)는, “코포니우스가 재직할 때, 유다라는 사람이 로마인들에게 세금을 바치고, 하나님 외에 어떤 유한한 통치자를 인정하는 것은 반역죄라고 선언함으로써, 갈릴리 주민들에게 로마에 반항할 것을 촉구하였다.”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러한 배경 때문에, 예수님이 바치라고 하시든지 바치지 말라고 하시든지 곤경에 처하시게 되어 있었습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라고 하면 신학적인 문제와 함께 동족들에게서 반역자로 낙인찍혀 살해당할 수 있고, 바치지 말라고 하면 로마에 대한 반역죄로 몰려 처형되기 때문입니다. 또, 바치라고 하면 바리새파와 충돌이 되고, 바치지 말라고 하면 헤롯당과 충돌이 됩니다. 그래서 간교하고 절묘한 질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의기양양하여 같은 질문을 반복했지만, 이 경우에도 예수님은 그들의 의표를 찌르셨습니다. 그 외식함을 아신 예수님은,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질문 자체만 보면, 예수님이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가하다고 하시든지 불가하다고 하시든지 간에 대답대로 순종하려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순종할 마음도 없고 순종할 형편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주머니에서 그 은화가 나오도록 요구하신 것은, 그들이 이미 은화를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암암리에 그들에 대한 가이사의 권세를 인정하고 있다는 점을 일깨우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은화로 세금도 바치고 있었습니다.

은화를 가져온 그들에게 예수님은 은화에 새겨진 화상과 글이 뉘 것이냐고 물으셨고, 그들은 가이사의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고대의 화폐는 권력의 상징이고, 주권 유지의 범위를 나타내고, 왕의 소유를 의미했습니다.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두신 예수님은 데나리온의 형상과 글이 누구의 것이냐고 질문하신 것이고, 질문의 취지를 모르는 그들은 가이사의 것이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가이사에게 바치는 것이 가하다는 대답도 아니고, 불가하다는 대답도 아닌 뜻밖의 대답에 그들은 심히 기이히 여겼습니다.

세금을 시인하고 황제의 권위를 인정하나, 단 하나님의 권위에 의해 한계가 설정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복종해야 할 하나님이, 분명하게 강조되어 있습니다. 결국은 국가도 인간도 다 하나님께 속하므로, 국가와 하나님의 요구가 상반될 경우에는 하나님께 대한 충성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의해야 할 점은 예수님이 로마 황제의 식민 통치나, 로마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는 것을 정당시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질문과 예외적 현실에 국한하여 대답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주요 평화의 주로 오셨고, 침략국인 로마처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한다고 하셨습니다.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모르는 것을 아는 좋은 방법은 질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교 권력자들이자 유대 권력자들은 예수님을 책잡아 제거하기 위해서, 사람을 시켜 예수님께 다양한 질문을 하곤 했습니다.

침략하여 정복한 로마의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고 있는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은 예수님께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한 것인지, 불가한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가하다고 하시든지 불가하다고 하시든지 간에 대답을 하면,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는 간교하고 절묘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뜻밖의 대답을 하셨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가이사를 포함한 만유의 주이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입니다.

설교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7권/ 기타 다수



전체 2

  • 2024-12-24 12:37

    아멘.
    목사님께서 주안에서 영육 간에 늘 강건하시길 기도합니다. 본문에 대한 제 소견을 별도 게시물로 공유합니다.


    • 2024-12-24 13:37

      필자의 막 12:13-17을 본문으로 한 설교인 '가이사의 것, 하나님의 것'에 대해 "아멘."으로 화답하시고, "목사님께서 주안에서 영육 간에 늘 강건하시길 기도합니다. 본문에 대한 제 소견을 별도 게시물로 공유합니다."라고 하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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