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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회에 주어진 마지막 기회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작성자
임재학
작성일
2021-02-20 19:29
조회
1668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다윗과 밧세바」 1636-1637, 유화, 265.4×209.5 오하이오 콜롬버스미술관

# 1.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가 그린 「다윗과 밧세바」 성화입니다.
'다윗과 밧세바'에 대한 성화는 서양 미술의 단골 주제입니다.
수 세기동안 수 많은 화가들에 의해서 그려진 작품입니다.
그럼에도 오늘 젠탈레스키의 그림을 올리는 이유가 있고 기독교미술에 대해서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짐작했을 것입니다.

'다윗과 밧세바' 주제를 그린 남성화가들의 수 많은 그림을 보면, 가부장적인 시각으로, 심지어 관음증적 시각으로 그린 작품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리회 게시판에 그림을 올리기조차 거북할 정도의 작품들이 많습니다.

젠틸레스키는 이탈리아 초기 바로크 시대 여성 화가이며, 주로 역사화와 성화를 그렸습니다.
당시 여성화가에겐 초상화나
꽃 정물화가 적합한 주제라고 여겨졌고 실제로 그 한정된 주제로 작품을 주로 그렸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려면 그녀의 일생을, 특히 끔찍했던 성폭력의 경험을 이해해야 비로소 작품이 말을 걸어오고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녀가 가장 믿었던 스승 '타시'에 의해 성폭력을 당했고
그 이후에 재판과정에서 벌어졌던 2차 가해 경험은 그녀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이러한 트라우마는 강간이라는 폭력 행위를 통해서, 또 이를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입증하기 위한 불합리한 재판과정을 통해서 또한번 가중됐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그 끔찍했던 기억과 상처를 극복해내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입니다.

# 2.
성경 사무엘하 12장에 나오는
'다윗과 밧세바 사건'은 우리가 다 아는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구속사적으로 바라보면
하나님은 다윗 가문을 통해서
메시야를 탄생케 하려는
섭리를 가지셨지만
다윗의 범죄로 다 망가졌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보내서 말씀하십니다.
나단 선지자는 목숨을 걸고 다윗 왕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신탁을 '암양 새끼 한마리 비유'로 전하며 다윗의 잘못을 강하게 책망합니다.
그 때 했던 나던 선지자의 말이
"당신이 그 사람이라"(삼하12:7) 입니다.

다윗의 범죄는 단순히 한 개인의 범죄와 문제만이 아닙니다.
성경은 밧세바를 표현할 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로 기록합니다. 신약성경 마태복음 1장 예수님의 족보에도 다른 여인처럼 이름이 나오지 않고  "우리야의 아내에게서"(마1:6) 로 표기합니다.

이는 성폭력은 단순히 두 남여에게만 국한되는 은밀한 사건과 폭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윗왕의 불의한 범죄를 덮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공범으로 만들고 계속해서 2차 범죄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사무엘하 8장에 보면,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삼하8:6, 8:14)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싸움에서 승리한 다윗은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는 왕의 권한을 위임 받았습니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새"(삼하8:15)
그리고 군사령관과 사관, 제사장과 서기관과 대신을 차례대로 임명합니다(삼하8:16-18)
하지만 이렇게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로 군사령관이 된 요압 장군을 왕 개인의 사악한 범죄를 은폐하기 위한 적극적 공범자로 만듭니다.(삼하11:17)
또 무엇보다 충성되고 신실한 장수 우리아를 억울하게 죽게 합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무너뜨린 일입니다.

