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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을 믿는 자의 삶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1-04-03 15:03
조회
524
(설교 동영상 ;유튜브)

(사도행전 24:10-21)

10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쁘게 변명하나이다 11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이틀 밖에 못되었고 12저희는 내가 성전에서 아무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과 또는 성중에서 무리를 소동케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13이제 나를 송사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저희가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 14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저희가 이단이라 하는 도를 좇아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15저희의 기다리는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16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17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18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저희가 보았나이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19저희가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송사하였을 것이요 20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 21오직 내가 저희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가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1. 시작하는 말

인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운명하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주님은 믿는 사람의 부활의 소망이 되셨습니다. 그 주님을 전하는 교회를 혹세무민하는 사기 집단으로 여겨 열심히 핍박하던 바울은, 교인들을 체포하려고 다메섹으로 떠났습니다. 그 바울은 도중에 부활의 주님을 만나서 오히려 주님의 사도가 됐습니다.
지옥으로 끄는 죄의 사함과 말씀을 순종하는 성결한 삶과 영생 구원의 주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아서, 부활의 소망을 갖게 된 바울 사도의 생활은 달라졌습니다. 부활의 소망이 되신 주님을 알고 난 바울 사도는, 정통한 헬라 사상과 히브리 사상을 비롯한 자신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열정적인 사람답게, 다메섹과 예루살렘은 물론, 이방에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전파했습니다.

2. 고소 내용에 대한 바울의 변명인 복음의 증언

예루살렘에 올라간 바울 사도는 유대인들에게 붙잡혔고, 공회의 법정을 거쳐 로마 총독인 벨릭스의 법정에 서게 됐습니다.
벨릭스 총독은 대제사장과 장로들 그리고 더둘로 변호사의 고소로 피고인이 된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는 거만을 떨면서 말하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장황한 아첨의 말로 시작한 더둘로 변호사와 달리, 사실을 들어 인사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첫째, 바울 사도는 벨릭스 총독에게, ‘소요케 하는 자’라고 고소한 내용에 대해 변명했습니다. 벨릭스 총독이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이틀밖에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는, 벨릭스 총독을 대면한 때부터 따져 보면, 자신이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간 지 겨우 열이틀밖에 안 되는데, 그것도 칠 일간은 서원에 따른 결례 의식을 행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소요를 일으킬 수 있었겠느냐는 것입니다. 또, 아나니아 대제사장과 고소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과 예루살렘 성안에서 무리를 선동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반박했습니다. 요는, 로마에 대한 반란을 일으키자고 무리를 선동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들이 증거 없는 헛소문과 조작으로 고소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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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바울 사도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고 고소한 것에 대해 변명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좇아서 유대인들의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는다고 했습니다. 이단이 아니라는 겁니다. 유대인들이 믿는 하나님이나 바울 자신이 믿는 하나님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하나님께서 구약성경에 약속하신 대로 세상에 오신 주님을 안 믿은 그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전파하는 도의 신관과 성경관이 유대인들과 같다고 한 바울 사도는, 종말관도 같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24:15에, “저희의 기다리는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사두개파를 제외한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향한 소망인 죽은 자의 부활을 믿었습니다.
다니엘 12:2을 보면,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5:28 이하에는,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0:12에는,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럴 듯한 이론을 펴면서 죽은 후에는 공이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나, 지지하는 사람들이나, 공감하는 사람들이 왜 막상 죽게 되면 안 죽으려고 기를 쓰고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살아가노라면 빚도 지고, 신용 불량도 되고, 기가 막히고, 고통스럽고, 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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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슬프고, 불행한 일들이 얼마나 많이 생깁니까? 그런데 죽으면 아무것도 아니고, 다 끝나는 것이고, 빚도 안 갚아도 되고, 모든 불행도 끝나고, 또 입만 열었다 하면 주식이 떨어지고, 경제가 어려워지게 되는 정객들의 거짓말과 위선과 뻔뻔한 소리를 안 듣게 된다고 하면서 왜 안 죽으려고 기를 쓰고, 죽을까 봐 두려워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말이란 말을 다 듣는 게 아니라, 들을 만한 사람의 말을 가려서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나 소원과 상관없이 창조된 피조물이기 때문에, 죽은 후에 삶의 내용에 대한 창조주의 심판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의인은 영원한 생명의 부활을 하게 되고, 믿지 않은 악인은 영원한 고통을 당하는 부활을 하게 되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쓴다고 했습니다. 올바른 신앙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만이 아니라, 사람들을 대해서도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믿는 사람의 부활의 소망이 되신 주 곧 그리스도를 존귀히 되게 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20 이하를 보면,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라고 했습니다. 구원받을 만한 믿음의 사람인지 아닌지는 생활로 알 수 있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다가 궁금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아예 안 믿는 사람도 있고, 예배 시간에 빠지는 교인도 있는데, 예배에 참석해서 예배 시간 내내 성경도 아닌 어떤 교회의 교재를 뒤적거리면서 공부하는 교인들이나, 낙서하는 교인들이나, 다른 것을 하는 교인들이나, 잠자는 교인들은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걸까,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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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바울 사도는,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혔다고 고소한 것에 대해 변명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히기는커녕, 여러 해 만에 자기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왔다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을 방문한 직접적인 목적이, 이방 교회들인 마게도냐의 교인들과 아가야의 교인들의 구제 헌금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하기 위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민족을 구제할 것이라고 한 것은, 교회의 구제 사업이 교회 안에만 국한되지 않고 교회 밖에까지 확대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야고보 사도가 안전을 위해서 서원한 네 사람과 같이 서원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고했으므로, 가져온 제물을 서원하며 결례 의식을 행하는 데에 사용했습니다. 그때에 성전을 더럽히는 집회도 없었고, 성전을 소란하게 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바울 사도를 죽이려고 소란을 피운 것은, 아시아에서 온 어떤 유대인들이었습니다.
바울 사도의 변증은 단순한 자기변호가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인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무죄 석방보다도, 법정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힘썼습니다. 마태복음 10:32 이하를 보면,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라고 했습니다. 그 법정에는 벨릭스 총독과 아나니아 대제사장과 장로들과 더둘로 변호사 등 쟁쟁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바울 사도에게는 그들 모두가 다 회개하고 믿어 구원받아야 할 죄인들이었습니다.
자신의 무죄를 변증할 겸 복음을 증언한 바울 사도는, 벨릭스 총독에게 결론적인 말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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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대속의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전한 자기를 죽이려고 소란을 피운 유대인들이 자기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벨릭스 총독에게 고소했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이 변증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아나니아 대제사장과 장로들과 더둘로 변호사가 자신을 걸어 송사하는 것도 부당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둘째, 바울 사도는 벨릭스 총독에게, 이전에 자신이 유대의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대제사장과 장로들과 더둘로 변호사가 자신의 죄를 발견했는지 물어 보라고 권고했습니다. 그들은 공회에서 직접 바울 사도를 심문했지만 이렇다 할 잘못을 발견하지 못했고, 오히려 바울 사도가 진술한 교리 문제로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 사이에 큰 논쟁이 일어났었습니다. 특히, 부활하신 주 예수님을 전파했다고 진술했을 때, 부활을 부정하는 사두개인들은 바울 사도를 보고 더욱 펄펄 뛰었지만, 부활을 믿는 바리새인들은 바울 사도를 옹호했습니다. 따라서 그 두 파 사이에 심한 논쟁이 벌어졌으므로, 공회의 재판이 유야무야로 끝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3. 맺음말

