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여러분께.
현재 ‘감리회소식’이 ‘자유게시판’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정치적 입장표명이나 감리회정책과 관계되지 않은 내용 등
‘감리회소식’과 거리가 먼 내용의 글은 ‘자유게시판’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난해‧중요 성구: 오순절의 성령 강림(사도행전 2:1-4)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0-05-16 17:59
조회
645
주께서 말씀하신바 하나님께서 보내시기로 약속하신 성령께서, 오순절 날에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합심해서 기도하던 약 120명을 비롯한 성도들에게 임하셨다. 그 놀라운 광경에 대해, 누가는 먼저【1】“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라고 하였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의 “오순절”은 “펜테코스테스[πεντηκοστής], 즉 제 오십을 의미하며, 유월절(니산달 14일)이 끝나고 무교절 첫날부터 계산하여 제 오십 일째를 말한다. 유월절, 초막절과 함께 삼 대 절기로서 축하된다”(黑崎幸吉).
오순절은 칠칠절(출 34:22, 신 16:10)이나 맥추절(출 23:16) 또는 처음 열매의 날(민 28:26)이라고도 하였다. 하루 동안 지키는 이 오순절은 시반월(5, 6월간) 6일에 지켰다. 원래 가나안 사람들의 농사 절기였던 것을 히브리인들이 여호와 종교화한 것이기 때문에, 그 지키는 방식도 시대를 따라 변해 내려왔다. D 문서는 오순절을 중요시하지 않았다. 현물에도 특별한 법적 지시가 없어서, 각 남자가 추수한 형편을 따라 생각해서 바치게 되었다(신 16:10). 오순절은 유월절 후 칠 주만에 지켰으므로, 안식일과 관련지어 일을 쉬고 성회로 모였다(신 28:26). H 법전(레 23:15-21)은 첫 열매로 만든 떡 두 개와 일 년 된 어린 양 일곱 마리, 수소 한 마리, 숫양 두 마리를 번제로 드리라고 했으며, 또한 가난한 사람을 위해 이삭을 줍지 말라고 하였다. 에스겔은 오순절에 대해 관심이 적었다. P는 H 법전에 더 추가하였다(민 28:26 -31).
특히, 오순절은 신약성경에서는 성령 대 강림으로 인한 신약적 의미의 교회의 발생이라는 중대한 의의를 지닌다(행 2:1-).①
黑崎幸吉은 “더욱 요한복음대로 예수의 십자가가 니산달 14일 금요일이었다고 하면, 이 오순절은 일요일에 해당하며, 제자들은 주의 부활을 명상하여 모여 있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는 열 두 제자를 포함한 약 120명의 성도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다는 것이다. “오순절에 예루살렘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저자의 이름만 밝혔고, 같은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네 명 이하일 경우에는 본문의 괄호 속에 이름만 밝혔음.
1) 유형기 편, 성서 사전(서울: 한국 기독교 문화원, 1974, 8판), p. 649.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에 모인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모였을 것이다”(H. Alford). 물론, 모두가 다 그 다락방에 들어가지는 못했을 것이다(2절 후반).
성령 강림의 광경(참조: 출 19:16-19)에 대해, 누가는 【2】“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라고 하였다.
“하늘”(우라누, οὐρανού)은 1:11의 주석을 보라.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는 성령 강림의 광경을 묘사한 것으로 급하고 강한 바람이 아니라, 그와 같은 소리가 들렸다는 뜻이다. 렌스키(R. C. H. Lenski)는 “누가는 그 소리를 강렬한 바람이 부는 소리, 즉 앞을 향해 불어오는 강렬한 바람 소리에 비유한다. 그것은 소리만 들렸고 바람은 아니었다.…이 힘있는 소리는 확실히 능력의 상징이었다.”라고 하였다.
“바람”은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마 3:16, 막 1:10, 눅 3:22, 요 1:32)와 기름(행 10:38, 고후 1:21, 요일 2:20)과 불(3절)과 생수(요 7:38-39)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다. 예수님도 성령을 바람에 비유하신 적이 있다(요 3:8). 성령이라는 말 자체가 프뉴마(πνεύμα. 히브리어 וּר)인데 ‘바람’(요 3:8, 히 1:7, 창 8:1, 왕상 18:45, 19:11, 왕하 3:17, 사 7:2, 11:15, 시 148:8, 집회서 43:17, 솔로몬의 지혜서 5:23)이나 ‘영’ 또는 ‘숨으로 번역될 수 있다.
여기의 “바람”은 프노에(πνοή)이며 “숨, 호흡”(G. R. Berry), “강하게 부는 바람”(이상근) 등을 의미한다. 프뉴마(πνεύμα) 대신 프노에(πνοή)를 사용한 것에 대해, 黑崎幸吉은 “특히 그 현상이 이상했던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일부러 혼동을 피한 것인 듯. 하나님의 임재를 바람으로써 표현한 경우는 적지 않다(시 104:3, 왕상 19:11).”라고 하였다.