충성된 장수 우리아를 죽게 한 다윗의 잘못된 모습과 심리는 기독교 미술화가로 불리우는 렘브란트 반 레인의 「다윗과 우리아」란 작품에 잘 표현돼 있습니다.
(*첨부파일그림, 유화 127×117 1665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쥬미술관)

짙은 어둠 가운데 있는 간음한 다윗의 눈은 인간의 욕정과 자만, 죄의식이 소용돌이 치고 있어 초점을 잃어 버린 초라한 모습이지만,
다윗의 각본대로 죽음이란 어둠의 길로 나서는 우리아의 모습은 밝은 핏빛 옷으로 표현하며,
뒤에서 바라보며 신음하고 근심하는 노인의 모습(렘브란트 자신)은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윗의 간음은
하나님과의 관계와 약속을 파기한 범죄입니다.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삼하11:27)

하나님은 다윗에게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삼하12:9)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삼하12:14)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와 간음하고 빼앗아 자기의 아내로 삼은 일은 단순히 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고,
사람의 관계만의 문제만도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이며 문제입니다.

사무엘서는 기름부음 받은 다윗의 간음행위는 개인의 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여호와가 주신 권위(기름부은 왕)를 이용해서 벌인 전형적인 잘못된 권력관계에서 발생한 성폭력이며, 살인이라고 고발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여호와를 업신여긴 일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이 일은 영호와의 원수에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한 일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일이며,
하나님 영광을 가리는 일입니다.

# 3.
현재 서울남연회 전준구 목사 사건이 총회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들려오는 소식은 서울남연회 재판에 이어서 총회재판위원회도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는 것입니다.
그저 안타깝고 참담한 마음뿐입니다.

이번 판결은 감리교회가 전준구 목사 성폭력 사건을 해결할 의지와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재판입니다.
감리교회 스스로의 자정능력을 회복하고, 교회의 '공교회성'을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소중한 기회입니다.
이번에 총회재판에서도 이 문제를 제대로 치리하지 못하는 결과가 나온다면,
하나님 교회의 도덕기준과 치리가
일반사회보다도 못한 수준임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4월에 예정된 서울시와 부산시의 시장선거운동을 보면서
한국 사회 기준선이 높아졌음을 깨닫게 됩니다.
잘못한 일에 대해서, 특히 연약한 여성에 대한 성폭력에 대해선 단호합니다.
아무리 수백억의 경제적 비용과 행정력의 낭비가 있어도,
가해자가 해당부서의 최고 수장일지라도 곧바로 '아웃'입니다.
왜냐하면
막대한 비용을 감수하는 이런 단호한 조치가 당장은 손해인 것 같고 힘든 일이지만,
길게 보자면 약자(여성)들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이런 공정하고 엄한 조치들이 사회 발전으로 연결되며
무엇보다 사회 구성원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한국사회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성폭력 문제는 근절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습니다.
요즘 체육계는 예전 같으면 그냥 덮어버릴 문제, 십대 때 있었던 학교폭력 문제까지 이슈화되고 있고 치리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한국사회 일반에서 감리교회의 재판이, 더구나 감리교회 최고 재판인 총회재판위가 만약에 미흡하고 편파적인 재판 결과를 낸다면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유투브나 포탈싸이트에서 이 사건을 검색해 보면 이미 수십만 명이 조회하였고, 지금도 매일 조회해서 보고 있습니다.
또 공중파(PD수첩)에서 방영돼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건을 우리끼리 봐주고 가린다고 해결이 될까요?
그저 자기들끼리 서로서로 덮어주고 은폐한 면죄부 재판으로 보겠지요.
이런 명백한 성폭력 범과조차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감리교회가 앞으로 사회적 정의나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서 무슨 할 말이 있을까요?
아무리 우리끼리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가려지나요?

요즘 청년들이 한국교회를 떠나가고 있습니다.
각 신학교는 교파와 상관없이 미달사태를 맞고 있습니다.
여러 원인과 진단이 있겠지만
교회 내에 만연된 성폭력 문제도 한 이유일 것입니다.
교회 봉사와 구성원의 절반이 넘는 사랑스런 딸과 누이들, 아내.
이런 평범한 여인들이
안심하고 다닐수 있는 교회,
목회자의 성폭력이 없는 교회,
억울한 여인들의 하소연과 눈물을 닦아주고 위로해줄 수 있는 안전하고 따뜻한 감리교회는 비단 저만의 바램인가요?

