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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혐오, 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남소영목사"님의 글을 공유합니다

작성자
김경환
작성일
2021-06-07 18:36
조회
784
<혐오와 차별을 반대하는 감리회 모임>에서 남소영 목사님의 글을 공유합니다.

차별과 혐오, 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 남 소 영 목사

최근 코로나 이후, 해외에서 거주하고 있는 아시아계 사람들이 차별 및 혐오를 당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미국에서도 한인을 무차별 공격하는 일이 발생하여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5월 2일 그의 연설에서 5월을 아시아계 문화유산의 달로 선포한다고 전하고 차별과 폭력은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반아시아계 편견에 따른 행동은 잘못된 것이라며, 인종주의와 외국인 혐오에 맞서고 함께 치유할 길을 계속 찾아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도 60대 혐한 블로거가 ‘재일 한국인’에 대한 혐오 표현을 그의 블로그에 올린 일로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카네가 그 블로거를 ‘모욕죄’로 형사 고소했는데 다행히도 그의 소송은 1심, 2심에서 승소했다. 나카네 학생의 어머니는 일본 사회에 처음으로 ‘차별 혐오 처벌’조례 제정을 끌어낸 ‘재일 교포 최강이자’이다. 그녀는 그 일로 인해 도쿄변호사회로부터 인권상을 수상 한 바 있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차별’과 ‘혐오’는 근절되어야 할 ‘사회적 악’이라는 것에는 공식적으로 이견이 없는 듯하다. 그런데도 여전히 인종차별, 성차별,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차별 등이 자행되는 것은 차별이 심각한 가해 행위라는 인식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차별과 혐오가 잘못된 행위임에도 차별하는 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생활 곳곳에서 범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차별’에 대해 민감하게 인식하고 반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모두 차별자이면서 동시에 차별당하는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우리에게 존재하는 차별의 종류는 차고 넘친다. 국가적으로 당하는 인종차별이나 약소국으로서 당하는 차별은 차치하고서라도 국내에서만 존재하는 단계적이고 계급적인 차별의 유형은 다채롭게 진행된다. 차별은 각각의 ‘차이와 다름’을 수용하지 못함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차이와 다름’은 곧 편견에서 차별로 이어지며 차별은 또한 잔인한 학대와 학살로 이어진다.

엄밀히 따지면 ‘차별’은 특별한 이유 없이 차별자의 기준으로 자행된다고 볼 수 있다. 차별을 가하는 자들은 ‘차별’을 하기 위해서 ‘차별’할만한 이유를 찾기도 한다. 그래서 ‘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한 이유가 찾아지면, 차별할만한 이유가 있으니 그 차별은 범죄를 면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이러한 잘못된 생각은 우리 사회에 오랫동안 차별을 뿌리내리게 했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는 그의 저서 『차이와 반복』에서 ‘차이’는 차별의 조건이 아니라 오히려 존재 자체로서의 ‘고유한 성질’이라고 보았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단 하나라도 100% 똑같이 생길 수 없으며 언뜻 보기에 똑같은 것으로 보일지라도 반복하여 보면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차별은 모든 것의 고유성을 ‘동일성’으로 생각할 때 발생한다는 것이다. 동일성을 지향한다는 것은 조금이라도 차이가 발견되면 편견이 생기고 차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게 되는 것이다. 인간 개개인이 서로 다르게 생긴 것처럼, 존재하는 모든 것은 같은 종류라 할지라도 각 개체는 차이가 있고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질 들뢰즈의 주장처럼 존재하는 모든 것의 차이가 ‘고유성’이라고 한다면 백색인이나 유색인이나 차별의 조건이 될 수 없으며 남자든 여자든, 성소수자든 차별당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차별을 근절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움직임은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이미 30~40년 전에 차별금지법을 입법한 나라들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아르헨티나, 네팔,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 등이며, 유럽연합에서도 이미 차별금지법을 도입한 지 오래다. 미국은 민권법안에 차별금지 조항이 존재한다. 또한 현재 차별금지법 도입이 논의 중인 국가들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대만과 홍콩, 일본 등이다.

이렇듯 차별에 대한 국제사회의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은 ‘차별’로 인해 우리 사회에 발생하는 문제가 많다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차별은 인간의 권리를 침해하고 인간의 행복할 권리를 빼앗는 폭력이며 사회적 악이다.