바람은 형체가 없으나 분명히 감지되고 그 소리가 들리고 그 결과도 나타나지만 그 출처와 목적지는 알 수 없다. 이러한 바람의 속성이 성령의 속성과 유사하므로, 바람이 성령을 상징하는 것으로 사용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된 것이다.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의 “집”(οἰκον)에 대해 성전에 있는 집②이라는 설③과 마가의 다락방이 있는 집이라는 설④이 있다.
후자를 지지하는 렌스키(R. C. H. Lenski)는 그 근거로 집(οἰκον)에 정관사(τὸν)가 있는 점과 성전(히에론, ἱερόν)이라고 하지 않은 점을 들고 있다.
그 바람 같은 소리는 그 집에 가득 채워졌으므로 120명이 넘는 믿는 자들이 들을 수 있었다.
들리는 표적에 보이는 표적이 따른 것에 대해, 누가는 【3】“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라고 하였다.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의 원문(διαμεριζόμεναι γλώσσαι ὠσεὶ πυρός)은 ‘불 같은 것의 갈라진 혀’로도 번역될 수 있다.
헤혠(E. Haenchen)은 “아직 그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이것이 이제 신비적인 방법으로 귀에 들리는 상태에서부터 눈에 보이는 상태로 바뀐다. 이것은 불길에서 나타나는 현상처럼 여러 갈래의 혀 모양으로 갈라져서 모든 그리스도인 각자에게 내려왔다. 이렇게 하여 성령이 각 사람 모두에게 부여되는 모습이 눈에 보이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렌스키(R. C. H. Lenski)는 “이 불 같은 혀는 누가복음 3:16의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2) R. C. H. Lenski는 성전에 30개의 홀이 있었다고 한다.
3) J. A. Bengel, “Zahn, Holtzmann”(in E. Haenchen), F. F. Bruce, The Book of Acts.
4) H. Alford, A. C. Hervey, “Meyer”(in 黑崎幸吉), J. R. W. Stott, R. C. H. Lenski, E. Haenchen, R. Earle, C. R. Erdman, 黑崎幸吉, 이상근.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요’라고 한 예언의 명백한 성취이다.”라고 하였다.
“불”(퓌로스, πυρός) 또는 불꽃(살후 1:7)은 ‘신’(사 10:17. 비교: 계 1: 14, 2:18, 19:12) 또는 ‘신의 현현’을 묘사하는 것이다(출 3:2, 사 29:6, 66:15, 단 7:9, 행 7:30). 특히, 불은 하나님의 심판과 파멸을 나타낼 때에 사용되었다(사 29:6, 31:9, 66:15, 16, 욜 1:19, 암 7:4, 겔 20:47, 습 1 :18, 3:8, 말 3:2, 4:1). 데살로니가후서 1:7에는 최후 심판을 위해 재림하실 주님이 불꽃 중에 나타나시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또한, 불은 정결의 관념을 나타내기도 하였다(슥 13:9, 사 6:6-7, 벧전 1:7). 특히, 이사야 4:4에서는 정결과 심판과 불이 연결되어 있다.
실로, 그리스도 예수를 영접하는 사람은 성령의 세례를 통해 믿고 구원받아 성결해지지만, 영접하지 않는 사람은 심판을 받는 것이다(요 3:18-19의 주석을 보라).
“혀”(글로스사이, γλώσσαι)는 ‘말’을 의미하는 것이며, 성령의 은사 중 하나인 방언(고전 12:10)과 관련되는 것이다.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매우 자랑하던 은사 중에 하나이었다. 이 방언을 말하는 은사는 말하는 사람들이 전에는 몰랐던 언어들로 말하거나(막 16:17, 행 19:6), 찬양하는 능력이다(고전 14:15). 대체로 기도 중에나 어떤 황홀한 종교적 흥분 상태에 이르렀을 때에 방언을 하게 되는데, 그 자신과 남들이 알아듣는 경우(2:4-11, 10:46)와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전 14:2). 고린도 교인들의 방언은 주로 후자에 속하였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효과적인 복음 선교, 즉 각 나라에서 온 유대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각자의 나라의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증거하는 것(2:6-)과 관련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바람 같은 소리나 불의 혀 같은 성령 임재의 현상은 초자연적이며 영적인 현상이나, 영적 상태를 보고 듣는 그리스도인들에 게는 지각되는 것이다. 그 실례로, 어떤 주의 종들이 안수할 때에 안수하는 종 대신에 서 있는 불기둥을 보고, 그 불기둥에서 나온 불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길이 안수 기도를 받는 교인들에게 옮겨가는 것(참조: 8:17, 19:6)을 보는 교인들을 들 수 있다. 대개 그 불길이 옮겨진 교인들은 실제로 몸이 뜨거워지면서 병이 낫기도 하고, 방언을 하는 등의 성령의 은사를 받기도 하고, 일반 소리가 아닌 소리를 듣기도 한다.
