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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7:45-52(설교: 어느 편에 서야 하나)의 주경신학적 연구

Author
최세창
Date
2025-04-11 13:31
Views
302
예수님에 대한 유대인들의 다양한 반응을 설명한 사도 요한은, 이제는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해 하속들을 보낸 공회의 적대적인 반응과 예수님을 변호한 니고데모에 관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그는 이 부분을 【45】하속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저희가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로 시작한다.
하속들은 휘페레타이(ὑπηοέται)로서 ‘관리’, ‘공무원’, ‘경호원’, ‘경비병’ 등을 의미한다(참조: 7:32).
대제사장들은 7:32의 주석을 보고, 바리새인들은 1:24의 주석을 보라. 이 양자는 공회(산헤드린)의 구성원들이다.
이들은 예수님을 잡아오라고 보냈던 경호원들이 그냥 돌아온 것을 보고,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라고 물었다.
경호원들의 대답에 대해, 사도 요한은 【46】하속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라고 하였다.
공회의 명령을 받아 예수님을 체포하러 갔던 경호원들은 오히려 그 어떤 다른 사람들과 다른 예수님의 말씀에 대단히 큰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말씀을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초인적인 권위에 완전히 압도당한 것이다(참조: 막 1:21, 27).①
그와 같은 경호원들의 대답을 들은 바리새인들의 질책에 대해, 사도 요한은 【47】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라고 하였다.
미혹되었느냐(페플라네스테, πεπλάνησθε)는 7:12의 주석을 보라.
또한, 바리새인들은 경호원들이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에 압도되어 예수님을 두둔하는 것이 얼마나 부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인가를 깨우치기 위해, 【48】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이가 있느냐라고 하였다.
이 질문은 니고데모가 한 것(C. K. Barrett)이 아니라, 앞 구절에 언급된 바리새인들이 한 것이다. 공회(산헤드린)의 구성원들인 지도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있느냐는 것이다. 즉, 경호원들의 상관이고, 율법과 전승을 훨씬 더 잘 아는 유대 지도자들 가운데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사람이 없는데, 경호원들 주제에 무얼 안다고 예수님을 믿느냐고 하는 힐문이다.
울화를 삭이지 못한 그 바리새인들은 노골적으로, 【49】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라고 하였다.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란 율법 지식이 부족하거나, 그 밖의 유대교의 교리와 의식과 관습 등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일반 백성을 경멸하는 뜻을 담은 표현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바리새인들의 학파에서 교육을 받지 못하고, 그들이 하는 대로 구약성경[율법]을 해석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다”(A. Barnes).
바클레이(W. Barclay)는 “무수한 의식법의 규정들을 준수하지 못한 평범하고 단순한 백성을 묘사하는 말이다. 바리새인들은 그러한 백성을 경멸할 가치조차 없다고 여겨 ‘땅의 백성’이라고 불렀다. 딸이 그러한 백성 가운데 한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없는 짐승과 결합하는 것으로 취급되었다.”라고 하였다.
저주를 받은 자로다는 에피카타라토이(ἐπικατάρατοί)로서 “밉살스럽고 경멸과 멸망을 받을 만한 하찮은 사람을 의미한다”(A. Barnes). “율법(토라, 미쉬나)을 알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었다” (J. H. Mayfield).
“랍비의 법에는 ‘땅의 백성’에 대해 여섯 가지가 주장되었다. 즉, 그들에게는 증언이 위임되지 말아야 하고, 그들의 증언은 채택되지 말아야 하며, 비밀을 지킬 것을 기대하지 말아야 하고, 고아의 보호자로 임명하지 말아야 하고, 자선기금의 관리인을 삼지 말아야 하고, 여행을 같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②
놀라운 사실은 유대교 지도자들이 땅의 백성이요 저주받은 자들이라고 경멸한 그 무리가, 먼저 율법에 언급된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교 방법이다. 이 놀랍고 기이한 사실에 대해, 바울도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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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자의 마가복음 1:21, 27의 주석을 보라.
2) in W. Barc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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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6-29)라고 하였다.
