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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편에 서야 하나

Author
최세창
Date
2025-04-11 13:29
Views
305


<요한복음 7:45-52>

45하속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저희가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46하속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47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48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이가 있느냐 49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50그 중에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저희에게 말하되 51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 52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상고하여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1. 시작하는 말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이나 편견은 오해나 착각, 곡해나 오판을 초래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이나 편견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는, 사상이나 이념이나 이단 교리나 집단이기 같은 집단적인 선입견과 집단적인 고정관념과 집단적인 편견입니다. 이런 편이 아닌 하나님 편에 서야 합니다. 모든 이성적인 것에는 오류가 있다는 것과 보다 더 뛰어난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야야 합니다. 열린 머리와 열린 마음이 되어야 하고,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주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하는 것입니다.

창조주요 섭리자이신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민족이라는 선민의식에 젖은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이방인은 멸망시키신다는 선입견과 고정관념과 편견이 있었습니다.

2. 예수님 편에 서는 사람들과 체포하려는 교권자들

유대인들 중에는 예수님에 대해 호감을 갖거나,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와 기적의 치유와 축귀 등을 보고 약속된 메시아로 믿고 추종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혐오감을 느끼거나, 메시아 사칭 죄인으로 여겨 적대감울 드러내는 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유대의 교권자이자 권력자들은, 예수님을 혹세무민하는 메시아 사칭자로 여겨 제거하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역사하실 때에, 사두개파인 대제사장 가야바와 그의 장인인 전직 대제사장 안나스와 그 아들들, 그리고 율법과 교리와 전승 준행에 자부심을 가진 바리새파가 공모하여 예수님을 체포하라고 하속들인 경호원들을 보냈습니다. 평소에 사이가 나빴던 사두개파와 바리새파 중에는, 유대의 최고 기관인 공회의 회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두 파가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알아볼 영적 지각이 없어서,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하속들을 보내는 데에는 한통속이 된 것입니다.

하속들이 예수님을 체포하지 않고 돌아왔으므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라고 힐문했습니다. 하속들은 “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을 체포하러 갔던 하속들은, 그 어떤 사회 지도자들이나 유대교 지도자들과 다른 예수님의 말씀에 큰 감동을 받았고, 예수님의 초인적인 권위에 압도된 것입니다. 마가복음 1:22을 보면, “뭇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1:27에는, “다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라고 했습니다.

하속들의 보고를 들은 바리새인들은, “너희도 미혹되었느냐”라고 힐문했습니다. 핵심을 잘못 짚은 힐문입니다. 예수님처럼 말씀하는 사람은 그때까지 없었다는 보고를 들었으면, 당연히 예수님의 말씀의 내용이 뭔지를 물어야 하지 않습니까? 또, 정말 사람들을 미혹하는지 아닌지, 유익하게 하는지 해롭게 하는지 물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종교적 선입견과 고정관념, 그리고 집단 이기와 정치적 이념에 맞지 않는다고 범죄 여부에 대한 확인도 없이, 우선 잡아넣고 보자는 것입니다.

지성이나 영성을 갖춘 지도자라도 감정이나 돈이나 성적 쾌락, 명예나 감투나 이념에 쏠리면 분별력을 상실하게 되므로, 매사에 편견적이며 편파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매사에 편견적이며 편파적인 사람들일수록, 다른 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들어도 듣지 못할 것입니다.

“너희도 미혹되었느냐”라고 힐문한 바리새인들은, 그럴 듯한 논리를 폈습니다.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들 중에 예수를 믿는 이가 있느냐는 겁니다. 하속들의 상관이고, 율법과 전승도 더 잘 알고, 그 밖의 모든 면에서 훨씬 더 잘난 지성인들인 유대 지도층에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사람이 없는데, 하속들 주제에 뭘 안다고 예수를 믿느냐고 하는 힐문입니다. 바보 같이 예수에게 홀렸느냐는 것입니다. 그 바리새인들의 그럴 듯한 논리는, 전문가와 대가들에게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편견 논리요 편파 논리입니다.

그 바리새인들은 알아야 할 것을 모르는 지도층입니다. 지정의가 뛰어나다고 해서 인격이 뛰어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세계 각국에 뛰어난 지정의로 지능적인 범죄나 범법을 일삼거나, 악법을 만들어서 합법적으로 악행을 하는 지도층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성령으로 인한 영성은, 인간의 지정의와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초월하는 것입니다.

울화를 삭이지 못한 그들은 노골적으로,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라고 했습니다. 율법을 아는 무리라도 그들처럼 이해하는 율법 지식이 아니면, 율법을 모르는 것이며 따라서 저주를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진영 논리 편에 서는 사람들은 각각 자기 진영 논리가 타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물론, 다른 진영 편에 선 사람들을 향해 화를 내며 비난하고 저주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은 편견 논리요 편파 논리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논리라야 타당한 논리입니다.