히브리 사상과 헬라 사상에 정통했던 바울은 인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대속 제물이 되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주 곧 그리스도이시라고 전파하는 교인들을 하나님을 훼방하며 혹세무민하는 사기꾼들로 여겨 핍박했었습니다. 그러던 바울은 교인들을 체포하러 다메섹에 가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나게 되는 체험을 통해서 주님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상상도 못했던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통해서 주님의 부활이 믿는 사람들의 부활의 소망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바울 사도는, 부활하신 주님의 증인이 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삶을 살았고, 자기 몸에서 주 예수님이 존귀히 되게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설교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다수의 논문들/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설교집 28권/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전체 7

  • 2021-04-03 17:20

    게시판에서 목사님의 글을 만날때마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마음은, 뒤집혀진 옹달샘이 새롭게 솟아나는 맑은 물에 조금씩 정화되어가는 모습처럼 받습니다.

    옹달샘의 물 맛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음미하고, 여운은 감상(感想)합니다. 감사합니다


    • 2021-04-03 19:05

      필자의 설교를 좋게 평하시고, 은혜를 받으신다고 하시니 감사합니다. 필자도 그 동안 한 목사님의 글들을 잘 읽었고, 잘 읽고 있습니다.


  • 2021-04-04 13:11

    목사님. Happy Easter!!~~


    • 2021-04-04 19:05

      필자의 설교에 관심을 보여서 감사합니다. 복된 부활절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 2021-04-04 20:47

    아멘... 최 목사님께서는 감리회에서 아주 보기 드문 개혁자이십니다.


    • 2021-04-04 21:08

      필자의 설교에 "아멘."으로 화답하시고, 또 "최 목사님께서는 감리회에서 아주 보기 드문 개혁자이십니다."라고 하셨는데, 과찬이나 감사합니다.


  • 2021-07-22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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