이번 재판에서도 제대로 치리하지 못하면, 감리교회의 시간은 지나가고
사회(심판)의 시간이 시작됩니다.
부디 감리교회에 마지막으로 주어진 최소한의 자정 기회인 이번 총회재판마저 유명무실하게 끝나지 않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또 총회재판위원들이 이번 재판의 역사적인 의미를 잘알고 하나님 편에 서서 올바른 판단과 공의로운 판결을 해주시길 간절히 호소합니다.

설령 감리교 재판에서 불기소 됐다고 끝난 것도 아니고, 더더구나 성폭력 범과(사실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저는 지난번 서울남연회 재판결과는 저들이 옳기 때문에 이긴 것이 아니라,
대다수의 교회가 침묵하고 무관심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계속해서 외쳐야 합니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당신이 바로 그 범과를 저지른 사람입니다"
만약 감리교회 재판위와 어른들이 잠잠하다면 돌들이 소리지를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결코 잠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에겐 인간의 재판만이 아닌 하나님의 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저는 공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또한 교회의 주인되시는 우리 주님이 이번 사태를 통해서도 감리교회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뜻이 있으리라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산에서 길을 잃어버린 사람은
다시 높은데로 올라간다고 합니다
가장 원점에서 시작하는 옛 사람들의 지혜입니다.
이 문제를 우리의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으로 바라보려고 합니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You are the Man!)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다윗왕의 진정한 회개를 촉구하셨던, 하나님은 오늘 우리 감리교회에게, 또  나 자신에게도 책망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주저앉거나
포기한다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수천년 전 구약시대만도 못하게 됩니다.

오늘까지
길고 지루한 싸움이 계속돼 왔고 앞으로도 계속 되겠지만 
지금 감리교회를 사랑하며, 공교회성의 회복을 위해서 회개하며 기도하는 선한 이웃들이 모두 지치지 말고 힘내시길
서로를 위해 다시금 기도합니다.
사순절의 평화와 기쁨, 부활의 소망이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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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8

  • 2021-02-20 20:09

    귀한 글 감사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2021-02-20 20:48

    신목사님, 함께 기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2021-02-20 22:28

    총재위 무죄판결이 빚어낼 파장들

    서울남연회와 감리교회내에서의 최고 권위를 가진 재판위원회의 상징성과 그 집단 지성과 영성까지 인정해야 한다면 우리는 그 재판 결과를 수용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과 서울남연회 감독, 그리고 감리교회 구성원들은 다시 다음과 같은 새로운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1. 교리와 장정을 바꿔야 합니다.

    개체교회의 담임목사의 감독선거 출마에 필요한 선거자금 지원 구역회 결의는 처벌할 수 없다는 판례가 만들어지니까요.

    2. 전준구 목사가 무죄 판결을 받은 결과를 근거로 해서 감리교회는 그동안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MBC PD수첩을 대상으로 민형사 소송을 바로 제기해야합니다. 아직도 유투브에서는 관련 영상의 조회수가 44만명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3. 로고스교회 성도들 역시 MBC PD수첩을 대상으로 고소고발을 제기해 실추된 그 명예를 회복하고 그동안 이탈한 성도로 인해 교회가 받은 손해를 금전적으로 보상받아 제 2의 부흥을 위한 자금을 확보해야 합니다.

    4. 지금까지 재판에 관여했던 서울남연회와 총재위 재판위원들은 이를 위해 제일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법적으로는 서너달이면 충분했을 재판을 거의 7-8개월에 걸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세밀하게 살피고 투명하게 공정하게 재판하였으니 그 누구보다도 전준구 목사님의 억울함과 투명성을 소상하게 알게 된 것 아닌가요?

