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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종노릇을 위한 자유(광복절 설교)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0-08-11 10:04
조회
360
(갈라디아서 5:13-15)

13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14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15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1. 시작하는 말

광복절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종살이를 하다가, 일본이 미국에게 패배하는 바람에 일본의 압정으로부터 해방된 것을 경축하는 날입니다. 해방되어 민족의 국권과 자유를 얻기는 했지만, 소련과 중국에 의존한 김일성 휘하의 북한 공산군의 남침으로 동족상잔의 끔찍한 비극을 겪었습니다. 그 엄청난 후유증은 물론, 아직도 분단 상태로 대치하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동족 모두가 자유와 인권을 누리는 하나의 독립국가가 되었으면 합니다. 동족을 상대로 무력 적화 통일을 하겠다는 공산주의자들과 달리, 우리는 평화 민주 통일이 이뤄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통일되어 모두가 영적 자유까지 누릴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이 영국과의 전쟁이 불가피해졌을 때, 대부분의 미국 지도자들의 의견은 항복하자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분연히 일어선 헨리는, “내게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고 외쳤으며, 그 정신은 결국 미국을 독립국으로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실로, 자유란 목숨을 걸고서라도 획득하고 누려야 할 소중한 것입니다.

2. 자유에 대한 갈망과 주님의 선물인 사랑을 위한 자유

모든 사람들의 염원인 자유는 모두의 것이 아니라, 자유를 획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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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능력과 그 자유를 누릴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예를 들면, 노래하는 무대는 실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자유롭고 즐거운 자리이지만, 음치에게는 부자유스럽고 불안한 자리입니다. 물질적 속박으로부터의 자유는 돈을 벌 능력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돈에 대한 추구는 항상 돈의 노예로 전락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데에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추구하는 권력이나 명예, 학문이나 기술, 우상이나 종교 교리, 이념이나 사상, 주색잡기 등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념이나 권력의 노예, 재물이나 명예의 노예가 되어 수백 만, 수천 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전범자들도 있었고, 그보다 더 많은 동족들을 학살한 공산주의자들도 있었습니다.
모든 자유의 추구란 자신의 욕망의 종노릇이라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인간에 대한 가장 큰 속박은 바로 그 자신임을 우리는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예수님은 요한복음 8:34에,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의 죄란 윤리‧도덕이나 법률상의 죄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삶 자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14:23 후반에,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3:9 이하에는,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를 얻고 누릴 수 있는 능력이란 구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밖에는 없습니다. 이 점에 대해 예수님은 요한복음 8:36에,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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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도인들에게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자유란 자연인의 노력이나 능력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해결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베풀어지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서 5:1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또, 본문의 13절에서는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은 육체 곧 불신의 자아와 하나님의 진노, 염려와 근심, 불안과 두려움, 죽음과 멸망, 마귀의 권세 등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죽음을 통해 자유인이 된 것입니다. 이 영적 자유야말로 모든 자유의 근간이며, 모든 속박에서의 해방이고, 또한 모든 속박과 압제를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6:22 이하에 아주 은혜로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울 사도와 실라가 복음을 전하다가 체포되어 억울하게 매를 많이 맞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두 믿음의 사람은 지켜 보호해 주시지 않은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았고, 모함하며 고소한 무리와 매질을 한 관리들에 대해 불평하지도 않았고, 복음 선교를 포기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밤중쯤 되었을 때,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이 믿음의 사람들이야말로 모든 속박에도 속박되지 않는 자유혼 곧 주님 예수의 영을 모신 진정한 자유인들이었습니다. 고린도후서 3:17을 보면, 바울 사도는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영이신 성령이 심령 속에 살아 역사하는 사람, 즉 영과 이성과 감정과 의지를 주님께 복종시키며 사는 사람만이 진정한 자유를 얻고, 또한 그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의 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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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만하면 충만할수록, 믿음의 그릇이 크면 클수록 그만큼 더 큰 자유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주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로 이미 고귀한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최종 목적이 아니라, 보다 더 큰 목적인 사랑을 위한 방편일 뿐입니다.
바울 사도는 주님께서 주신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고 했습니다. 그 자유로 하나님을 떠나 남을 생각함이 없이 자기 마음대로 이용할 기회로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을 하라는 뜻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사랑의 종노릇을 하도록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에서 얻은 자유를 누리는 길은, 자신을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죄인인 인류를 섬기시고, 또한 자신의 목숨을 그들의 대속물로 주신 주님을 따르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서로 첫째가 되어 뭇사람의 섬김을 받고자 쟁론하던 제자들에게 뜻밖의 선언을 하셨습니다.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막 9:35). 주님의 관점에 의하면, 위대성의 척도란 재물이나 권세의 유무나, 지식이나 지혜의 다소나, 성취나 업적의 다소가 아니라, 사랑의 종노릇의 분량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큰 교회란 많은 교인, 넘치는 재정, 웅대한 건물이 아니라, 다른 교회들과 세상을 위해 사랑의 종노릇을 많이 하는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정말 큰 믿음의 사람은 온 세상이 놀랄 만한 성공과 출세의 복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놀라운 사랑의 종노릇을 한 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선물인 자유로 사랑의 종노릇을 하는 것은 온 율법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14절을 보면,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라고 했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전제한 것입니다. 실상,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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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구분은 되나, 분리될 수는 없습니다. 칼빈(J. Calvin)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는 것에 의해서 자신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시험하신다. 이것이 사랑은 율법의 완성(롬 13:8, 10)이라고 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이웃 사랑보다 우위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 사랑이 바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자기 자신처럼 사랑해야 할 이웃의 범주에 대해서 유대인들은 자기의 동족에 국한시켰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원수까지도 포함시키셨습니다.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곧 우리가 자기 자신처럼 사랑해야 할 이웃입니다.

3 맺음말

자유란 목숨을 걸고서라도 획득하고 누려야 할 소중한 것입니다. 주 예수님이 대속 제물이 되시기까지 하시면서, 선물하신 자유를 누리는 길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이웃의 요구대로 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진정한 의미의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매가 절실한 사람에게는 칭찬이 아닌 매가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6을 보면,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자유로 서로 사랑의 종노릇을 해야 할 이유는,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하기 때문입니다. 또 한 이유는, 개인과 가정, 교회와 사회, 그리고 국가와 국가 간의 모든 문제의 근본적이고도 유일한 해결책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선물이자 과제인 자유란, 사랑의 종노릇을 위한 자유입니다. 우리가 베풀 수 있는 최고 최대의 사랑은, 영생의 주 예수님을 선물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국민이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우리 모두 가정에서부터 서로 사랑의 종노릇을 함으로써 고귀한 자유를 누리는 본이 되시기 바랍니다.

설교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신약 주석(마~계, 1-15권)/ 설교집 28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다수의 논문들/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전체 2

  • 2020-08-12 09:34

    자유란 목숨을 걸고서라도 획득하고 누려야 할 소중한 것입니다.아멘 !
    제가 9살 때 해방을 맞이 헀습니다 많은 군중들 속에 끼어서 만세를 부르던
    생각이 납니다 귀한 광복절 설교말씀 감사합니다


    • 2020-08-12 12:47

      필자의 광복절 설교를 귀한 설교 말씀으로 여기시고, 더욱 공감하시는 부분을 적시하셔서 감사합니다. 해방을 맞던 9세에 많은 군중들 속에서 함께 만세를 부르셨다니 대단하십니다.

      대속 제물이 되시고 부활하신 주님이 주신 영적 자유를 얻고 누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특히 종교의 자유를 매우 소중히 여겨 지키고 누려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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