유대교 지도자들과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 한 지도자에 대해, 사도 요한은 【50】그 중에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저희에게 말하되라고 하였다.
그 중에 한 사람은 공회(산헤드린)의 회원들 중에 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는 바로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이다(3:1-2의 주석을 보라).
그 니고데모는 전(3:2)과 달리, 예수님의 적대자들을 향해서 담대하게 【51】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라고 하였다.
여기서 율법은 의인법으로 사용되었다.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는 그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처사를 힐문하는 것이다.
율법에 의하면 재판은 다수를 따라 부정당한 증거를 해서는 안 되고(출 23:1-2), 사실 여부를 검증해야 하며(신 17:4), 두세 증인의 입으로 사건을 확정해야 한다(신 19:15), 만일에 위증으로 인해 논쟁이 있을 경우에는 양방을 함께 세워야 하고(신 19:17-18), 동족은 물론 외국인에 대해서도 양방간에 공정히 판결해야 한다(신 1:16-17).
바리새인들이 그러한 율법에 대해 사실상 무식했다(이상근)기보다는, 예수님을 반대하고 체포하기 위해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그런 식으로 판단한 것 같다.
니고데모의 힐문에 대한 공회의 반응에 대해, 사도 요한은 【52】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상고하여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라고 하였다.
너도 ‘갈릴리’(1:43의 주석을 보라.)에서 왔느냐는 일종의 경멸이 담긴 표현이다. 그 당시에는 어촌인 나사렛을 포함하고 있는 갈릴리는 경멸의 대상이었다. 플루머(Plummer)는 “모든 갈릴리인들은 교양의 부족과 멋이 없는 사투리와 이방인들과의 교제 때문에 멸시되고 있었다.”③라고 하였다.
그들은 “니고데모가 갈릴리 사람이 아닌 줄 알면서도, 그가 그 멸시받는 갈릴리 사람의 추종자가 되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비웃음은 논증이 아니며, 조롱에는 명분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조롱은 교만한 자들이 신앙을 반대하기 위해 자주 사용했던 유일한 무기가 되었던 것이다”(A. Barnes).
상고하여 보라(에류네손, ἐρεύνησον)는 5:39의 주석을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는 율법(구약성경)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무식을 드러낸 표현이다.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는 갈릴리의 가드헤벨 출신이었다(왕하 14:25). “바리새인들의 논증은 유다 문헌 어디에도 병행구가 없는 듯하다. 라삐 엘리에젤(R. Eliezer: 주후 90년)이 한 말을 서로 비교하라. ‘이스라엘에서 한 예언자도 나타나지 않았던 종족은 없다’(Sukkah 27b). ‘이스라엘 나라에서 한 예언자도 나오지 않은 마을은 없다’(Seder Olam R. 21: 인용 S.B. Ⅱ, 519).
바리새인들의 취지는 선지자 하나 배출되지 않은 지역에서 메시아가 배출될 리가 없다는 것이다. 모든 지식이 다 그렇지만, 특히 구원의 진리인 성경에 대한 지식은 깊고 정확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낫다.
끝으로, 사도 요한은 【53】(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④라고 하였다.
공회(산헤드린)의 회원들인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 그리고 하속들과 군중이 각각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다행히 예수님은 위기를 모면하셨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짊어지실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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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in 이상근.
4) 이 구절부터 8:11까지가 없는 사본들도 있으므로, 원래부터 있던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나, 현재로서는 누구도 확실한 것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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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저자의 이름만 밝혔고, 같은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네 명 이하일 경우에는 본문의 괄호 속에 이름만 밝혔음.

출처: 최세창, 요한복음(서울: 글벗사, 2006, 1판 2쇄), pp. 299-303.



Total Reply 2

  • 2025-04-12 23:54

    아멘.
    최 목사님께서 주안에서 영육 간에 늘 강건하시길 기도합니다. 본문에 대한 제 소견을 별도 게시물로 공유합니다.


    • 2025-04-14 20:27

      본 주경신학적 연구에 대해 "아멘."으로 화답하시고, "최 목사님께서 주안에서 영육 간에 늘 강건하시길 기도합니다. 본문에 대한 제 소견을 별도 게시물로 공유합니다."라고 하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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