우리나라 헌법에서도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받지 아니한다.”라고 되어 있으나 사회적 관습으로는 그동안 각 분야에서 빚어지는 차별과 혐오를 방관하였던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차별로 인한 설움을 한 번씩은 경험하고 쓴웃음을 지을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다른 이를 차별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우리는 차별과 혐오가 없는 평등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첫째, 차별과 혐오에 대한 민감한 인식과 반응이 필요하다. 본인은 여성으로 태어나서 성인이 되기까지 삶 곳곳에서 차별을 경험하면서도 무관심한 경우가 많았다. 일일이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이 고단함을 느끼게 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별을 가하는 자는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절박하거나 아파하지 않는 것을 보게 된다. 반면에 차별당하는 자는 그 상처가 깊고 삶 전체가 흔들릴 만큼 절박한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차별에 대해 민감하게 의식하고 반응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을 직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차별과 혐오를 해결하려는 사회적 논의와 합의, 그리고 법제화가 시급하다. 우리 사회에서 차별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운 부류는 흔치 않을 것이다. 인종, 성별, 장애, 지역, 학력, 경제력, 신체적 특징, 건강, 나이, 직업, 사회적 지위 등. 우리는 차별자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차별받는 자가 되기도 한다. 차별받는 자로 인식할 경우, 우리는 인격적으로 불행을 경험한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7년부터 14년간 ‘차별금지법’ 제정을 논의해왔다. 하지만 누구 보다 앞장서서 차별금지를 외쳐야 할 일부 기독교인의 반대로 차별금지법의 법제화는 늦춰지고 있다. 그렇다면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의 주장은 무엇인가? 차별금지법안에 있는 ‘성적 지향’에 관한 조항이 문제라고 본다. 이는 성경적 신앙에 위배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는 동성애에 대해 부정적으로 전하고 있다. 기독교인은 성경을 신앙의 지침서로 믿기 때문에 이것을 무너뜨린다는 것은 신앙인의 자존심을 꺾는 일이기도 하다. 본인은 기독교인으로서 차별금지법의 ‘성적 지향’에 대해서 반대하는 기독교인의 입장을 이해하기는 한다.

다만, 차별금지법을 만들게 된 배경이나 그 구체적인 내용들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는 것 보다 오해 또는 왜곡하여 교인들에게 전파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문제로 지적하고 싶다.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일부 기독교인들이 우려하는 문제 중 하나는 역차별에 대한 것이다. 교회에서 성 소수자를 거부하거나, 성경을 가르칠 때 성 소수자에 대한 부정적인 발언을 하게 될 시, 법적으로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는 우려이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에 의하면 어떤 특정인을 향한 인격침해가 되지 않는 한 법적 제재를 받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셋째, 차별과 혐오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서 마땅히 차별을 받아야 할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평등권을 가질 수 있고 인간으로서 인권을 존중받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군법에 엄연히 차별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지난 고 변희수 하사의 강제 전역을 통해 드러냈다.

현대사회는 개인을 존중하는 개성화와 다양성의 시대이다. 감추고 억눌렀던 개인적 취향이 자연스러워지고 각각 다른 차이가 그대로 수용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차별을 당연하게 여겼던 기성세대들에게는 이러한 사회적 변화가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우리는 지난 2018년부터 일어난 미투운동과 퀴어축제 등으로 언론에서 따가운 시선을 받았던 것을 기억한다. 차별로 인해 억눌렸던 여성과 성 소수자들이 인간의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 그들의 정체성을 양지로 드러내는 순간 사회에서는 낯설게 반응하면서도 공감하는 부류와 비난하는 부류로 나뉘어 소리를 내기도 했다. 특히 교계의 시선은 평소 관심하지 않았던 교리적 잣대를 꺼내 들게 되었고 교리 수호자들이 뭉치기 시작했다. 교권을 지키는 것이 그리스도의 진리를 따르는 것보다 우선한다고 믿는 교권주의자들의 속내가 그대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는 마치 바리새인과 율법주의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빌라도 법정에서 고소했던 ‘신성모독 죄’와 같은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본인은 기독교인이자 감리회 목사로서 그리스도의 가치관이 아닌 개인의 편협한 세계관으로 차별을 정당화하고 옹호하는 시위대에 가담한 기독교인들을 보며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기독 교계 및 기독교회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차별의 포괄적인 범위들에 대해서 그리스도 정신에 기초하여 관심하고 연구하며 차별당하는 이웃들에게 손을 내밀 수 있기를 제안해본다. 차별금지를 반대하는 기독교인이 아니라 차별금지를 외치고 차별당하는 자들의 손을 잡아주는 기독교인이 되기를 바란다.



전체 6

  • 2021-06-08 00:34

    거룩함과 비루함,
    성결과 음란,
    생명과 멸망,
    진리와 거짓,
    길과 함정,
    차별과 구별도 구분을 못하는 자가
    자칭, 감리회의 목사란다.
    이런 자들이 궤변과 요설로
    성도들의 영혼을 사냥하고
    마귀사탄의 앞잡이가 되어
    인류멸절을 획책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허물고 있다.

    이미 차고 넘치는 개별적인 차별금지법이 있음에도
    포괄적차금법이 제정되어야 한다고
    입에 거품을 무는 저들의 최종목표는
    '하나님대적'이요 '교회허물기'인 것을
    깨어있는 성도라면 누구라도 알건마는...!!