“저주를 받은 자”의 헬라어 에피카타라토이(ἐπικατάρατοί)는 “밉살스럽고, 경멸과 멸망을 받을 하찮은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바클레이(W. Barclay)는 “무수한 의식법의 규정들을 준수하지 못한 평범하고 단순한 백성을 묘사하는 말이다. 바리새인들은 그런 백성을 경멸할 가치조차 없다고 여겨 ‘땅의 백성’이라고 불렀다. 딸이 그런 백성과 결혼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없는 짐승과 결합하는 것으로 취급되었다.”라고 주석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충격적인 사실은, 유대의 지도층이 땅의 백성이요 저주받은 자들이라고 경멸한 무리가 율법에 언급된,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오신 주 예수님을 먼저 믿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6을 보면,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선교 방법은, 어떤 사람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을 방문한 적이 있는 공회 회원인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적대자들인 그들에게 담대하게 일침을 놓았습니다.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 쏠린 감정이나 쏠린 관점에 따라 우선 잡아넣고 판결할 것이 아니라, 먼저 규명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겁니다. 율법에 의하면 재판은 다수를 따라 부정당한 증거를 취해서는 안 되고, 사실 여부를 검증해야 하며, 두세 증인의 입으로 사건을 확정해야 합니다. 만일 위증 때문에 논쟁이 있을 경우에는 양방을 함께 세워야 하고, 이방인의 경우에도 양방 간에 공정히 판결해야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니고데모처럼, 영원불변하신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께 이르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 예수님의 편에 서서, 적대자들 속에서라도 말해야 할 때 담대히 말해야 합니다. 주 예수님을 믿든 안 믿든 간에 어느 편에 서는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허베이 성에 사는 지아원치는 세 살 때 감전 사고로 두 팔을 잃었습니다. 장애인 공연단에서 활동하다가 다시 마을로 돌아와서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어릴 때 백내장으로 왼쪽 눈을 실명한 동네 친구인 하이시아가, 채석장에서 일하다 돌 파편에 맞아서 오른쪽 눈까지 실명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아원치는 낙심한 하이시아를 찾아가서, 고향에서 함께 나무를 심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내가 너의 눈이 되어 주고, 너는 나의 팔이 되어 주면 좋겠어.” 두 사람은 공장과 채석장 때문에, 황폐해진 하천 주위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사용한 도구는 삽 몇 자루와 손도끼가 전부였습니다. 첫 해에는 팔백 그루의 나무를 심었는데, 두 그루의 나무만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낙심하지 않고 계속 나무를 심었습니다. 십사 년 동안 무려 십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 하천 주위를 푸른 숲으로 만들었습니다.

두 장애인은 서로 편을 잘 서서, 사람들의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놀라운 업적을 남겨 무수한 사람들에게 유익과 덕을 끼쳤고, 또 끼칠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 편에 제대로 선다면 얼마나 많은 유익과 덕을 끼치겠습니까? 엄청난 영생의 복까지 얻게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주 예수님 편에 서기는커녕, 주 예수님을 제거하려는 유대 지도층은 일침을 놓은 니고데모에게,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상고하여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라고 비아냥거렸습니다. 논증 대신에 비아냥거림으로 뒤틀린 심사를 드러냈습니다. 그들이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한다는 것을 상고해 보라고 한 것은 모르고 한 말입니다.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공회 회원을 비롯한 유대의 지도층과 종교 지도층과 민중 대부분은, 집단적인 종교적 선입견과 고정관념과 정치적 이념 편에 서는 바람에 주 예수님의 강림으로 본격화 된 하나님의 통치에서 이탈되었고, 지옥으로 끌고 가는 죄의 사함과 거듭남, 자유와 평화, 성결한 삶과 영생의 복을 놓쳤고, 또한 주 예수님의 복음 선교의 문을 막았습니다.

사업가나 정치인 할 것 없이 믿는 사람이라면 좌파나 우파나 중도 어느 편도 아닌, 영생의 주님 편에 서야 합니다. 직무와 업무 수행을 할 때는 물론, 언제 어디 어떤 상황에서나 만민의 주 예수님 편에 서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아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으로 일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설교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신약_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7권/ 기타 다수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



Total Reply 2

  • 2025-04-12 23:54

    아멘.
    최 목사님께서 주안에서 영육 간에 늘 강건하시길 기도합니다. 본문에 대한 제 소견을 별도 게시물로 공유합니다.


    • 2025-04-14 20:26

      본 설교에 대해 "아멘."으로 화답하시고, "최 목사님께서 주안에서 영육 간에 늘 강건하시길 기도합니다. 본문에 대한 제 소견을 별도 게시물로 공유합니다."라고 하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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