    5. 이 무죄건과 관련하여 그동안 성명서를 내고 이의를 제기했던 공대위 대표들과 이에 동조했던 모든 이들은 전준구 목사님과 로고스교회 성도들에게 백배사죄해야 하며, 전준구 목사님과 성도들의 철저한 아량과 선처를 바라야만 합니다.

    6. 아울러 그동안 전준구 목사님의 무죄를 알고 있었기에 침묵하였음에도 애매히 모함당하며 한 통속이라고 비난받았던 서울남연회 목사님과 장로님들에게도 사죄해야 합니다. 역시 그분들의 드높은 식견과 인내심 그리고 영성을 철저히 본받아 영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7. 전준구 목사님의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해 본부교회에서 열린 공청회를 폭력으로 무산시킨 부목들과 성도들의 공로에 대해 감리교회는 격하게 치하해야 합니다. 담임목사를 충심으로 따랐으며 감리교회와 로고스교회의 무흠과 투명성을 인정받도록 노력한 공로가 너무나도 혁혁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성명서와 권고문을 내었던 성직자윤리위원회와 위원장이었던 원성웅 전 감독은 사과해야하고, 이처럼 억울한 목사를 만들어낸 성직자윤리위원회는 해체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지요?


    • 2021-02-20 23:18

      장광호 목사님, 감사합니다.
      귀한 댓글이 영광이지만 이런 멋진 글을 댓글로만 달기엔 너무 과분합니다.
      무죄판결 이후의 사태를 예견하고 통찰하며
      무엇을 해야하는 것까지 친절하게 알려주는
      이런 예리한 글은 댓글로만 있기엔 안됩니다.
      다시금 감사합니다.


  • 2021-02-22 10:38

    우선 이 그림은 성경에 대한 주제를 기본으로 하나 성경대로 묘사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지적은 예술품을 놓고도 신앙적인 기도를 하거나 신앙적인 각성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된다는 점에서입니다. [삼하11:2 저녁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그림의 시간은 ‘저녁 때’가 아닙니다. 해가 45도 각도로 떠 있습니다. 금화병과 은 대야와 인체와 발코니 목재의 반사광이 강렬해 오전의 햇살입니다. 성경은 다윗이 ‘왕궁 옥상’에 있어야 하나 그림은 발코니에 있습니다. 또 왕궁이 너무 높고 외장이 석조구조입니다. 후대의 솔로몬 성전의 높이가 30큐빗에 불과하여 다윗 궁전이 이보다 적고 낮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림은 민가의 한 여인이 목욕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여왕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햇살에 밝게 표현되어야 하는 다윗은 너무 어둡게 표현되었습니다.

    이 그림에서 밧세바는 너무 화려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밧세바는 중동의 여인이 아니라 야벳족인 백인으로, 주변에서 시중드는 시녀들은 자줏빛 오렌지 빛 청색의 귀족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보석으로 치장하고 금화병과 은대야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헷 사람 우리야는 일종의 용병 장군이기에 그리 부자도 아니고 귀족의 화려한 삶을 살지 못했다고 봅니다.

    그림의 중앙에 배치된 밧세바의 몸과 금발의 머리카락은 주변의 어두운 배색과 대비되어 강조되고, 금과 은과 보석과 화려한 옷은 너무 사치스럽게 보입니다. 정물들의 수직 혹은 수평의 직선에다 고정되어 있는 가운데 대비되는 인체의 곡선들은 아름다우며, 인물들은 약15도 정도의 기울기를 가지고 동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배경을 구성하는 여러 나무와 구름과 밝은 하늘은, 밧세바의 복잡한 심경과 앞으로 닥칠 고통과 밝은 미래를 함께 나타내고 있습니다. 잘 감상했습니다.


