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여러분께.
현재 ‘감리회소식’이 ‘자유게시판’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정치적 입장표명이나 감리회정책과 관계되지 않은 내용 등
‘감리회소식’과 거리가 먼 내용의 글은 ‘자유게시판’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잊을 수 없는, 또한 잊혀지지 않을

작성자
백승학
작성일
2020-12-02 06:23
조회
418
잊을 수 없는, 또한 잊혀지지 않을

       백승학

한 해가 서서히 저물고 있다. 이제 마지막 남은 달력 한 장에 적혀있는 숫자를 하루에  하나씩 지우고 나면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될 것이다. 정희성 시인은 저물어 가는 강변에 서서 “흐르는 것이 어디 물 뿐이랴./ 우리가 다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고 노래하였다. 시인이 강변에 나가 삽을 씻듯이 우리 역시 세월의 강변에 나가 때 묻은 마음을 씻어내야 할 시간이 이 때 쯤이 아닌가 싶다. 또한 시인이 슬픔을 퍼다 버리듯이 숱한 회한 같은 것도 퍼다 버려야 하리라.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나는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고 하였다.(빌립보서 3장 13절)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기 전에 먼저 잊어야할 것이 있다는 것이다.
무엇을 잊어야하는 것인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어쩌면 우리에게는 결코 잊어서는 안될, 혹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무엇이 있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데 생각이 이르렀을 때 나는 또한 내게 주어진 세월이 결코 무심하지만은 않았음을 비로소 실감하고 있었다.

근래의 일도 아닌 거의 10여년 쯤 전의 어느날 나는  기도를 하다가  이런 기도가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주님! 저의 목회 사역이 지금까지처럼 내내 버겁고 초라해 보이는 채로 끝난다 해도 저는 괜찮습니다. 제 은혜가 이미 족합니다.” 이 이야기를 며칠 후 주일 예배를 마치고 열 명 남짓 식탁에 둘러앉아 있는 교우들에게 했더니 제발 그렇게 약한 말씀일랑 하지 말아 달라고 이구동성으로 아우성을 쳐 주어서 그 또한 눈물 겹도록 고마웠었다.

  우리가 저물어 가는 시간 앞에서 지나간 날을 돌아볼 때 잊어야할 것과 잊혀져야할 것들이 있다면 잊어서는 안되는 것과 잊혀지지 않는 것들이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중에서 특별히 지난 날 동안 우리를 고아처럼 홀로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함께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야말로 잊지 말아야 할, 또한 잊혀지지 않을 목록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1994년에 ‘생명의 말씀사’에서 번역 출간한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에는 저자의 지인들이 겪은 일곱 가지의 특별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그 중에서 다섯 번째의 이야기는 주인공의 결코 잊을 수 없는, 또한 잊혀지지 않을 주님의 은혜에 관한 이야기이다. 먼 곳으로 출장을 가던 스튜 캐덜이 졸음도 물리칠 겸 마침 도로 옆을 걷고 있던 여행자를 자신의 승용차 옆 좌석에 태워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해가 저물었고 한적한 도로는 어둠으로 뒤덮였다. 스튜 캐덜은 뭔가 위기를 느낄 사이도 없이 가슴과 배를 칼에 찔린 채 어두운 도로에 버려진다. 평소에도 인적이 드문 곳이었는데 그날따라 새벽이 올 때까지 한 대의 차도 지나가지 않았다. 아침이 다 되어서야 겨우 발견되어서 병원으로 옮겨진다. 그가 퇴원했을 때 언론사 기자와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 강도가 많이 원망스럽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이번 일로 저는 몸에 비록 수 십 군데의 상처를 입었지만 마음에는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던 그 밤에 저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의식조차 가물거릴 때 나는 내게로 다가오는 한 발자국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는 새벽이 올 때까지 죽어가는 나를 안고 상처마다 너무 아프지 않도록 어루만져주면서 곁에 머물렀는데 저는 그분이 예수님이신 것을 새벽이 지난 후에야 알 수 있었습니다.”

윌리엄 와일러 감독에 찰톤 헤스톤이 주연한 1962년의 영화 ‘벤허’에는 주인공이 노예로 팔려가다가 사막 한 가운데서 쓰러지는 장면이 나온다. 오랫동안 음식은커녕 물조차 먹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관객에게 뒷모습을 보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다가가 벤허에게 물을 마시게 하신다. 관객은 뒷모습을 보았으나 유다 벤허는 예수님을 정면으로 보았을 것이다.

우리가 삶의 한 복판에서 예수님을 정면으로 마주한 때는 언제던가. 도무지 잊을 수 없는, 또는 잊혀지지 않을 은혜와 사랑에 힘입어서 그 깊은 아픔과 시련으로부터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그리하여 결코  잊을 수 없는, 또한 잊혀지지 않을 그  어떤 날들이 아니던가.

출처
https://facebook.com/seunghaak.baik
https://greenword.postype.com/series



전체 1

  • 2020-12-02 13:09

    마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공지사항 관리자 2014.10.22 67456
공지사항 관리자 2010.12.29 65582
13351 이현석 2023.06.06 930
13350 함창석 2023.06.06 414
13349 민관기 2023.06.05 471
13348 오재영 2023.06.05 449
13347 함창석 2023.06.05 372
13346 김연기 2023.06.04 397
13345 이현석 2023.06.04 882
13344 조묘희 2023.06.03 1231
13343 박영규 2023.06.03 350
13342 함창석 2023.06.03 429
13341 이현석 2023.06.03 837
13340 김성기 2023.06.02 374
13339 함창석 2023.06.02 334
13338 최세창 2023.06.02 477
13337 함창석 2023.06.02 452
13336 홍일기 2023.06.02 739
13335
기도 (2)
이경남 2023.06.02 399
13334 엄재규 2023.06.01 365
13333 민관기 2023.06.01 389
13332 홍일기 2023.06.01 7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