저자도 1975년도부터 교인들에게 안수 기도를 해 오고 있는 중인데, 그와 같은 경험을 자주 하였다.
성령 강림의 결과에 대해, 누가는 【4】“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라고 하였다.
거센 바람 같은 소리와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성령 강림의 결과로 거기에 있던 열 두 제자를 비롯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 이 수동태는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 것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것임(1:5, 눅 3:16)을 강조하는 것이다.
물론, 오순절 전에도 사람들이 성령을 받았고, 그 결과로 구원받았다(요 20:22, 고전 12:3.⑤ 참조: 마 16:17). 구약 시대에도 성령의 역사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구약성경에는 성령이 ‘여호와의 신’(삿 3:10, 6:34, 11:29, 13:25, 14:6, 삼상 16:13, 대하 20:14, 겔 11:5, 미 3:8), ‘하나님의 신’(창 1:2, 41:38, 출 31:3, 35:31, 민 24:2, 삼상 10:10, 11:6, 19:20, 23, 대하 15:1, 24:20, 욥 33:4, 겔 11:24), ‘주의 신’(겔 3:12, 14, 24, 11:1, 24, 느 9:30, 시 139:7, 10), ‘여호와의 영’(왕상 22:24, 대하 18:23) 등으로 표현되었다.
그 성령께서 본격적이며 결정적으로 강림하신 것이 바로 여기에 언급된 오순절 때이었다(1:4-8, 2:1-4). 이 사건은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약속의 성취로서의 성령 강림이며, 그 결과인 권능, 특히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의 선교 능력(1:8, 2:8)을 받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5) 저자의 요한복음 20:22의 주석과 고린도전서 12:3의 주석을 보라.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누가는 성령의 은사(고전 12:4-11)⑥ 중에 방언을 내세워,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라고 한 것이다(막 16:17).⑦ “다른 ‘방언’”(글로스사이스, γλώσσαις: 3절의 ‘혀’와 같은 말)이 어떤 언어들인가는 다음 구절들에서 밝혀진다.
이 기이한 현상을 합리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 몇 가지 예를 들면, (1) 옛 예언들에 대한 새 해석(Herder), (2) 그들 각자의 고향 말을 지나치게 열심히 한 것(Heinrichs, Paulus), (3) 시적 표현 또는 희귀어를 쓴 것(Bleek), (4) 상용어와 다른 아람어(Hengel), (5)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관념을 발표한 것(Rossteuscher), (6) 듣는 자에게 기적이 일어나서 자기 나랏말이 아닌 것을 자기 나랏말처럼 들은 것(Gregory Nyss.), (7)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을 때에 같은 소리가 칠십의 국민에게 각각 다른 방언으로 들렸다는 전설을 모방한 것, (8) 최면술(Olshausen), (9) 고린도 교회가 받은 것(고전 14장)과 같은 이언(異言)(A. C. Hervey) 등이 있다.⑧
언급된 모든 견해는, 성령의 은사로서의 방언이 현재도 얼마든지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므로 재론할 가치가 없다. 어드만(C. R. Erdman)은 “저들은 완전히 성신의 통치 아래 있게 되었다. 이것이 오순절 날 받은 제자들의 진정한 경험이었다. 그것은 그 후에도 유구한 세대를 통하여 거듭 다시 나타나는 사실이다. 이것은 참 신자에게 있어서 가장 정상적이요 자연스러운 경험이다.”라고 하였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방언의 은사를 비롯한 모든 성령의 은사는 자기 도취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복음 선교를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6) 저자의 고린도전서 12:4-11의 주석을 보라.
7) 저자의 마가복음 16:17의 주석을 보라.
8) 참조: 이상근(by Meyer), 黑崎幸吉.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출처: 최세창, 사도행전(서울: 글벗사, 2005, 1판 1쇄), pp. 89-94.

필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신약 전체 주석/ 설교집 28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다수의 논문들/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20200516_175027.jpg

004-1.jpg



첨부파일 : 20200516_175027.jpg
첨부파일 : 004-1.jpg
전체 0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공지사항 관리자 2014.10.22 66755
공지사항 관리자 2010.12.29 64863
13406 홍일기 2023.06.29 901
13405 박영규 2023.06.28 478
13404 홍일기 2023.06.28 962
13403 선교국 2023.06.28 981
13402 홍일기 2023.06.28 985
13401 장병선 2023.06.28 512
13400 이현석 2023.06.28 477
13399 함창석 2023.06.27 436
13398 함창석 2023.06.26 404
13397 최세창 2023.06.26 409
13396 홍일기 2023.06.26 1052
13395 김성기 2023.06.26 396
13394 함창석 2023.06.25 421
13393 함창석 2023.06.23 384
13392 이경남 2023.06.23 586
13391 홍일기 2023.06.23 965
13390 오세영 2023.06.23 831
13389 박영규 2023.06.22 440
13388 함창석 2023.06.22 451
13387 이현석 2023.06.22 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