    • 2021-02-22 17:24

      귀한 댓글 감사드립니다.
      우선 미술사적인 관점에서 설명해 드리면, 이 작품을 그린 작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를 이해해야만 합니다.
      바로크시대, 이탈리아, 여성화가가 3가지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서양미술과 건축은 각 시대마다 사조에 따른 양식을 구분합니다. 예를 들면, 로마네스크양식, 고딕양식, 르네상스양식, 바로크양식, 로코코양식 등이지요.
      바로크시대 미술은 르네상스(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레오라르드 다빈치)이후 매너리즘을 거쳐 천재화가 카라바조에 의해서 시작됩니다. 카라바조에 의해서 명암법(테브리즘기법)이 본격적으로 회화에 반영됩니다.
      여기 나오는 어둠과 빛은 사실(실사)적인 장면을 드러내기 보단 바로크시대 주인공을 돋보이기 위한 미술적 장치입니다. 이는 카라바조를 비롯한 루벤스. 렘브란트, 벨라스케스 등 다른 바로크시대 화가들의 작품에서도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표현법입니다. 그나마 젠틸레스키는 아버지가 카라바조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초기 바로크시대 작품으론 명암법이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 작품의 중심인물은 다윗이 아니고, 밧세바입니다.
      그래서 장로님이 위에서 지적하신대로 다윗을 왼쪽 상단에 흐릿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밧세바는 성서 속 고대중동의 여인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바로크 시대, 이태리에 살고 있는 여인, 더 정확히는 화가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 작품뿐 아니라 모든 성화들이 다 그렇습니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수많은 화가들의 수태고지 그림 등이 다 그러합니다.
      심지어 우리가 아는 예수님의 모습도 유럽 서양 사람들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화가든 작품이든 그 시대와 문화를 뛰어넘을 수 없기에 작품을 통해서 그가 살었던 '시대정신'을 반영합니다.
      물론 사진이 발명된 이후에 현대미술은 표현법이 달라지겠지요. 그래서 인상파 이후에 난해한 파블로 피카소나 앙리 마티스 등이 출현하는 것입니다.
      장로님이 지적한 내용들이 다 옳습니다. 그런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의 표현이 바로 바로크양식의 특징입니다.
      베르사유 궁전이나 바로크 가구들을 연상하시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오히려 이 작품을 정확히 보시고 분석하고 잘 감상한 것입니다.
      배경에 나오는 여러 구름과 나무들도 당시 이탈리아의 풍경을 그대로 묘사한 것입니다. 지금도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와 풍광입니다. 피렌체나 씨에나, 피사에 가면 이 작품과 똑같은 배경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젠틸레스키는 여성화가입니다. 지금도 흔하지 않지만 당시에도 찾아보기 힘든 여성 화가입니다. 그녀는 화가로서 예민한 감각과 뛰어난 관찰력을 지녔고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한 훌륭한 화가입니다.
      그녀는 무수히 많은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그녀가 걸었던 길은 수많은 편견과 남성위주의 가부장적인 차별에 도전한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특히 젊은 시절 그토록 믿고 따랐었던 스승에게 당한 끔찍한 성폭력과 재판 과정에서 겪은 이차 가해는 그녀에게 씻을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아픔과 상처를 주었지만 그녀는 그 아픔과 상처를 이겨내고 운명을 개척한 정말 멋진 여인이었습니다.
      그녀의 다른 작품들인 성녀 카타리나로 분한 자화상이나 영국왕실의 그리니치퀸즈하우스 천장화,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등을 보면 지금 보아도 넘 멋지고 훌륭합니다.
      그래서 수많은 '다윗과 밧세바' 성화 중에서 그녀의 작품을 선택해서 올린 것입니다.

