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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41회 아. 일곱째 인을 떼시는 어린양(8:1)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1-01-15 16:38
조회
268
첫 번째 삽입 광경(7:1-17)에 대한 기록을 마친 요한은, 이제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일곱째 인을 떼시는 것에 대해, 【1】[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 시 동안쯤 고요하더니]로 시작한다.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는 6:1의 주석을 보라.
앞의 여섯째 인까지는 떼실 때마다 재앙이 동반된 것과 달리, 이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는 직접적인 재앙이 동반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심한 재앙을 동반하는 일곱 나팔을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반 시 동안쯤](ὡς ἡμίωρον)은 짧은 시간을 나타내는 것이며, 이것을 통해서 재앙의 긴박감과 극적인 면을 강조하려고 한 것 같다(R. H. Mounce). 여기서는 실제의 시간인 30분쯤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을 나타내는 것이다.
[반 시 동안쯤 고요하더니]에 대해 (1) 예루살렘 멸망 당시를 가리키는 것이라는 설(Maurace),① (2) 초대 교회의 박해 시대(312-337년)를 가리키는 것이라는 설(King),② (3) 395년 이후의 중세기의 암흑 시대를 가리키는 것이라는 설(Elliott),③ (4) 천년 왕국 시대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설(H. Kraft, “Lange”④), (5) 그리스도인들에게 잠잠하라고 명령한 율리안(Julian)의 칙령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설(De Lyra),⑤ (6) 그리스도인의 대적자들의 함구 시대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설(Hengstenberg),⑥ (7) 잠깐 동안의 하나님의 계시의 중단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설(H. W. S wete),⑦ (8) 앞으로 나올(3, 4절) 기도를 위한 정숙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설(R. H. Charles, 박윤선), (9) 세상 종말에 일어날 일을 앞두고 있을 수밖에 없는 최대의 긴장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설(Ringnalda),⑧ (10) 죄인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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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저자의 이름만 밝혔음.
1) in 김철손, 요한계시록.
2) 상동.
3) 상동.
4) 상동.
5) 상동.
6) 상동.
7) in 박윤선.
8) in 박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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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인적(隱忍的) 긍휼(矜恤)의 상징이라는 설(박윤선), (11) 창조적 침묵(창 1:2)에 대해서 여기서는 종말 때의 침묵이라고 하는 설(H. Kraft), (12) 최종적 천재지변에 대한 모든 피조물의 침묵이라는 설(Ebrard),⑨ (13) 이미 천국에 들어간 구원받은 자들의 정숙함이라는 설(Dsterdieck),⑩ (14) 성도들이 장차 누릴 영원한 안식, 또는 영생의 평화의 상징이라는 설(A. Plummer, “Victorinus”⑪), (15) 안식일의 휴식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설(A. Johnson, “Scroggie”⑫), (16) 이스라엘 곧 고난당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찬양을 듣기 위한 침묵이라는 설(M. Rist, R. H. Charles, 이상근), (17) 일곱 천사들의 준비 기간의 침묵이라는 설(R. H. Mounce), (18) 세상에 임하게 될 하나님의 심판의 관점에서 하늘의 천사들의 가슴 조이는 불안의 태도를 표현하는 것이라는 설(G. E. Ladd, W. Hendriksen), (19) 대주재를 둘러싸고 있는 자들이 대주재께서 더 펼치시고 지시하실 큰 일들을 기대하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설(J. Wesley), (20) 핍박을 당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도와 절규를 듣기 위한 침묵(6:10)이라는 설(“Beckwith”,⑬ W. Barclay), (21) 보다 더 격렬하고 광범위한 재앙을 동반하는 일곱 나팔의 진노가 임하기 전의 긴장감과 경외심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설⑭ 등이 있다.
딱히 어느 설을 옳다고 할 수 없으나, 다음 구절 이하를 미루어 (20)설과 (21)설을 종합해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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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in 김철손, 요한계시록.
10) 상동.
11) in 박윤선.
12) in 강병도 편.
13) 상동.
14) C. L. Morris, “Greijdanus”(in 박윤선), R. H. Mounce, W. Barclay, A. Johnson, G. E. Ladd, 黑崎幸吉, 이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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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요한계시록(서울: 글벗사, 2005, 1판 1쇄), pp. 211-213.

필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신약 주석(마~계, 1-15권)/ 설교집 28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다수의 논문들/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웃기는 이야기(편저)/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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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2

  • 2021-01-16 09:59

    안녕하세요? 올리신 내용에서 잘 배웠습니다. 또 저의 소견을 아래에 올립니다.
    ☞ KJV로 부터 계8:1을 다시 번역; 그가(어린 양이) 일곱 번째 봉함을 열었을 때, 하늘이 반시간 여백 쯤 잠잠했다.
    ☞‘반시간’은 문자적으로 반시간, 영적해석으로 20년으로 산정 가능합니다. 수식; 0.5/24시간/일x1000년/일≑20년 [벧후 3:7,8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 반시간의 ‘여백’은 성경의 표현 방식과 일치하여 ‘시간의 여백’을 의미합니다. [행5:7 세 시간쯤 지나 그의 아내가 그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야고보5:17 개역개정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 ‘잠잠’(혹 고요)은 심판과 책망과 환난을 목전에 둔 잠잠함이다. [시50:3 우리 하나님이 오사 잠잠하지 아니하시니 그 앞에는 삼키는 불이 있고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 [시50:21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눈앞에 낱낱이 드러내리라 하시는도다]


    • 2021-01-16 16:53

      필자의 요한계시록 연재 내용에서 잘 배웠다고 하시고, 관련하여 의견을 표하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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