    김경환, 남소영(남재영이랑 어떤 사이?) 그대들은
    만약 X같은 포차법이 제정된다면
    도대체 무엇 갖고 설교를 할 참이란 말인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더러운 간계와 허탄한 요설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말씀을 능멸하며
    성도들의 심령을 살해하는 이단사이비는
    감리회에서 물러가라 !!
    묶음을 받고 멸망할찌어다 !!!


    • 2021-06-08 08:57

      남*영과 남소*과는 일면식도 없는 것으로 확신함.
      그리고 설교=잔소리할 꺼리는 넘치니 걱정하지 마3.


  • 2021-06-08 08:53

    그래도 이번 글은 소중한이니 귀한이니 하는 본인의 가치 판단은 없이 글을 옮겼네요.


    • 2021-06-09 00:07

      글번호 '11251'의 댓글에서,

      장광호2021-06-03 00:07
      민목사님!
      목사님 의견대로 그 건에 대해서는 당연히 거쳐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아시지요?

      그런데 서울남연회 사태가 당일 벌어진 일인 것도 그날 참석한 이들은 다 알았습니다.
      따라서 이 사태와 사태 처리 방식이 잘못된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일이잖아요?

      그 분은 감리교회의 성역인가요?
      그분을 철벽으로 옹호하는 분들이 성역일까요?
      왜 이 사태 처리에만 유독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일까요?

      박형권2021-06-04 01:37
      평신도인 저도 궁금합니다.
      세상을 후꾼하게 달구고
      많은 사람들이 감리교회를 주목하게 한
      LGS교회 전준O 목사에 대한
      민목사님의 견해는 무엇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아니, 실례를 무릅쓰고
      여쭙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항상 거의 감게의 재판장처럼 하셨쟎아요.
      범상치 않은 예리한 직관과 통찰력으로 말입니다.

      라고 목사님께 질의를 드렸는데 답이 없으시네요
      안 하시는 건지...
      못 하시는 건지...
      아니면 아직도 장고 중이신지...
      아니면 역사에 포함될 만한 사안이 아니라서
      언급할 만한 가치조차도 없는 너절한 추문이라서...?

      불편한 질문입니까?
      장광호 목사님께서는 이것을
      감리교회가 바로 서느냐 아니면
      그냥 쓰러질 것이냐의 문제로 보고 계시쟎아요?

      제가 좀 눈치가 없긴 하지요...ㅎ

      냉철한 지성과 올곧은 신앙으로 바른 말씀하시고
      그래서 바르게 가자고 역사도 훑으시는
      민목사님 같으신 분들이
      한 말씀 하셔야 하는 것 아닐까요...?


  • 2021-06-09 08:29

    왜놈이나 백인이 차별 금지법이 없어서 인종차별을 할까 아니다 단호이 아니다.
    백인은 백인우월주의란 그들만의 문화가 있다
    왜놈은 사무라이정신이란 깡패집단의 우월주의가 그들 마음속에 언제나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글을 보니 그럴싸한 포장으로 호도하고 있는데 도대체 이들에겐 철학자의
    솔깃한 주장만 보이고 하나님 말씀따윈 아예보이지않는 기독인이란 포장지에
    둘둘 말아 인생을 살아가는 毒間들이 아닌가 싶어진다.
    이런글이 공공연하게 공공 장소인 이곳에 올려지고 있는데 기독교 대한감리회의
    영적지도자는 무얼하고 계시는지 이렇게 병들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왜 가만히
    만 있는지 모르겠다 이건 명백한 직무유기다.


  • 2021-06-09 13:05

    그리스도인(평신도, 교역자, 신학자)이라면 세상의 여론이나 대세와 상관없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선언을 비롯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착념하고
    순종해야 한다. 그래서 거짓이나 위선이나 도둑질이나 살인, 간음이나 동성애나
    양성애나 수간, 이단 사설이나 반 성경적인 사상이나 이념이나 궤변, 자신의 관념
    합리화를 위한 의도적인 성경 왜곡 등의 죄 아래 사는 모든 인생들에게 회개하고,
    창조주요 섭리자요 구원자요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믿거나, 하나님의 성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지옥으로 끄는 죄의 사함과 자유와 중생과 평화와 성령을 좇아
    말씀을 순종하는 성결한 삶과 영원한 생명의 구원을 얻게 하는 사랑을 해야 한다.

    그런데 죄를 깨닫고, 죄인임을 자각하여 회개하고 믿어 구원을 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죄도 아니고, 죄인도 아니라고 하는 것은 사랑 같지만, 그들의 구원을 막는 언행이다.
    그런 언행은 의식하든 못하든 간에, 그들에 대해 해서는 안 될 심각한 혐오이며 심각한 차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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