      현재 감리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이 말도 안되는 성폭력 사건인
      서울남연회 전준구 목사 사태와 너무나 비슷하고
      그 피해자인 여성들이 자신이 당한 끔직한 경험과 어려움을 이겨내길 간절한 마음을 담아 응원하기 위해서,
      또 여전히 무관심하고 편견과 차별로 가득차서 성폭력사건을 자꾸만 정치적이고 이상한 논리와 궤변으로 변명하고 모른척하는 감리교회와 목회자들을 고발하는 의미에서 올린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쓴 글의 핵심은 #2 부분입니다.
      다윗이 완력으로 밧세바를 간음한게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왕권으로 범했던 것처럼
      목회자의 범죄, 특히 성폭력은 목사라는 성직을 이용한 '하나님 앞의 범죄'이기에 고발한 것입니다.
      또 그 범죄는 이번 코로나전염병처럼 개교회, 개별 연회에 머물지 않고 감리교회 전체의 아픔이고 공신력을 떨어뜨리는 망신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개인이나 개교회의 망신으로 끝나지 않고 감리교회와 나아가 한국교회의 선교와 전도를 막는 일입니다. 자기 교회 문제로만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이기적인 교회 모습입니다. 그래서 고발한 것입니다.

      이번 사태로 본의아니게 감게에 글도 처음 쓰게 됐고,
      전공자도 아닌 제가 그림을 올렸던 이유는
      감게에 올린 글들이 계속해서 삭제됐기 때문입니다.
      얼마전까지 전준구 목사에 대한 글들은 '삭제대행진'이었기에 우회적으로 표현할 수 밖에 없어서 그림을 올리고 글을 썼던 것입니다ㅜㅠ 이해해 주시면 감사합니다.

      이제 전준구 사태에 대한 감리교회에게 주어진 시간도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총회재판위원회에서 2월26일(금)에 2차 재판위가 열리고 3월12일에 판결이 나면,
      좋은 결과든 나쁜 결과든 일단락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되면 저 역시 굳이 그림을 올리고 글을 쓸 이유도 없어지리라 생각합니다.

      * 장로님, 미술 이야기만 해도, 재밌고 몇날며칠을 얘기해도 부족합니다. 바로크 화가나 작품들만 이야기해도 밤을 새워야 합니다.
      이번 전준구 사태가 다 끝마치고
      언젠가 함께 대화 나눌 기회와 만남이 있으리라 소망해 봅니다.
      늘 관심과 댓글 달아주신 장로님께 다시금 감사드리며,
      마지막으로 젠틸레스키(1593-1656년)의 유명한 말로 마칩니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보는 사람이 작품너머 또다른 영혼을 볼 수 있길 바란다는 멋진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입니다.
      당신은 시이저(카이사르)의 용기를 가진
      한 여자의 영혼을 볼 수 있을 겁니다"


  • 2021-02-22 10:53

    목사가 남의 여자 막 건드리고,
    교회 돈 삥땅치고,
    야 ~
    감리교회 목사는 세상 막살아도 다 넘어가네?
    감리교회 진짜 신비롭다.

    전ㅇ구 목사를 지지하는 L교회 장로들이 가장 큰 문제라고 난 생각한다.
    허수아비 목사를 계속해서 세워놓고,
    성추행으로 상처받은 성도들의 절규도 외면하는 이유는
    교회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즐기려는 추악한 교회 권력욕구외에 무엇이 있을까?
    성추행이 실체적 진실임을 알면서도,
    자신들의 현실적 이익을 우선하는 길을 걸어가는 L교회 전ㅇ구 지지 장로들 아닌가?
    그 장로들의 추접스런 권력 욕구와 부합하여 함께 추악한 춤을 추어대는, 정의감 없이 현실적 이익에 충실한 재판위원 목사들...

    감리교회의 구조적 모순이 어디까지인지 그 끝을 볼 날이 있을까?


    • 2021-02-22 17:28

      귀한 댓글 감사드립니다.
      코로나가 한국교회의 이단과 취약함을 보여주듯이
      이번 전준구목사 사태가 감리교회의 민낯을 여지없이 보여줍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무거운 마음입니다. 이번 3월12일에 올바른 판결이 나오고 교회의 공교회성이 바로 세워질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길 부탹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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